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에서 봉기하라 -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저항법
다카시마 린 지음, 이지수 옮김 / 생각정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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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집에서 숨을 때 쓰이는데...

어?!

이불 속에서 봉기한다고?

의아했기에 궁금했던 이 책.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책장을 열어보았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곧 저항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젠더 차별, 가부장제가 남긴

비인간적인 경쟁과 차별, 그리고 배제...

숨 막히는 현실을 피해 이불 속으로 피신한

모두를 위한 최소한의 저항법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



살아 있는 것이 괴로운가? 이 세상이 미운가? 이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지만 그 징조조차 보이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 실망하고 있는가? 이부자리 위에서 꼼짝도 못 하는 채로, 딱히 보고 싶지도 않은 SNS나 천장, 이불 안쪽을 끝도 없이 바라보며 스스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을 견디고 있는가? - page 7

신자유주의 , 능력주의, 젠더 차별, 가부장제...

삶을 옥죄어오는 사회 권력과 부조리 앞에 청년들이 이불 속으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쉬는 2030 청년이 63만 명, 고립 청년이 54만 명으로 집계된다고 하니 쉬이 넘어갈 일이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청년층을 '탕핑족'이란 말이 유행하고,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 하니...

저자 다카시마 린은 이불 속에 웅크린 한 명으로 놀라운 제안을 건네었습니다.

일단은 살아갈 것. 살아남음으로써 저항운동 또한 궤멸하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저항의 의지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이미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혁명'이라는 단어에 놀라서 '그런 과격한 행동은 따를 수 없어'하고 생각한 사람도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손가락 하나, 시선 하나 움직이지 않고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 page 10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가부장제, 의례와 통념 등 보이지 않는 권력이 우리 일상의 생활 습관과 가치관에 어떻게 교묘히 숨어 있는지 밝히면서

'당신은 잘못이 없다'

고,

'그러니 용기를 내자'

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불 속 혁명을 위해 자신을 '아나카 페미니스트'라 하였습니다.

그냥 페미니스트이기만 해서는, 혹은 그냥 아나키스트가 되기만 해서는 약자의 입장에 놓인 삶을 광범위하게 끌어들이는 혁명을 일으킬 수 없기에 동시에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이 양쪽 바퀴를 하나씩 맡아야 한다는 점을 가시화하며 일상 속 최소한의 저항법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회는 통속 도덕이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 사고방식을 바꿔봤자 날마다 부딪치는 가치관은 언제나 버겁기만 합니다.

가 욕실 타일 모양을 까먹는 날이 언젠가 올까? 그런 날을 한시라도 빨리 맞이할 수 있도록, 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고 다닌다. 그건 당신 탓이 아니야. - page 165

위로받지 않나요!

저자로부터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소리 지르지 못하는 존재들을 위해: 애도와 기도>의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세상에 없는 이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물질적 신체를 두고 있지 않기에 그들의 존재를 시인하기가 불가능하기에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의 존재는 대체로 무시되는데...

그래도 괜찮은 걸까?

저자는 이야기하였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혀.

말하자면 우리는 전부 인간 엠프가 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시즈에가 상자에 넣은 물건들이 박물관에 진열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록에서 누락될 법한 작은 목소리야말로, 그 목소리를 들은 산 사람이 채집해 모으고 때로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채집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은 목소리일수록, 채집한 사람이 앰프가 되지 않으면 그 목소리는 사회에서 간과되고 만다. 인생에서 언젠가 스쳐 지나는 죽은 이. 그것은 가까운 사람일 때도 있고 한없이 먼 사람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죽은 이의 흔적과 마주쳤다면(목소리를 들었다면), 그 목소리를 자신의 힘으로 진지하게 다시 서술할 책임이 있다. - page 299 ~ 300

보이지 않는 타자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외쳤습니다.

기왕 태어났으니 다른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자. 자기 자신에게 살의를 내뿜지 말자. 목을 감싼 손을 풀고, 천천히 사회를 향해 주먹을 고쳐 쥐자. 온갖 것들로 인해 궁지에 몰려 이부자리 위에 드러누운 채 꼼짝하지 못하는 몸은, 당신의 의지 하나로 봉기에 참여시킬 수 있다. 나는 당신과 함께 그런 투쟁을 해보고 싶다. - page 15

힘겨운 세상 살이 속에서 저자가 내민 손이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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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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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하였습니다.

꽤 재미나게 읽었었던 소설인데...

음...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

"솔직히 난 살인이 사람들 만처럼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조금 일찍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뭔가요? 게다가 당신 부인은 죽여 마땅한 사람 같은데요." -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푸른숲, page 48

죽여도 마땅한 존재들은 죽여도 된다고 여기는 '릴리'.

