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스트레칭 365 퀴즈 일력 (스프링) - 집중력 순발력이 좋아지는 1분 습관
최은경 외 지음 / 어썸그레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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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있지만, 예를 들어 독서라든지 걷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 더 생활에 밀착된 것으로 씻기, 밥 먹기 따위의 것들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과는 따로 몸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면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면? 두렵다.

또 하나 생각마저 할 수 없다면, 치매 말이다. 내가 누구인지 뿐만 아니라 내가 간직해온 추억마저 지워져버렸다면, 이 역시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치매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비극이라 여겨지는 건, 생을 마감하는 이를테면 스스로 곡기를 끊는 결정조차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65세에 이르면 또는 그 이전이라도 다양한 원인으로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치매를 얻기 쉽다. 치매는 아직까지 완치가 어려워 그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뇌혈관질환이 치매의 주요 위험요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음주와 흡연도 피해야 하고 꾸준히 걷기와 골고루 챙겨 먹는 식습관도 치매에 예방에 도움이 된다. 글쓰기, 독서, 연극 또는 영화관람과 같은 문화 취미활동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뇌를 골고루 자극할 필요가 있는데, 초성퀴즈, 단어 추리, 연산, 끝말잇기 등 다양한 퀴즈가 뇌를 고루 발달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


<두뇌 스트레칭 365 퀴즈 일력>은 매일 즐겁게 뇌를 자극하기 위해 세 명의 방송 작가들이 만든 일력이다.

'예를 들어 초성을 이용한 속담 퀴즈는 언어적 추론 능력을 키울 수 있어 좌측 전두엽 발달에 도움이 되고, 그림이나 빙고판을 이용한 퀴즈는 시각적 구성 능력과 함께 두정엽과 후두엽을 자극시킬 수 있습니다. 단어 연상 퀴즈는 상상력과 기억력, 그리고 실행 능력을 동원해야 하니 전두엽, 측두엽, 두정엽을 고루 발달시킬 수 있겠고요. ('추천의 말' 중에서)'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온 가족이 놀이 삼아 즐길 수 있는 퀴즈가 일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에 들어온다. 일력을 받자마자 아내와 1월 한 달을 재밌게 풀었다. 쉬운 것도 있지만 힌트를 보며 약간 뜸을 들여야 생각나는 퀴즈도 있다.

뇌를 스트레칭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1일 1퀴즈 습관'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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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 - 오늘의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
김태수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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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같은 시간에 살게 됐을까?

1884년 그리니치 표준시가 국제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후 모든 곳에서 그리니치 표준시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철도가 깔리고 기차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불편을 느꼈다. 마을마다 시간이 달라 기차를 놓치는 일이 자주 벌어지면서부터 통일된 시간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통일된 시간이 없었을 때 불편하지 않았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준으로 답답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농촌에 살았고 기차 탈 일이 없었다. 게다가 시간을 억지로 통일시키는 것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의 역사가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19세기를 '비동시성의 동시성'라고 표현했다.
'이는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나 양상이 동시대에 벌어진다는 말이다. (p. 25)'


가난은 언제부터 불행이 되었을까?

중세 유럽에서는 가난이 지금처럼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구걸하는 사람을 만다면 복받은 날로 여겼을 정도였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일종의 거래 행위이기도 했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고, 농촌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도시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거지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 이제 더 이상 거지는 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아니라 불편한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점에서 가난에 대한 인식 변화는 시대의 변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근본적 인식을 변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p. 171)'


호주는 영국인 범죄자들이 만든 나라다?

그렇게 단정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영국 내에서 범죄자를 전부 처리할 수 없어 호주로 보내버린 건 맞지만, 이들 모두 오이나 책, 담배를 도둑질하다 붙잡힌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여성, 어린아이와 노인 등 거친 땅을 일구고 버틸정도로 신체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살인이나 성폭행 또는 반역과 같은 중범죄자는 없었다.

1793년 자발적인 이주민들이 영국을 떠나 호주에 도착했고, 1840년부터는 자의로 이주한 사람들이 반대해 영국 정부는 범죄자들을 더 이상 보내지 않았다.


저자 김태수는 <함께하는 세계사>를 운영하는 곧 26만 역사학 박사 유튜버다. <질문으로 시작하는 세계사 수업 1>은 유튜브에서 다룬 내용을 보완하여 만들었다. 앞서 소개한 내용에서 보듯이 이 책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질문을 통해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 외운 것들을 잊는다 해도 역사적 사고방식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됩니다. (p. 6, 프롤로그)'

1부에서는 근대적 일상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2부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을 언제부터 왜 하게 됐는지를, 3부에서는 근대 국가들이 어떻게 역사에 등장했는지를 질문한다.


