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죽은 자들의 길을 헤매고 있다.
처음엔 거미줄같이 뻗어나가는 길을 보고 수원에 이런 곳이 있는가 싶었다. 그렇게 미로 같은 길이 금방 끝나리라 여기면서 아무렇지 않게 발을 내디뎠는데......
이곳은 분명 저승길이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 page 7
어릴 때 엄마가 정한 대로 순응하며 살았던 '여운영'
조금이라도 싫다고 하면 엄마가 '왜'라며 이유를 물었고
이에 대해 항변했지만 번번이 부정당했던 운영.
삶은 누가 정하는 걸까?
어느 정도 머리가 커졌을 때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반대하던 출판사 일을 했었고
퇴사를 하고 나니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뭐? 어디에 뭘 차려? 카페? 그것도 돌아가신 할머니 집에서? 그 낡아빠진 집에서 뭐를 한다고? 왜? 대체 왜?"
울컥.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가 치받았다.
"왜라고 묻는 거 좀 그만해주면 안 돼? 나도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 옳다고 생각했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이런 내가 정답을 알 리가 없잖아!" - page 15 ~ 16
그리하여 운영은 1970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수원시 행궁동에 위치한 집을 카페로 개조하고자 합니다.
카페 이름은 '카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제 손으로 바닥을 뜯고 페인트를 칠하며 가게를 꾸려나가던 어느 날,
운영은 새로운 문을 내고자 무심코 뒷마당 담벼락을 허물다가...
와장창!
벽을 종아리쯤까지 부수자 어디선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뭐지?'
어느 순간 눈앞에 한 남자가 웃고 있는데...
"무슨 일이시죠?"
"여기 담을 부순 게 두 번째인데 당신이라 놀랐고, 당신 조부가 죽을 때 유언으로 길이길이 남길 중요한 말을 안 남겼구나 싶어 짜증이 났다가, 그나마 이 일을 해결할 수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어서."
"뭔 소리......" - page 32
알고 보니 이 골목은
죽은 자들이 저승으로 향하는 길목, 수많은 망자와 귀신들이 살아가는 '저승길'이었고
망자들을 상대로 한 저승길 상인회가 있었는데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키던 담, 아니 결계가 깨지면서
저승길 상인회 귀신들은 혼란에 빠지고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귀신들의 공공의 적이 된 운영.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겠다고 했으나 마음속 한편에 온통 후회로 가득했다. 그저 말로 그 감정을 지운 것이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동안 스스로를 속였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지.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저승길에서의 깨달음은 달랐다. 확실한 건 길은 끝이 없을지언정 생은 곧 끝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
담 너머에서 검은 그림자가 운영에게 손을 뻗는 순간, 이대로 우울한 채 죽고 싶지 않았다. 악착같이 살고 싶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말이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 page 74 ~ 75
그리하여 운영은
'사람과 귀신 상인의 상생 프로젝트!'
즉, 스스로 저승길 상인회 사람 대표가 되어 저승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천왕과 깐깐하고 개성 넘치는 귀신 상인들에게 이승과 저승이 함께 잘살아 보자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됩니다.
과연 운영은 귀신들의 마음을 얻고, 이승과 저승 모두에게 사랑받는 진정한 카페 사장님이 될 수 있을까?
"... 누구나 다 실패와 좌절을 겪어.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나면 돼. 여기 귀신들도 한 번은 생을 살았으니 다 이해해. 게다가 너만 잘 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 귀신들도 함께 잘살자고 하는 그 마음이 쉬운 게 아닌 것도 잘 알고.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실컷 실패해. 우리가 도와줄게." - page 101
역시나 이번에도 인물들의 발랄하고도 유쾌함 속에서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면 안 할 법도 한데, 왜 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 여 사장에게 물었던 질문이 생각났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렇듯 눈앞에 존재하는 것들을 모른 척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죽은 엄마를 찾아다니는 성희의 간절함을 알고, 도와달라고 하는 존재들에게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도움을 주고 싶은 그 마음이 자신의 마음속에도 있으니까. - page 247
사람으로,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되기에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사이기에
'연대'와 '성장'의 의미를 운영을 통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 이야기가...
저승길에서 귀신들에게 남은 건 자신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지난 삶의 추억이다. 얼마나 잘 살았는가, 못 살았는가를 판가름하는 건 신이 아닌 고인의 마음이 아닐까.
저승길을 지키는 상인들도, 그곳을 지나가는 귀신들도 한때는 사람이었고 별다를 건 없었다. 선의와 악의, 욕망의 감정은 이승의 사람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운영은 바르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떳떳한 것임을, 그것이 끝내 잘 살았다고 할 만한 것임을 다짐했다.
'그렇다고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목이의 말처럼, 되도록 착하게 살자!'
...
인생을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실패가 아닌 경로 조정일 뿐이란 걸 깨달았다. 하나의 커다란 인생에서 수많은 갈래의 길 중 방향을 잘못 잡았을 뿐 스스로 질책할 만큼은 아니란 것. 운영은 비로소 조금 알 거 샅아 마음이 놓였다. - page 150 ~ 151
인생은 실패가 아닌 찾아가는 '과정'이자 '배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 자그마한 온기를 주었던 이 소설.
덕분에 오늘을,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