하지만 그런 릴리를 마냥 비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던 이 소설.

후속을 기다리고 기다렸었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착한 죽음'을 선사할 릴리의 귀환!

더욱 지독해진 악을 이기는 악에 대한 탐구라니...

또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가 죽어서 기쁜가요?"

살인자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살인자와 손을 잡은 탐정

선악의 기준에 관한 마스터피스 스릴러

살려 마땅한 사람들



"저 기억하시겠어요?" 그녀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물었다.

"당연하지." 대답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가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낯이 익었다. - page 9

사립탐정 헨리 킴볼의 사무실에 그의 옛 제자 조앤이 찾아오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과거에 이 애가 자신을 킴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막연히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느낌이 다시 만난 지금도 드는데...

그녀는 왜 찾아온 것일까...

"남편 때문이에요." 그녀가 마침내 말을 이었다.

"흠."

"말씀드렸다시피 아마 자주 들어보신 사연일 텐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요. 거의 그럴 거라고 생각...... 아니, 알고 있어요. 사실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제가 아는 한 그 사람은 뭐든 원하는 대로 행동하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아는데도 아직 증거를 잡지 못했어요. 그러니 진짜로 알고 있는 건 아니죠." - page 12 ~ 13

남편의 외도를 조사해달라는 조앤.

킴볼은 돈이 들어오는 일을 맡아 기분이 들떴지만 다시 조앤을 보니 다소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수사를 시작한 킴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외도 현장을 급습하기 직전 갑자기 들려온 두 차례 날카로운 소리.

그 소리가 총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잠시 동안 얼어붙어 있는 와중에 또다시 들려온 세 번째 소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남편 리처드 웨일런과 그의 외도 상대 팸 오닐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조앤 웨일런이 보낸 수표가 동봉된 우편물이 도착하게 됩니다.

청구서를 보내지 않았고 그 수표에 적힌 액수는 원래 지불하기로 한 수임료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이었는데...

그리고 첨부된 짧은 메모 한 장.

킴볼 선생님, 제게 수임료를 청구지는 않으셨지만 저는 선생님이 쓰신 시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요. 시체를 발견하신 것은 유감이지만 적어도 경찰에게 목격하신 것을 진술하실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리처드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만약 그런 생각을 했더라면 절대 선생님을 찾아뵙지 않았을 텐데요. 부디 잘 지내시길 바라요. 조앤 그리브 웨일런.

과거의 조앤의 기록을 되짚으며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는 킴볼.

15년 전 장래 예측 과제에 쓴 글이 떠오르게 되는데...

"킴볼 선생님, 10년 후에 저는 엄청난 부자가 될 거예요. 제 첫 번째 남편은 나터켓에서 보트를 타던 중 의문스러운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경찰은 트로피 와이프인 저를 의심하지만 리처드 기어가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저는 그의 요트에 타고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제공해줄 거예요." - page 206

그 당시에는 그 내용이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석연찮은...

그리고 <테이스트 오브 홍콩>에서 팸을 처음으로 만난 날 밤 그녀가 해준 이야기가 자꾸만 신경 쓰이는데...

그녀는 자신의 관계가 둘만의 관계가 아니라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고, 그 말에서 느껴지는 의미가 육체적인 '스리섬' 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세 번째 인물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 page 208

결국 킴볼은 사건을 같이 해결해 줄 조력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릴리 킨트너'

"나는 계략에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증인이 되도록 말이죠."

"누가 당신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거죠?"

"조앤 웨일런이라고 하는 여자가 있어요. 결혼 전 이름은 조앤 그리브라고 하고요. 나는 조앤이 자신의 남편과 남편의 애인을 살해했다고 나름 확신하는 편인데 당신 의견이 듣고 싶군요."

"알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page 209 ~ 210

사연을 들은 릴리는 단숨에 조앤이 사건의 숨은 배후임을 알아차리고 형사 킴볼과 살인자 릴리는 이번 사건을 함께 해결하기로 합니다.

의심할 만한 단서는 모두 심증뿐.

살인범마저 자신을 잡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는 가운데 '착한 살인자' 릴리는 결단을 내리고자 합니다.

과연 극악의 상황에서 '악을 이기는 악'은 용납될 수 있을까?

일단 그런 짓을 하고도 빠져나가는 일을 경험하게 되면 인생의 다른 모든 것들이 조금 색이 바래게 된다. 이제 그녀는 나를,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에디 로건을 찾아냈으니, 인생이 다시 흥미진진해진 것이었다. 그녀가 쫓는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면서 얻는 스릴이었다. - page 442

이번 소설 역시도 제 마음의 갈피를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살인자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살인자를 응원하게 되는 모순된 감정...

