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젓한 사람들 -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김지수 지음 / 양양하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놈 참 의젓하게 생겼다" "의젓한 사람이 돼야지" 어릴 때 제법 듣던 말이다. 그때 날 보던 사람들은 내가 의젓하게 클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의젓하다'란 말을 듣기 어렵다. 사라진 말인가 싶기도 하다.


언어로 세상을 잇는 인터뷰어 김지수 기자가 '의젓한 선물'을 독자들에게 선사했다. 인터뷰집 <의젓한 사람들>에는 의젓한 마음을 가진 사람, 의젓한 인생을 산 사람 각각 7명씩, 14명의 의젓한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있다.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사람은 기독교 영성가 김기석 선생이었다. '타인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보라'는 그의 말은 이 인터뷰집 전체를 엮는 언어의 금실이다. (p 12)'

의젓함이란 키워드로 열넷 인생을 묶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 의젓한 사람들은 '다정함'에서 더 나아가 책임을 피하지 않는 의지적 자아로 이동한 삶을 살아냈다.


순례자 김기석은 '타자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보라는 하나님의 권유를 들었다. 그는 하나의 존재가 아닌 '함께의 존재'로 의젓한 삶을 살았다. 가수 양희은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툭툭 던지며 힘 빼고 노래 부르듯 삶에서도 그렇게 힘을 뺐다. 작곡가 진은숙은 물 흐르듯 흘러가며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다.

매일 포기하고 싶었던 배우 박정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조금 강해 버티며 살고 있다. 기업가 플뢰르 펠르랭에게 의젓함은 능동적으로 삶에 뛰어드는 것이고, 내과 의사 가마타 미노루에게는 스스로 할 일을 하는 것이 의젓함이었다.

국민 시인 나태주의 의젓함 비결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 삶이었다.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는 완벽함보다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선택했고, 작가 마크 맨슨은 중요하지 않은 것을 향해 '꺼져'라고 외치며 신경 끄기에 집중했다.

의사결정 전문가 애니 듀크는 그만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반면, 경로로 바꾸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목수 마크 엘리슨에게 완벽함은 타협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에게 의젓한 삶이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런 좋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고, 내 인생을 제일 잘 아는 내가, 내 부고를 쓸 수 있는 인생이 부고 전문기자 제임스 R. 해거티가 말하는 의젓함이다.


열네 가지 다양한 의젓함을 읽었다. 각자 살아낸 삶으로 의젓함을 보여준 열네 분의 의젓한 삶을 보며 자연스레 떠오른 속말은 '나는 의젓한가...' 어렸을 때 내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을까?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일찌감치 떠난 어머니, 그리고 몇 해 전 백세를 사신 아버지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얄팍한 내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책임의 가볍고 무거운 정도를 따져 조금이라도 무겁다 싶으면 수차례 외면했다. 부끄럽다 느꼈어야 했지만 오히려 뻔뻔함을 내세웠다. 열네 분의 삶처럼 당당하게 의젓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삶을 바라보는 철학의 부재, 빈 수레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는 허탈함을 살아온 인생보다 남은 인생이 훨씬 적을 때에야 비로소 느꼈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제라도 빈 수레를 보았으니까. 얼마나 채울 수 있을까? 수례를 끌 때 약간은 벅차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좋겠다. 그래서 아내를 비롯한 가족에게라도 의젓함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님의 응원에 힘입어서...


'잃은 만큼의 아들딸을 또 낳았다는 건, 그 상처에 머물지 않고 삶을 이어갔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게 욥의 아름다움입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이 닥쳐도 삶을 계속하는 것, 아니 새롭게 시작하는 것, 초연하게.
뭉클하네요.
그게 인간의 위대함입니다. (p. 43, 순례자 김기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꿰뚫는 기후의 역사 - 1만 1700년 기후 변화의 방대한 역사를 단숨에 꿰뚫다
프란츠 마울스하겐 지음, 김태수 옮김 / 빅퀘스천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년 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토론회에서 RE100 대응을 묻는 한 후보의 질문에 20대 대통령이 된 후보가 "네? RE100이 뭐죠?"라고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전 국민이 RE100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게 됐다.

알다시피 RE100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전력 사용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바꾸겠다는 국제 캠페인이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만 혼자 재생에너지 비율이 한 자릿수(2023년 기준 9%)다.


'20세기 기후 변화의 역사는 기후가 전문적인 과학의 문제에서 보편적인 정치적 문제로 발전해나간 긴 과정을 추적합니다. (p. 6)'

기후 역사학자 프란츠 마울스하겐의 <꿰뚫는 기후의 역사>는 기후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다. 약 1만 2000년 홀로세 시기에 기후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변했고, 그 기후 변화로 사회, 문화, 경제 그리고 정치 체제까지 어떻게 얽히고설켰는지를 이야기한다.

