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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뇌 - 뉴런부터 국가까지, 대화는 어떻게 인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가
셰인 오마라 지음, 안진이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1월
평점 :
뇌과학자 셰인 오마라는 우리를 '대화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인간을 왜 그렇게 정의해야 하는지 대화하는 행동과 관련해 인간의 연결과 소통에 관한 질문을 담았다.
인간은 왜 대화할까. 대화를 나눌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우리가 흔히 하는 잡담은 어떤 힘을 발휘할까.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대화는 각자의 기억과 공통의 기억에 어떻게 작용할까. 마지막으로 국가의 형성에 우리의 기억과 대화는 어떤 관여를 했을까...
기억 장애를 겪게 된 몰레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떤 기쁨을 느꼈든, 어떤 슬픔을 겪었든 간에 그날 하루면 끝입니다. 지금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나? 뭘 잘못 말했나? 보시다시피 지금 이 순간 나는 모든 걸 또렷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하지만 방금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죠? 그게 내 걱정입니다. 매 순간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꿈이 기억 안 나는 거죠" (p. 13)'
우선 몰레이슨은 타인의 보살핌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일상생활 즉,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기억을 발판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우리가 익힌 기호와 상징, 규범, 규칙, 절차 등 공통의 이해와 경험과 같은 기억 체계에 의존해야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해 가며 복잡한 사회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대화는 우리 자신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과 상대방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다. (p. 24)'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도 한다. 그러면서 배우기도 한다. 사회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하고,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인간의 두 가지 중요한 기본 동기, 즉 다른 사람과 연결되려는 욕구와 세상을 알려는 욕구가 여기서 교차한다. 우리는 '현실'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즉 상대방의 욕구와 태도와 믿음을 읽어내고 우리가 하려는 말을 거기에 맞춘다. (p. 271)'
더 나아가 기억과 대화로 세상에 대한 감정, 신념, 생각을 공유하며 공통의 현실을 창조한다.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나라를 세웁시다"라는 대화를 나누면서 공통의 제도와 기구를 만들어 국가라는 개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미래를 상상하는 개인은 집단속 대화를 통해 더 많을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국가의 미래도 상상한다.
공통으로 기억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통 현실이 내가 속한 국가의 정체성을 만든다. 이런 점에서 요즘 우리나라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동안 대화에 끼지도 못하던 이슈들이 정권이 허용하는 틈을 타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몇 해 전만 해도 광복절에 일장기를 내거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강제노동,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국적을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린다.
이런 공통 현실이 계속되면 우리 집단의 기억마저 왜곡될까 걱정스럽다. 우리 기억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받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작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희망적인 것은 대화를 통해서 공통 현실, 공기를 되돌려놓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공기가 탁해서 답답하다고 입을 다물면 안 된다. 입을 열어 떠들어대며 사회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우리 인류만이 '대화하는 종'이고, 대화를 통해서만 나를 타인과 연결하고 우리 사회의 공통 현실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