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구나!’하고 김선생은 뇌까렸다. 자신이 담임한 학급에서 한 아이가 불쑥 무단결석을 했기 때문이다. 3월부터 4월 지날 때까지 단 한 명의 결석생 없이 학급을 잘 이끌어왔는데 5월로 들어서자마자 한 아이가 등교하지 않은 것이다.

 

어째, 학급 아이들이 순순히 담임 말을 잘 들으며 결석 한 번 하지 않는 게 이상했었다. 일주일에 한 명 정도는 결석하는 게 평상적인 시골 고등학교의 출결상황일 텐데 두 달 되도록 결석 하나 없었으니----. 물론 결석하는 놈은 우리 반 화장실 청소를 한 학기 동안 맡는 것으로 한다는 엄포도 수시로 놓는 등 김선생 나름대로 아이들의 결석 방지를 위해 애쓰긴 했다.

 

지난달 교장선생이 직원회의 석상에서 김선생을 호명하며 교직에 첫 발을 디뎠음에도 불구하고 담임한 학생들을 아주 잘 지도하여 우리 학교에 유례없는 무결석 학급을 만들어나가는 분!”이라고 극찬까지 하면서 김선생은 어쨌든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느낌으로 지내왔는데 다 무위한 일로 돌아갈 판이다. 선배 동료교사들은 아무 말 않고들 있지만 속으로는 그럼 그렇지! 결석 많고 지각 많은 이 학교 애들이 어디 가나?’하고 낄낄 웃고들 있을지 몰랐다. 그래도 교감 선생만은 달랐다. 교무실 뒤편의 학급별 출결상황 판 앞에 낙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김선생을 따로 부른 뒤 이렇게 말했다.

 

그 학생이 오늘 칠교시 마지막 수업 전까지만 등교하면 지각으로 처리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김선생님의 오후 수업을 오전으로 돌려놓을 테니 가정방문 경험을 쌓는다 치고 그 학생을 찾아서 데려오는 게 어떻습니까? 나도 사실 우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무결석 반을 보고 싶거든요. 허허허

 

오후의 두 시간 수업을 오전으로 돌려놓으니 김선생은 오전 내내 한 시간도 쉬지 못하고 수업해야 했다. 고단한 수업과 수업 사이에 쉬는 시간 10분마저 없었더라면 기진해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 귀중한 쉬는 시간에 김선생은 가정환경조사서를 꺼내 그 아이의 페이지를 펴 보았다. 아버지 직업이 '어부'라 적혀 있고, 생활정도는 라 했다. 집마다 한 대씩은 보급된 거로 아는 전화마저 없음이라 적혀 있으니 사는 게 오죽하랴. 아이는 사남매의 장남이었다. 김선생 눈앞에 빈한하기 짝이 없을 그 아이의 집 모습이 대강 그려졌다.

 

학교가 있는 곳은 산이 가까운 평야지대다. 그 아이가 사는 동네는 평야지대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작은 포구란다. 김선생이 부임하던 첫 날 저녁에 신입교직원 환영회식을 가진 곳이 어떤 포구의 횟집이었는데 바로 그 포구였다. 포구를 내려다보는 형태의 산기슭에 허름한 집들이 많던데 아이의 집이 그 중 한 집일 테지.

 

그 동안, 두 달 넘은 기간에 담임한 애들의 생활태도가 대충 파악됐는데 오늘의 그 아이야말로 특이점이 없었다. 굳이 특징을 말한다면 키가 커서 뒷자리에 앉고, 말도 별로 없다는 정도다. 공부는, 늘 조는 모습이 뜻하듯 못했다. 4월 모의고사 성적을 보니 45명 중 43등이었다. 학기 초라 한 교실에 낯선 친구들이 많아, 말다툼이 벌어지거나 심하면 주먹다짐이 벌어지기 일쑤인데 그런 적도 없는 아이였다. 김선생은 결론을 내렸다.

 

이 아이는 날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 다니기가 힘겨워진 것이다. 공부도 안 되고 친한 친구도 없는 학교에 가 봤자, 종일 의자에 앉아서 인내할 일밖에 없으니 오죽하랴. 그러니 내가 이 아이를 만나면 이렇게 달래야 한다. ‘공부가 안 되더라도 학교는 빠지지 말고 가야 해. 그래야 졸업장을 받는다. 요즈음은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아무 데도 취직 못하는 세상이다. 알겠니?’”

 

더 생각해 봤다.

 

그 아이가 선생님. 저는 그냥 고깃배를 탈 건대요. 우리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배 타는 것은 문제없거든요.’한다면 뭐라 달래지. 그럼 그 아이의 부모를 동원해 달래보는 게 최선의 방법이겠다. 부모야 당연히 아이를 나무라면서 무슨 소리냐! 배를 타다니, 그건 안 돼. 학교 졸업장을 반드시 받아서, 어디 작은 회사라도 다녀야 사람 꼴이 되는 거야.’ 하겠지.”

 

김선생이 탄 시내버스가 아이 집이 있다는 포구 어귀의 정류장에 도착했다.

 

오후로 접어들었지만 5월의 화창한 햇살은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포구의 내해와 외해 위로 남김없이 떨어져 파도의 검푸른 색에 빛나는 광택을 입혔다. 정류장 부근에 서서 포구를 바라보던 김선생는 그 강렬한 파도 빛에 눈이 다 아팠다. ‘산 가까운 평야지대 학교 건물 속에서 내가 종일 근무하고 있을 때 여기 포구 일대는 이런 황홀한 바다 풍경이었겠구나!’

 

잠시 눈앞의 바다 풍광에 넋 잃은 듯 섰다가 김선생은 정신을 차렸다. 오늘 이곳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온 건 무단결석한 아이를 찾아서 다시 학교로 데려가 '지각'으로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양복 상의의 주머니에서 아이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꺼내들고 포구 쪽으로 걸어가다가, 그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포구를 반 가까이 가로지른 시멘트 제방 위에 혼자 서 있었다. 한 이삼백 미터 거리였지만 그 아이 말고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는 제방이기에 김선생은 한눈에 알아봤다. 아이는 긴 장대 끝에 가는 줄을 맨 사설 낚싯대로 바다고기를 낚시하는 것 같았다. 교실에서는 분단 맨 뒤에 앉아 수시로 꾸벅꾸벅 졸던 녀석이 지금 바닷가 제방에서는 아주 늠름한 모습으로 낚시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얀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울며 부근을 오가는데 조금도 흔들림 없이 빛나는 검푸른 바다를 주시하고 선 그 모습.

 

갓 스물여덟 김선생은 더 이상 걷지 못했다. 아이의 이름도 부를 수가 없었다. 저렇게 늠름하게, 드넓은 바다를 상대하고 선 존재를 어떻게 그늘진 교실로 데려갈 수 있을까?

 

김선생은 이제, 아이가 어떤 바닷고기를 낚아 올릴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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