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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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으로 왕정 체제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이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은 시민사회를 싹트게 했다.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이런 프랑스 혁명에 대한 나의 생각이 너무 낭만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
영국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가 앉아 있었고, 프랑스의 왕좌에는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왕비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빵과 생선을 쟁여 놓고 사는 두 나라 모두의 귀족들은 당시의 전반적 상황이 영원하리라 확신했다. ( p. 13, 첫 문장)'

런던 텔슨 은행 직원 자비스 로리는 파리로 가는 중이다. 에브레몽드 가문에 의해 억울하게 18년 동안 옥살이했던 프랑스 의사 마네뜨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마네뜨 박사의 외동딸 루시와 함께 했는데, 로리는 마네뜨가 감옥에 있는 동안 루시를 갓난아기일 때부터 돌봤다.

이들은 파리에서 석방된 마네뜨 박사를 돌보고 있던 드파르주 부부를 찾아간다. 런던으로 돌아온 마네뜨 박사는 딸과 행복하게 지내던 중 스파이 혐의로 재판 중인 찰스 다네이의 증인으로 나선다. 다네이는 무혐의 풀려나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루시와 결혼한다.

파리에서는 대혁명이 시작된다. 드파르주 부부는 혁명의 주도세력으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마네뜨 박사가 갇혀있던 방에서 드파르두 부인 가족이 에브레몽드 가문에 의해 얼마나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는지를 기록한 쪽지를 발견한다.

에브레몽드 가문의 다네이는 귀족에 부역했다는 죄로 위험에 빠진 가문의 집사 가벨을 구하기 위해 성난 파도처럼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이는 광기로 가득 찬 파리로 다시 돌아온다. 루시와 마네뜨 박사도 다네이를 구하러 파리로 쫓아오고, 루시를 사랑하는 변호사 시드니 카턴도 이들을 구하려고 파리로 온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 낭만적 생각을 내려놓게 된 이유는 비판적 시각이 생겼기 때문이다. 혁명으로 권력을 쥔 민중은 단순히 귀족이거나 귀족의 일을 봐줬다는 사실만으로 이들 모두를 사형에 처한다.

'매일 자갈 깔린 거리로 사형수를 태운 호송 마차가 힘겹게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아름다운 소녀, 갈색 머리, 검은 머리, 잿빛 머리의 매력적인 부인, 젊은이, 정정한 노인, 귀족 출신, 농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기요틴에게 붉은 포도주를 부어주었다. 역겨운 감옥의 어두침침한 감방에서 햇빛 비치는 곳으로 나와 거리를 지나 기요틴의 끝없는 갈증을 채워주었다. (p. 395)'

다네이는 가문의 악행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귀족 신분을 버렸다. 드파르주 부인은 그것과 상관없이 가족의 원수인 에브레몽드 가문의 다네이는 물론 그의 가족을 몰살하려고 끝까지 쫓아가 복수를 시도하지만 그녀의 과거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는다. 권력이 귀족에서 민중으로 옮겨가는 식의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회가 변할까. 그런 의구심이 혁명에 대한 나의 낭만을 지워버렸다.

그렇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찰스 디킨스는 사랑을 말하는듯싶다. 사랑에는 선택이 따른다. 사랑이 공허한 이유는 선택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위한 가장 숭고한 선택은 희생이다. 예수님이 인류를 사랑해 십자가를 선택하는 희생으로 인류를 구했듯이 말이다.

로마시대 유대인들은 혁명가 예수를 기다렸다. 로마를 끝장내고 핍박받던 유대인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왕인 줄 알았는데,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전파하며 사회를 변화시킬 힘으로 혁명이 아닌 사랑을 선택했다. 유대인들은 실망했고 급기야 예수를 버렸다.

다네이는 가문의 집사 가벨을 구하려고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지옥 같은 파리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시드니 카턴 역시 사랑하는 루시와 그의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선택을 했다.

역사의 흐름에 개인을 개입시키면 역사는 훨씬 복잡해진다.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억압자 속의 어떤 개인, 피억압자 속에 어떤 개인은 억압자 또는 피억압자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사정을 어쩔 수 없이 생략하고 순식간에 일괄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는 혁명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답답하더라고 유대인처럼 실망하면 안 된다. 한사람 한 사람 변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개인의 변화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고? 찰스 디킨스의 또 다른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사람들을 멀리하던 그토록 완고한 스크루지 영감의 마음도 변했는데?

어떤 선택이든 희생이 뒤따르는 사랑이 있다면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런던과 파리, 두 도시의 왕좌에 앉아있던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왕비는 자신들이 영원할 줄 알고 민중을 사랑한다고 말만 할 뿐, 선택을 뒷받침하는 어떤 희생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공허한 사랑은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랑은 사회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루시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시드니 카턴의 고백처럼 사랑은 숭고하고 영원하기까지 하다.

