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경제학
존 메이나드 케인즈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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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내가 먹고 사는데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의 이름을 알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더구나, 생존한 인물도 아니고 이미 사망한 인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경제에 대해 공부를 하거나 좀 알고자 할 때나 투자에 대해 공부를 하고자 할 때 케인스라는 이름은 저절로 익숙해진다.

 

케인스가 저술한 책도 있고 케인스의 일생에 대한 전기도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케인스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케인스 평론인지 전기인지가 서브 프라임 금융사태 이후에 꽤 많이 쏟아 졌는데 꽤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거나 몇 권짜리로 되어 있거나 등등으로 읽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다 발견한 책이 바로 '설득의 경제학'이다.

 

'설득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은 아마도 이 책의 구성이 케인스가 생존할 당시에 자신의 주장을 신문등에 기고한 글을 엮어 책으로 펴 냈기 때문이다. 책 자체는 케인스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 경제문제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이나 대상에게 하고 있는 글이라 신문의 논평이나 사설과 같다고 보면 된다.

 

책을 읽을 때 그 책이 좋은 책인지 여부를 떠나 내가 읽은 시기와 그 책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일들로 인해 정신이 분산되거나 바로 직전에 읽었던 책의 여운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는 등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도 아니면 외국 책의 번역물에서 가끔 느껴지는 현상인데 우리나라 말로 번역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생길때가 있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인데 특히나 이 책과 같이 특수 분야의 글은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번역하지 않으면 글이 이상하게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런 이유로 잘 안 읽혔는지 다른 상황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아직은 내가 케인스라는 사람의 글을 이해할만한 능력이 안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케인스는 단순하게 경제학자라기보다는 투자자이기도 하고 정치가이기도 하고 인문학자이기도 한데 대중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더더욱 케인스의 이론은 특별한 이론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책에 나온 내용중에 빈곤층의 사람들에게 무조건 그들의 먹고 살기 위한 돈을 주기 보다는 일을 시키고 그에 맞는 급여를 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것 같다. 돈을 받는 입장에서는 놀아도 받는 돈을 꼭 일해야 받는다고 불평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도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 과정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공공사업을 벌일것인지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가 현대 사회에서는 필수겠지만 말이다.

 

개인 입장에서 볼 때 저축은 돈을 모으기 위한 절대적인 필요조건이지만 한 국가나 사회적으로 볼 때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돈이 계속 은행에만 머물고 되다면 그 돈으로 여러 기업들을 돕는 돈이 될 수 있지만 기업이 아무리 상품을 만들어도 그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없다면 기업은 망하게 되고 기업에 속한 사원들은 직장을 잃어 저축도 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 또한 그 자체로는 진리다.

 

미국같은 경우에 저축보다는 소비를 통해 국가가 발전한 조금은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고 일본은 소비보다는 저축을 통해 국가는 부자지만 개인들이 가난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고로, 적절하게 조절은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은 뭐 뻔한 말이다. 경제 발전을 해야하는 시기에는 저축이 우선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 자본(목돈)이 쌓인 다음에는 소비(투자)를 해야만 그 국가(개인)이 더욱 부강(부자)가 될 수 있다.

 

책의 말미에는 미래에 대해 예측한 글이 있는데 케인스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할 때 미래에 대한 그의 예측은 거의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것을 보면 케인스라는 인물이 단순한 경젝학자 이상의 천재라고 칭송을 받는 이유가 있는 듯 하다.

 

복리에 대해 상당하게 중요하게 이야기를 한다. 복리를 통해 내 돈이 굴러가거나 내가 받을 돈이나 줄 돈이 복리로 굴러가는 것에 대해도 예화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확실히 복리는 중요하다. 이자라는 것이 생기면서 발생한 이 개념은 - 꼭 이자 때문은 아니지만 -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자신의 돈을 불리고 지키고 빼앗기지 않는 과정에서 꼭 유념해서 명심해야 할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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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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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게 되면 여러가지 반응이 나온다. 어떤 책은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게 되거나 향후 살아갈 날에 대해 그려보거나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나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세상을 어떤 관점이나 시선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 그런 것들이 나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본다.

