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 식물 -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
안톤 순딘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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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만들지 않고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인지 몰랐던 사람들은 양치식물이 아무도 모르게 꽃을 피운다고 여겼다. 그래서 남몰래 피는 꽃을 보면 놀라운 힘을 얻는다고 믿었다. 남성이 꽃을 보면 사랑을 찾고 부자가 된다. 양치식물의 잎자루를 가르면 여성에게 남편 될 사람의 이니셜이 보인다. 그리고...

'한여름 밤에 발가벗고 두메고사리삼 옆에 누우면 불꽃이 확 일어나고, 그 불을 빨리 끄면 세상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다고 믿었고, 고사리 한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사업이 잘 된다고도 믿었다. (p. 44)'


양치식물은 약 4억 년 전에 등장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이다. 물론 약 2억 5천 년 만 전 지구에 사는 생물종의 90퍼센트가 사라진 '페름기 대멸종'을 지나오지는 못했지만, 당시 살던 종의 먼 친척 몇몇이 진포자낭양치(眞胞子囊羊齒, Eusporangiate)군으로 진화했다.

양치식물의 크기와 형태는 다채롭고 홀씨로 번식한다. 홀씨는 작고 가벼워서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으며 극단적인 기후에도 잘 견디며 싹을 틔운다. 그리고 약용식물이나 유용식물로 활용된다.

양치식물 가운데 가장 작은 물개구리밥은 공기 중 질소를 흡수하여 토질을 개선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인간과 환경에도 유익하다. '불과 2~3일 만에 생물량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에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떠돌아다니는 엄청난 양의 탄소를 저장한다. (p. 58)' 물개구리밥을 대량을 키우면 온실효과를 줄여 기후 온난화를 막는 것도 가능하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양치식물이 온 사회의 상상 세계를 지배했고, 사람들은 양치식물에 미쳤었다. '그림과 디자인에도, 당연히 정원에도, 심지어 건축과 연극에도 양치식물이 등장했다. 실내장식에선 화분에 심건 무늬로 쓰건 양치식물이 필수였다. (p. 69)'


이 책은 양치식물의 역사와 분포, 형태, 신화와 예술 그리고 양치식물 광풍에 이르기까지 양치식물의 모든 것을 기록과 사진으로 남겼다. 심지어 이 책을 읽고 양치식물의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에 마음이 사로잡혀 키워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원에서 양치식물 키우는 방법까지 실어놓았다.

어느 식물이나 그렇듯이 식물을 고를 때 그 식물이 좋아하는 장소를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양치식물은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군이다.

'대부분은 반그늘이나 그늘진 곳, 습한 토양을 좋아하지만 마른 땅, 내리쬐는 햇볕을 사랑하는 녀석들도 있다. 실제로 모든 형태의 정원에는, 또 정원의 모든 구역에는 그곳에 딱 맞는 안성맞춤 양치식물이 하나씩은 있다. (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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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애리얼리 미스빌리프 - 이성적인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것을 믿게 되는 이유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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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최초로 인간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한때 이 사실이 조작이라는 음모론에 빠졌었다. 별이 안 보인다든지, 닐 암스트롱 발자국이 너무 선명하다든지, 그림자, 펄럭이는 성조기 등 거짓을 뒷받침하는 그럴듯한 과학적 증거들이 차고 넘쳐 더더욱 음모론을 확신했다.

"설마, 이따위 소문을 믿는다고?"라고 생각할 만한 음모론, 앞서 이야기했던 달 착륙 조작을 비롯해 '지구는 평평하다', '코로나19가 생물무기다', '9.11테러 미국 정부 자작극', '로마 황제 네로 생존설', '엘리자베스가 남자라는 소문' 등 가짜 뉴스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돌아다닌다.


왜 우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는 것일까?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 교수는 이 질문의 답을 자신의 경험담을 시작으로 찾아 나선다.

