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날 춘천미술관 2층 전시관에 들어서자, 수많은 동물이 제각기 조각배를 타고 줄지어오는 광경부터 맞닥뜨렸다. 도자(陶瓷)로 구워낸 동물들의 행렬이다. 동물들은 놀랍게도 사람처럼 표정이 있었다.

‘동물들이 왜 이럴까?’
의문이 들 때 출입구 벽에 붙은‘등파고랑(登波鼓浪)’이란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바닷물을 머금어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는 푸른 배에 동물을 태웠다. 그전에 배는 그저 운송수단에 불과했다면 2014년부터 배는 나에게 절망이자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노 없이 배에 타고 있는 동물은 북을 치고, 횃불을 들고, 책을 들고,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동물들을 어떠한 틀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왔다. 음식이나 물건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되는 돼지, 소, 닭, 양, 염소, 토끼, 말 등도 저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배를 탄 동물들은 웃으며 반란을 일으켜 희망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옆으로는 ‘너는 늙어봤느냐’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글도 있었다.

『우리가 먹는 동물의 99% 이상이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다. 계란 생산용 닭은 A4용지 한 장 크기보다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고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 2억 5천여만 마리는 매해 산 채로 폐기된다. 일주일에 100만 마리가 넘게 없어지는 돼지, 닭, 소 등은 평생을 자유의지로 살아갈 수 없고 닭은 길게는 30년, 돼지와 소는 15년이나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개월에서 3년밖에 살지 못한다.
나는 수탉이 자신의 수평아리를 업고 있는 모습과 돼지와 소가 행복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최대한 동물과 닮게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최소한 동물들이 살고 싶은 만큼 살다가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Untitled 시리즈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각기 다른 자세로 요가를 하는 돼지의 모습을 표현 하였다.』
‘정은혜' 작가가 도자 동물들을 통해 우리한테 말하려는 게 무언지 비로소 감이 잡혔다. 우리가 무심코 다루는(먹는) 동물들에 대해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시간이었다.
그 행렬 작품 뒤로 다른 작품들이 이어졌다.


돼지가 사람처럼 요가 하는 갖가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다가… 동네 골목길에서 흔하게 보는‘몸이 불편한 노인네가 보행기에 기대어 간신히 걸음 걷는 모습’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내 발걸음이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우리가 맞이해야 할 늙음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피할 길 없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질곡이라니….


근처에 있는 정은혜 작가한테 깊은 고뇌의 질문보다는 가벼운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어떻게 동물들한테 사람처럼 표정을 입힙니까!’하는 경탄의 말로 인사를 대신한 뒤 이렇게 질문했다.
“여기 있는 작품들이 모두 도자라니, 그렇다면 우선 흙으로 이런 모습들을 빚은 뒤, 그것도 사람처럼 표정까지 담아 빚은 뒤… 붓으로 색칠하고서 그 위에 유약을 발라 가마 속에 넣어 불에 구워냈을 게 아닙니까?”
작가가 고개 끄덕여 긍정했다.
“어느 곳에 있는 가마입니까?”
내가 지난 2016년 겨울에‘양구 백자박물관’에 구경 갔다가, 도자기 하나 만들어내는 데에 드는 엄청난 노고와 그런 과정 중 필수적인 가마의 큰 규모에 놀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집에 작은 가마가 있지요. 전기로 도자를 굽습니다.”
간이 형태의 가마가 있는 줄을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문외한임을 실감했다. 옆에 있는 내 아내가 어떤 염려를 말했다.
“집에서 유약을 칠하고 굽는 과정이 간단치 않고 연기와 냄새도 많이 나서 힘들지요?”
작가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전시한 작품들의 수도 많은데 작품마다 실감나는 사람 표정이라니, 나는 경탄할 뿐이었다. 문외한이라 정 작가의 작품 수준을 논할 위치는 못 되나 다만 ‘이런 작품들을 창작해 낸 그 노고와 세심함’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사실 먹고 살기 편한 시대가 되면서 우리 주변의 동물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고통 받는 시대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 동물 살육은 불가피하다’는 담론(談論)이 확고한 현실이지만… 내 마음은 스산해졌다. 누구나 한 번은 우리 주변의 동물들에 대해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2018년 한 해가 저무는 날 춘천미술관 2층 전시관에서 가져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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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왜 이럴까?’ 의문이 들 때 출입구 벽에 붙은‘등파고랑(登波鼓浪)’이란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바닷물을 머금어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는 푸른 배에 동물을 태웠다. 그전에 배는 그저 운송수단에 불과했다면 2014년부터 배는 나에게 절망이자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노 없이 배에 타고 있는 동물은 북을 치고, 횃불을 들고, 책을 들고,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동물들을 어떠한 틀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왔다. 음식이나 물건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되는 돼지, 소, 닭, 양, 염소, 토끼, 말 등도 저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배를 탄 동물들은 웃으며 반란을 일으켜 희망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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