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퇴화한다.
둔해진다. 허술해진다. 칙칙해진다. 어리석어진다. 외로움을 탄다. 동정받고 싶어진다. 구두쇠가 된다.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주제에 "난 호기심이 많으니까 평생 젊은이지"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그런데도 "젊으시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손주 자랑에 병 자랑에 건강 자랑. 이것이 이 세상 할아버지, 할머니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멀리하려는 기세와 노력이 나이를 잘 먹는 것으로 이어진다. 틀림없다. 그리 생각하는 나는 올해 일흔 여덟 살이 되었다. 육십 대에 들어서면 남자든 여자든 절대 제 나이로 보여서는 안 된다. - page 9
올해 일흔 여덟인, 도쿄 아자부에 사는 패셔니스타 할머니, '오시 하나'
그녀는 생활력도 강하고 자기관리에도 철저했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면에서 나온다고 믿으며 '보통의 할머니'와는 다른 그녀의 모습은 많은 이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히 여기는 이도 적지 않게 있기 마련.
동창회에서 그녀의 차림에 대해 뭐라 외치는 이에게 당당히 던진 이 말은...!
"우린 평균 수명까지 앞으로 십 년도 안 남았잖니.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 살아 있는 동안은 입고 싶은 걸 입으며 활기차게 즐기고 시피 않니?"
...
"어울린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 늘 생각해. 남이 그렇게 말하는 건 인사치레니까 결국은 스스로 정하는 거지." - page 23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화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일용품점을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던 그녀였는데
딸 이치고와 함께 롯폰기의 부티크에 들어간 그 날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예순여덟이었던 하나와 마흔 살이었던 이치고.
머플러를 사고 싶다고 간 상점에서 딸의 머플러를 고르던 그녀에게
점원은 핑크색 머플러를 내 목에 두르고는 말했다.
"잘 어울리세요. 칠십 대라고 해서 회색이나 검정색만 살 필요는 없답니다." - page 78 ~ 79
이 말에 충격을 받은 하나 씨는 그날부터 피부 관리는 물론이고 건강을 위한 운동도 잊지 않으며
어울리는 가발을 쓰고 예쁜 네일아트와 자신에게 어울리는 몸치장까지
남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당당하게 즐기며 생의 말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에게...!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일은 하나랑 결혼한 거야."
"하나는 정말로 내 자랑거리야."
며 자신의 아내를 자랑하던 금실 좋은 일흔아홉 '이와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심정이 절절히 느껴졌던 대목이 있었는데...
오십오 년이나 함께 살아온 상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것은 사라진 본인의 문제가 아니다. 남겨진 자의 문제다.
남겨진 자는 사라진 상대를 떠올리며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처음 만난 날부터 죽을 때까지의 웃는 얼굴과 화난 얼굴과 했던 말...... 귀여운 데가 있었지, 좋은 사람이었지, 이때는, 그때는......
먼저 사라지는 자는 행복하다. - page 124 ~ 125
이 대목에서부터 시작해 하나 씨의 의기소침해진 모습에 저 역시도 울컥하게 되었는데...
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유언장이니 유서니 하는 건 안 쓴다고 말했던 이와조에게서 유언장이 발견됩니다.
인감도장으로 봉인된 유언장을 들고 법원에 간 유키오와 하나, 이치고 세 사람은 재판관이 읽어 내려가던 중
"제7조 다음 사람은 유언자 오시 이와조와 모리 가오루 사이의 자식이다."
응?!
부언에 적힌 바
"부언, 나에게 또 하나의 가정이 있었던 것은 정말로 면목 없습니다. 나 때문에 얼마나 놀라고 슬플까요. 하나와 이치고, 유키오에게 진심으로 사죄함과 동시에, 모쪼록 유미까지 어른 넷이서 손잡고 정답게 지내주기를 바랍니다. 이치고와 유키오는 어머니의 힘이 되어주세요. 나는 용서받지 못할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와 이치고, 유키오와의 인생은 거짓 없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 page 192
이와조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것
그 애인은 예순여덟이라는 것
그 사이에 아이가 있고
그 아이는 서른여섯의 아들이 되었고
이를 42년간 숨겨왔다니!
뒤통수를 심하게 맞게 된 오시 하나.
그동안 삶을 지탱해 주었던 믿음과 사랑이 무너진 하나 씨는 맥주 한 캔과 함께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활약!
"저, 이와조와 사후 이혼합니다."
소설을 읽으며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흔다섯 살이 넘으면 심신의 건강도가 단번에 떨어진다고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나이를 먹어서 점차 쇠약해지는 건 현대 의학으로도 손쓸 도리가 없다는 의사의 코멘트도 있었다. 손쓸 도리가 없다는데도 제 나이로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의미 없는 일이 아닐까?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노화에 저항해서 어쩌겠다는 건가. 이만큼 온 힘을 다해 노화를 멀리하며 살고 있는 나다. 그런데도 노화는 소리도 없이 다가오고 있다. - page 95
우리네 사회에서도
어떻게든 이 남은 인생을 쓸모 있게 보내고 싶은데, 일본에서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활용할 곳이 줄어든다. 젊은이를 우선하는 건 사회의 활력이 되니 늙은이는 물러서는 게 좋다. 그러면 역시 자신을 위한 취미를 즐기며 죽는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이제 사회에도, 다른 사람에게도 쓸모없어도 좋으니 스포츠 경기나 열심히 볼까? 하지만 스모 경기장도, 야구장도, 축구장도 혼자서 갈 자신이 없다. 다리도 '쇠퇴'해서 젊은 팬들로 붐비는 가운데 넘어지기라도 하면 일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으로 보는 건 시간을 때우는 할머니 같다. 그저 자신을 위한 시간 때우기는 보살이 할 일이 아니다. - page 353
이 모습은 남의 모습이 아닌 제 부모님의 모습이었고...
앞으로 그려질 제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하나 씨의 모습은
"'저는 나이를 잊고 살아요'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사람, 가끔 있잖아요? 너무 웃긴 말이죠. 나이는 본인이 잊는 게 아니라 남들이 잊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 page 15
우리에게
늙었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을,
그래서 나이가 든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도전하며 '나답게' 살아가야 한다
는 것을 하나 씨가 우리에게 강하게 일침을 가해주었습니다.
울림을 주었던 이 소설.
그 안에서 뭐가 일어나든 대단한 일은 아니다. 하얀 상자에 들어간다는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 도중에 고민하고, 한탄하고, 괴로워하고, 아등바등하고, 허둥지둥해봤자 대단한 차이는 없다. 노인이건 젊은이건,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다. - page 309
하나가 며느리인 유미에게 했던 말처럼
"이제 정말 그림을 그만두고 싶니?"
유미는 머뭇머뭇 조그맣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그만둘 필요 없어. 그만두기 위해 힘을 줘서 필사적으로 결단해야 한다면 아직 그만둘 때가 아닌 거야. 그만둘 때가 되면 말이지, 힘들이지 않아도 가볍게 '관둘래!'하게 되거든."
아무리 힘을 들이지 않아도 단풍은 약한 바람에 뒷면과 앞면을 보이며 떨어진다. 사람이 그리되지 않는 건 젊기 때문이다. - page 347
하지 않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걸로,
'관둘래!'하기 전까지 도전하는 걸로
지금의 나이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럼...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지...
list부터 작성해야겠습니다.
하나 씨 덕분에 매일이 희망차고 즐거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