브라질에 이어 월드컵 우승 횟수 2위를 자랑하는 독일 사람들이 축구를 싫어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설마? 산업혁명은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동물원의 동물처럼 인간이 전시 대상이었다고 하고. 스위스가 중립국가가 된 역사까지 흥미로운 질문과 함께 그 대답을 따라가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에 흠뻑 빠지게 되는 책이다.

자칫 지루해지기 마련인 역사에서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길. 유튜브 <함께하는 세계사>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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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착취 : 돌봄노동
알바 갓비 지음,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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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에게는 이젠 커서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선 연년생 남매가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두 아이의 육아를 아내가 도맡아 했다. 늦게 퇴근해 집에 들어서면 집은 전쟁터 같았다. 산발이 된 아내와 딸아이가 날 쳐다봤고 바닥은 장난감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아내는 마치 큰 죄라도 지은 듯이 서둘러 집안을 치우고 아이 둘을 달래놓고는 저녁상을 차렸다. 돈 벌어오는 남편의 심기를 살피다가 괜찮다 싶은 내 표정을 확인하고서야 오늘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것도 이해를 구하는 투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너무 힘든 날은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가 음식점에서 밥을 먹기도 했던 모양인데 말을 들어보면 보채는 아이 둘과 식사는 더 고됐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모든 아내의 일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노동을 위한 일이었다. 노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나는 쉼을 얻는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아이들을 보면서 기쁨을 얻고 아내가 청소해 놓은 방에서 편히 잔다. 그다음 날 아내가 빨래해 다려놓은 옷을 입고 충전해 놓은 힘을 쓰러 출근한다.


'이 책은 재생산 reproduction 노동의 정치에 관해 말한다. (p. 13, 시작하며)'

재생산 노동의 정치 관점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노동 인구를 유지하고 교체하는 일이다. 음식 만들기, 청소, 빨래, 부모를 돌보는 일 등은 노동하는 사람의 안녕을 보장하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은 '사회적 재생산'이라고 부른다. 이뿐만 아니라 집안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감정 재생산'도 재생산 노동에 포함된다. 이 모든 일을 대부분 여성이 도맡아 한다.

특히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슬픔을 달래며 남편이 직장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지내도록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일 등 정서적 지원을 하는 감정 재생산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하게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돌려받지도 못하고 사랑으로 포장돼 노동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노동을 했는데 대가가 뒤따르지 않는 경우 우리는 이를 '착취'라고 한다. 사랑해서 한 일이라고 여긴다면 '친밀한 착취'가 된다.


이렇게 돌봄노동이 친밀한 착취로 탈바꿈하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저자인 알바 갓비는 자본주의, 가족, 젠더 이 세 가지를 폐지할 것을 제시한다.

돌봄노동을 인정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순간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를 자본주의는 갖고 있다. 이를테면 조리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상품을 판다면 그 가격을 비쌀 수밖에 없다. 팔리지 않아서 가격을 낮추면 이익은 쪼그라든다.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임금 유무와 상관없이 재생산 노동에 의존한다. (...) 페데리치가 쓴 것처럼 '우리가 집에서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그들의 공장, 광산, 학교, 병원이 운영될 수 없으며 그들의 이윤도 전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p. 96)'

그래서 자본주의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돌봄노동을 미화하고 사적 영역으로 몰아가는 것뿐이다. 사랑이란 끈으로 엮여있는 가족이야말로 아름다운 돌봄을 해낼 수 있는 사적인 곳이다.

'자본주의 권력이 노동을 명령하는 권력이듯, 젠더는 친밀성의 노동을 명령하는 권력이다. (p. 191)'

가족 안에서 돌봄은 주로 여성이 한다. 퇴직하고 나서야 집안일을 도왔다. 아내 손목이 고장 나 못하는 일 가운데 설거지가 대표적으로 내 담당이다. '도와줄 일 없을까?' 집안일을 할 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언제부터 집안일이 아내의 일이고 내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역할 분담됐을까. 여성에게 어울리는 일이라서? 저자는 이를 젠더화라고 일컫는다.

자본주의, 가족, 젠더 이 세 가지가 폐지되지 않는 한 돌봄을 사랑으로 한 일이 아닌 노동이라고 여기는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게 알바 갓비의 주장이다.


전업주부로 지낸 아내가 지나온 날은 돌아보며 '이제껏 난 뭘 하고 살았나. 한 일 없어.'라는 말을 쓸쓸한 표정으로 자주 한다. 왜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할까. 보이는 대가, 다시 말해 자신이 한 노동으로 번 돈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으면 연금조차 줄어드니 남편이 오래 살기를 바라야 한다.

