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핑크 몬스터
김주욱 지음, 양경렬 그림 / 온하루출판사 / 2017년 8월
평점 :
가끔 '명화'를 바탕으로 '소설'이나 '영화'가 만들어지곤 합니다.
그러면 내가 느꼈던 감정과는 또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기에 또 한번의 명화를 보는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핑크몬스터』
알고보니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핑크몬스터'는 말 그대로 '보고, 읽는 소설'이다. 또는 '읽고, 보는 소설'이다. - 임대식 (미술비평, 큐레이터)
그림과 소설의 만남.
그림에 대해, 소설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이끌어줄 이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이 책 속엔 일곱 개의 단편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중 여섯 개의 단편은 미래의 피카소 '양경렬'씨가 추구해온 테마를 소설로 해석한 작품이고 나머니 한 개의 단편은 '양경렬'씨가 소설을 읽고 그림으로 반사시킨 작품이었습니다.
각각의 단편은 주인공 '히트'로 이어져 갔고 그 속엔 인간 내면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왕관을 쓴 사람들 / 왕관을 쓰고 달리는 기분>이 인상깊은 소설이었습니다.
'오늘의 외침은 표현의 자유 쟁취. 뜻있는 사람들은 12시 반 세종문화회관 분수대에 모여서 달리자!' - page 131
광장을 질주하며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을 그린 이 작품.
유독 '히트'의 '금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히트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장식장에서 금관을 꺼냈다. 거울 앞에서 불꽃무늬가 화려한 금관을 써보았다. 운동복과 금관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금관만 보면 세계를 정복한 제국의 왕자 같았다. - page 131
대열의 선두엔 금관을 쓴 히트가 달렸다. 앞서 뛰던 몇몇 사람들이 가방에서 피켓을 꺼내서 달리는 사람들에게 건넸다.
...
피켓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 . 출판의 자유와 집회 .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쓰여 있었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뛰기 시작했다. 히트는 피켓을 한 장 받아서 목에 둘렀다. 금관과 구호가 적힌 빨간 천, 그는 적진을 뚫고 달려가는 왕자 같았다. 금관이 기울어질 때마다 거무줄을 달겨서 바로 잡으면서 달렸다. - page 135
이 금관에 대한 의미......
아마도 화려함과 우월함을 상징하며 나중에 찌그러지는 금관은 그에 대한 허무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손에 든 화면에 빠져든 사람들은 프레임을 통해 어디엔가 접속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몸이 이동하는 것과 동시에 정신도 이동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이동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정신도 매순간 어디론가 이동해야 하는 듯했다. 손에 들고 다니는 화면은 의식이 질주할 수 있는 공간 같았다. 그동안 자신은 거리로 뛰쳐나와 달렸지만 사람들은 항상 화면을 보며 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금관을 벗어 화단에 내려놓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건물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화단에 박힌 담배꽁초를 수거하다가 금관을 발견했다. 아주머니는 금관을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밟아 납작하게 찌그러트린 다음 쓰레기 봉지에 버렸다. - page 150 ~ 151
그리고 이 소설과 요즘의 우리의 시위하는 이들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시위를 하는 목적을 정확히 알고 하는것인지, 아니면 그저 어딘가 접속되어 그에 따라 다니는 것은 아닌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다른 이에게까지 피해를 주면서 하는 행위가 올바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사실 이 책에 그려진 미술 작품에 대해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추상적이면서도 모호한 그림.
작품의 제목과의 연관성도 잘 찾아내질 못한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나온 소설을 바탕으로 다시 작품을 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화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결코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반사적 선택 / 히트의 차가운 시선>에서 히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또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위아래가 똑같은 게 예술인데요. 어느 쪽을 먼저 그렸나요?"
...
"아마도...... 이쪽인 것 같습니다."
"아, 그러니까 이쪽을 먼저 그리고 똑같이 복사한 거구나."
"복사가 아니고 반사입니다."
"거울의 의미인가요?"
"거울의 반사는 아니고요. 시선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울처럼 반대로 왜곡되는 시선이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시각의 반사이지 왜곡되어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page 189 ~ 190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내 몸이, 내가 바라본 사물이, 생각한 형태나 유형 이외의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제 그림 속 이미지와 사물을 비교해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보는 것이 전부인가? 착각한 것은 아닌가?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국,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고민이 창작 에너지로 이어졌습니다." - page 210
우리가 살아오면서 바라보는 것들.
이 것들은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소설에서 히트는 대상을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을 통해 초상화 같은 자화상을 완성한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 거울 속에 비친 나를 그리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 캔버스에 그려진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것이다. 이는 대상을 바라보는 세 개의 다른 시선이기도 하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이 모두 사실인가에 대한 의심의 산물이다. 그 의심에 누가 답할 수 있을 것일까. - page 220
책을 읽고나니 과연 내가 바라보는 것들이 모두 사실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화려함 뒤에 가려진 우리의 본모습.
이 모든 시선들을 한꺼번에 감당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벅찼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에 읽고 끝내기 보다는 두고 두고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래야 소설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화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저자인 제가 받아들이고 이야기하는 바를 결합하여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