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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푸어 -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김재영 지음 / 더팩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호불호가 무척 강한 책이라 이렇게 리뷰를 쓰는 것도 조심스러운 책이다. 리뷰를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리뷰를 쓰는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들이 알게 모르게 투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쓰는 내용 중에 행간으로도 이 책인 하우스 푸어에 대한 내 생각이 나와 논란이 되는 거 자체를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글을 통해 나와 논쟁을 할만큼 내 리뷰를 많은 사람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논쟁을 걸었을 때 무엇보다 그와 더불어 논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고, 내가 쓴 글로 인해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틀리다고 생각하여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과 논쟁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부동산에 대해 부정적인 에고로 가득차 있다. 인간에게는 의식주가 해결 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에도 안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인데 거주의 자유가 인간에게 있지만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것이 꼭 2000년대를 사는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분명히 아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고대시대에도 흉악한 괴수(?)를 피하기 위해 동굴에 살았고, 누군가의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거주가 자연스럽지 못했고, 임금이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가 살 수 없었다.
이처럼 거주의 자유는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 같지만 한정된 자유라는 것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우스 푸어라는 것은 집을 갖고 있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집도 없는 가난한 사람보다는 분명히 생활형편이 좋을 것이라 판단된다. 집이 없는 부유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니깐 말이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꼭 주택을 구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이 전세로 살고 있든, 월세로 살고 있든 중요한 것은 지금 거주하고 있는 주택에서 만족으로 느끼고 그에 따른 행복을 영위하고 있으면 된다고 본다.
2억의 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현금 자산이 3억이라면 굳이 집을 갖고 있지 않아도 무척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냥 5억에 1억 정도의 대출을 통해 6억의 집을 구입하여 사는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하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의 방법이 다 다르고 - 결코 틀리고가 아니다 - 거주의 형태를 선택하여 느끼는 만족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책에 나온 하우스 푸어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한정되어 있다고 보인다. 책에는 무리한 대출을 껴 안고 주택을 구입한 - 정확하게는 아파트 - 사람들이 대출 이자에 허덕이며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환상을 갖고 시작한 재개발, 재건축에서 환상이 깨지면서 생기는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르뽀 프로그램을 책으로 펴낸 책이 바로 '하우스 푸어'이다.
어떠한 주장을 펴기 위해서는 내가 이야기하려는 주장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고 온갖 예시를 보여주는데 TV와 같은 매체에서는 이 부분이 여타의 매체보다 좀 더 강하고 임팩트있게 보여주는데 치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TV라는 매체는 시청률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고 TV시청자를 화면 앞에 묶어 놓기 위해서는 좀 더 자극적인 장면과 내레이션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 줄 수 밖에 없다. 밋밋한 이야기는 르뽀 프로에서는 어울리지 않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책에 나온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 비록 좀 과하게 한쪽 측면만 부각하고 저자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현실만 보여준 의도된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부동산에서 벌어지는 모든 장면을 본 것도 아니고 보여주고 주장하는 것만 일방적으로 보고 읽었기 때문에 책에 나온 내용이 정확히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효율적 시장이론에 의하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가격은 모든 사람들의 정보와 의도가 다 드러나 있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것이다. 가치 투자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면 비 효율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을 극복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성공한 펀드매니저 피터린치에 의하면 우선 주택은 마련한 후에 투자를 하라고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주택의 가격은 일률적인 잣대로 논할 수는 없다. 책에는 아주 우아한 표현으로 비대칭성으로 인해 부동산의 가격은 주식과 달리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하는데 맞다. 강남과 같은 곳은 일반인들이 - 어디까지를 일반인으로 정할지는 모르겠다 - 감히 쳐다보기 힘든 가격을 유지하고 있고 지방의 어느 곳은 서울의 전세가로 몇 채를 살 수 있는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개별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는 없는데 이 책은 무조건 일률적인 잣대로 모든 부동산에 들이대고 있는 것이 아쉬운 측면이다.
현재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 높은지 낮은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 그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고 터무니 없는 가격을 유지하는 것도 그 이유가 존재한다. 이해 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할 때 무리가 따른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가는데 나만 가지 않는 것은 바보로 보이기 때문에 쫓아가는 측면이 분명히 강하다. 비록, 같은 바보가 되더라도 그 안에 있을 때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들은 무리에 섞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다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사회에는 정답을 요구하고 정답을 답하기 보다는 가장 근사치를 구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 흑백논리가 강한 우리나라는 위정자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기들여져 이것이 아니면 저것으로, 내편이 아니면 상대편으로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재개발, 재건축이 어느 정도는 중요하지만 우리보다 더 오래된 주택을 소유한 그들은 무분별한 재개발, 재건축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이라고 우리가 사는 삶과 다르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지금 상태의 재개발, 재건축은 분명히 답은 아니라고 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탐욕을 줄이기 보다는 상대방의 탐욕만 줄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난 모른다. 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관련된 부분에 대해 전무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온 당시에 팽배했던 부동산 대세하락으로 인해 득세했던 많은 사람들은 지금 조용하다. 어느새 집 값이 다시 이들의 주장과 달리 올랐기 때문이다. 활발한 거래를 동반하지 않은 것이라 위태롭기는 하지만 말이다. 분명히 가격이 무조건 오를 수도 없고, 떨어 질 수도 없다. 오르고 내리는 것을 반복하며 정적 가격을 유지할 것이라 본다.
투자의 관점이 아닌 거주의 관점으로 주택을 소유할 때 본인의 능력 범위 안에서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결정이라 본다. 오르든 떨어지든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주택에서 산다면 무엇인 문제인가? 주택은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구입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