'"... 나는 알고 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내 이름을 딴 사내아이가 한때 나의 길이기도 했던 인생길을 훌륭히 걸어가리라는 것을. (...) 리고 들린다,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리가.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은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행위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곳보다 더없이 편안한 곳이리라." (p.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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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는 다정하게 씁니다 - 나의 안녕에 무심했던 날들에 보내는 첫 다정
김영숙 지음 / 브로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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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쇄를 찍은 것이 5월 말이었으니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다. 며칠 전 2쇄를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빠른 편이다. 무엇 때문일까?

25년 차 방송작가 김영숙은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8년째 맡고 있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될 자연인을 만나면서 작가는 지난날의 작가 자신도 만났다. 자신에게 말을 건넸고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그 이야기를 담은 책 <에필로그는 다정하게 씁니다>는 독자에게도 지난날의 독자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낯선 자신을 만나 멋쩍었지만 반가웠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도 작가처럼 독자 자신을 다정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이고. 이 책 2쇄를 빠르게 찍게 한 건 바로 과거의 나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p. 8)'
이 물음이 나를 만나는 여정의 시작이다. 나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지난날 어느 때의 나를 만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한다. 그때의 나를 발견하고는 그의 안녕을 먼저 묻게 된다.
'지난날, 나는 나의 안녕을 얼마나 물어줬던가? (p. 8)'

한쪽 구석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얼마나 외로웠지를 짐작해 본다. 그에게 다가서며 그의 편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부모님도 가족도 모두 바빴다. 물어볼 사람이 없어 혼자 결정해야 했던 시절, 대부분 결정에 아쉬움이 남아 후회하며 지냈다.

'100세가 된 노인에게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을 꼽으라고 하니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라고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p. 35)'
힘을 좀 빼고 살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어깨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가벼운 충격에도 몸이 부러졌다.

김영숙 작가는 자연인 답사를 갈때면 산에 혼자 살면 좋은 이유가 무엇인지 묻곤 했다.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p. 169)'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어제 선배와 오랜만에 통화하며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 때문에 돈을 벌지?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데 가만 따져보면 돈은 벌었는데 더 벌고 싶은 욕심에 의외로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죽는다.

선배와 나는 그나마 우리는 다행이라며 서로 응원했다. 퇴직 후 선배는 AI 관련 하고 싶은 일은 하며 즐겁게 지낸다. SNS에 하루 몇 개씩 글을 올리고 일주일에 한 번 강의도 한다. 책 읽고 사유하는 요즘 나의 일상이 나도 즐겁다.

작가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가?'보다는 늘 '적절한 선택인가?'를 먼저 따졌다. 이제 작가는 이전과 다른 선택,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걸 하기로 한다. 통합심리치료를 공부할 목적으로 상담대학원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선물받는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는 주체는 자신뿐이다." (p. 201)'

지난날의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처럼 하고 싶은 걸 하는 이야기로 지난날의 나를 다시 쓰고 싶었다. 그래서 해야 할 질문은? 나를 만나는 여정의 마지막 질문...

'"그렇게 생각해서 나는 과연 행복한가?" (p. 207)'

'그러니 이제 마음이 힘든 일은 그만하고 그저 단순하게 딱 한 가지만 묻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가? (p. 208)'

책을 읽고 감상을 쓰면서 가끔 지난날의 나를 소환한다. 소환된 나는 아쉬움뿐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때의 나를 글로 적으면 행복한 나로 변한다. 지금 생각하는 지난날의 나는 모든 장애물을 지나온 나이기 때문이다. 행복한지만 묻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삶의 에필로그, 맺음을 다정하게 써나가고 있다. 김영숙 작가처럼...

'나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지 글을 쓸수록 감탄했다. (pp. 231,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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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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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다툰 다음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후회하곤 한다. 속마음과 다른 말이나 행동이 나왔음을 뜻하는 속말이다. 흔히 일본 문화에 속마음을 이르는 혼네(本音), 드러내는 마음인 다테마에(建前), 두 가지 마음이 있다고들 한다. 일본 사람뿐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싶다. 갈등은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은 주인공인 '나' 그리고 '선생님', 선생님의 친구 'K'를 비롯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마음 변화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20대 초반으로 도쿄에서 공부하는 학생인 '나'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도쿄에서 가까운 가마쿠라 해수욕장에서였다. 선생님은 서양인과 함께 있었다. 선생님에게 끌린 나는 도쿄로 돌아와서도 선생님의 집을 자주 방문하며 선생님의 아내와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도쿄에서의 선생님은 해수욕장 만난 선생님의 첫인상과 뭔가 다르다. 일도 하지 않고 어느 누구와도 만나지 않으며 세상을 등지고 살아갔다. 아내의 따르면 대학 졸업하기 전 친한 친구가 자살을 했는데 그때부터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왜 선생님의 친구가 왜 자살했는지 아내는 모르는 눈치다.