'농업의 도입'은 기후 역사에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자연에 의해서도 기후가 변화했지만, 산업화 이후 온실효과로 인류는 기후 변화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농업이 산업화되면서 토지 이용이 늘어남에 따라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도 증가했다. 가축 사육 그리고 내연기관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화석 연료 연소가 증가한 것도 기후변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가별 산업화의 불균형, 원자력 에너지의 군사 전략적 이해관계는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해 에너지 공급 방식을 화석 연료 연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 세계의 노력에 방해물이다.

'이 때문에 에너지 전환의 역사를 연구한 몇몇 역사학자들은 화석 연료 체제를 계획적으로, 그리고 정치적, 인위적으로 이끌면서 전환하는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p. 253)'


국제사회도 어려워하는 기후 문제인데 개인에게 어떤 해결 방안 있을까 싶지만, 아무튼 이에 대해 카톡에서 공개토론을 했다. 그 가운데 탄소중립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에코 활동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텀블러, 장바구니, 손수건 사용, 배달 줄이기, 걷기, 천연세제와 화장품 만들기, 영수증 안 받기 등등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나 한 명이 그런 활동을 한들 무엇이 바뀔까라는 생각에 무력감이 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지만, 누군가 안 한다고 비난하지 말자는 답글이 달렸다. 나부터 변하자는 마음으로 하자고...


RE100도 모르는 정권하에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RE100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큰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안달 났다. 구글, 애플 등 RE100을 이미 달성한 글로벌 기업들이 협력사에 강하게 RE100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전 세계의 기업들이 나섰다. 각국 정부도 지구 온난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기후 협정을 맺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나 한 명이 나선다고 무엇이 바뀔까라는 심보로, 할 수 있는데도 RE100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지도 않을뿐더러 기후 위기 노력을 외면하는 정부가 있다면, 우리 인류가 초래한 지구온난화는 계속될 것이고 지구에서 더 이상 우리 인류를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국제적인 협력과 인류 공동체라는 인식만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인데 나 하나쯤이란 생각에 모른체한다면 그런 행동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다행이긴 하다. RE100에서 거꾸로 가는 정부가 끝나서. 국제적 협력의 대열에 합류하게 됐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 - 우리는 어떻게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는가
정회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젊은 정치인이 지난달 27일 대선후보 3차 토론회에 나와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을 묘사한 혐오 발언을 했다. 거센 비판이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짐작하고 했을까? 그렇다면 무슨 목적으로 비난을 무릅써가며 그런 낯 뜨거운 말은 했을까? 생방송 중에 얼굴을 (일부러) 찡그려가며 말이다.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연구하는 이 책의 저자 정희옥의 말이 그 대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로 이득 보는 자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주목하다 보면, 그 이면에 차별로 인해 이득을 보는 구조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놓치곤 한다. (p. 7)'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권력 또는 엘리트들이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써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역사를 다른 나라 사례와 우리나라 사례를 짝지어 놓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다.


차별을 견디며 조선족 여성들이 수행한 돌봄노동은 우리나라 여성이 더 나은 노동시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반세기 전에는 독일에 파견된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차별 속에서 노동 강도가 센 간호사 일을 도맡아 한 결과 독일 정부는 교육비뿐만 아니라 인건비를 줄이는 이익을 챙겼다.
'파독 간호사 차별로 독일인들이 챙긴 이득을, 이제는 우리가 조선족 간병인을 차별하며 챙기고 있다. (p. 53)'

가난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하와이에서 또는 멕시코에서 차별적 환경을 극복하며 그 나라의 경제를 떠받쳤다면, 동남아시아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아래 위험을 감수하며 지금 우리 경제를 떠받친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 밥상에서 채소는 구경도 못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는 중국인을 죽이는 배화참사가, 일본에서는 수많은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하는 관동대지진 참사가 벌어졌다. 이러한 폭력으로 일본은 만주 점령의 좋은 명분을 얻었음을 물론 국가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이득을 각각 취했다.

사회정화와 질서유지라는 구실로 국가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도 있다. 형제복지원 원생들과 유럽의 집시들이 그 사람들이다. 독재정권은 자국민의 일부를 잉여로 보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림으로써 통치를 이어갔고, 유럽 사회는 집시들을 차별해 정주사회를 공고히 유지해 세금을 걷어들이고 사회를 용이하게 통제하는 이득을 챙겼다.