 

또 다른 책은 아무 생각없이 집중해서 읽게 된다. 흔히 말해 몰입해서 책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줄거리를 쫓아가며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대부분 추리, 스릴러 장르의 책들이 그럴 할 것이다. 가장 곤란한 경우는 책이라 불리는 종이에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온다.

 

한 가지는 처음 접하는 분야나 내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책을 읽게 될 때 종이 위에 있는 글자를 읽기에 벅차고 무슨말인지 모를 때가 있는 경우인데 이런 반응은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하는 책으로 변하게 된다. 어려운 책들도 아닌데 그냥 종이 위에 활자라고 불리는 글자가 찍혀 있는 책들은 책에 기술만 있고 철학이나 영혼이 없을 때 느끼게 된다.

 

그 외에도 책을 읽게 되면 다양한 반응이 내 안에서 나오게 된다. 가장 좋은 책은 아무래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 아닐까 한다. 비록, 그런 책이 가장 좋일 수 있어도 꼭 필요한 책이 아닐 수도 있다. 음식도 편식을 하면 몸의 불균형으로 인해 특정 요소는 넘치고 특정 요소는 부족하여 어느 곳에서 탈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1Q84'는 1,2권을 읽었을 때 좀 특이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그 시대의 상황이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의 접점을 잘 집어냈거나 우연히 건드려서 생긴다고 보는데 가장 인기를 끄는 장르를 이야기하라면 환타지 장르를 들 수 있는데 '1Q84'는 환타지 장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환타지 요소를 갖춘 추리, 심리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는 1,2권으로 끝낸 것으로 알고 있다. 2권의 끝 장면도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로 독자의 상상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결론이였는데 독자들의 열화같은 성원에 힘입어 3권을 집필하여 출판한 것으로 알고 있다. 1,2권 자체를 출판된지 1년도 훨씬 넘은 시점에 읽게 되었고 -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있었지만 - 3권도 출판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나 3권을 처음 읽을 때 1,2권의 감각이 들어오지 않았고 어떤 내용인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거의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정도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책의 두께는 700페이지가 넘었다. 솔직히 이렇게 두꺼운 페이지를 채우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고 여겨진다.

 

1,2권이 2명이 주인공의 시점으로 교차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반해 3권은 3명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새롭게 추가된 - 이미 1권에서 존재가 좀 미미하게 출현하기는 했지만 - 인물은 남녀 주인공이 이뤄지기 위해서 필요한 모티브로 등장을 했다고 본다. 굳이 그 인물이 없어도 이야기 흐름에 큰 지장은 없지 않았을까 한다.

 

소설중에 약간 당황한 것은 이 책 자체가 전지전능한 작가의 관점에서 쓰고는 있지만 각 단락의 인물이 자신이 벌어지고 느끼는 내용 위주의 관점으로 문체가 서술되다고 갑자기 각 단락의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신이라고 할 수 있는 - 책의 내용을 창조한 사람은 작가이니 - 작가가 논평을 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을 한다는 것이다.

 

읽은 사람에 따로 반응은 다르겠지만 굳이 3권을 펴 낼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더구나, 이렇게 긴 페이지를 할애하며 이야기를 엮을 필요는 더더욱 없어 보였다. 책의 중간까지는 상당히 느릿하게 후반부를 준비하면서 각종 기초 작업을 하는데 사족이 좀 많다는 생각도 읽을 때는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생각하니 그렇다.

 

후반부는 어떤 결론으로 끝날지가 점점 궁금해 지면서 흥미롭게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빨리 읽어버리자는 생각도 들어 더 집중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환타지 소설이라 그 세부 내용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그래도 몇 가지 하자면 책에는 2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달이 하나인 세계와 달이 두 개인 세계가 따로 따로 존재를 한다. 두 개의 세계에는 각자 살아가는 인물들이 있다. 그 인물들이 서로 겹치는지 완전히 다른 세계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2개의 세계는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느 것이다. 서로 동일한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각각의 덴고와 아오마메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차원의 벽을 뚫고 나라는 존재가 침입하거나 도착할 수는 있지만 각각의 차원에 있는 존재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달이 하나인 세계에서 달이 두 개인 세계로 간 아오마메에게는 분명히 달이 두 개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아오마메가 있었을 것일라고 보는데 말이다.