노동이라도 안 했으면 덜 억울하지. 남편을 뒷바라지하고(노동의 안녕), 아이 둘을 키우고(노동 인구 유지 교체),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감정 노동)까지 갖은 재생산 노동에 시달렸다. 친밀한 착취를 당했다. 젠더화하는 세상에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OECD 국가의 미혼모 아이 평균 비율이 41.5퍼센트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급격히 늘어 4퍼센트 남짓 된다. 전형적인 가족의 형태가 해체되는 추세다. 세계적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젠더화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걸 뜻한다.

더 이상 사랑의 유대에 기대어 돌봄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돌봄을 노동으로 간주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 인식의 혁명이 필요한 순간이다.

'감정노동이 사적 영역에 국한되는 일이 훨씬 적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노동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라고 말하기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 일을 덜어 줄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덜 어려워질 테고요. (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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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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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패트릭 브링리의 결혼식이 있어야 했던 날, 형이 세상을 떠났다. 브링리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었다. 그래서 그 찾은 곳은 그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곳, 가장 단순한 일을 할 수 있는 곳,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10년을 지냈다.

메트Met에서 브링리는 두려움 없는 예술가들의 위대한 걸작품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조용한 시간 내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작품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작품이 진지하게 말을 걸어왔다. 형을 잃어 비탄에 빠졌을 때 생긴 삶의 커다란 구멍을 이곳에서 하나하나 메꿔나갔다.

'만약 무언가가 웃기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지 확인하면 된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운지 알고 싶다면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된다. 웃음만큼 확실하지만 대부분은 좀 더 조용하고 주춤거리며 나오는 반응일 것이다. (p. 122)'

메트의 고요한 공간에서 '아무 할 일도 없는데 하루 종일 걸려서 해야 하는 일 (p. 319)', 경비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시간과 차원이 달랐다. 그 시간은 소비하고 낭비하고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마치 여름날 포치에 앉아 바람이 부는 걸 바라보는듯한 시간이었다.

이 같은 메트에서 브링리의 삶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20층, 잡지사 뉴요커 사무실에서 펼쳐질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형의 죽음으로 인해 브링리가 선택한 두 번째 인생이었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p. 308)'

이 책에는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 브링리는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가진 그리고 꿈도 제각각인 그래서 잠시 머무르는 곳으로 메트를 택한 600여 명 동료 경비원들의 삶과 대화했다. 예술품을 바라보며 낯설고 먼 곳은 물론 과거를 다녀온 여행자가 되기도 했다. 메트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p. 149)'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브링리를 삶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장 아름답고 단순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떠날 때가 됐다. 형의 죽음으로 도망쳤던 그곳으로 다시 가서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p. 331)' 삶을 살아야 했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 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p. 330)'


내게도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시던 형님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인 40대 중반에 형수와 어린 조카 둘을 남겨놓고 세상을 등졌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는 오열했다. 큰 딸을 잃어 참척의 고통을 겪은 어머니는 큰 아들이 죽기 전에 돌아가셔서 두 번째 참척의 고통은 피했다.

형님의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 있을 곳이 없어진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방을 하나 더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급했다. 이사를 했고 서둘러서 방 한 칸 더 있는 집을 구하려다 빚을 지고 말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때 서두를 것이 아니라 브링리처럼 아픔을 보듬을 장소와 시간을 가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후회된다. 그랬으면 살아오면서 의미 없이 지나쳤던 것들에게서 새로운 깨우침을 얻어, 브링리가 메트에서 이탈리아 수사 안젤리토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라는 인생 그림을 찾았듯이 내 인생에서도 걸작품을 하나 얻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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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주인공들 - 이것은 불멸의 이야기
오자은 지음 / 생각의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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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모는 증조부의 폭언을 듣고 "한 번 더 그런 말 했다가는 당신 내 손에 죽습니다"라고 처음으로 맞대응을 한다. 아마 딸에 관한 일이 아이였으면 평소처럼 끝까지 참았을 터였다. (p. 305)'

딸아이가 커가면서 여자들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 앞에 펼쳐질 여자로서의 삶, 아니 여성으로서 삶에도 걱정이 앞섰다. 과거에 살았던 여자의 삶을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다. 여자의 삶이 어땠길래? 여자가 아니거나 딸을 둔 부모가 아니라면 이런 질문할 자격이 없다.


