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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어느 정도 읽어야 책 좀 읽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매년 100권이 넘는 책을 읽지만 많이 읽는다는 인식을 특별히 한 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 주위 사람들로부터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유일하게 맡은 부장이 독서부장이였는데 아이들이 그나마 책을 좀 읽는 사람이 나라고 추천하여 되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지만 1년에 200권 정도는 읽어야 어디가서 책을 좀 읽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지금까지 내 주변에 그정도로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1년에 100권은 커녕 50권도 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우연히 이야기를 하다 자신이 책을 좀 읽는다고 이야기하면 귀기울여 듣게 되는데 1년에 20~30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라고 이야기할 때 '저는 100권이 넘는다'라고 이야기하면 그제서야 나를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게 되는 묘한 시선을 느끼게 된다.
100권의 책을 넘게 읽는다고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책을 읽을 뿐이지만 단순히 생각없이 책을 읽기만 해도 내 머리속에서 무엇인가 돌아가고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면 특별한 변화는 갖지 못했을지라도 천천히 무엇인가 내 자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의 나와 똑같을 수 없겠지만 나도 모르게 나오는 무엇인가 있는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대부분 책이 소설이였고 20대에는 문학작품이였고 -가장 책을 읽지 않은 시기였다- 30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에 주로 투자, 경영, 경제서적을 읽게 되었다. 초반에 자기계발과 관련된 책들이 주를 이뤘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나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여 나를 먼저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였다.
그런 후에 재테크 관련 책을 읽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이 시들해졌다. 여전히 투자 관련 서적을 꾸준하게 읽고 있지만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뻔한 이야기고 탁상공론에 가득찬 책들도 많이 읽게 되었다. 저자 자신이 직접 투자를 통해 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남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하지만 처음으로 그런 책을 접할때는 신선하고 행동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저자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투자서와 단순히 기술을 나열한 책들을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철학이 없는 책들은 읽는 것도 고역이 되었다.
점점 반복되고 되풀이 되는 이야기에 서서히 투자서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에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 아직은 실력이 안되면서 교만해지지 말자며 끊임없이 투자서와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되었지만 다른 탈출구를 생각하며 생각한 것이 바로 인문서였다. 다만, 고전 인문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규정하는지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굳이 내가 제일 많이 읽었던 분야는 실용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엔 소설도 있고 인간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심리학이나 관련 서적도 읽게 되었다. 무엇을 인문이라고 하는지 딱 떨어져 이야기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 몽테뉴, 포퍼, 들뢰즈와 같은 사람들의 책은 철학책이다. 햄릿, 제인 에어, 죄와 벌 같은 책은 소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인문서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상하다. 따로, 인문서적이라는 분야의 책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 생각은 오류였다. 인문서적이라고 하는 것은 딱히 분야가 있는 것이 아니였다. 특히, 고전 인문이라는 것은 과거의 출판된 책이나 선현의 이야기를 엮은 것 중에 지금까지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딱히, 인문서적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선택한 적은 없지만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이미 인문서적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나 논어와 같은 책을 한번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그런 종류의 책들이 일단 어렵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고 책을 이왕이면 더 많이 읽고 싶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어딘지 모르게 '한비자'라고 불리는 책을 읽었다는 것이 괜히 젠체하고 난체하는 사람으로 들리는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책을 읽은 사람들을 현명하고 지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리타분하고 잘난체 하는 사람으로 봤던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도 그런 책을 한 권이라도 독파했다면 어디가서 가볍게 한 마디 할 수있는 비장의 카드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갖고있었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은 없다. 아무리 어려운 분야라도 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지 책 자체가 꼭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처음 접하는 분야의 용어들이 낯익지 않고 무슨 뜻인지 몰라 그렇지 반복적으로 관련 분야의 책을 어렵더라도 계속 읽으면 어느 순간부터 일단 용어들이 친숙하고 단어들이 눈에 들어와서 읽으면서 들어오는 것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중반까지 읽으면서 그동안 마음속으로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지 그 시기를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고 있던 고전 인문에 대한 독서를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렵더라도 인문고전에 대한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스스로 어딘지 모르게 한가하게 인문고전이나 읽고 있을 시간은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죄와 벌'과 같은 고전 소설도 읽고, '명상록'과 같은 책들도 읽으려 한 것은 아마도 독서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최종 도착점이 아닌가도 한다. 대부분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이트를 가면 그런 흐름을 봤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어느 순간부터 뻔하게 반복되는 책보다는 좀 지겹더라고 인문고전을 통해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 중반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래, 이제 본격적으로 인문 고전을 읽자!' '나도 모르게 책을 읽는 권수에 집착하는 모습이 없지 않아 있는데 권수에 집착하지 말고 한 달동안 읽게 되더라도 한번 읽어보자!'하고 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하지만 그 속성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만의 시각을 갖기 위해서 인문고전을 읽어야한다라고 나도 모르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 책을 통해 생각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를 읽고 부터는 오히려 '아니,, 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굳이 천재가 될 생각은 없다. 아니, 천재가 될 생각이라는 말은 좀 말이 안되고 남들로부터 그런 관심을 받고 싶지는 않다. 책에는 인문고전을 치열하게 읽는 사람들이 결국 사회를 지배하고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산다고 한다.