 

달이 두 개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총 3명인데 이들은 그렇다면 달이 하나인 세계에서 달이 두개인 세계로 흘러들어갔다는 이야기인데 두 세계에서 존재하는 각각의 자신의 존재가 있었을 것이라 보는데 또 다른 자신들은 어디로 갈 것일까? 최소한 각종 공상과학이나 차원을 이야기하는 책이나 영화에서 보면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나란 존재는 현재에만 존재할 뿐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나와 똑같은 존재가 그 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책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것인지 너무 버라이어티해진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냥 생략한다.

 

이렇게 쓸데없는 딴지를 건 것은 그냥 궁금해서이다. 분명히 각 차원에는 자신의 차원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있을 텐데 말이다. 나 자신이 그렇게 다른 차원에서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지는 않지만 많은 픽션에서 과학적 근거를 갖고 그런 요소를 집어넣는다고 보는데 그 요소가 잘못된 과학적 지식일지 모르겠지만 알고 있는 상식을 갖고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하루키라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별 내용도 없고 뜬금없는 소재를 갖고 이렇게 엄청난 페이지를 꽉꽉 채워 써서 전개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더욱 대단하다. 그래도 역시 1Q84 3권을 꼭 낼 필요가 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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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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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어느 정도 읽어야 책 좀 읽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매년 100권이 넘는 책을 읽지만 많이 읽는다는 인식을 특별히 한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 주위 사람들로부터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유일하게 맡은 부장이 독서부장이였는데 아이들이 그나마 책을 좀 읽는 사람이 나라고 추천하여 되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지만 1년에 200권 정도는 읽어야 어디가서 책을 좀 읽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지금까지 내 주변에 그정도로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1년에 100권은 커녕 50권도 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우연히 이야기를 하다 자신이 책을 좀 읽는다고 이야기하면 귀기울여 듣게 되는데 1년에 20~30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라고 이야기할 때 '저는 100권이 넘는다'라고 이야기하면 그제서야 나를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게 되는 묘한 시선을 느끼게 된다.

 

100권의 책을 넘게 읽는다고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책을 읽을 뿐이지만 단순히 생각없이 책을 읽기만 해도 내 머리속에서 무엇인가 돌아가고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면 특별한 변화는 갖지 못했을지라도 천천히 무엇인가 내 자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의 나와 똑같을 수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나오는 무엇인가 있는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대부분 책이 소설이였고 20대에는 문학작품이였고 -가장 책을 읽지 않은 시기였다- 30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에 주로 투자, 경영, 경제서적을 읽게 되었다. 초반에 자기계발과 관련된 책들이 주를 이뤘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나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여 나를 먼저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였다.

 

그런 후에 재테크 관련 책을 읽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이 시들해졌다. 여전히 투자 관련 서적을 꾸준하게 읽고 있지만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뻔한 이야기고 탁상공론에 가득찬 책들도 많이 읽게 되었다. 저자 자신이 직접 투자를 통해 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남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하지만 처음으로 그런 책을 접할때는 신선하고 행동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저자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투자서와 단순히 기술을 나열한 책들을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철학이 없는 책들은 읽는 것도 고역이 되었다.

 

