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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두막하면 떠오르는 것은 목가적인 풍경과 푸근하고 인심 좋은 하얀 수염난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주고 세상 모든 근심을 잊고 그곳에서 한가하게 머무는 이미지가 떠 오른다. 이 책의 제목이나 책 표지에 있는 그림을 보더라도 그런 이미지가 책을 읽으면서 내 뇌리에 각인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과거의 즐거운 경험을 반추하거나 부담없이 읽을 생각으로 집어 들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한 가족이 여행을 떠나고 더 없이 행복한 가족의 단란한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작은 사고가 생기고 그 사고가 금새 해결되면서 책에서 잠시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생각되었으나 그 후에 생각지도 못한 연쇄살인범에 의한 딸 아이의 사망이라는 사건이 생긴다. 역설적인 제목이고 추리 소설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마음을 먹고 책을 본격적으로 읽으려 하는 순간 책은 다시 이 모든 사건이 끝이 나고 만다. 추리 소설도 아닌 것이다. 책을 읽은 페이지는 겨우 50페이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이 소설은 하려고 하는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을 때 뜻하지 않은 전개가 시작되면서 책의 서두에서 읽은 문구가 문듯 떠 오른다. 이 책에는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을 읽을 때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드디어 그 의미가 다가온다.
그저 편안한 소설이라 여겼던 책은 어느덧 종교서적으로 탈바꿈한다. 정확하게는 크리스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단순하게 특정 종교인을 위한 책이라거나 특정 종교를 알리기 위한 책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서구로부터 건너와 앞선 문물로 여겨졌던 크리스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그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고 진정한 본질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책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억지로 짜내거나 머리로 만들어 낸 우화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영으로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솔직히 읽으면서 중간에 이 책이 진정으로 보통 크리스챤들이 읽는 책이 아니라 어딘지 사이비종교 집단에서 전교목적으로 써 져 있는 책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우려를 가지면서 읽었지만 책 말미에 추천하는 사람의 명단에 우리가 존경하거나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들의 명단을 보고 안심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얼마나 우스운 행동인지 모른다.
내가 느낀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누군가 권위있는 사람 - 그가 비록 영적으로 의심할 필요없어도 분명히 사람이다 - 에게 의지하여 누가 보지도 않는데 인정을 받으려는 모습이 우습지만 그것이 인간인지라 부끄러워도 받아들였는데 그런 이유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우리가 기존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 부분에 대해서 내가 평소에 어렴풋이 느끼게 있던 것과 많이 흡사해서 좀 더 놀라고 이것이 맞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인간이 만든 제도와 체제와 정치와 경제등에 의해 잘못 왜곡되고 오역되어 전달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 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판단이 들었다.
인간은 자유 의지라는 것을 갖고 있고 그 자유 의지에 의해 각자 자신의 판단에 따른 선택을 내린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판단을 신의 뜻이라 여기며 신이라는 이름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물론, 그 순간에는 그 모습이 악행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데 많은 크리스챤들이 그런 질물은 하는데 책에 나오는 예수님은 '예수님이라면'이라고 하는 질문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인종이든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상관없이 그 존재만으로 다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맞다'라는 망치가 내 머리를 쳤다. 분명히 내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 조건이나 성별이나 종교를 따지지 않고 사랑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사랑하는 것에도 우리 인간이 만든 틀 안에서 사랑을 하려고 한다. 결단코 가려서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가려서 사랑하려고 한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인간이 만든 눈가리개에 가려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엄한 것을 이야기할 때는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이야기할 때는 예수님을 찾는다고 말한다. 이것도 내가 그 종교에서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우리는 성 삼위일체라는 개념을 배우게 되는데 이 개념이 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데 이 책을 읽게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고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 어떨 때는 하나님, 어떨 때는 예수님, 어떨 때는 성령이 아니라 그 자체가 다 같은 모습이다.
이것도 우리 인간이 편의적으로 구분하기 편하게 만든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진정으로 내가 믿는 종교에서 말하는 것의 근본을 제대로 쫓지 못한 것이 아닐까하는 깊은 울림을 갖게 만들었다. 원래 선데이 크리스챤이라고 스스로를 우스개소리로 이야기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날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다만, 책임과 책무를 맡게 되면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하는데 그것을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 했는데 이 책에서도 사람들이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보고 있다는 말을 한다.
워낙 거대한 존재라 누구는 90도 각도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정면에서 바라 본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맞다고 한다. 하지만, 다들 근본에 대한 것을 잊은체 인간이 어느새 만들어 버린 이미지로써의 존재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만들어 낸 이미지로써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여러 점에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 서두에 나온 연쇄 살인마에 의해 죽음을 당한 딸 아이로 인해 모든 것을 거부하는 아버지가 다시 환상을 - 그 부분이 안 믿는 사람에게는 환상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지만 - 통해 자신을 다시 찾게 되고 진정으로 이 땅에서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그려지고 있다. 물론, 당연히 연쇄살인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연쇄살인마에 대한 용서를 스스로 하게 된다.
실제로 용서는 남과 나와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다. 예전에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본 다큐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연쇄살인범에 의해 살해 당한 어느 딸의 부모가 그 연쇄살인범을 용서하고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용서하자고 설득하면서 다른 피해자 가족들이 당신이나 용서하라며 면박을 주고 그 아버지가 외국에서도 그런 살인범을 용서한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 연쇄살인범을 만나려 했으나 그 살인범이 자신은 죄인이라며 만나주지 않는 것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으며 나도 저럴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나도 저런 용서를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이 책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이 책은 진정으로 환상으로 가득찬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찼다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깊은 울림을 가득하게 선사할 것이다. 나에게는 환상을 통해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굳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이 책을 통해 우리 인류에 대한 깊은 사고를 만들어 준다고 본다.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어떠한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저 사람들의 많은 리뷰가 있다는 것만을 파악한 후에 읽게 되었는데 나에게는 많은 것을 선사했다. 오히려 알았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몰랐기 때문에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읽게되어 좋았다.
최근에 사람들을 만날 때 빈 손으로 가기 뭐할 때 그래도 내가 책을 읽는다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으니 음료수 같은 것을 갖고 가는 것보다는 책을 선물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앞으로 선물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