나는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인생에는 전혀 후회가 없었다. 내게는 언제나 그래야 할 이유가, 그래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 언덕 위의 공동묘지에서 죽었다면 내가 저지른 일을 후회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그저 내 기분을 좀 나아지게 하려는 거짓말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 page 466

역시나 살인의 정당성을 부여했던 릴리.

그런 그녀를 또다시 응원하는 나...

도대체 '악'이란 무엇인 걸까......

역시나 그의 작품은 엄청났습니다.

믿고 읽을 수 있는 피터 스완슨.

또다시 전작을 꺼내 그가 그려낸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건네봅니다.

"당신은

살려 마땅한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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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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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죽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라는 망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그녀, '마리 앙투아네트'.

오스트리아의 황녀로 태어나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지만 프랑스 혁명이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희생 당해야만 했던 그녀.

혹은 희생 당해야 마땅했던 그녀에게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지혜와 운명』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미 모든 일이 끝난 후에, 결말을 알고 있는 시점에서 어떤 일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래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영감을 준 유럽의 지성, 독일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반세기 지나도록 공개가 금지되어 오스트리아의 문서 보관소에 잠자고 있던 편지들을 통해 그녀에 대한 솔직한, 프랑스 왕실의 이야기와 역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던 왕비.

그녀의 비극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연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비극의 시대를 타고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생에 지지 않을 위로

필연적인 운명 속에서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주로 태어나 성년이 되기도 전에 프랑스의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으며, 궁정 여인들의 유행을 선두했고,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왕비였습니다.

하지만 왜!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운명은 잔인하게 몰락시켰던 것일까!

세상사는 대개 개개인의 내적 갈등의 결과물들일 뿐이다. 아주 작은 계기가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게 되는 것은 역사가 지닌 위대한 비결 중 하나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나비효과라고 불리는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와 드라가 마신의 결혼, 두 사람의 알살, 카라조르제비치의 즉위, 오스트리아와의 적대. 빈틈없이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세계대전. 역사란 거미줄처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다. 정교하게 조합된 역사라는 장치 속에서는 아주 작은 톱니바퀴라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듯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 가운데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 결혼 이후의 몇몇 해들은 세상의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 page 27 ~ 28

책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욕망의 화신으로, 낭비가 심한 사치스럽고 생각 없는 여인으로 그동안 그녀의 태도나 최후에 관해 엇갈리는 모순된 기록, 조잡한 이야깃거리 등을 배제하고 사실에 입각하여 그녀의 일생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수렁 속에 그 깊이를 가늠할 새도 없이 빠져든 여인.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프랑스의 왕비로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여인.

운명은 평범한 사람도 뒤집어 놓을 수 있고, 한계를 넘어 나아가도록 강제로 몰아가기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이 바로 그러한 역사의 예시이다. 명랑하고 구김살 없던 그녀의 세계 안에 혁명이 들이닥치지만 않았더라면, 이 합스부르크의 여인은 수많은 다른 황녀들처럼 평범하게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을 것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먼저 밖으로 내던져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 운명이 쥐고 있는 것이 바로 '불행'이라는 채찍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불행의 손길을 비정하게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곁을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불행 속에서야 겨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정한 나를 알게 된다."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하찮고 평범한 삶이 후세에 어떠한 본보기가 되리라는 예감이 엄습했다. 책임 의식을 느끼며 그녀는 자신을 초월하여 성장한다. 필멸의 형체가 부서지기 직전에, 영원히 지속되는 예술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 page 9 ~ 10



마리 앙투아네트가 상대해야 할 것은 고발자로 나선 변호사나 재판관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뿐인 진정한 재판관, 곧 역사였던 것이다. - page 294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더 왕비로서의 위엄을 지켰던 그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녀.

역사라는 위대한 창조주가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익히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극, 영화, 만화 등으로 접한 바 있었지만 이렇게 온전히 그녀를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녀에게 '비운의 왕비'보다는 그 누구보다도 위엄 있었던 '프랑스의 왕비'였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편히 지내기를...

평범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못했던 그녀에게 자그마하게 제 마음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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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왜 싸우는가? - 정체성의 투쟁, 중동사 21장면
박정욱 지음 / 지식프레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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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참으로 시끌합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0개월을 넘긴 가운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까지...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 앞에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때마침 가치 읽기 도서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끝나지 않은 대립과 갈등의 역사,

그들은 왜 아직도 피 흘리며 싸우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저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끝나지 않은 갈등과 대립,

지금의 중동을 이해하기 위한

21개의 역사적 장면

중동 싸우는가?