점점 반복되고 되풀이 되는 이야기에 서서히 투자서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에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 아직은 실력이 안되면서 교만해지지 말자며 끊임없이 투자서와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되었지만 다른 탈출구를 생각하며 생각한 것이 바로 인문서였다. 다만, 고전 인문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규정하는지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굳이 내가 제일 많이 읽었던 분야는 실용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엔 소설도 있고 인간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심리학이나 관련 서적도 읽게 되었다. 무엇을 인문이라고 하는지 딱 떨어져 이야기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 몽테뉴, 포퍼, 들뢰즈와 같은 사람들의 책은 철학책이다. 햄릿, 제인 에어, 죄와 벌 같은 책은 소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인문서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상하다. 따로, 인문서적이라는 분야의 책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 생각은 오류였다. 인문서적이라고 하는 것은 딱히 분야가 있는 것이 아니였다. 특히, 고전 인문이라는 것은 과거의 출판된 책이나 선현의 이야기를 엮은 것 중에 지금까지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딱히, 인문서적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선택한 적은 없지만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이미 인문서적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나 논어와 같은 책을 한번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그런 종류의 책들이 일단 어렵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고 책을 이왕이면 더 많이 읽고 싶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어딘지 모르게 '한비자'라고 불리는 책을 읽었다는 것이 괜히 젠체하고 난체하는 사람으로 들리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책을 읽은 사람들을 현명하고 지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리타분하고 잘난체 하는 사람으로 봤던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도 그런 책을 한 권이라도 독파했다면 어디가서 가볍게 한 마디 할 수있는 비장의 카드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갖고있었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은 없다. 아무리 어려운 분야라도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지 책 자체가 꼭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처음 접하는 분야의 용어들이 낯익지 않고 무슨 뜻인지 몰라 그렇지 반복적으로 관련 분야의 책을 어렵더라도 계속 읽으면 어느 순간부터 일단 용어들이 친숙하고 단어들이 눈에 들어와서 읽으면서 들어오는 것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중반까지 읽으면서 그동안 마음속으로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지 그 시기를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고 있던 고전 인문에 대한 독서를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렵더라도 인문고전에 대한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스스로 어딘지 모르게 한가하게 인문고전이나 읽고 있을 시간은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죄와 벌'과 같은 고전 소설도 읽고, '명상록'과 같은 책들도 읽으려 한 것은 아마도 독서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최종 도착점이 아닌가도 한다. 대부분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이트를 가면 그런 흐름을 봤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어느 순간부터 뻔하게 반복되는 책보다는 좀 지겹더라고 인문고전을 통해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 중반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래, 이제 본격적으로 인문 고전을 읽자!' '나도 모르게 책을 읽는 권수에 집착하는 모습이 없지 않아 있는데 권수에 집착하지 말고 한 달동안 읽게 되더라도 한번 읽어보자!'하고 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하지만 그 속성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만의 시각을 갖기 위해서 인문고전을 읽어야한다라고 나도 모르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 책을 통해 생각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를 읽고 부터는 오히려 '아니,, 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굳이 천재가 될 생각은 없다. 아니, 천재가 될 생각이라는 말은 좀 말이 안되고 남들로부터 그런 관심을 받고 싶지는 않다. 책에는 인문고전을 치열하게 읽는 사람들이 결국 사회를 지배하고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산다고 한다.

 