한국의 한센병 환자들과 미국의 에이즈 감염인들은 낯선 질병이 생겼을 때 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구실로 문제의 근원으로 낙인찍혀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천벌을 받은 사람이 돼버렸고 도덕적으로도 타락하고 문란하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소수에 대해 다수가 두려움과 분노를 품게 만들어 다수는 소수와 구별되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국가는 이를 사회 통제 메커니즘으로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여성 혐오 현상과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사이에 맞닿은 점이 있다. 경쟁에 많은 여성이 합류하는 시대가 됐다. 상대적으로 받은 피해를 보상받으려는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성을 표출하며 노골적으로 혐오한다. 남성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가부장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다. 300년 가까이 세월 동안 수십만 명의 여성이 마녀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졌다. 종교, 국가 권력 집단과 함께 권력과 부를 지켜내려고 만행을 저지른 유럽 중세 남성들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르게 여성 혐오를 조장하며 편가르기를 하는 우리나라의 한 젊은 정치인이 보인다.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인 편 가르기 행태는, 국가 권력과 사회구조가 '이득'을 위해 다수자와 소수자로 편을 가를 때 쉽게 이득을 받는 다수자 편의 일원이 되도록 이끈다. 그리고 내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무관심, 적대감, 무관용을 보이고, 그들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p. 220)'

슬프다. 어쩌면 우리나라 미래 정치를 짊어졌어야 할 정치인이, 통합을 외쳐야 할 젊은 정치인이 정치적 이득을 목적으로 혐오로 편을 가르고 여성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시하니 말이다. 대한민국 시민의 일원인 여성이 제일 먼저 외면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혐오를 원치 않는 대다수 남성들도 그에게서 얼굴을 돌릴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그 젊은 정치인을 의원직에서 제명하자는 청원인 수가 47만 명을 돌파했다. 혐오와 차별의 가해자는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 호명의 철학자 강남순 교수의 철학 에세이
강남순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예배 시간에 설교를 마친 다음, 태어나 처음 교회에 온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강단에 올랐다. 목사님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기 위함이었다. 아기를 본 순간 '아유~'라는 웃음을 품은 감탄사가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나 역시 웃는 얼굴로 옆에 앉은 아내와 주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모두들 웃음 띤 얼굴이었다. 행복해 보였다.

''행복한 사람'을 판가름하는 나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 있다. (...)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그의 얼굴에 지순하고 환한 웃음을 짓는 순간들을 일상 세계에서 가지는가. (p. 20)'


강남순 교수는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며 자기소개 시간을 가진다. 학생들의 소개가 끝나면 '강남순에 대하여 질문'하라고 하며 자신을 소개한다. 서로 질문하며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받은 질문 가운데 마음에 남는 2개의 질문이 있다며 소개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날(ideal day)은 어떤 날인가'다.

'이 질문들은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일상적 삶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만들고 싶은 미래를 생각하도록 하는 중요한 초대장 기능을 한다. (p. 230)'

이 두 질문이 강남순에게 개인적인 삶과 공적 삶을 여러 각도로 들여다보도록 하는 초대장이라면, 철학자 강남순의 철학 에세이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내게 멈췄던 사유를 이어나가도록 만드는 초대장 같은 책이었다.


왜 쓸까? 사유를 이어가 본다.
'쓰기 행위는 무엇보다도 자기 삶에 대한 방치와 무관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존재론적 몸짓'이다. (p. 26)'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책을 읽고 쓰는 행위를 할 때 내 삶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바쁘게 달려오느라 방치했던 내 삶을 살피며 과거의 나와 대화한다. 글로 옮김으로써 그 대화가 명확해지기까지 한다.

세상이 내 삶이 너무 부조리해서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순간 삶을 종료하는 자살을 선택한다. 자살하지 않고 삶을 이어갈 수는 없을까? 저자는 '시시포스적 삶'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계속 굴러떨어지는 부조리 맞서, 바위를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반복적인 삶일지라도 그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방법이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신, 하나님.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병을 낫게 해달라고, 투자할 곳을 알려달라고 기도하는 내 모습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그래서 '함께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주고받음'의 틀에서 기능하는 '교환경제의 신(economy of exchange)'만이 존재한다. 급기야 어떤 이는 그 신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고 버리기까지 했다.


'그러한 '외적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으면서 결코 오지 않는 '고도(Godot)'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삶은 '거대한 오류(great fallacy)'에 빠져 버리고 만다. 이 유한한 삶의 지독한 낭비다. (p. 253)'

아무 생각 없이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언제 올지도 전혀 모른 채 기다리는 '무사유의 삶'. 이것이 무서운 것은 '생존기계(living machine)'가 돼버려 삶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유마저 없다면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악'이기도 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곳에서 직장 생활을 마쳤다. '돈 버는 기계'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행인 건 퇴직한 다음 책을 읽게 됐고 이 책처럼 사유를 이어가며 질문하도록 도움을 준 책을 여럿 만난 것이다.

