
우리 집 애들은 세 살 터울의 남매다.
남매가 어릴 때에는 좁은 아파트에 살아도 별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둘 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이가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누나가 4학년이 되자 남동생이 1학년으로 입학했는데, 혼자 쓰던 공부방을 동생과 같이 쓰게 된 누나가 이런 경고를 했다는 것이다.
“너, 앞으로 이 방에서는 절대 떠들거나 장난하면 안 돼. 왜냐면 내 방에 네가 세를 든 거니까 말이다.”
직장에서 막 퇴근한 나를 붙잡고 아들애가 못내 억울한 낯으로 전한 경고의 내용이다. 그러면서 물었다.
“아빠, 정말이야? 내가 누나 방에 세를 든 거야?”
셋방살이를 오래한 탓에 생긴 희극 같아 우스웠지만 아비 마음 한 편으로는 서럽기도 했다. 기억은 분명치 않은데 아마 이렇게 아들애를 달랬던 듯싶다.
“누나 말이 맞다. 네가 속상하겠지만 조금만 참아라, 지금 다른 동네에 방 많은 우리 집을 새로 지으려고 하니 말이다. 아빠가 약속한다. 집을 짓고 나면 네 방을 따로 하나 줄 테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몇 년 전 토지공사에서 택지를 하나 샀었다.
그런 언약 때문이 아니더라도 1년 뒤 지금의 단독주택을 짓고 우리 가족은 그 아파트를 떠났다. 물론 이사 오자마자 딸애와 아들애한테 방 하나씩 주었다. 방마다 평수가 달라서 딸애가 누나이므로 아들애보다 조금 더 넓은 방을 주었다. 누나 보다 좁은 방을 쓰게 된 아들애가 혹 불평할까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별 말 없이 아들애는 그 방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이 단독주택에서 21년이 흐른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앳된 상고머리 얼굴로 그 방에 들어간 아들애가 얼마 전 서른 나이 청년 모습으로 그 방을 나와 분가했다. 취직하게 되면서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갈 참이다. 돌이켜보면 21년 동안에 아들애가 그 방을 비운 때는 딱 삼 년이었다. 2년은 군대 가 있을 동안이고 1년은 어학연수 차 외국에 가 있던 동안이다. 그 외 18년은 그 방에서 아들애가 지낸 셈인데 사실 그 방은 당사자가 부재한 3년간에도 변함없이‘아들애 방’이었다. 항상 아들애의 옷들과 책들과 잡동사니가 빈 방을 지켰다. 대학 시절 락밴드 활동에 빠졌을 때의 이상한 물건들(별나게 넓은 혁대, 요란한 디자인의 시계, 은빛 쇠줄이 달린 청바지, 짝짝이 색깔의 신발 등)도 항상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 빈 방을 지켰다. 아들애가 태백산맥 너머 동해안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 우리 내외는, 그 방의 물건들을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둠으로써 녀석이 무사하게 제대하기 바라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듯싶다. 비행기로 12시간을 가야 하는 먼 타국에 가 있을 때에도 우리 내외는 그 빈 방의 문만 보면 녀석이 그저 무사하게 일 년을 보내고 귀국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심지어는 내외간 말다툼을 벌일 때에도 그 방의 문만 보면 ‘부모라는 사람들이 이러면 안 되지. 아들애가 먼 데 나가 있는데’ 하며 마음들을 다잡기까지 했다.
아들애는 분가하면서 그 방의 자기 물건들도 챙겨갔다.
이제 그 방은 아비의 낮잠 자는 방이 되었다. 사실 그 방은 다른 방에 비해 좁은 편인데다가, 옆에 보일러실이 있어서 간간이 보일러 작동 소리도 나니 그다지 쾌적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 몇 달 간 아비가 낮잠 자는 방으로 써 보니까 의외로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렇다. 좁은 만큼 역설적으로 아늑한 맛이 있었다. 이불 펴고 누우면, 마치 내 몸에 맞춘 듯 불필요하게 남은 공간 하나 없으니 그저 안온한 잠에 빠져들 수밖에. 아들애가 대학 시절 밤새워 락 밴드 활동을 하다가 귀가만 하면 쥐죽은 듯 방에서 잠자던 모습이던 게 비로소 이해되었다. 간간이 들리는 보일러 소리조차 귀에 익숙해지자 어느 순간부터 따듯한 자장가처럼 여겨지는 게 아닌가. 그렇다. 너무 조용하기보다는 간간이 소음이 있는 방이 낮잠 자기 좋았다. 좁고, 간간이 기계 소리가 나는 곳임에도 녀석이 아무 말 없이 만 18년간을 잘 지낸 까닭이 있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난 뒤 나는 아들애 방으로 들어가 낮잠을 잤다. 몸이 늙으면서 체력이 달리는 때문인지,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낮잠을 자야 버틸 수 있다. 요즈음은 화창한 봄이 돼 보일러를 틀지도 않는다. 간간이 들리던 소음마저 사라진 아들애의 방. 겹겹의 고치 속에 누운 누에만큼이나 고요한 공간 속에서 나는 달게 잠들었다.
아들애가 남기고 간 어느 한때 방황과 꿈속에 누워 아비가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