악의적으로 편집한 영상이 퍼져나가면서 댄 애리얼리는 빌 게이츠와 공모해 인구를 줄이려는 사악한 계획을 꾸미는 인물이 돼버린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여성을 불임으로 만든다는 음모론이다. 해명하고 설득했지만 그 노력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는 증거로 활용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잘못된 믿음(오신념)misbelief'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잘못된 믿음은 왜곡된 렌즈이다. 잘못된 믿음에 빠진 사람들은 이 왜곡된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고,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추론을 하고 또 그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잘못된 믿음은 일종의 과정이기도 한데 사람들을 점점 더 깊이 끌어당기는 깔때기와 같다. (p. 29)'

그저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서 "저 사람들 진짜 미친 거 아냐?"라고 말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댄 애리얼리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성향은 인간 모두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내가 달 착륙 조작설을 믿었듯이 나도 '미스빌리프'라는 왜곡된 렌즈로 세상을 볼 수 있다. 게다가 한번 가진 잘못된 믿음은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이 믿음들끼리 만나서 동맹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그(박근혜 탄핵) 때 나 욕 많이 먹었어. 그런데 1년 후에는... 무소속 가도 다 찍어주더라. 너 봐라 내가 계속 무소속 가도 살아온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에 참석하지 않아 지역주민으로부터 욕먹는 한 국회의원의 걱정에 선배 국회의원이 해준 말이다. 이런 망발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선택한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알더라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12월 3일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진입했다. 왜 그랬을까. 친위 쿠데타와 논리적 맥락을 전혀 찾을 수 없어 궁금증이 더했다. 지난 4월 치러진 22대 총선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따랐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극우 유튜버의 '미스빌리프'에 대통령 부부가 빠졌다는 소문이다. 사실이라면 '잘못된 믿음'이 비상계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


이 책 <댄 애리얼리 미스빌리프>는 음모론자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댄 애리얼리는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에서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는 여정에서 심리적 구성 요소를 조명한다. 잘못된 믿음에 빠지게 되는 다양한 과정과 이유도 소개한다. 그리고 잘못된 방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여러 사례에 대한 팁도 제시한다.

나이가 들수록 상대방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점점 더 갖게 된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이다. 이번에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이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본인이 모든 걸 다 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쉽게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런 사람에게 지적 겸손을 실천하라고 댄 애리얼리가 팁을 준다.
'예를 들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고 싶다", "내가 아는 한에는" 등과 같은 표현을 구사하라. (p. 311, 유용한 팁)'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은 자신의 확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나를 상대로 논쟁해 보라는 것이다.


나와 다른 믿음을 갖고 있다고 '미친놈이네'라고 경멸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댄 애리얼리도 결국 자신을 음모론을 계획한 주요 인물로 만들어 악마화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함으로써 공감할 수 있었다. 이해와 공감만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유용하고 희망을 주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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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생, 좋은 삶을 위한 성공의 기술
이기흥 외 지음 / 화담,하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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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도움이 될까 싶어 책을 소개하곤 했다. 당시 자기계발서의 고전으로 꼽히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세상 일 80퍼센트가 협상이란 생각에 허브 코헨의 <협상의 기술>, 마케팅의 교과서라 일컫는 알 리스의 <마케팅 불변의 법칙>, 네 권의 책을 간단한 요약과 함께 권했다.

그리고 (지금 MZ 세대와 거리가 좀 멀수도 있지만) 직장 생활에 필요한 2가지를 알려줬다. 사소할 것 같지만 중요한 인사. 예의는 그 사람의 평판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직원 어때?'라는 질문에 그 직원에 대해 잘 모를 경우, 마침 인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면 대부분 예의 바른 친구라며 좋게 평가한다. 그다음 피드백이다. 지시받은 일의 진행사항을 상사가 묻기 전에 수시로 알려줄 것을 조언했다. 일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완생, 좋은 삶을 위한 성공의 기술>은 주요 기업 임원 출신 선배 여섯 명이 각자 직장 생활을 통해 얻은 지혜를 알려주는 책이다.
'미시적 삶인 직장에서 맞닥뜨리는 과제인 승진, 이직, 공감부터 거시의 삶에서 주어지는 질문인 선택, 성장, 태도까지 6개의 키워드를 청년기 삶의 여정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p. 8,9 들어가는 말)'

이기흥 前) 신한라이프 부사장은 자신의 적성을 알고 그것을 업무에 적용할 때 큰 성과, 즉 '승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문진 前) SK C&C 부사장은 세 번 정도 회사를 옮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단 그 '이직'은 자신을 경력을 완성하기 위한 스토리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인석 前) 이랜드 문화사업부/문화재단 대표에게 '공감'은 상호 신뢰를 높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충분조건이다. 변영삼 前) SK실트론 대표이사는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너무 먼 미래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나를 이끄는 것에 집중해서 '선택'해야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며 자신의 경험을 전한다.

