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이혼 시키기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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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을, 타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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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절한 거짓말 - 총리가 된 하녀의 특별한 선택
제럴딘 매코크런 지음, 오현주 옮김 / 빚은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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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 이야기일 거란 생각은 1도 하지 못했었는데...

더 늦기 전에 각성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었고 앞으로의 우리 자세 또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이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2개월간 내린 비로 침수 피해와 수재민은 계속 늘어나고 강의 수위는 도시를 덮칠 듯 높아지는데, 기상예보에는 비가 또 온다고 한다. 시민들은 공포와 불안에 떨지만 별 뾰족한 대책은 없다. 심지어 국가원수는 몰래 도망쳐버렸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당신이 통치자가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단지 소개 글을 읽었을 뿐인데...

낯익은 이 상황은 뭐지?!

이젠 소설도 소설 같지 않은 상황 속 과연 이 소설은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갈지 기대를 해 보며 읽어보았습니다.

재난 앞에서

통치자는 도망가고,

정치인은 권력만 좇고,

언론은 선동하고,

시민은 표류한다

너무 친절한 거짓말



프레스토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저택 안, 하녀 글로리아는 손님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계단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 page 9

북부 지역의 물이 범람한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

2개월간 내린 비로 침수 피해와 수재민이 계속 늘어나고 강의 수위는 도시를 덮칠 듯 높아지는 상황 속...

"비상사태를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총리님?"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겠어요, 코베트 의원님. 도시에 불안을 조장하시게요? 걱정할 것 전혀 없어요. 기상학자들이 곧 우리를 안심시켜줄 겁니다. 이 음산한 비는 곧 그치고 태양이 떠오를 거예요."

총리는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총리님! 오늘 신물을 아직 보지 못하신 건가요? 북부 지역에서 오는 전보는 받아 보셨나요? 강이 범람 직전이란 소식은요? 가옥들이 물에 잠겼다는 얘기는요? 비가 이토록 많이 내리니 강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어요! 신문에 이미 실린 사실입니다.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성문은 모두 닫아야 합니다. 북부 도시들이 어떤 지경인지 듣기는 하신 겁니까, 총리님?" - page 14 ~ 15

기상학자들이 건넨 봉투를 열어 보고서를 읽어본 총리.

불편한 침묵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곤 슬며시 입을 벌려 말하기를

"좋은 소식입니다, 여러분! 일기예보에 따르면 곧 비가 그치고 덥고 건조한 날이 이어질 거라는군요. 강 상류는 벌써 해가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들 기상학협회는 신뢰하시겠지요. 성문을 닫는다? 하! 기차역을 봉쇄한다? 과잉 대응입니다." - page 19

사실 총리는 거짓 발표를 한 것이었고 시찰을 핑계로 도망가게 됩니다.

총리의 부재에 대해 남편 티모르는 하녀 글로리아에게 제안 아닌 제안을 합니다.

"저는 하녀예요! 할 일이 많다고요! 침대 정리! 청소! 주방 일도 봐야 하고... 그건 그렇다 쳐도 누가 저를 총리님으로 믿겠어요."

"총리가 자기 일을 끝까지 해내도록 도와야 해! 그래야 하지 않겠니? 총리가 돌아올 때까지만이야. 알겠지?" - page 53

아팔리아 총리인 척을 하라니.

어처구니없는 상황-계속 내린 비로 불어난 강, 계속 발생하는 침수 피해와 이재민, 대책을 바라는 이들의 압박에 더 내리는 비에 화산활동으로 빙하마저 녹을 이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총리 대역이 되어버린 글로리아.

어쨌든 결국 그렇게 한다 한들 아무도 속지 않을 것이라 여겼지만...

어?!

하지만 어쩐 일인지 누구도 총리가 바뀌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고, 오히려 시민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살피는 '글로리아의 언행'에 찬사를 보내는데...

"... 안도감. 사람들은 안도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요. 이름들이 있으면 좋겠군요. 명단 말입니다."

그늘진 곳 어딘가에 있던 티모르가 거들어주었다.

"명단?"

"명단이요. 누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요."

...

