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도시의 선택 - 자기다움으로 혁신에 성공한 세계의 도시
최현희 지음 / 헤이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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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인구 감소 속도는 유럽 모든 곳에 흑사병이 창궐하던 때보다 더 빠르다고 한다. 올해 초 인구 소멸 전국 지도가 공개됐다.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전남, 경북을 비롯한 6곳(35.3%)이 소멸 위험 진입 단계로 분류됐다. 세종을 제외한 나머지 10곳도 소멸 위험 주의 단계로 분류돼 16개 광역시도가 인구 소멸 위험 단계이다. 이들 모든 광역시도는 일자리와 연계한 플랫폼 조성을 하고 공공기관, 기업을 유치하는 등 소멸을 막기 위해 각종 아이디어를 끌어모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애물단지가 돼버린 충북 괴산군의 초대형 가마솥을 기억하는가. 지역 이미지를 끌어올리려고 5억이나 들여 만든 가마솥은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활용되지도 않아 골칫거리가 돼버렸다. 한때 지자체마다 공연장을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역을 위한다기보다는 자치단체장 치적사업으로 이만한 시설이 없었다. 하지만 공연장은 수익이 나는 시설이 아니다.


크고 작은 도시에도 각각 생애 주기가 있다. 탄생, 성장, 발전 그리고 쇠퇴에 이른다. 쇠퇴에 이르기 전, 즉 발전 단계에서 도시가 변화하거나 혁신해야만 소멸하지 않고 다시 성장 단계에 들어선다. '1913송정역시장'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성공으로 이끈 저자는 <사랑받는 도시의 선택>에서 쇠퇴의 기로에서 소멸하지 않고 혁신에 성공한 도시 4곳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도시의 성공 사례를 '다이아몬드 프레임워크'이란 분석 도구로 도시 혁신에 필수 요소와 핵심 유형을 잘 이해하도록 설명한다.

'국가보다 도시가 중요한 시대, 도시가 독보적 브랜드를 구축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도시만의 문화예술 활동이 필요하다. (p. 16)'
4곳의 도시는 장소, 사람, 프로그램, 환경이라는 문화예술 활동으로 도시 혁신에 성공했다.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 위 인공 섬인 리틀 아일랜드는 인적이 드문 지역을 활력 넘치는 공원으로 만들어 '장소 중심 활동'으로 도시 혁신에 성공했다. 산업도시였던 리버풀은 비틀즈라는 팝그룹, 즉 '사람 중심 활동'으로 사라질 뻔한 도시를 레전드로 만들었다.

미국의 오스틴은 SXSW 음악 축제라는 '프로그램 중심 활동'을 시작으로 실리콘 허브 역할을 하는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첨단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버려진 섬인 일본 나오시마 주민들은 일상을 주변 자연환경과 융합하려는 '환경 중심 활동'을 벌렸다. 그래서 한 해 70만 명이 찾는, 섬 전체가 미술관인 현대미술의 성지로 불리는 섬을 만들었다.


충북 괴산의 초대형 가마솥과 여러 지자체의 공연장은 도시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무시하고 자치단체장의 업적 욕심이 부른 실패 사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도시 4곳 못지않게 그 지역의 창조성과 서사가 잘 빚어진 성공 사례도 있다. 대전의 성심당, 칠곡군 왜관읍의 수제버거집 ㅁㅁㅎㅅ, 양양의 서피비치는 지역 고유의 매력으로 지역 정체성을 강화했다.

2022년 오세훈 시장은 '선셋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누가 봐도 런던아이를 따라 한듯한 '서울링'을 상암동 하늘공원과 노들섬 가운데 한 곳을 정해 세우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와~'라는 감탄사보다는 '왜?'라는 의문을 품는다.

'도시 재생 분야에서 서울 고유의 정체성과 유산을 활용하여 국민과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 랜드마크에도 진정성이 필요하다. 단순히 웅장한 구조물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본질과 지역 사회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야 (p. 267)'하는데 그런 게 없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들은 욕심을 버리고 도시 혁신 촉진을 위해 지역 사회의 참여가 꼭 필요함을 고려하기 바란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공공 행정을 만들어야 한다. 문화 보존이 이뤄져야 한다. 혁신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 포용적인 공간을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랑받는 곳이 되려면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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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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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끔찍한 글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독자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된 글을 훨씬 잘 이해하고 기억한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아래 비교한 두 글 가운데 어떤 글이 잘 쓴 글인지 확실히 드러난다.
'체스판이 탁자에서 떨어졌다.
상아로 된 체스판이 탁자에서 떨어졌다. (p. 148)'

하나만 더
'참가자들은 음향 차단 수준이 좋거나 훌륭한 조건에서 시험을 받았다.
우리는 조용한 방에서 학생들을 시험했다. (p. 149)'
첫 번째 글에 전문가 언어가 있어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해하려면 두 번째 글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린다.

