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 주인공들 - 이것은 불멸의 이야기
오자은 지음 / 생각의힘 / 2024년 12월
평점 :
'증조모는 증조부의 폭언을 듣고 "한 번 더 그런 말 했다가는 당신 내 손에 죽습니다"라고 처음으로 맞대응을 한다. 아마 딸에 관한 일이 아이였으면 평소처럼 끝까지 참았을 터였다. (p. 305)'
딸아이가 커가면서 여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 앞에 펼쳐질 여자로서의 삶, 아니 여성으로서 삶에도 걱정이 앞섰다. 과거에 살았던 여자의 삶을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다. 여자의 삶이 어땠길래? 여자가 아니거나 딸을 둔 부모가 아니라면 이런 질문할 자격이 없다.
오자은의 문학 비평집 <여자 주인공들>은 한국 현대 소설이 지난 50년 동안 어떻게 여성을 상상해왔는지에 관한 책이다. 이미 낡아버린 질문이라고 전제하면서 '소설은 왜 읽는가'라는 물음으로 오자은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인식을 반영한다는 데에 그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는 대답을 하고 싶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설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믿음과 인식을 개척하여 현실을 변화시키고 형성해가기도 한다. (p. 7, 책머리에)'
소설이든 현실이든 여자는 오랜 시간 약자 또는 결핍을 운명으로 지내왔다.
<나목>의 이경처럼 K-장녀의 삶은 오빠만 자식으로 마음에 품고 사는 엄마를 견디고 버텨내며 단박에 어른이 되는 삶이었다. <도시의 흉년>에서는 남자아이를 살리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여자아이의 삶, 그리고 남성의 씨를 받아 남자아이를 생산해 대를 잇기 위해 정조를 지켜야 하는 여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겨울여자>의 이화는 당시 남성만 독점하고 있던 이성 편력을 거치면서 세상의 이데올로기, 사회 관습과 규범을 뛰어넘어보지만 이마저 남성의 판타지로 완결돼버리는 한계에 부딪힌다. 남성 중심의 사회, 1970년 대 소설 속 여자의 삶이다.
이문열은 <레테의 연가>에서 작가 욕망을 가진 젊은 여성을 등장시켜 성장을 그려내지만 그 성장을 견인하는 위치에 남성을 배치한다. 1980년 대 (남성 입장에서) 위협으로 다가오는 여성의 성장마저 길들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김향숙이 그린 1980년 대 또 다른 여성의 모습은 '언캐니'한 딸 들이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린다면 우리는 이를 '언캐니 Das Unheimliche'한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로 옮겨보자면 '두려운 낯섦' 정도가 될 것이고, 언캐니한 감정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친숙한 것이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질 때의 그 불안과 공포이다. (p. 170)'
험난한 입시전쟁을 뚫어낸 자랑스러운 딸이 운동권 대학생이 되는 순간, 여자인 엄마는 딸이 패자가 될 거라는 두려움과 함께 어렵게 이룬 중산층의 삶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예감한다.
1990년 대, 신경숙은 <외딴방>에서 '문학 여공'을 등장시켜 소설로서 여공 희재를 어떻게 구해낼지를 갈등하는 문학 여공의 삶을 그려낸다.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세 여성이 등장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커리어를 쌓는 이혼한 여성이자 독신 여성, 이념을 포기하지 못한 채 운동권 언저리에 있다 생계형 워킹맘이 된 여성, 경제력 있는 남성과 결혼하고 전업주부를 선택해 유복한 생활을 하지만 답답한 생활에 염증을 느껴 불륜으로 활력을 찾는 여성. (p. 236)'
1990년 대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여성에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생겼다.
2000년 대, 서영은의 <그녀의 여자>에서 전통적으로 예술가의 자리에 있던 남성을 끌어내리고 여성으로 대체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년 여성의 사랑을 그것도 나이 어린 여자와 동성애를 그린다. 그럼으로써 아직도 어른거리는 가부장 지배의 그림자를 걷어내려 한다. <밝은 밤>에서 최은영이 보여주는 키워드는 '무해함'이다. 남성은 여성을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당연시하며 행사했고 여성은 자신을 책임지는 남성의 폭력을 용인했다.
''무해함'은 영어로 harmless. 말 그대로 '해로움이 없음'이다. 그런데 애초의 용례를 살펴보면 단순히 해가 없는 상태를 뜻하기도 하지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 득도 실도 없어서 사소하며 별 의미 없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p. 316)'
약한 자들, 여자들은 책임진다는 말은 못 할지라도 멀리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볼 수는 있다. 깊이 관여하여 명령하고 요구하는 대신에 작고 사소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그 마음을 알아주는 '무해함'의 관계는 맺을 수 있다.
지난 21일 주말에 경찰 차벽에 막혀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행진이 남태령에서 멈췄다. 남태령 고개로 모여달라는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봉을 들고 또 모여들었다. 대부분 '2030여성'들이었다. 그들의 밤샘 투쟁으로 차벽은 열렸고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는 한남동 관저까지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의도에서도, 광화문에서도 2030여성들이 있었다. 부조리에 맞서는 정도가 아니라 앞장서서 싸우는 2030여성들의 모습에서 과거 여자들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딸아이 앞에 펼쳐질 여자의 삶을 걱정하는 부모들,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 2020년 대 여성은 자신이 살아갈 여성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딸아이 미래에 대해 내가 가진 불안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번 내란을 겪으면서 시대에 따라 진보하는 여성의 삶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