"남문을 닫을 때 총리님께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셨는지 감히 말씀드려도 될지요? 총리님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첩 속 피스톤의 기름을 살피라고 제안해주신 덕분에, 음, 우리가 모두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 외에는 달리 표현할 것이 없습니다. 경이로우십니다." - page 104

지금껏 중요하거나 특별한 취급받은 적 없었던 글로리아는 점차 자신감을 얻고 티격태격하면서도 신뢰하는 사이가 된 티모르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한편, 넘쳐난 강물로 마을이 잠기고, 결국 지붕으로 대피한 클렘과 그 부모 그리고 잡종견 '하인즈'.

한참 뒤 구조팀이 배를 타고 이들을 구하러 오지만 배에 오를 수 있는 건 오로지 사람뿐이었습니다.

결국 홀로 남겨진 하인즈는 자신이 클렘을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내차야 씨'라는 묘한 개가 탄 자동차에 올라 하류로 떠내려가게 됩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 속-동료를 얻고 잃으며 클렘이라 착각하고 다가간 인간에게 상처를 입지만 다른 인간으로부터 치료와 위로를 받기도 하는 등-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코를 믿으며 멈추지 않고 걸었더니 간신히 클렘과 재회를 하게 되고

개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는 사이, 클렘이 흘리는 짭조름한 행복의 눈물이 엉겨 붙은 털 위로 떨어졌다. 말도 입으로 하인즈를 툭툭 치고 있었는데,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됐어, 친구. 이제 됐어.' - page 313

다시 글로리아로 돌아오면 도시의 주요 수입원인 '공장'의 침수를 막으려고 그녀가 한 적도 없는 발언을 인용하거나 광견병에 걸린 개들이 돌아다닌다는 거짓 정보로 시민들을 동조시키고 정작 시민들에게 강요했던 자들은 자신만의 탈출 방법을 논의하며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는데...

점점 프래스토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가 쌓여가는 와중에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글로리아는 어떤 선택을 할지...

"나는 총리가 아니다! 난 하녀다."

그녀의 대담하고 짠하며 감동적인 휴먼 블랙 코미디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공익을 위해 사용해야 할 예산이나 재산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태도.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작성된 기사와 조작된 정보를 발송하는 언론.

그리고 정치인과 신문의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태도.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다 똑같은 인간인 것을...

나조차도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글로리아를 보면서 같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실제 1928년 미국에서 일어난 홍수(원문은 1928년으로 되어 있지만 정황상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로 추정됨-옮긴이)를 모티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저자는 무려 약 100년 전의 사건을 가져온 것일까?

이에 대해 책의 마지막에서 답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집니다. 같은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은 또한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터넷, 신문, 광고 같은 것을 통해 믿고 있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신문기자들과 정치인들은 일반적으로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것을 말하고, 여러분도 그걸 믿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 page 541

지금까지 실수하고 틀리고 놓쳤던 일이라도 우리가 바꿀 수 있음에 희망을, 무엇보다 우리는 지성과 안목을 길러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던 거짓말.

가볍지만 묵직한 한 방이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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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탐정 사무소 -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이락 지음 / 안녕로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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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탐정?

솔직히 새로웠습니다.

'시'가 단서가 된다고?

시로 심리를 추리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궁금하였습니다.

'시'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기에, 읽으면 꼭 함축된 의미만 찾으려고 하기에 시의 매력을 놓치곤 하였는데 이번 소설을 통해

시를 어떤 방식으로 감상하며,

시와 소설의 문학적 만남이 어떤 매력을 주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를 공부하는 청소년, 시를 읽고 공부했던 모든 이들을 위한

현직 국어 선생님의 본격 시(詩) 추리 소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건 어렵지 않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시에 다 숨어 있거든."

시 탐정 사무소



오후 2시 30분.

언제나처럼 응접실 한가운데 놓인 사인용 면피가죽 소파의 왼쪽 끝에서 팔을 기댄 채 왼손엔 시집을 들고 앉아있습니다.

그러다 눈을 감고 10초 뒤 말을 걸어오는데...

"그런데 말이야, 완승 군."

빙고!

"네, 선생님. 무슨 일이신지?"

"밖에 빗소리가 들리는군. 오늘 비가 온다고 했던가?"

...

"비도 오고 하니 「우리가 물이 되어」라는 시가 떠오르는군. 좀 읽어 주겠나?" - page 8 ~ 9

시 탐정이자 시 해독 전문가 '설록'이었고 그의 조수 '완승' 군은 그 옆에서 시를 읽으며 시 속 화자의 심리를 알아내고 그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과 처해 있는 상황을 읽어 냅니다.