단순히 인문 고전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읽은 것을 토대로 한 깊은 사색이 한 개인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인류에 큰 영향을 끼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문 고전을 힘들게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하여 읽는 위인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 위인들에게 그런 모습은 자신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스스로 좋아서 한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책에는 온갖 위인들이 나오는데 한결같이 인문고전의 독서를 통해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지 않은 위인들은 더욱더 많다. 그들이 전부 인문고전을 습득했는지 안 했는지 그 여부는 모르겠다. 인문고전을 읽는 것이 자연스럽게 단계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면 굳이 내가 인문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책에 나온 대부분의 인물들의 시대상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있던 책들과 여러 멀티미디어(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와 지금의 환경은 다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은 어차피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였을까? 조선시대에 읽을 수 있는 책들도 역시 그 당시에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아니였을까? 논어등의 책은 지금 우리 시대와는 달리 그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것은 아니였을까말이다. 그 당시에는 양반만이 책을 읽는 것이 사람은 죽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거기에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다스리기 위한 책략이라고 하는 것은 좀 너무 나간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과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난다면 누가 더 똑똑할까? 아마도,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일것이다. 하지만, 플라톤과 비교하면 분명히 플라톤이 더 똑똑한 사람이고 지혜롭게 세상을 더 깊게 보는 사람이겠지만 플라톤이 지금까지 그의 사상이 남을 정도의 인물이니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억울하다. 지금 현대의 사람들 중에 그에 버금가는 사람과플라톤이 만나 이야기를 한다면 결코 플라톤에게 질 것 같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현재 시대의 사람들이 쓴 책들중에도 향후 100년 200년을 넘어 1,000년이라는 세월동안 어느순간 인문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이 읽을 것이라 본다. 그 당시에 집필되었던 책의 가지수와 지금 출판되고 있는 책의 종류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단련되고 옥석이 가려져 남게 될 것이라 본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남는 것이 있으면 남게 되는 것이고 남는 것이 없으면 없는 것이고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상태로 책을 읽는다. 굳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억지로 넣으려 하고 고민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되고 이해되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관점으로 책을 읽는다. 억지로 인문고전을 피하고 있지는 않지만 굳이 땡기지 않는데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히려, 재미도 없으면서 현학적으로 보이기 위해 읽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책을 중간까지 읽고 접었으면 당장 인문고전 읽기를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너무 치열하게 읽고 책을 읽고 사색하여 한 차원 높은 단계로 가라는 저자의 지속적인 권고가 나를 반발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랬지만 난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만으로도 저자가 이야기한 지배계급의 교묘한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 넘어 갈 수도 있지만 난 나대로 내 시스템을 가지려고 한다 - 지금의 독서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는 지적유희를 할 수 있는 데 괜히 이 유희를 고통으로 변경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인문고전에 대한 도전을 다짐하게 되었다. 서울대에서 발표한 인문 고전 200선같은 경우에 내가 처음 접한 책 제목도 있어 나중에 도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 덕분에 그 시기가 좀 더 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고 서서히 조금씩 한 권씩 도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굳이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인문고전에 대해 언젠가는 도전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도서관에 지금 막 입고되어 내가 첫째로 읽을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읽게 되었는데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읽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았는데 앞으로 매일같이 시간을 정해서 동화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좀 어려울 수 있는 책을 닥 한 장만 읽어주기로 했다. 또한, 아이들에게 정했던 어떤 원칙에 상과 벌이 있었는데 그 중에 상은 올렸고 벌은 없애기로 했다. 이 책에 직접적으로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읽다고 문듯 떠오른 생각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생각자체는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다듬어지다 이 책을 읽다 나도 모르는 그 무엇인가에 의해 발현된 것인데 아마도 그런 부분이 저자가 인문고전을 읽으며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하면 좀 심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