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사람만‘등장’하지 않는다. 자연현상도‘등장’하여 사람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라는 영화가 바로 그렇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는‘뱀 구름’이라고 우리말 화(化)하고 싶다. 물론‘뱀의 구름’이란 뜻이 아니고‘뱀 같은 구름’이라는 뜻이다.‘웅장한 알프스의 계곡 사이로 거대한 뱀 한 마리처럼, 긴 구름이 스르륵 지나가는 자연현상’이 과연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무엇일까?
나는 이‘뱀 구름’이‘갈등 많은 인간사와 대조되는 묵묵한 자연 현상’으로서 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화려한 젊은 시절이 지나간 늙은 여배우, 그녀를 옆에선 돕는 매우 까칠한 여비서, 그런가 하면 늙은 여배우와 비교되는‘현재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이렇게 세 사람의 숨 쉴 틈 없는 갈등 전개가 ‘아무 말 없이 예나 제나 한결 같은 모습의 뱀 구름 현상’과 비교 및 대조되었다는 분석이다. 이는 우리 옛 시조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상략)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하략)’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와 비교되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에 몹시 갈등하지만, 결국은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늙은 여배우’의 쇠락(衰落).
이 영화의 감독이 마지막 장면에서 마리아의 표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도 언젠가는 늙어서 시들어 버린다. 그와 달리 여전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대 자연의 풍광……. 그렇기에‘주인공 마리아가 결국은, 뱀 구름을 닮아가는 표정으로 이 영화가 막을 내린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씀에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격한 갈등에서 출발해 체념 및 순응이라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주인공 마리아와 달리 뱀 구름은 그런 일 없이, 한결 같은 존재의 모습으로 이 영화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긴, 인간은 자연과 동격이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스토리 전개상 9부 능선쯤에 다다랐을 때다. 늙은 여배우 마리아가 함께 공연하는 젊은 여배우 조앤한테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를 몇 초간 보다가 퇴장하는 것으로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당신은 그럴 만큼 중요한 역이 못 된다.’는 냉랭한 대답이나 듣고 마는데…… 두 여자의 내밀한 갈등이 일방적인 자존심 추락으로 순식간에 종결됨을 보여주는 백미 장면이다.
그 후 마리아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SF영화의 주인공 역까지 받아들이는 인물로 전락한다. 삶을 관조하거나 달관하는 표정이 아닌, 단지 쇠락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하긴, 흐르는 세월 앞에서 그 누가 장사이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말로야 스네이크’를 나는 ‘뱀 구름’이라고 우리말 화(化)하고 싶다. 물론 ‘뱀의 구름’이란 뜻이 아니고 ‘뱀 같은 구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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