그렇게 이곳엔 의뢰인들이 시를 가지고 찾아오면 시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과 진심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제가 하는 이 일이 민아 씨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시를 읽는 건 그 사람을 읽는 거니까요."

"네?"

"사람마다 즐겨 읽는 시가 다르지요. 그건 그들의 삶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가 자기 삶에 온전히 들어올 때야 비로소 그 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아마 민아 씨는 기형도 시인의 시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켰을 겁니다. 그러니 시를 통해 민아 씨의 삶이나 고민을 읽어 낼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보면 안토니 씨의 의뢰는 민아 씨의 사생활을 읽어내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민아 씨의 동의 없이요." - page 49

"어떤 시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시에 그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page 85

책 속엔 재벌가 무남독녀의 가출, 매너리즘에 빠진 아이돌, 형의 잠적 의도를 알 수 없는 고백 편지, 취준생의 자살 미수, 금고 절도 사건 등.

사건을 풀 단서는 의뢰인들이 들고 온 '시'였으며

시 탐정 설록으로부터 시 속에 담긴 화자의 마음을 냉철하게 파악하는 동시에 그 시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과 사정을 추리하게 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감성적으로 다가왔고 그 과정을 통해 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었으며 마침내 '시'라는 감성이 위로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시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중독되는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시 한 편쯤 마음속에 품고 있잖아요?"

저는... 아직... 없...

이번을 계기로 서점에 들러 나를 사로잡을 시집을 한 권 사볼까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가 어울리는 계절인 만큼...

왠지 이번엔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시 한 편이 제 가슴속에 찾아올 것 같았습니다.

p.s. 이 책에 소개된 시 중 이 시가 유독 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내 마음이었을까...?!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문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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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죽음을 안전가옥 쇼-트 21
유재영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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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제목에 이끌렸습니다.

그래서 소개 글을 찾아 읽어보니

법망 사이로 빠져나가는 젠더 범죄자, 몸소 단죄에 나선 피해자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일면식 없는 여성을 상대로 한 무차별 폭행과 성폭행, 대낮에 서울 시내 한 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의자는 흉기에 의식을 잃고 입원하지만 깨어나지 못했고 그에 따른 피의자는...

결국 이런 흉악범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를 지켜줄 사회 시스템이 허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특히 여성들이야 이로 말할 수 없습니다.

에휴...

아무튼 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풀어나아갈지 한 번 지켜보려 합니다.

사랑과 욕망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무례하고도 파괴적인 행위들

당신에게 죽음을



설희는 다가올 날을 준비했다. - page 7

도서관 문헌정보실에서 일하던 설희는 휴직 후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선정되어 총 8회로 구성된 강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악인과 광인》, 인간의 악의와 광기에 관한 질문들

이 강연의 강사로 책의 저자인 '이수혁'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악의나 광기는 분류 기호 없이 뒤섞여 있잖아요. 주로 사회의 도덕률이나 법정에서의 판단에 따라 갈리죠." 이수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계속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 나쁜 사람과 아픈 사람. 아프면 판단력이 흐려지니까 나쁜 선택을 하는 빈도가 높아지는 데 반해 나쁜 사람은 여간해선 아파하지 않죠."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나쁜 사람에게 고통을 안길 장치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설희가 추궁하듯 물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설희 씨 주장이 더 매력적이네요. 형벌이 필요하죠. 죗값을 제대로 치르려면." - page 18

그와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이끌리게 되었고 급기야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숨기고 있던 진실이 드러나면서 이 둘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고

그리고 몇 분 뒤 메시지가 왔다. 안부를 묻는다거나 사과를 한다거나 이혼 저차를 매듭지었음을 전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수혁, 본인의 부고였다. 보낸 이는 이수혁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모든 번호에 보내는 메시지라며 장례 일정과 빈소 위치를 알려 왔다. 유가족은 이수혁의 아내, 오은수였다. - page 37

장례식장에 간 설희는 그곳에서 이수혁의 부인 오은수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부터 이 둘의 묘한 관계가 이루어지는데...