'"미움을 받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럴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이는 세상을 싫어해요. 세상이라기보다 인간을 싫어하죠. 그러니 그 인간 중 하나인 나도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p. 55)'

선생님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듯하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대학 졸업 후 고향을 찾은 나는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보살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두툼한 편지를 받는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눈앞에 있지만 형에게 아버지를 부탁하고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도쿄로 향한다. 열차 안에서 선생님이 보낸 편지를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 틀에 찍어낸 듯한 악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평소엔 다 선한 사람들이에요. 적어도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갑자기 악인으로 돌변하니까 무서운 겁니다. 그러니 방심하면 안 돼요." (p. 86)'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편지를 읽어나가며 선생님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 같은 말을 했고 자신을 포함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됐는지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선생님은 부모님이 병들어 죽고 난 후 작은아버지를 의지하면 살았다. 하지만 믿었던 작은아버지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선생님을 속인다. 이 일을 계기로 선생님은 절대 남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다.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나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하숙집 아주머니와 장차 아내가 될 아주머니의 딸, 아가씨까지도 불순한 의도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친한 친구 'K'가 선생님이 사랑하는 아가씨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털어놓자 불안해진 선생님은 아주머니에게 따님을 달라고 부탁한다. 이 사실을 안 K는 자살한다. 선생님은 K의 죽음을 통해 자신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진다. K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신이 작은아버지와 똑같은 인간임을 깨닫는다. 마침내 선생님은 K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속죄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알 수 없는 마음에 휘둘리는 삶을 산다. 아내와 다툼도 속마음과 다른 어떤 마음 때문에 생긴 일이다. 나는 내 마음을 믿을 수 없다. 그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나타난, 마음이 품고 있는 감정들, 망설임, 질투, 열등감, 고독, 동정, 연민, 후회, 죄책감 같은... 이 모든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돌변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이야기했듯이 세상엔 틀에 찍어낸 악인도 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란 동요가 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여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겨울에 마음은 하얗게 변할 것이다. 왜? 산도 들도 모두 하얀 눈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주변에 의해 변한다. 그러니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마음만큼이나 나 자신의 마음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 속마음과 드러내는 마음,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마음은 심하게 갈등할 것이고. 안타까운 건 그 마음조차 다른 사람에겐 알려도 숨겨야 할 딱 한사람 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외부 어디서 비롯됐는지, 속마음인지 드러내는 마음인지...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

'나는 나의 과거를, 선악을 불문하고 타인에게 참고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내만은 예외로 해주십시오. 아내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싶습니다.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 간직한 기억을, 되도록 순백의 상태로 보존해 주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죽은 후에도 아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에게만 털어놓은 나의 비밀을, 가슴 깊이 묻어두기 바랍니다. (p.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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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네 가족 여행은 이렇게 - 2025년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
이선영 지음 / 라플란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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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네 가족 모두 심심해진 어느 날, 가족 여행을 가기로 한다. 항상 그렇듯 완벽하게 계획하고 준비하지만, 늦잠 자고 배를 놓치고... 첫날부터 계획은 어그러진다.

아이디어를 낸 끝에 풍선을 타고 가기로 한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어느새 그 동네와 친해진다. 가족이 함께 돌아다니기도 하고, 각자 놀아보기도 한다. 드디어 집에 가는 날...

"안녕 우리 집! 잘 있었어?"
"집에 오는 여행이 제일 좋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야 진정한 여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다. 그냥 방랑일 뿐... 그러니깐 결국 돌아올 곳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여행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셈이다.

내게 여행은 가기 전에 귀찮다가, 가면 세상 즐겁다. 그리고 밤마다 집으로 돌아갈 날을 꼽는다. 즐길 날이 며칠 안 남아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론 집이 그리워서다.

어릴 때 우리 아이들도 여행 가면 상상하기를 즐겼을까? 딸아이는 먹는 것에만 관심 많아서... ㅋㅋ 가끔 여행 갔던 일은 물어보면 기억해 줬으면 했던 건 기억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 털어놓는다. 실망한 아내가 못내 아쉬워 한마디 한다.
"아니 그때.... 그걸 어떻게 기억 못 할 수가 있어? 전혀 기억이 안 나? 잘 생각해 봐~"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같이 동행한 친구 찬스로 출판사 대표이신 이선영 작가님이 직접 사인(글씨체에도 베베네 가족 느낌이...)해주신 그림책 <베베네 가족 여행은 이렇게>를 선물받았다.