오자은의 문학 비평집 <여자 주인공들>은 한국 현대 소설이 지난 50년 동안 어떻게 여성을 상상해왔는지에 관한 책이다. 이미 낡아버린 질문이라고 전제하면서 '소설은 왜 읽는가'라는 물음으로 오자은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인식을 반영한다는 데에 그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는 대답을 하고 싶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설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믿음과 인식을 개척하여 현실을 변화시키고 형성해가기도 한다. (p. 7, 책머리에)'

소설이든 현실이든 여자는 오랜 시간 약자 또는 결핍을 운명으로 지내왔다.

<나목>의 이경처럼 K-장녀의 삶은 오빠만 자식으로 마음에 품고 사는 엄마를 견디고 버텨내며 단박에 어른이 되는 삶이었다. <도시의 흉년>에서는 남자아이를 살리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여자아이의 삶, 그리고 남성의 씨를 받아 남자아이를 생산해 대를 잇기 위해 정조를 지켜야 하는 여자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겨울여자>의 이화는 당시 남성만 독점하고 있던 이성 편력을 거치면서 세상의 이데올로기, 사회 관습과 규범을 뛰어넘어보지만 이마저 남성의 판타지로 완결돼버리는 한계에 부딪힌다. 남성 중심의 사회, 1970년 대 소설 속 여자의 삶이다.

이문열은 <레테의 연가>에서 작가 욕망을 가진 젊은 여성을 등장시켜 성장을 그려내지만 그 성장을 견인하는 위치에 남성을 배치한다. 1980년 대 (남성 입장에서) 위협으로 다가오는 여성의 성장마저 길들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김향숙이 그린 1980년 대 또 다른 여성의 모습은 '언캐니'한 딸 들이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린다면 우리는 이를 '언캐니 Das Unheimliche'한 상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로 옮겨보자면 '두려운 낯섦' 정도가 될 것이고, 언캐니한 감정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친숙한 것이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질 때의 그 불안과 공포이다. (p. 170)'

험난한 입시전쟁을 뚫어낸 자랑스러운 딸이 운동권 대학생이 되는 순간, 여자인 엄마는 딸이 패자가 될 거라는 두려움과 함께 어렵게 이룬 중산층의 삶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예감한다.

1990년 대, 신경숙은 <외딴방>에서 '문학 여공'을 등장시켜 소설로서 여공 희재를 어떻게 구해낼지를 갈등하는 문학 여공의 삶을 그려낸다.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세 여성이 등장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커리어를 쌓는 이혼한 여성이자 독신 여성, 이념을 포기하지 못한 채 운동권 언저리에 있다 생계형 워킹맘이 된 여성, 경제력 있는 남성과 결혼하고 전업주부를 선택해 유복한 생활을 하지만 답답한 생활에 염증을 느껴 불륜으로 활력을 찾는 여성. (p. 236)'
1990년 대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여성에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생겼다.

2000년 대, 서영은의 <그녀의 여자>에서 전통적으로 예술가의 자리에 있던 남성을 끌어내리고 여성으로 대체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년 여성의 사랑을 그것도 나이 어린 여자와 동성애를 그린다. 그럼으로써 아직도 어른거리는 가부장 지배의 그림자를 걷어내려 한다. <밝은 밤>에서 최은영이 보여주는 키워드는 '무해함'이다. 남성은 여성을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당연시하며 행사했고 여성은 자신을 책임지는 남성의 폭력을 용인했다.

''무해함'은 영어로 harmless. 말 그대로 '해로움이 없음'이다. 그런데 애초의 용례를 살펴보면 단순히 해가 없는 상태를 뜻하기도 하지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 득도 실도 없어서 사소하며 별 의미 없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p. 316)'

약한 자들, 여자들은 책임진다는 말은 못 할지라도 멀리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볼 수는 있다. 깊이 관여하여 명령하고 요구하는 대신에 작고 사소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그 마음을 알아주는 '무해함'의 관계는 맺을 수 있다.


지난 21일 주말에 경찰 차벽에 막혀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행진이 남태령에서 멈췄다. 남태령 고개로 모여달라는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봉을 들고 또 모여들었다. 대부분 '2030여성'들이었다. 그들의 밤샘 투쟁으로 차벽은 열렸고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는 한남동 관저까지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의도에서도, 광화문에서도 2030여성들이 있었다. 부조리에 맞서는 정도가 아니라 앞장서서 싸우는 2030여성들의 모습에서 과거 여자들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딸아이 앞에 펼쳐질 여자의 삶을 걱정하는 부모들,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 2020년 대 여성은 자신이 살아갈 여성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딸아이 미래에 대해 내가 가진 불안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번 내란을 겪으면서 시대에 따라 진보하는 여성의 삶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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