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9월.
매년 그래왔듯 록스턴 세인트프라이즈와이드의 제럴드 세던 신부는 콘월 북부 세인트소디의 새뮤얼 봇 신부를 방문하게 됩니다.
오랜 벗인 그들은 이렇게 둘이 함께 보내는 이 휴가보다 더 큰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데...
세던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설교문은 미리 다 써놓아야 하는 게 그들 휴가의 규칙이었다.
"예정에 없던 설교라네. 나도 오늘 오후까지 마쳐보려고 애썼어. 하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더라고."
"별일이네." 세던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음...... 장례식 설교인데......"
봇은 책상 앞으로 가서 타자기 뚜껑을 열었다.
"평범한 장례식이 아니야." 그가 불평했다. "사실 딱히 장례식이라고 볼 수도 없지. 고인들을 묻어줄 수가 없으니까. 이미 묻혔거든, 절벽 아래......"
"오, 펜디잭만 말인가?" - page 12 ~ 13
사실은 이러했습니다.
8월에 갑자기 절벽 한 쪽이 크게 무너져내린 일이 있었습니다.
붕괴한 절벽이 세인트소디에서 몇 마일 떨어진 작은 만을 덮쳐 동쪽 곶에 세워져 있던 저택, 아니 개인 소유 저택을 게스트하우스로 바꿔 운영한 호텔을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하였고 이로 인해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신부가 사망자들의 장례식 설교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생존자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데?"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봇이 창가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내 생각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거든.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전부는 아니었어. 완벽한 진실은 영영 아무도 알 수 없겠지.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한 이야기는......"
그는 벽난로로 다가와 세던을 마주보고 의자에 앉았다.
"들어보게나." 봇이 말했다. "그리고 자네 생각도 한번 정리를......" - page 17 ~ 18
그렇게 이 소설은 생존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신부 친구에게 들려주면서 시작하였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우리의 추리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도대체 참사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누가 죽었고 왜 죽었으며 살아남은 자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이기적인 귀족, 나태한 궤변론자, 괴상한 성직자와 위축된 그의 딸, 몽상하는 아이들, 심술궂은 객실 책임자, 각자의 우울에 빠져있는 부부, 위악적 소녀, 예술가인 척하는 작가와 그녀의 어린 정부 등등.
스물네 명은 각자의 속내를 숨기지만 결국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고 설전이 오가고 갈등이 폭발하면서 마침내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그는 세상을 구하려면 죄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곳곳의 희생양, 힘없이 기댈 곳 없는 사람이야말로 인류를 지탱하고 지켜주는 구세주들이라고. 그녀는 그가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동안 곧 엄청난 발견을 할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
아직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단계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무엇이 그들을 이어주는지 알았다. 하지만 스스로가 조금 놀랍게 느껴졌고, 뭔가 모험을 시작할 때 여자들이 으레 그러듯 킥킥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 page 143 ~ 145
솔직히 이 소설은 쉽게 읽혀지진 않았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런던대공습 직후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고 그 속엔 기독교적 이야기로 교만, 시기, 나태, 탐식, 분노, 정욕, 탐욕 등 일곱 가지 대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심오하진 않지만... 저에겐 미스터리 소설의 묘미가 크게 와닿진 않았습니다.
인간의 군상을 그려냈던 이 소설.
우리네 모습이기에 썩 유쾌하진 않지만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곤 하였고 이 소설이 우리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못된 사람은 몇 명뿐이지만, 그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가고도 남아요. 소수가 다수에게 그토록 해를 끼칠 수 있다니, 믿지 못하실 거예요. - page 449 ~ 450
그리곤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그들은 앞날을 생각했다. - page 521
씁쓸하지 않나요...
아무튼 읽고 나서 한바탕 소동 속 한여름 밤의 꿈처럼 몽롱한 느낌만이 남았었습니다.
여름이 끝날 무렵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
이런 일은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