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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장석주 지음 / 마음서재 / 2018년 3월
평점 :
우연히 읽을 책들을 검색하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풍경, 시간, 당신에 관하여...
관조와 사유로 빚어낸 장석주 산문의 절정
그의 문장은 입안에 오래도록 머금고 꼭꼭 씹어 먹고 싶다. 한 단어, 한 문장 그냥 쓰인 것이 없다.원숙한 감성과 직관, 그리고 통찰이 사금처럼 반짝이는 문장이라니!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인문학 저술가인 장석주 작가가 한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 <책 소개글> 중
사실 '장석주' 작가의 작품을 접해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산문집을 계기로 인연의 끈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사실 에세이만큼이나 산문집을 좋아합니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 속에 빠져들어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그래서 스릴있고 재미있다면 에세이나 산문은 저자와 왠지 소통을 하며 서로의 공감을 이어가는 느낌이기에 종종 읽곤 합니다.
이번에 만난 이 책 역시도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저자가 전하는 한 단어, 한 문장이 가슴 속 아련하게 새겨지곤 하였습니다.
풍경,
시간,
당신에 관하여
떠남과 여행, 그리고 죽음......
떠난다는 것은 죽음이 그렇듯이 하나의 불가피한 소명인 듯 보여요. 여행자는 새로운 고독을 애써 겪으려는 자인 것이지요. 아무도 우리의 등짝을 떠밀지 않았지만 우리는 떠나려고 공항에 나왔어요. "우리는 그토록 맹목적으로, 내가 질겁했던 그 막막한 부재의 공간으로 달려든다." 우리는 늘 먼 곳을 향해 떠나는데, 그 가장 먼 도착지는 바로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은 늘 그토록 먼 것이지요. - page 27
나에게로 오는 길이 그토록 멀고도 험할 줄이야......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방황을 하는 것일까......
사랑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오랜 여운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첫'이 될 수 없습니다만, 그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 그것은 영원한 목마름이 되어서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필연이 될 테니까요. 나는 겨우라는 부사에 기대어 날마다 사과 한 알씩을 먹으며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하나의 성냥개비가 칙, 하고 불꽃을 일으켰다가 꺼지는 찰나의 사건이지요. 내가 '당신의 첫'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첫'은 저 오클랜드 서쪽 바다의 일렁이는 너울같이 내게 연이어 다가오는 첫사랑입니다. 당신이 첫사랑이 아니라면 옆에 있는데도 이토록 당신을 그리워할까요? 당신은 옆에 있지만 멀리 있어요. 당신은 찰나이면서 그 찰나가 품은 영원입니다. - page 81
서로를 그리워하며 애타게 부르는 이 시각, 찰나.
이 찰나에 잠시 멈춰 서서 나 역시도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내게서 부족한, 마음 속으로만 외치는 '사랑합니다'란 한 마디.
그 한 마디를 할 수 있게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당신이 언제 어디에 있든 사랑한다고 말하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사랑은 '사랑한다'는 말 속에서 번성합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더는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이미 식은 건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외로운 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주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지금 당신이 고독하더라도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고독을 감당하는 존재들이지요. "고독은 하늘과 땅의 공이며, 고독 안에서 흔들리고 살아 숨 쉬는 사람의 공이다." 우리는 공의 존재들인 것입니다. 일찍이 훌륭한 선사는, 참된 비어 있음은 형태를 가진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어요. 우리는 공의 존재로 서로를 연민하면서 사랑을 나눕니다. 당신의 오른쪽은 내 왼쪽이지요. 오클랜드 거리를 나란히 걸어갈 때 당신은 늘 내 심장이 뛰는 왼쪽에서 걸으니까요. 한 침대에서 잘 때도 당신은 늘 내 왼쪽에서 잠이 듭니다. 지금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 page 119
그래서 외쳐봅니다.
'사랑합니다'
책 속의 문장 하나하나는 책장을 쉬이 넘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곱씹고 곱씹어 내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다음 장을 넘어가 또 다른 문장을 받아들이게끔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불가피한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도 끝까지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건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기에, 우리가 함께 만든 추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힘겨운 일상 속 그 빛이 되어준 이 책,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