단순히 인문 고전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읽은 것을 토대로 한 깊은 사색이 한 개인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문 고전을 힘들게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하여 읽는 위인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 위인들에게 그런 모습은 자신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스스로 좋아서 한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책에는 온갖 위인들이 나오는데 한결같이 인문고전의 독서를 통해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지 않은 위인들은 더욱더 많다. 그들이 전부 인문고전을 습득했는지 안 했는지 그 여부는 모르겠다. 인문고전을 읽는 것이 자연스럽게 단계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면 굳이 내가 인문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책에 나온 대부분의 인물들의 시대상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있던 책들과 여러 멀티미디어(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와 지금의 환경은 다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은 어차피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였을까? 조선시대에 읽을 수 있는 책들도 역시 그 당시에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아니였을까? 논어등의 책은 지금 우리 시대와는 달리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것은 아니였을까말이다. 그 당시에는 양반만이 책을 읽는 것이 사람은 죽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거기에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다스리기 위한 책략이라고 하는 것은 좀 너무 나간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과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난다면 누가 더 똑똑할까? 아마도,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일것이다. 하지만, 플라톤과 비교하면 분명히 플라톤이 더 똑똑한 사람이고 지혜롭게 세상을 더 깊게 보는 사람이겠지만 플라톤이 지금까지 그의 사상이 남을 정도의 인물이니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억울하다. 지금 현대의 사람들 중에 그에 버금가는 사람과플라톤이 만나 이야기를 한다면 결코 플라톤에게 질 것 같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현재 시대의 사람들이 쓴 책들중에도 향후 100년 200년을 넘어 1,000년이라는 세월동안 어느순간 인문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이 읽을 것이라 본다. 그 당시에 집필되었던 책의 가지수와 지금 출판되고 있는 책의 종류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단련되고 옥석이 가려져 남게 될 것이라 본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남는 것이 있으면 남게 되는 것이고 남는 것이 없으면 없는 것이고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상태로 책을 읽는다. 굳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억지로 넣으려 하고 고민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되고 이해되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관점으로 책을 읽는다. 억지로 인문고전을 피하고 있지는 않지만 굳이 땡기지 않는데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히려, 재미도 없으면서 현학적으로 보이기 위해 읽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책을 중간까지 읽고 접었으면 당장 인문고전 읽기를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너무 치열하게 읽고 책을 읽고 사색하여 한 차원 높은 단계로 가라는 저자의 지속적인 권고가 나를 반발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랬지만 난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만으로도 저자가 이야기한 지배계급의 교묘한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 넘어 갈 수도 있지만 난 나대로 내 시스템을 가지려고 한다 - 지금의 독서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는 지적유희를 할 수 있는 데 괜히 이 유희를 고통으로 변경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인문고전에 대한 도전을 다짐하게 되었다. 서울대에서 발표한 인문 고전 200선같은 경우에 내가 처음 접한 책 제목도 있어 나중에 도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 덕분에 그 시기가 좀 더 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서서히 조금씩 한 권씩 도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굳이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인문고전에 대해 언젠가는 도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도서관에 지금 막 입고되어 내가 첫째로 읽을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읽게 되었는데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았는데 앞으로 매일같이 시간을 정해서 동화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좀 어려울 수 있는 책을 닥 한 장만 읽어주기로 했다. 또한, 아이들에게 정했던 어떤 원칙에 상과 벌이 있었는데 그 중에 상은 올렸고 벌은 없애기로 했다. 이 책에 직접적으로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읽다고 문듯 떠오른 생각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생각자체는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다듬어지다 이 책을 읽다 나도 모르는 그 무엇인가에 의해 발현된 것인데 아마도 그런 부분이 저자가 인문고전을 읽으며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하면 좀 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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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경매의 현장 - 앤소니와 함께 달려가는
안수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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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책이 시중에 꽤 많이 나와 있지만 오랜 시간동안 경매계에서 경매를 업으로 삼아 한 사람들의 글은 의외로 그리 많지는 않다. 오히려 직장을 다니거나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5년 미만의 투자자들의 책이 많다. 그 이야기는 열심히 하면 꽤 짧은 시간에도 충분히 경제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모자랄 수 도 있는 시간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를 보면 그 프로에서는 맛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는 것도 기술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특별한 볼꺼리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물론, 여기서 가장 핵심은 그 사람들이 맛이나 기술에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은 뛰어넘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들의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놀라운 성취를 맛본 것에는 자신의 분야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방법이라도 자신이 하려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 들였다는 데 있다. 그 프로를 보다 보면 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평균 근속이 10년은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10년을 넘어 20년, 30년 동안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어느 분야에서 짧은 시간에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지만 오랜 시간동안 한 분야에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우리는 감히 논한다는 것은 그 분에게 어불성설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필명 앤소니씨는 상당히 오래 전에 경매책을 내 놨는데 아직 지금과 같이 부동산 경매가 대중화 되기 직전의 상황이였다.

 

이제는 전업으로 부동산 경매를 하는 것보다는 후배들을 키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만큼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는데 그 사례들이 본인의 직접 경험보다는 거의 대부분 제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신이 추천을 해 주거나 도와 준 내용으로 엮여있다.