'요즘은 '성공'이란 말보다는 '성장'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성장'이 좀 더 느리다고 느껴지나 지속 가능한 여정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인 것 같다. (p. 191)'

이강란 現) 창신INC 최고인사책임자는 우리의 '성장'을 돕는 방법으로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은 관리할 것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장동철 前) 현대모비스 부사장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행동할 것인가와 같은 '태도'를 가지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라고 권유한다.


'사회적 지위나 부를 얻는 것'이라고 사전적으로야 '성공'을 정의할 수 있지만, 각자 마음에 품은 성공의 정의는 제각각일 것이다. 성공으로 가는 방법도 물론 다 다를 것이고.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던 시절이 생각난다. '이 회사에 뼈를 묻어 사장이 돼야지'라고 맘먹었다가 해를 거듭할수록 성공으로 삼았던 지위를 점점 하향 조정했었다. 되돌아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책에서 '나는 이렇게 걸어왔다'라고 말하는 여섯 명 선배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라고 젊은 세대들에게 권하고 싶다. 어디로 어떻게 갈지 막막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다양할 길을 알고 나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여섯 인생 선배들의 말처럼 가던 길을 되돌아오거나 옆 길로 갈 수도 있다. 틀린 길은 없다.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런 모색 끝에 '그래 내가 찾던 길이 이길이었어!'라고 외치게 되는 길을 만나면 행운이라 여기길 바란다. 몇 안 되는 사람만이 그런 길을 만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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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뇌 - 뉴런부터 국가까지, 대화는 어떻게 인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가
셰인 오마라 지음, 안진이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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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 셰인 오마라는 우리를 '대화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인간을 왜 그렇게 정의해야 하는지 대화하는 행동과 관련해 인간의 연결과 소통에 관한 질문을 담았다.

인간은 왜 대화할까. 대화를 나눌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우리가 흔히 하는 잡담은 어떤 힘을 발휘할까.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대화는 각자의 기억과 공통의 기억에 어떻게 작용할까. 마지막으로 국가의 형성에 우리의 기억과 대화는 어떤 관여를 했을까...


기억 장애를 겪게 된 몰레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떤 기쁨을 느꼈든, 어떤 슬픔을 겪었든 간에 그날 하루면 끝입니다. 지금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나? 뭘 잘못 말했나? 보시다시피 지금 이 순간 나는 모든 걸 또렷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하지만 방금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죠? 그게 내 걱정입니다. 매 순간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꿈이 기억 안 나는 거죠" (p. 13)'

우선 몰레이슨은 타인의 보살핌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일상생활 즉,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기억을 발판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우리가 익힌 기호와 상징, 규범, 규칙, 절차 등 공통의 이해와 경험과 같은 기억 체계에 의존해야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해 가며 복잡한 사회적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대화는 우리 자신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과 상대방의 기억과 언어를 지원하는 뇌 시스템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다. (p. 24)'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도 한다. 그러면서 배우기도 한다. 사회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고, 기억하고,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인간의 두 가지 중요한 기본 동기, 즉 다른 사람과 연결되려는 욕구와 세상을 알려는 욕구가 여기서 교차한다. 우리는 '현실'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즉 상대방의 욕구와 태도와 믿음을 읽어내고 우리가 하려는 말을 거기에 맞춘다. (p. 271)'

더 나아가 기억과 대화로 세상에 대한 감정, 신념, 생각을 공유하며 공통의 현실을 창조한다.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나라를 세웁시다"라는 대화를 나누면서 공통의 제도와 기구를 만들어 국가라는 개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미래를 상상하는 개인은 집단속 대화를 통해 더 많을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국가의 미래도 상상한다.


공통으로 기억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통 현실이 내가 속한 국가의 정체성을 만든다. 이런 점에서 요즘 우리나라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동안 대화에 끼지도 못하던 이슈들이 정권이 허용하는 틈을 타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몇 해 전만 해도 광복절에 일장기를 내거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강제노동,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위공직자 청문회에서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국적을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린다.