"부검 결과가 나오는 날, 경찰이 인스타그램을 보여 주더군요. 저는 몰랐어요. 그 사람이 그런 걸 운영하는 줄은."

"인스타그램이요?"

"거기에 유서 같은 게 있더라고요." 오은수는 설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제가 선생님에게 별말을 다 하네요."

"괜찮습니다. 자책, 하지 마세요."

연기하지 마세요. 설희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다. - page 73 ~ 74

석연치 않았던 죽음으로부터 소설은 두 여성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젠더 권력을 등에 업고 악행을 벌이는 이들, 악인이라는 딱지를 개의치 않고 단죄에 나선 이들이 얽힌 짜릿한 스릴러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바라보며 나눈 그녀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이 소재로 여러 작품을 그렸는데,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모욕적인 재판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재판은 아르테미시아의 승소로 끝나지만 사회는 그녀를 암흑에 가두게 되고 결국 그림으로 자신의 상처를, 분노를, 그럼에도 꺾이지 않은 삶에 대한 의지를 기록하였는데...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줄 거야. 사람들은 내 그림 속에서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겠지." - page 80

서로의 문제 해결 방식을 썩 달가워하지 않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동의하게 됩니다.

바로 법정은 인과응보가 구현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죽어도 싼 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뻔뻔하게 선처를 구한 뒤 풀려나 짓던 죄를 이어 짓는 이들을 향해 보여주었던 오은수의 모습은

"죽인다고 끝이 아니에요. 죽고 나면 금방 잊히거든요. 그래서 무대를 만들고 극으로 재구성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기억하게 만드는 거죠. 쓰지 않으면 금방 잊히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죠." - page 139

과연 그녀를 탓할 수 있을까...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무심한 폭력이 난무하고 납득할 수 없는 죄의 형량 속에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인지 사회에게, 아니 우리 개개인에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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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 김진명 장편소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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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다룬 밀리언셀러 데뷔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하늘이여 땅이여」

미천왕으로부터 광개토대왕에 이르는 뜨거운 역사를 다룬 필생의 역작 「고구려」 시리즈까지.

그야말로 한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베스트셀러들을 발표해온 그가 집필 30주년 기념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름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사실 제목만으로도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지만 저자는

"나는 전 세계인이 힘을 합쳐

푸틴의 핵 협박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이 책을 썼다."

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 아니기에...

과연 소설 속에서는 어떤 결말이 이루어질지 기대해 보며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인류에 가해진 최초의 핵 협박

푸틴이 성공하면 김정은도 성공한다

그가 핵을 쓰지 않을 거라는 당신의 확신은 과연 타당한가?

타임지, 뉴스위크지, CIA 홈페이지가 소개한 시대의 작가 김진명

그의 상상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틴 처단 오퍼레이션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쪽의 도시 부차.

폐허가 된 부차는 러시아 점령군이 자행하는 약탈과 고문과 살인에 의해 지옥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부차 외곽은 도로에서 벗어나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아 그런대로 안전한 편이었고 그곳에 살고 있었던 서른여섯의 미하일은 소박하고 따뜻한 저녁 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 루슬라와 딸 알리사.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식사를 하던 중 금발의 한 젊은이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을까 천진하다 못해 애틋한 느낌까지 드는 청년은 공손한 표정인 데다 밝은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고 있어 방심하던 찰나 청년, 아니 러시아군으로부터 칼에 찔려 의식을 잃게 되었고 아내와 딸마저 잃게 됩니다.

"이제야 깨어나셨군요. 3개월 하고도 8일 동안 병원에 누워 계셨습니다. 내내 의식 없는 상태로요." - page 29

성치 않은 몸으로 러시아군이 시체를 파묻어놓은 구덩이들을 돌아다니며 아내와 딸의 시신을 찾아 헤매는 미하일.

결국 찾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하자 어느 날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여보, 그리고 알리사. 조금만 기다려줘. - page 30

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이끄는 러시아의 핵 공격에 대비해 만들어진 극비 오퍼레이션 '네버어게인'.

이 팀의 일원인 스토니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구호활동을 하다 감금된 러시아인 여성 구호 활동가 구출 명령을 받고 도움을 청하고자 미 해군사관학교 시절 동기 '케빈 한'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의 기상천외한 계책으로 구출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공으로 '네버어게인'에 영입하게 됩니다.