질문, 기계적 삶을 멈추게 하는 질문, 강남순 교수에게 삶을 여러 각도로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던 질문, 행복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런 질문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시포스적 삶, 즉 외부에 기대지 않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부조리를 직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아기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웃게 되는 행복할 권리를 가진 존재가 된다.

'"행복한가"라는 물음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나의 행복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의 릴레이로 이어진다. 나 외부에 있는 그 어떤 것이 나 대신 행복의 확실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이러한 물음과 마주하는 것이 때로 힘들더라도, 스스로 질문 앞으로 자신을 초대해야 하는 이유다. (p. 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엔 다른 사람 집에서 살면서 집안일을 돕는 식모살이라는 게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 고향에서도 잘 사는 집에는 어김없이 식모살이하는 누나가 있었다. 적게는 열세네 살부터 스무 살 남짓이었고 대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식모살이를 했다.

이 식모살이 누나들은 한쪽 구석에서 아기를 업고 동네 아이들이 노는 데 끼지 못한 채 그냥 쳐다만 보거나 훈수를 두곤 했다. 집안을 먹여살리려고 타지에 와서 또래 아이들이 보내는 청소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아마 그때는 가족의 삶을 짊어지느라 자신의 삶 한 부분이 통째로 날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으리라.


대학생인 스물네 살 틸다는 알코올 중독인 엄마와 동생 이다를 돌보며 함께 살아간다. 술에 취했을 때 엄마는 마치 괴물 같다. 틸다는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수영장 레인을 스물두 번씩 오가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던 어느 날, 베를린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베를린에서 펼쳐질 미래를 꿈꿔보지만 겁에 질려 창백한 얼굴을 한 이다의 모습이 떠올라 틸다는 갈등한다.

'나는 이다가 나 없이 생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봐, 무너지는 엄마에게 대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전자와는 달리 후자가 일어날 확률은 의심할 여지 없이 100퍼센트이고, 아마도 곧 일어날 것이다. (p. 182)'

자신의 진로를 찾아 하나둘 떠나는 친구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집을 떠나야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 엄마로부터 동생 이다를 보호하려면 꿈을 접어야 한다.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할까 아니면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할까.

'내가 떠나면 이다에게는 학교와 집과 엄마밖에 없다. (p. 233)' 선택의 갈림길에 선 틸다에게 옳은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어린 시절 내가 본 식모살이 누나, 남의 집 아기를 업고 있던 그 누나에게 어쩌면 업어줘야 할 친동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친동생을 업어줘야 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친동생을 포함한 가족을 위해 남의 집 아이를 업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선택은 어린 나이임을 따져보면 자신이 한 것은 아니다.

커서 생각했겠지. 가족을 위한 사랑과 책임이었다고 여겼으면 후회하지 않았을 테고 만약, 만약에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해 내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면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을 것이다.

한때는 가출한 청소년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냈었다. 바깥보다는 집이 안전하니깐. 하지만 요즘은 집보다 차라리 바깥이 더 안전한 경우가 늘고 있다. 그 청소년에게 집은 가족의 생계를 짊어질 짐조차도 되지 않으니 틸다보다 더 낫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후회나 아쉬워할 선택의 기회도 없으니 더 불행하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내가 아는 식모살이 누나도 가족을 위한 식모살이가 아니라 지긋지긋한 집이 싫어 가출한 누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건, 삶의 주도권을 쥘지 포기할지를 선택할 기회가 있다는 건,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일지라도 그나마 다행이다. 후회하게 되더라도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가 될 테니까.

'옷을 머리 위로 끌어올려 벗고 머리부터 물로 뛰어들어 깊이 잠수한다. 풀장 바닥에 앉아 물 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올려다본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버둥대는 아이들의 다리, 어느 정도 균형을 잡고 흔드는 노인들의 다리, 잠수하는 아이들의 몸, 풀장 가장자리에 머무는 여러 다리. 이런저런 동작들이 만들어내는 합동 공연은 여기서 보면 대체로 재미있다. 나는 레인을 스물두 번 돌기 위해 바닥을 박차고 올라온다. 스무 번을 돌았는지 스물두 번을 돌았는지 헷갈리면 짜증이 나서 스스로에 대한 벌칙으로 다섯 번을 추가한다. (p. 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