'중동'이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도 '중동'이라 하면 유전에서 치솟는 검은 불길, 모스크에 모여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는 무슬림들,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으레 떠오르는 건 '분쟁'과 '테러'.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중동을 '화약고'로 표현한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중동은 화약고가 된 것일까?

왜 중동 사람들은 자꾸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일까?

이 책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풀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낯설고도 어려운 '중동'.

이곳을 이해하기 위해선 거룩한 예언자 무함마드로부터 촉발된 이슬람 세력의 탄생과 확장,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된 이슬람 세력의 제국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한민족'이란 민족 정체성을 갖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이슬람'이란 종교 정체성을 가진 그들.

오랫동안 이슬람이라는 종교 중심의 국가 체계가 유지되었으나, 서구 열강들이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판단에 따라 나뉜 국경으로부터 어제의 친구였던 무슬림들은 오늘의 적이 되어 맞서야 했던...

그래서 한때 유럽보다 강하고 우월했던 이슬람은 유럽의 꼭두각시놀이판에서 춤을 추는 인형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거대한 이슬람 세력을 이끌던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술탄이 사라졌고, 이를 계기로 여러 가지 생각, 철학, 색깔을 지닌 이슬람 세력들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각 정체성 간의 충돌과 외세의 개입, 끝나지 않은 전쟁...

무엇보다 20세기 후반 이후 '이슬람'하면 '테러'가 떠오를 정도로 이슬람권에서 테러가 자주 발생하고 있고 '자살폭탄테러'라는 끔찍한 방법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아서 세계인들이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9.11 테러'로 무슬림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높아졌는데...

사실 테러나 자살공격은 이슬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소수민족이 독립운동을 할 때 식민주의 세력에 대항해 테러를 감행하는 사례가 많았고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의 카미카제 특공대, 스리랑카의 반군 세력 타밀일람해방호랑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력 대결에 종교가 결부될 경우 자살공격을 시도할 확률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종교의 내세관과 결부되어 죽음을 신성시하는 '순교'라는 관념 때문에 '절대자를 위한 거룩한 죽음'이라는 관념으로 목숨을 바치도록 유도하는데...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테러는 비난받아 마땅함을!

오늘날 중동 정치에서 나타나는 주요 정체성 갈등이 모두 등장한 '시리아 내전'이 마지막에 소개되었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 수니파와 시아파 간 분쟁, 쿠르드족의 독립 요구,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간 갈등, 그리고 외세의 대리전까지...

어느 하나 해결된 것 없기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을 가진 채 늘 안팎으로 싸우는 그들.

왜 그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수없이 싸워야만 했던 걸까...?

특히 중동의 아랍인들은 하나의 아랍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국가로 쪼개진 탓에, 그것도 자의에 의해 나뉜 게 아니라 유럽 국가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국경이 결정되는 바람에 현재까지도 많은 아랍인들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아닌 이들은 누구인가?' 한 국가 내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가 '우리'가 아닌 '외부자들'로 서로를 규정하고 있고, 국경 내의 쿠르드인들은 자신들이 그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 별개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라고 주장하며 독립된 나라는 세우려 합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세속주의자들을 '적'으로 치부하고 극단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습니다. - page 8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아닌 이들은 누구인가?'

'정체성'으로부터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싸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이해하기란...

우리와는 시작부터 달랐기에 어려웠던 그들.

그리고 이 책으로부터 지금껏 '중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고 조금은 바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투쟁을 해야 했던 이유를...

그동안 우리의 시선으로는 비윤리적이고 잔인하였지만 그들에겐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투쟁이었음을.

그렇다고 해서 전쟁만이 정답일까...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구조 속에 부디 좋은 해답을 찾기를 저 역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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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무인 문구점 이상한 무인 가게 시리즈 2
서아람 지음, 안병현 그림 / 라곰스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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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지금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책 목록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이상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학교 숙제 중 '책 읽기'가 있으면 그 책을 가져가고는 자신이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외치곤 합니다.

소원과 함께!

그리고 『이상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겨놓았었는데

조금 아쉬웠지만, 이제 내일을 기약할 차례였다.

"그래서, 다음은 어떤 가게지?" - page 154

그래서 아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었습니다.

언제쯤 가게가 열리려나... 기다리던 차 이번엔 신비한 문구류가 가득한 '무인 문구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저보다 더 빠르게 반응한 아이.

하지만 이에 질수 없어라 손을 뻗어 먼저 읽게 된 나.

이번엔 어떤 고민을 해결해 줄까...

문구점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너만의 비밀을 말해 줘.