"여하튼, 지금 푸틴의 핵 공갈에 대응할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러시아 국민들을 일깨워야 합니다." - page 79

가족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었던 미하일은 한시바삐 가족들 곁으로 가고자 바흐무트 공방전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죽기는커녕 전쟁영웅이 되어버렸지만 세 발의 총상을 입고 통합병원으로 후송됩니다.

이젠 몸과 마음이 지친 그.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케빈은 마치 달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구름이 다 덮었어도 희미하게나마 빛을 내는 달, 그 빛에 의지해 밤길을 걷는 그.

그렇게 이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게 됩니다.

그러던 중 케빈이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사실은 은밀히 사람을 모집하려던 참이야."

"뭐 하게?"

...

"보석. 여기 오데사에 어마어마한 보석이 있어. 마케의 다이아몬드야."

"마케의 다이아몬드? 그게 뭐지?"

"시바의 여왕 마케가 가졌던 전설의 다이아몬드야. 값을 따질 수 없을 정도지."

"그걸 훔치려는 거야"

"그래."

...

"무슨 소리야?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그 보석의 실제 주인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알렉세이 모르다쇼프야. 나토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인물이지. 나는 그걸 빼앗아 우크라이나 난민을 도우는 데 쓰려는 거야." - page 129

미하일은 전쟁 통에 사리사욕을 챙기는 친러 무기 암거래상이 갖고 있는 다이아몬드를 훔쳐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자는 제안에 우크라이나인 범죄자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한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서방 국가를 상대로 내건 휴전 조건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뇌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

패배한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처량한 최후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힘 있는 휴전을 이루어내 러시아의 위엄을 되찾고 국민들의 열화 같은 지지를 받으며 종신 집권을 할 것인가.

"핵. 지금이야말로 핵을 써야 할 때야. 내가 그토록 애써 핵을 개발한 것은 오로지 이런 때를 위한 것이었네. 블라디미르, 지금이 핵을 쓸 때야. 결코 무시당해서는 안 될 슬라브의 힘을 보여줄 때라고. 핵을 쏘면 상대방들은 휴전밖에는 달리 길이 없네. 우크라이나에 핵을 쏘고 동시에 전 세계를 향해 핵 미사일을 겨누게. 그러면 승리는 자네의 것이야."

단호한 음성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스탈린의 빈자리를 보며 푸틴은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 page 162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 잠수함사령부는 핵탄두 288개를 탑재한 전략핵잠수함 로드아일랜드를 흑해에 잠항시키는 작전을 실행하게 됩니다.

작전 수행 중 러시아 해군의 추적을 받다 암초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수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찰나 정체불명의 사람들로부터 잠수함을 탈취당하게 되는데...

핵탄두 288개가 탑재된 전략핵잠수함은 지금 이 순간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과연 푸틴은 핵 단추를 누를 것인가...

그 끝을 향해 소설은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이걸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 인물, 실제 사건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기에 '팩트'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불편하지만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동안은 뉴스로만 접했기에 심각성은 익히 알았지만...

글로 직면하게 되니 참혹함과 역겨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책장을 덮기 일쑤였습니다.

역시나 바라지 않았던 일이 펼쳐졌고 그 결과는...

"러시아를 무너뜨린 건 당신이야. 러시아를 망가뜨린 사기꾼!"

"누구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어. 당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푸틴, 세상의 파멸을 원하는 건 오직 당신 하나뿐이야. 그러느니 당신이 사라져야 해." - page 396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무의미한 이 전쟁 속에 자신이 옳았음을 확신하며 핵 협박을 하는 그.

핵 협박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갈림길에 놓은 지금.

"전쟁이 쉽게 끝나지는 않겠지. 끝나도 저 푸틴이 있는 한 언젠가는 같은 일이 반복될 테고.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그 놈을 죽여야 하지만 아무도 푸틴을 건드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잖아. 미국도 나토도 그놈을 너무 겁내. 이 전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거나 다름없어. 러시아 놈들이 차면 중력이 붙어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고 우리가 차면 중력이 뒤에서 잡아끌잖아. 그러니 제대로 된 전쟁이 될 리 있어?" - page 109

우리에게 그는 전하였습니다.

전 세계인이 힘을 합쳐 푸틴의 핵 협박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신념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의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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