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예리한 데가 있다. 그 어린 작은 고양이에 대해 이리 말하던 것이다.
“분명히, 기르는 사람 없는 길고양이 새끼야. 왜냐면 기르는 사람이 있는 고양이면 털색이 하얗거나 검거나, 혹은 무늬가 곱게 지어있거나 하는데 그 고양이는 털색이 잡다하게 뒤죽박죽이거든.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사는 잡다한 길고양이들의 혼종인 거지.”
아내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 어린 작은 고양이가 길고양이 새끼인 줄, 나는 처음부터 알아챘다. 기르는 사람(주인)이 있다면 어떻게 그 어린놈이 동네 골목길에 나돌아 다니는 것을 방치할까.
표현을 일부 수정한다. 그 어린놈은 나돌아 다닌다기보다 그냥 멍하니 있었다. 우리 집 대문 앞에서도 멍하니 있기에 보다 못한 내가 ‘쉿!’하며 경고까지 했을까. 문제는 그 정도 경고는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두 발까지 쿵쿵 구르면서 큰 소리로‘어이 쉿!’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다른 데로 가던 것이다. 다른 데라고 하나 두어 걸음 거리의 가까운 데다. 나는 그 모습에 결론을 내렸다.
“이 놈은 자기가 고양이라는 것도 모르는 놈이구나!”
즉 고양이의 정체성도 갖지 못한 놈이었다. 그러고 보면 tv에서 ‘어미 개를 제 어미로 여겨 젖을 빨아먹고 지내는 새끼 멧돼지의 사연’이 방영된 적 있다. 하긴 인도에서는 ‘자신이 늑대인 줄 알고 늑대 무리 속에서 살다가 구출된(?) 어떤 아이’의 실화도 있었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정글북’이다. 그 아이는 갓난아기 때 마을을 습격한 늑대에 물려갔던 것으로 추정됐단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짐승의 정체성은 타고 났다기보다는, 태어나자마자 누구의 손길을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 작은 길고양이는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탓에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해 어리벙벙하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으로 ‘정체성(正體性)’의 의미를 확인해봤다.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란 사물 본디의 형체가 갖고 있는 성격을 말한다. ‘identity’란 단어가 ‘확인하다(identify)’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정체성이 자기가 아닌 남에 의한 확인과 증명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 준다.
자신이 고양이인 줄도 모르고 어리벙벙하게 서 있던 새끼 길고양이. 무슨 까닭인지 태어나자마자 어미 길고양이한테 버림을 받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행동을 보일 수가 없었다.
내가 그 놈을 못 본 지 보름은 넘었다. 놈이 뒤늦게라도 길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찾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