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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함께 걷는 청와대, 서촌, 북촌 산책 - 도시 산책자를 위한 역사 인문 공간 이야기
김영욱 지음 / 포르체 / 2024년 11월
평점 :
수원에 살 때였다. 아이들 외가 근처에 멋진 정자를 끼고 있는 연못이 있었다. 뛰어놀기도 좋고 해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자주 가곤 했다. 정말 멋진 곳이다. 학생들이 이젤을 펴놓고 그림 그리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어느 날 화보집을 보는데 익숙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방화수류정이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기에 자주 가던 그곳.
북문(장안문)과 동문(창룡문) 사이에 있어 '동북각루東北角樓'로도 불린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멋들어진 뜻을 담고 있다.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아 보물로도 지정되었다. 정조 18년(1794)에 세워진 역사적 공간, 어쩌면 조선의 선비들이 놀던(遊) 그곳에서 그런 의미를 모른 채 우리 아이들도 놀았(遊)던 셈이다.
'이 책은 청와대와 그 주변 동네를 산책할 때 훨씬 더 즐겁고 유의미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지금이라도 찾아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역사와 공간에 스민 건축적 의미를 느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떠한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면 좋을지 깊이 사유해 보면 좋겠다. (p. 7)'
한 달 전 볼 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경복궁을 앞을 지나 서촌, 통인시장 쪽으로 지나간 적이 있다. 30여 년 동안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출근하던 곳이 강남이어서 좀처럼 강북에 올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익히 들어 알고는 있는 곳이지만 청와대 주변의 서촌과 북촌은 나에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우리 아이들이 놀던 방화수류정만큼이나 그곳이 갖고 있는 이야기는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그 동네가 간직한 사연을 모르다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다.
'북악산의 정남향에 자리한 청와대 중심 건물로,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을 위한 공간이다. 1991년 신축 당시 전통 목조 구조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현대적 요소를 가미했다. 궁궐 양식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팔작지붕 위에는 일반 도자기 한 장씩 유약을 발라 구워 낸 청기와가 있다. 이는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으며 햇빛을 받으면 옥색을 띠기도 한다. (p. 41)'
청와대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신축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사람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청와대 건물 공간 구조다. 대통령과 참모진들과 소통이 어려운 배치다. 또한 관저와 집무실이 하나의 건물에 있는 미국의 백악관이나 영국 다우닝가 10번지와 다르게 청와대는 이 두 곳이 멀다. 24시간 업무를 해야 할 한 나라 정상의 국가적인 사명과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북악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와대와 경복궁을 기준으로 왼쪽이 북촌, 오른쪽이 서촌이다. 당시 북촌과 서촌은 궁궐에 인접한 주거지였다. 북촌은 경복궁에 출입하기 편한 곳에 위치했으며 조선 시대에 관직을 하는 양반들이 모여 살던 고급 주택가였다. 그에 비해 서촌은 문인, 화가, 천문학자 등 전문직 일을 하는 지식인들이 모여 살았다. ( p. 65)'
북촌이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마을이라면 서촌은 좁은 골목에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몰려있다. 그래서 서촌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욱 건축학과 교수는 서촌과 북촌을 거닐며 들릴만한 건물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서촌의 상촌재, 오래된 전통 골목형 재래시장인 통인시장,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었던 대오서점(지금은 북 카페로 운영 중), 지금은 '보안1942'라는 문화공간이지만 보안여관은 우리나라 근대 문학이 잉태된 공간이다. 그 밖에도 갤러리 서촌재, 윤동주 하숙집 터,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박노수 가옥, 이상의 집, 필운대, 윤동주 문학관 등을 소개한다.
북촌을 걷다보면 선조들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국립민속박물관, 숲을 바라보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한옥의 정취와 서울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북촌로 11가길, 정독도서관, 한옥을 리모델링한 오설록 티하우스, 여덟 명의 판서가 살았다던 팔판동 골목, 가회동 성당 등을 만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오르는 다양한 코스도 자세하게 알려준다.
방화수류정을 알고 다시 그곳에 가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세월이 쌓아놓은 흔적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서촌, 북촌은 왕과 대통령이 있던 동네로 600여 년의 시간이 깃든, 서울의 그 어느 곳보다 숱하디숱한 이야기가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이 책을 옆에 끼고 그곳을 걷는다면 곳곳에서 건물이 간직한 사연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건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더 깊은 사연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