비교 말고도 좋은 글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번역가의 말을 들어보는 거다.
'그것은 저자가 주제를 자신만만하고 명료하게 해설했기 때문이고, 긴 책의 적재적소에 사례와 통계를 배치해 리듬감을 주었기 때문이고, 기초적인 차원에서 문법이 틀린 문장 따위도 없었기 때문이다. 번역가로서 경험을 걸고 말하는데, 이렇게 잘 씀으로써 번역가를 도와주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p. 629, 630)'

20년 가까이 100여 권의 영어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명남 전문 번역가가 이 책의 저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두고 평한 글이다. 알다시피 1,000쪽이 넘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옮기는 반년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어려움도 없었다고 한다. 이 책 <글쓰기의 감각>도 같은 작가의 책이니 잘 쓴 글임이 분명하다. 글쓰기 책이니 당연히 잘 썼을 거라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도 많다.


스티븐 핑커의 <글쓰기의 감각>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훌륭한 글과 그렇지 않을 글의 사례를 비교하며 글을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해 쓴 '고전적 글쓰기 지침서'다.

1장에서는 잘 쓴 글을 알아보고 음미하며 역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의 기술은 익히도록 한다. 2장에서는 맥없는 글을 낳게 되는 작가들의 못된 습관을 보여준 다음 그런 고루한 글로부터 멀리 떼어놓을 수 있는 방법으로 '고전적 글쓰기'를 알려준다. 3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작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 '지식의 저주'에 대해 설명한다.

5장에서는 글의 연속성이 끊어지고 초점을 잃는 문제를 다룬다. 즉 글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작가와 독자 모두 주제(topic)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텍스트의 주제와 더불어 독자는 텍스트의 요지(point)도 보통 알아야 한다. 요지란 작가가 그 주제를 탐구함으로써 달성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무릇 우리가 그 행위자의 목적을 알 때만 이해되는 법이다. (...) 요컨대, 작가는 이야깃거리(주제)와 말하고 싶은 바(요지)를 둘 다 갖고 있어야 한다. (p. 288)'

4장과 6장은 각각 영어의 구문과 단어를 예문을 가득 실어 설명한다.


인상 깊었던 스티븐 핑커의 글쓰기 조언 몇 가지를 소개하면, 글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소개한다. 다른 사람에게 원고를 보여줄 것, 시간이 얼마쯤 흐른 다음 스스로 다시 읽어볼 것 그리고 글을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이다.

대부분 글쓰기 책에서 수동태보다는 능동태로 쓸 것을 권하곤 한다. 독자의 시선을 어떤 행동을 하는 행위자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면 수동태만이 가능하다.

또 하나 연결어를 가급적 쓰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스티븐 핑커는 오히려 연결어가 적어서 혼란스러워질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확신이 서질 않는다면 차라리 연결어를 쓰되 딱 한 번만 쓰라고 한다. 이를테면 내가 자주 쓰는 글인데 '~하는 이유는 ~때문이다.'의 경우다. 글이 답답해지니 '이유'와 '때문' 중 하나는 빼라는 것이다.


스티븐 핑커는 글쓰기 중요성을 세 가지 정리했다. 첫째, 잘 쓴 글은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해 읽는 사람의 귀중한 시간을 흐리멍덩한 글을 해독하는데 낭비하지 않도록 한다. 둘째, 잘 쓴 글은 신뢰를 얻는다. 마지막으로, 잘 쓴 글은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글쓰기의 감각(The Sense of Style)>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는 이중 의미가 있다. 감각(sense)이라는 단어는 '시각'이나 '유머 감각처럼 인간의 어떤 정신 능력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잘 씌어진 글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키는 셈이다. 한편 이 단어는 '난센스(nonsense)'와 반대되는 의미에서 '상식'을 뜻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글의 품질을 높여주는 타당한 원칙들과 전통으로 전수되었지만 미신이나 집착이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어법들, 글쓰기 세계의 입문 심사에 지나지 않는 시시콜콜한 규칙들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셈이다. (p. 17, 18)'

좋은 글쓰기만큼이나 중요한 건 '무엇이 좋은 글인가' 판단하는 능력이다. 챗GPT 같은 AI가 글을 쓰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AI가 내놓는 글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스티븐 핑커처럼 좋은 글쓰기 코치가 되어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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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 빈부격차는 당연한 걸까? - 2024 하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도서 중고생 논·서술형 주제토론 수업 1
태지원 지음 / 글담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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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한강 유역에 철도가 들어섰다. 이 지역 주민들이 겪은 변화는 무엇일까? (p. 4, 머리말)'

먼저 철도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군을 생각하기 쉽다. 이를테면 뗏목꾼, 여각, 객주들인데, 이들은 망했구나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이 논술 문제에 이렇게 대답한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시간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뗏목은 하루에도 여러 번 탈 기회가 있지만 당시 기차는 하루에 2번 운행하였고, 5분만 늦어도 반나절 늦은 것과 동일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시간은 지금과 달리 자시(밤 11시~오전 1시), 축시(오전 1~3시)처럼 넓은 시간대를 표현했는데, 기차가 들어서면서 정확한 시간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분 단위로 시간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p. 5, 머리말)'


이 책의 저자 태지원은 중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지루해할 수 있는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청소년을 위한 여러 권의 책을 이미 펴냈다. 내게 인상 깊었던 책은 신발에 담겨있는 역사와 문화를 다룬 <구두를 신은 세계사>다.