미야화구와 365북스의 화구 지원으로 수채화로 작업한 그림책이라는 소개 글을 읽었다. 수채화만이 주는 감성이 아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 아이들이 그림 속에서 맘껏 상상을 펼치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그렇게 간절한 이유는 일찍이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그렸던 상상이 제한된 디스토피아가 그 아이들이 커서 지내게 될 사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릴 때부터 묻자마자 획일적인 답을 알려주는 AI와 각종 디지털 기기의 발달이 주는 편함에 둘러싸여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기도 하고.

설마 그림책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이선영 작가님 같은 분들이 여럿 있을 테니까... 그런 걱정은 제발 기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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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 전장의 눈물, 운명의 날 역사 딥 다이브 1
김휘찬 지음 / 한언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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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녀를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들은 미소를 지으면 악수를 하고, 부자들은 생필품의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녀의 무덤을 찾아간다.'
- 세르비아 속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또 전쟁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의 참혹함은 인류가 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신은 살아있나...' 그리고 인간이란 부조리하고 허무한 존재라는 결론에도 이르게 됐다.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쟁사를 전해주는 김휘찬의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 전장의 눈물, 운명의 날>은 제2차 세계대전을 낳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전 세계로 확산 전개되는 과정을 각국의 승패와 운명을 갈라놓은 전장의 하이라이트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작전에는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타협과 갈등은 물론, 독선, 오해에서 비롯된 판단 오류 등 다양한 뒷이야기가 숨어있다.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그 전날 독일 친위대 소속 특수부대가 폴란드 군복을 입고 위장해 가짜 선전포고문을 낭독한 일이 빌미가 됐다.

사막의 여우 롬멜은 계속되는 무의미한 희생을 막기 위해 히틀러의 명령은 무시하고 후퇴 결정을 했다. 북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결행했던 공격 역시 리비아를 지키라는 정식 임무를 어긴 롬멜의 독단이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독소 불가침 조약을 일방적 파기하고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상 작전인 소련 침공, 바르바로사 전쟁을 시작했다. 4년간 벌어질 이 전쟁을 절멸 전쟁이라는 일컫는 이유는 게르만 민족의 새로운 생활권과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그곳에 사는 열등한 슬라브 민족을 절멸한다는 프로파간다 때문이다.

'<전쟁론>의 저자이자 군사학자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Carl von Clausewitz 가 말한 것처럼, 전쟁은 결국 정치의 연속이자 상대 방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무력 행위입니다. 따라서 '의지의 강요', 그것이 곧 전쟁의 목표가 되겠죠. (p. 110)'

사상 최대의 전차전 쿠르스크 전투에서 민슈타인은 예비로 남겨둔 제2친위기갑군단을 투입해 소련군을 돌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기갑군단은 히틀러에게 이탈리아 방위 업무를 부여받고 전선에서 이탈했다. 만슈타인은 조금만 더 공격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건의했으나 히틀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히틀러의 생일 바로 다음 날인 1945년 4월 20일 소련군 포병부대는 베를린 시내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위중한데도 편집증적이고 신경질적인 히틀러는 여전히 혼자 망상에 사로잡혀있었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부대들을 지도 위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며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소련군이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 계속해서 전쟁을 지휘하던 그가, 처음으로 패배를 인정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습니다. "우린 전쟁에서 진 거야!" (p. 252)'

오키나와에서 일본군은 '옥처럼 아름답게 깨져 흩어진다'는 뜻으로, 최후의 한 명까지 후퇴하지 않고 죽음으로 싸운다는 의미의 '옥쇄'명령을 민간인에게도 강요했다. 이런 격렬한 저항은 미군에게 '작은 섬에서도 이 모양인데, 본토에 상륙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걱정을 만들어주었다. 그런 생각은 '승리가 확실한 가운데 병사들을 무의미하게 희생시킬 필요가 있을까'라는 논리로 이어졌다. 격렬한 저항이 없었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 보이'와 '팻맨'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 레프 트로츠키(Lev Trotsky) (p. 279)'

지금도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의 사람들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그런 처지에 있다.

정권 연장을 위해 정치인은 전쟁을 불사한다. 거대 방산업체는 있는 힘껏 전쟁을 부추긴다. 힘없는 국민들의 아이들은 전쟁에 동원돼 죽어나간다.

제2차 세계대전처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언젠간 끝날 것이다. 정치인들이 만나 악수하며 협정을 맺을 것이다. 전쟁 복구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것이고, 자식, 친구, 이웃을 잃은 전쟁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은 상처가 너무 쓰라린 나머지 신을 원망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고 서로 불신하게 될 것이다.

전쟁으로부터 무언가 배웠어야 함에도 인간은 그러기보다 또 전쟁을 시작하고 무기를 대고 자녀를 제공한다. 악수하고 물가는 올라가고 자녀의 무덤을 찾아 슬퍼할 것이고... 신에게 화풀이하고 세상이 부조리하다 원망하는 짓을 반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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