신비한 물건

주인이 될 수 있단다!"

신비한 물건이 가득한 무인 문구점이 열린다!

이상한 무인 문구점



오후 3시.

분식집이 가장 바빠야 할 시간이지만, 손님이라곤 파리가 전부인 이곳에 아이인지 어른인지 알 수 없는, 키도 작고 생긴 건 영락없는 초등학생인데 옷차림은 고풍스러운 양복 차림이 한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옵니다.

"어...... 그러니까 뭘 줄까...... 요? 떡볶이? 튀김도 방금 튀겨서 맛있는데...... 요." - page 7

허름하지만 깨끗한 이곳.

무엇보다 넓게 트인 창문으로 초등학교 교문이 바로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던 손님은 주인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말합니다.

"사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말이죠. 이 가게를 통째로 살 수 있을까요?" - page 8

며칠 후, 모두가 잠든 한밤중.

분식집에 들렀던 남자아이가 다시 가게 앞에 섰습니다.

먹구름처럼 짙은 그림자와 함께...

"그런데 이번 가게는 뭐지? 또 먹을 건가?"

"어느 학교 앞이든 반드시 있어야만 할 가게지."

...

"아이들을 위한 학용품과 다양한 잡동사니를 파는 곳이야. 옛날 말로는 문방구." - page 8 ~ 9

다시 한번 서막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무인 문구점, 좋은 이름이야." - page 9



역시나 이 가게에 들어가기 위해선

무인 문구점

웃는 얼굴을 보여 주면 문이 열려요!

문 앞에 설치된 카메라에 웃는 얼굴을 보여줘야만 들어갈 수 있고 가게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신비한 물건을 얻는 건 아니었습니다.

조건이 하나 붙는데 바로 스피커 속 인물과 거래를 하는 것.

-비밀은 어떨까. 오랫동안 꼭꼭 숨겨 둔 남의 비밀을 듣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거든. - page 20

'오랫동안 꼭꼭 숨겨둔 나만의 비밀 한 가지'가 바로 거래 조건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아이도 겪고 있을 고민들을 가진 친구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인기가 많아져 학급회장이 되고 싶은 '주원'

아이돌이 되고 싶은 '하람'

공부 잘하는 누나와 비교당하는 것이 싫은 '라온'

아빠가 아저씨 같아 싫었던 '세아'

구두쇠 엄마가 창피했던 '민율'

아픈 반려동물의 마음이 궁금했던 '은우'

그리고 이번엔 마지막에 어른이 등장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되고픈 '은정'

오직 아이들을 위해 존재했던 무인 가게에 그녀가 등장한 건

"그 선생님은 작지만 큰 걸 타고났어. 바로 수많은 아이들의 인생을 멋지게 바꿔 놓을 운명." - page 149

선생님을 돕는 건 곧 아이들을 돕는 일이었기에 규칙의 예외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이번에도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제 고민도 꺼내볼 수 있었고 지금의 아이에게 그 어떤 말보다 이 책을 건네는 것이 답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것보다 '세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저씨처럼 보이는 아빠가 싫었던 세아.

"아, 몰라. 난 아빠가 싫어." - page 74

그런 세아에게 '쓱쓱싹싹 슈퍼 지우개'를 선물받게 됩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지워 주는 지우개.

그래서 아빠를 슈퍼 지우개로 지웠지만 오히려 희미해진 아빠가 걱정이 된 세아.

그러다 아빠의 진심을 알게 되는데...

"우리 딸이 이거 좋아하겠는데......"

세아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유독 곰 인형을 좋아했다. 큰 곰, 작은 곰, 흰 곰, 노란 곰, 웨딩 드레스 입은 곰, 한복 입은 곰, 소방관 곰, 경찰관 곰, 의사 곰 가리지 않고 종류별로 모았다. 밤에는 곰 인형 수십 개를 침대 주위에 빙둘러 보초를 세워 두고서야 잠들곤 했다. 하지만 그건 어린애 때 얘기고, 이제 곰 인형은 졸업한 지 오래다.

'으휴, 저런 걸 누가 좋아한다고...... 아빠는 진짜 바보야. 난 아빠를 지우려고 했는데, 아빠는 왜 내 선물을 사려고 하는 거야.' - page 85 ~ 86

뭉클함이...

지난 어린 시절 나도 그랬었기에 그랬을까...

신비한 물건이 가득했던 '무인 문구점'.

만약 내가 그곳에 간다면 어떤 물건의 주인이 될까...?

또다시 문을 닫게 된 무인 문구점.

남자아이는 신비스러운 빛깔을 지닌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럼, 다음 무인 가게를 찾아볼까?" - page 150

또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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