이런 공통 현실이 계속되면 우리 집단의 기억마저 왜곡될까 걱정스럽다. 우리 기억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받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작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희망적인 것은 대화를 통해서 공통 현실, 공기를 되돌려놓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공기가 탁해서 답답하다고 입을 다물면 안 된다. 입을 열어 떠들어대며 사회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우리 인류만이 '대화하는 종'이고, 대화를 통해서만 나를 타인과 연결하고 우리 사회의 공통 현실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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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함께 걷는 청와대, 서촌, 북촌 산책 - 도시 산책자를 위한 역사 인문 공간 이야기
김영욱 지음 / 포르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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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살 때였다. 아이들 외가 근처에 멋진 정자를 끼고 있는 연못이 있었다. 뛰어놀기도 좋고 해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자주 가곤 했다. 정말 멋진 곳이다. 학생들이 이젤을 펴놓고 그림 그리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어느 날 화보집을 보는데 익숙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방화수류정이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뭔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기에 자주 가던 그곳.

북문(장안문)과 동문(창룡문) 사이에 있어 '동북각루東北角樓'로도 불린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멋들어진 뜻을 담고 있다.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아 보물로도 지정되었다. 정조 18년(1794)에 세워진 역사적 공간, 어쩌면 조선의 선비들이 놀던(遊) 그곳에서 그런 의미를 모른 채 우리 아이들도 놀았(遊)던 셈이다.


'이 책은 청와대와 그 주변 동네를 산책할 때 훨씬 더 즐겁고 유의미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지금이라도 찾아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역사와 공간에 스민 건축적 의미를 느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떠한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면 좋을지 깊이 사유해 보면 좋겠다. (p. 7)'

한 달 전 볼 일이 있어 버스를 타고 경복궁을 앞을 지나 서촌, 통인시장 쪽으로 지나간 적이 있다. 30여 년 동안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출근하던 곳이 강남이어서 좀처럼 강북에 올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익히 들어 알고는 있는 곳이지만 청와대 주변의 서촌과 북촌은 나에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우리 아이들이 놀던 방화수류정만큼이나 그곳이 갖고 있는 이야기는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그 동네가 간직한 사연을 모르다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다.


'북악산의 정남향에 자리한 청와대 중심 건물로,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을 위한 공간이다. 1991년 신축 당시 전통 목조 구조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현대적 요소를 가미했다. 궁궐 양식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팔작지붕 위에는 일반 도자기 한 장씩 유약을 발라 구워 낸 청기와가 있다. 이는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으며 햇빛을 받으면 옥색을 띠기도 한다. (p. 41)'

청와대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신축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사람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청와대 건물 공간 구조다. 대통령과 참모진들과 소통이 어려운 배치다. 또한 관저와 집무실이 하나의 건물에 있는 미국의 백악관이나 영국 다우닝가 10번지와 다르게 청와대는 이 두 곳이 멀다. 24시간 업무를 해야 할 한 나라 정상의 국가적인 사명과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북악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와대와 경복궁을 기준으로 왼쪽이 북촌, 오른쪽이 서촌이다. 당시 북촌과 서촌은 궁궐에 인접한 주거지였다. 북촌은 경복궁에 출입하기 편한 곳에 위치했으며 조선 시대에 관직을 하는 양반들이 모여 살던 고급 주택가였다. 그에 비해 서촌은 문인, 화가, 천문학자 등 전문직 일을 하는 지식인들이 모여 살았다. ( p. 65)'

북촌이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마을이라면 서촌은 좁은 골목에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몰려있다. 그래서 서촌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욱 건축학과 교수는 서촌과 북촌을 거닐며 들릴만한 건물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서촌의 상촌재, 오래된 전통 골목형 재래시장인 통인시장,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었던 대오서점(지금은 북 카페로 운영 중), 지금은 '보안1942'라는 문화공간이지만 보안여관은 우리나라 근대 문학이 잉태된 공간이다. 그 밖에도 갤러리 서촌재, 윤동주 하숙집 터,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박노수 가옥, 이상의 집, 필운대, 윤동주 문학관 등을 소개한다.

북촌을 걷다보면 선조들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국립민속박물관, 숲을 바라보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한옥의 정취와 서울 시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북촌로 11가길, 정독도서관, 한옥을 리모델링한 오설록 티하우스, 여덟 명의 판서가 살았다던 팔판동 골목, 가회동 성당 등을 만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오르는 다양한 코스도 자세하게 알려준다.


방화수류정을 알고 다시 그곳에 가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세월이 쌓아놓은 흔적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서촌, 북촌은 왕과 대통령이 있던 동네로 600여 년의 시간이 깃든, 서울의 그 어느 곳보다 숱하디숱한 이야기가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이 책을 옆에 끼고 그곳을 걷는다면 곳곳에서 건물이 간직한 사연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건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더 깊은 사연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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