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7월의 일이다. 첫 소설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아는 후배에게 주고자 전화를 걸어 그 주소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
“제가 집에 없을 때가 많으니까… 봉의산 가는 길에 책을 두시면 됩니다.”
나는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책을 길에 두고 가라니, 그것도 봉의산 가는 길이라니 그 산을 올라가는 길이 여럿일 텐데 그게 말이 될 법한가? 짧은 순간이지만 이 후배가 책 받기가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스쳤다. 화가 치미는 걸 인내하며 되물었다.
“봉의산 올라가는 길이 여럿 아닌가? 어느 쪽에서 올라가는 길을 말하는 거야?”
그러자 후배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말씀 드린‘봉의산 가는 길’은 카페 이름입니다. 소양 1교 부근의 봉의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지요. 조용하고 창밖 경치도 좋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즐기는 명(名) 카페이지요.”
농사지을 때 외에는 두문불출하는 내 습성이 탄로 난 듯싶었다. 통화를 마쳤다. 후배가 말하는 ‘봉의산 가는 길’카페 위치를 알 것 같았다. 차를 몰고 소양 1교 부근에 갔더니 과연 그런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카페 주인 노정균씨를 만나게 되면서 나는 소스라쳤다. 강원대 교수 박기동씨와 얼굴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혹시‘박기동 씨’라고, 강대 교수를 아십니까?”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잘 알죠. 그러잖아도 그분과 친 형제간이 아니냐는 말을 듣곤 합니다. 박 교수님이 저희 카페에 자주 들르거든요.”
나는 박 교수와 젊은 시절‘그리고 문학회’활동을 함께 했던 인연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1971년 2월 말의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시내 중앙로 로터리에 접한 지하다방‘도심’에서 만났다. 강대에 합격해 춘천에 이제 막 올라온 신입생 박기동은 강릉 지방 억양으로 내게 인사하며 말했다.
“고 3때 편지로만 오가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다니! 저는 그저 강대에서 선배님과 문학 활동을 함께 할 생각에 가슴이 벌써부터 뜁니다.”
이번에 내 두 번째 소설집 ‘K의 고개’가 나왔다. 전상국 교수님, 시인 이무상 선배님, 소설가 최종남 선배님, 소설가 박계순 선배님, 최현순 시인, 조성림 시인, 이영진 음악평론가, 김금분 시인 등 아는 분들한테 책을 우선 전했다. 2차로 화천 감성마을의 외수 형, 정선의 신승근 시인, 동기 김두중 시인, 이흥모 시인, 이문일 작가, 이지평 시인 등에게 전할 일이 남았다. 책 표지화를 해 준 전태원 화백, 삽화 담당 서현종 화백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이에 박기동 교수한테 책을 전할 생각을 했다.
‘박 교수가 늘 바쁘니까, 봉의산 가는 길 카페에 내 책을 맡겨놓고 찾아가라는 문자를 보내면 되겠구나.’
그래서 오늘 봉의산 가는 길 카페를 찾아갔다. 박기동 교수, 아니 박기동 교수를 빼닮은 카페 주인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잔잔히 웃으며 나를 반겼다.
“박기동 교수가 요즘도 잘 옵니까?”
“그럼요. 일주일에 하루는 꼭 들르지요.”
“제가 두 번째 작품집을 냈는데 박기동 교수한테 한 권 전하고자 여기 들렀습니다.”
“아이고, 책 발간을 축하합니다.”
카페 주인이 커피를 끓이는 동안 나는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창이 넓다. 가까이 있는 소양강이 얼지 않은, 푸른 모습으로 창을 가득 채웠다. 박기동 교수, 박기동 교수를 70% 이상 닮은 봉의산 가는 길 카페 주인, 그 주인이 끓이는 커피를 기다리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봉의산 가는 길 카페는 춘천의 명소다. 늘 잔잔한 음악과 창밖의 소양강 풍경과 시인인 강대 교수 박기동 씨를 빼닮은 주인과 어떤 상념(想念)이 기다리고 있다.
#서현종 그림 『날씨 맑음, 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