 

실제로 2분의 1 정도는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서 회원들이 올린 글을 발췌하여 각 사건의 자세한 사항을 올렸다. 좋게 보면 고수의 시점으로 사건을 해결 한 것이 아니라 입문한 사람들의 눈높이로 쓴 글이라 이해하기 좋고 공동투자로 여러 사람들이 각자 어떤 역할을 맡아 했는지에 대한 사례를 읽을 수 이어 좋았고 한편으로는 본인의 글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페이지를 채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경매책들이 300페이지 내외로 되어 있는데 이 책은 거의 5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이루고 있어 부동산 경매에서 취급해야 하는 다양한 부분을 간단한 이론과 판례를 보여 준 후 그에 맞는 경험 사례를 꽤 많이 보여준다. 이 부분은 앤소니라는 한 사람만의 경험이였으면 각 사례에 맞는 스토리를 충분하게 보여 줄 수 없어겠지만 - 개인이라는 한계로 인해 - 카페 회원들과 제자들이라 불리는 강의생들의 이야기를 엮어 풍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몇 몇 사례들은 반복되어 나와 그에 대한 이해가 약간은 부족한 점이 있어 추후에 보완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저절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 부분을 읽을 때는 이해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부분인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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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다마링크
기욤 뮈소 지음, 이승재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표지가 있는 상태로 책을 접했으며 곧장 알았을텐데 표지없이 덩그라니 제목만 보이는 책의 겉표지를 본 후 작가가 기욤 뮈소라고 하여 내가 알고 있는 그 기욤 뮈소인지에 대해 반신반의를 했다. 혹시나 해서 소개하는 것을 읽어도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책이 출판된 것도 꽤 시간이 되었고 그에 대한 소개글도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보니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기욤뮈소'라 판단하고 대여를 하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검색한 지금에서야 '구해줘'등을 저술한 바로 그 '기욤 뮈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떤 기욤 뮈소의 책들이 조금은 말랑말랑하고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만큼 빠른 속도로 내용이 진행되고 추리적인 각색을 통해 흥미를 일으키지만 결국에는 사랑 이야기를 하는데 '스키다마링크'는 조금은 빡빡하면서 퍽퍽하고 진행 속도는 안단테가 맞지 않을까 싶고 최근 작품과는 달리 추리소설에 바탕을 두면서 시대의 고민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첫 출판작이라 가다듬고 이야기할 것들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은 전부 다 풀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페이지도 상당히 길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기욤 뮈소가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을텐데 단순히 추리 소설 장르로 볼 때는 전개될 내용이 크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추리 소설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음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예상을 하지만 그 예상을 빗나가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지속적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키다마링크'도 역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유지를 하지만 책 페이지를 침 묻혀가며 넘기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모나리자'가 어떤 이유로 지금과 같은 시대적인 아이콘과 미의 최고 자리에 올랐는지 잘 모르겠지만 서양인들에게 '모나리자'는 하나의 종교와 같은 상징으로 불리고 있다 할 정도로 여러 문학작품 - 연극, 영화, 소설등 - 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 생산되고 있다. 묘하게도 그런 작품들이 하나같이 추리 형식 분야의 소재로 '모나리자'를 접근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광고를 할 때도 '모나리자'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울 때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또야!'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노력을 요하지 않을까도 싶다.

 

기욤 뮈소는 프라스 사람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배경들이 대부분 미국인 경우가 많고 꽤 많은 장소가 등장하는데 작가들이 대부분 자신의 글에 등장하는 배경을 직접 가 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키다마링크'는 그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지역이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등 상당히 다양하여 이렇게 답사를 갈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을까 하는 괜한 궁금증이 지금 생긴다.

 

대부분 소설 작가들이 투자라는 것을 통해 부를 획득하지 않지만 - 자신의 작품으로 부를 형성한다. - 그들의 작품 세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읽게 되면 어쩌면 이렇게 잘 묘사하는지 감탄할 때가 있는데 이 책에도 작가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유전공학분야에 대해 이제 막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인 2000년대 초반에 썼다는 것이 대단하다.

 

2010년도에 나온 작품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기욤 뮈소'의 작품은 이로써 그의 첫 작품까지 읽었으니 다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지만 2009년 작품이 솔직히 별로라고 생각하며 이제는 '기욤뮈소'의 작품 세계가 발전이 없다는 인상을 접했는데 그의 초기 작품을 통해 2010년도 작품도 읽고 싶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한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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