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미스러운 스캔들로 학교 교사를 그만둔 지 4개월째 생의 의미도 재미도 잃은 채 아래로만 침잠하던 스물여섯 살 청년 '기자키'.
그에게 고등학교 친구였던 스기시타가 한 가지 제안을 해 주었습니다.
"너 말이야, 해외라도 다녀오면 어때?"
...
"하와이는 어때?"
...
"호놀룰루는 그렇지. 근데 호놀룰루는 하와이 제도의 고작 일부분이야. 같은 오아후섬이라도 호놀룰루를 벗어나면, 인본인 가족 여행객들 모습은 거의 안 보여. 마우이나 하와이섬, 카우아이섬까지 가면 풍경이나 공기도 완전히 달라진다고."
...
"하와이섬에 갔을 때, 재미있는 호텔이 있었어." - page 16 ~ 20
그가 권해준 호텔은 바로 '호텔 피베리'라는 호텔보다는 B&B 게스트하우스정도인 숙소였습니다.
이 숙소에서는 이상한 룰이 있었는데 바로
그 호텔에 손님이 묵을 수 있는 건 단 한 번뿐.
재방문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하여 기자키는 호텔 피베리에 가게 됩니다.
이곳에 묵고 있는 여행자는 기자키를 포함해 다섯 명.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온 기자키는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어봅니다.
풀장에서 헤엄치던 아오야기씨가 그에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는데...
"앞으로 3개월 있을 건가?"
"아, 그럴 예정인데, 너는?"
그는 턱 주변에 손을 갖다 대고 숨을 뱉어내듯 웃었다.
"나는..., 앞으로 1개월 정도...?"
...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이쪽을 보고 웃었다.
"기대해도 좋아. 곧 재미있는 걸 보게 될 테니까."
"뭐라고?" - page 41
안주인이 차려내는 음식도 맛있고 그렇에 안온한 평화가 이어지던 어느 날.
"어제, 가모우 씨가 죽었어요. 풀장에서..."
"네에?"
놀란 나에게 가즈미 씨가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그가 적어준 긴급연락처로 전화를 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받았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모우라고 하는 사람은 가짜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냈던 거예요."
나는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방안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알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 page 109
그리고 이틀 후 또 한 명의 투숙객이었던 아오야기가 바이크 사고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게 됩니다.
정말 사고일까? 한발 양보해서 가모우는 사고일지 모른다. 그런데 아오야기는? - page 149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엔 불안한 공기가 휘몰아치고...
혼란 속 과연 이 호텔에서 일어난 일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들 모두는 피베리와도 닮아있었습니다.
"그런데, 피베리는 말이에요."
그녀가 꺼낸 피베리는 일반 커피보다 알이 작았다. 가즈미씨가 그것을 내 손 위에 올렸다. 자세히 보니, 피베리는 다른 커피콩과 다르게 또르륵 말린 듯 둥근 형상을 하고 있었다.
"둥그렇네요."
"맞아요. 피베리는 열매 속껍질 안 그 방에 한 알밖에 없어요. 그래서 희소성이 있는 거예요."
즉, 보통 열매라면 두 알을 수확할 수 있는데, 피베리는 한 알밖에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비쌀 만하군.
그녀는 내 손에서 커피콩을 집어 올렸다.
"왠지 불쌍해 보이기도 해요. 다른 커피는 둘이서 하나가 되는데, 이 아이는 외롭게 혼자야." - page 101
한 개인으로서 여행지의 같은 호텔에서 묵는 가벼운 관계로 결국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하고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외로이 홀로 머무르는 모습이 이들뿐 아니라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서 씁쓸함이 남았었습니다.
피베리. 열매 안에 쓸쓸하게 혼자 잠들어 있는 희귀한 콩.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름은 이 호텔에 너무도 잘 어울렸다. 옆으로 긴 호텔 건물은 하나의 가지이고, 방은 열매 안의 작은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 홀로 외로이 잠들어 있었다.
가즈미 씨와 나는 잠깐씩 서로를 감싸주기도 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마음이 녹아 섞이는 일은 없었다. 섞이는 것은 몸뿐이었다. - page 228
그동안 생각해왔던 '하와이'라는 여행지와는 사뭇 달랐던 풍경.
피베리 커피 맛.
긴 여운이 남았던 이들의 이야기.
이 모든 것이 은은하면서도 오랫동안 제 주변을 머물고 있었습니다.
왜 이 책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고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