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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난감, 꼰대 아버지와 지구 한 바퀴
정재인.정준일 지음 / 북레시피 / 2017년 1월
평점 :
한동안은 아들과 엄마의 여행기에 흠뻑 빠져있었습니다.
무뚝뚝할 것만 같은 아들은 엄마를 챙기기에 급급했고 엄마 역시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와 엄마의 관계를 생각하게끔 하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와 여행을 꼭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게 되었고 엄마와의 여행 대신 예쁜 손녀를 선사해 드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엄마와 단 둘의 추억은 없는데......
이렇게 자녀와 부모의 여행기에 흠뻑 빠져있을 때 쯤 이 책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지구상에서 가장 어색하다는 '부자사이'.
그들이 이야기가 이 책에 이야기 되었다고 하니 눈길이 갔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아들'의 벽이 컸던 것일까......
저 역시도 아버지와의 보이지 않는 벽이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였습니다.
이들의 여행은 우선 아버지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들, 아버지 회사 그만두고 세계일주 해보려고 하는데 아들도 전역에 맞추어 함께 가줄 수 있니?" - page 4
모든 자식들의 반응일 듯 합니다.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정년이 4년이나 남았는데 무슨 퇴직이세요?" -page 4
뜬금없는 아버지의 제안.
하지만 우리 세대의 아버지는 조금 고집스러움이 없지않게 있기에 그의 결졍에 따르기로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버지와 아들의 세계일주.
그도 아들인지라 우리와 같은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동안 못했던 효도 한번 몰아서 해보자.
좋든 싫든 날 길러주신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다. - page 6
그렇게 시작된 여행.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서로 자신이 손을 내민다는 생각에서일까.
이젠 제가 먼저 손 내밀겠습니다.
아버지의 땀과 인생에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 - page 19
하지만 첫 시작은 아들의 배려로 시작되는 줄 알았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서로에 대한 배려로 가득찼기에 이 여행이 행복했었다는 결론이 이어지고 그들의 글 속에 '행복'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인상깊었습니다.
아...... 그래요.
제 몸에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과
당신의 아들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 page 31
솔직히 저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항상 엄격했었고 내가 원하던 것은 무조건 반대하셨던 아버지.
하지만 결혼할 무렵에 본 아버지의 모습은 마냥 가냘프고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제 눈치를 살피시는 모습과 더불어 보인 아버지의 뒷모습.
아직까지도 마음에 선하게 남아서 아려오곤 합니다.
하지만 어릴 적엔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원망했기에 그의 이야기만으로 내 자신이 조금은 초라했습니다.
굳이 그런 이유로 아버지를 원망해야 했었는지......
그들의 여행은 생각외로 호전적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상식으론 아버지와 매번 의견 충돌이 있어야 했고 '꼰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었어야 하는데 너무나도 알콩달콩한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 괘씸하기도,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못한 효도를 이 책을 통해서 본 것 때문은 아닌지......
저에겐 그들의 대화 중 이 말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버지, 우리 사원에 있는 금 좀 떼갈까요?" 했더니 아버지 왈, "저건 금이 아니라, 여기 사람들의 희망이다. 못된 생각 하지 마라."
그래, 희망을 뗄 수는 없지.
아버지와 내가 붙인 희망도 고이고이 잘 붙어 있기를.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땐
그 위에 더 많은 희망들이 덧붙여지기를. - page 107 ~ 108
나의 아버지와도 같았습니다.
다른 이들에 배려하는 것 같아도 결국 자기 자식들에게 더 큰 '희망'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부모마음.
괜스레 마음 한 편이 찡 하였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아버지와의 여행 에세이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메시지도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준일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앞으론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하게 살아라. - page 260
'꼰대'아버지라 칭하기엔 조금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가 과연 '꼰대'였을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지, 실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곤 있었는지......
괜스레 나의 아버지의 마음이 궁금했습니다.
항상 나에게 권위적으로 대하시는 그 분.
그래서 다가가기 두려운 그 분.
하지만 지금은 야위어져 있고 다른 이들의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그 분.
책을 읽고 용기내어 아버지께 말을 건네봅니다.
"아빠!"
이 말 한 마디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단순한 한 단어가 내포한 그 의미.
아버지는 알았을까?!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심한 말투를 전합니다.
"무슨 일 있나?"
이 말 한마디에 눈물이 나왔습니다.
왜 나는 그토록 아버지께 말을 건네지 못했을까......
그들의 여행서를 읽고나니 저 역시도 아버지와 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에겐 가족이 있기에 그저 마음만으로, 안부 인사만으로 아버지께 전해봅니다.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