<자본주의 사회, 빈부격차는 당연한 걸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부의 불평등을 주제로 삼았다. 빈부격차, 기본소득, 디지털세, 취약계층의 빚 탕감, 노인 무임승차에 대해 배경을 설명하고 찬성과 반대 의견을 들려준 다음 자유롭게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도록 책을 구성했다.

빈부격차에 대한 찬반 의견을 살펴보자.

빈부격차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입장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 현실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경쟁과 보상 시스템 아래에서 열심히 일해서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사회를 위협할 것이란 입장이 맞선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당연하게 보지 않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고 가난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법을 정부가 모색하기를 바랍니다. (p. 41)'


'요즘 아이들은 AI나 챗 GPT를 통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그 트렌드를 따라가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어머니가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황석영 작가에게 한 질문이다. 황 작가의 대답은 "그럴 필요 없다"였다.

챗 GPT를 쓸 때 가장 필요한 것 질문 능력이다. 질문을 잘못하면 챗 GPT는 거짓말을 한다. 그럴 때 거짓말이란 걸 지적하면 사과하더라. 즉 자기 콘텐츠가 있어야만 좋은 질문을 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낸다는 게 황 작가가 이유를 설명한 골자다.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사람이건 챗 GPT 건 똑같다. 알고 싶은 지식은 검색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인공지능은 분석과 추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지식과 관점을 살펴보고 배우기 위해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질문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가져야만 토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챗 GPT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기를 원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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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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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의 주인공 아오야마는 일본에서 메모를 가장 많이 하며 책도 많이 읽고 항상 연구하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 못지않게 아는 것이 많다고 자부한다. 어느 날 마을에 펭귄이 떼 지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아오야마 뇌는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뇌의 에너지원인 당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단 과자를 많이 먹게 되다 보니 충치가 생겼고 치과에 자주 다닌다. 그래서 친해지기도 했고 좋아해 가슴을 몰래 훔쳐보곤 하는 치과 누나가 우연히 버스터미널에서 펭귄 만드는 것을 목격한다.

'굽질리듯이 일어선 콜라 캔은 이미 콜라 캔이 아니었다. '콜라 캔이었던 그것'은 검은 날개를 어설프게 흔들면서 아장아장 조금 걸어보고 나서는 마치 '여기가 어디지?' 하는 품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멈춰 선 펭귄이었다. '펭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p. 54)'

펭귄뿐만 아니라 이상한 것도 만들어내는 치과 누나도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 모른다. 누나는 연구에 진심인 소년, 아오야마에게 수수께끼를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아오야마는 단짝 친구인 우치다, 체스 소녀 하마모토와 함께 마을 탐험에 나선다. 때로 아버지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아오야마는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추론으로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아버지는 나에게 문제 푸는 법을 가르쳐 줄 때 세 가지 도움이 되는 생각을 가르쳐 줬다. (...) 그건 수학 같은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된다.
-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쪼갠다.
-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 닮은 문제를 찾는다.
나는 펭귄 하이웨이 연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나'와 '펭귄'이다. 나는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를 연구하는 것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막혀버린 거다. 관점을 바꾸면 이 수수께끼는 펭귄들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p. 88, 89)'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운동장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가면 날아가는 상상을 했다. 마을에 유도 도장이 생겼다. 사범은 홍보를 위해 동네 아이들을 모아 며칠 동안 돈 받지 않고 유도를 가르쳤다. 슉슉 소리를 내며 마치 유도 검은 띠인 양 어설프게 배운 것을 흉내 내며 돌아다녔다. 친구들과 공을 찰 때면 내가 찬 공이 마구처럼 날아가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우주소년 아톰>을 보며 하늘을 날아다녔고,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를 볼 때는 바닷속을 돌아다녔다. 어릴 때 나는 또 하나의 세상, 판타지 세상에서 살았다.

<펭귄 하이웨이>를 읽으며 까마득히 먼 옛날의 내가 됐었다. 옆집 딸 부잣집 예쁜 누나도 오랜만에 생각났다. 모습이 흐릿하지만 눈을 감으면 누나의 모습이 조금 선명해졌다. 판타지를 꿈꾸는 것이 어림없는 현실이지만, 눈을 감으면 판타지 세상에 어울리는 어린 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알 수 없는 힘센 적과 싸웠던... 그래서 영웅이 되곤 했던 나의 모습...

그 시절 어린 난, 나만의 판타지 세상에서 어른들 못지않게 뭐든지 잘해냈다. 똑똑했고 모든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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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실패할 걸 알면서도 왜 나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가
더글러스 켄릭.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 지음, 조성숙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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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가난한 집에서 자라 로큰롤 가수로 성공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화려하게 치장한 캐딜락을 100대나 샀다. 100대 모두 필요해서 산 것일까? 영국에 사는 싱글맘 작가 J. K 롤링은 시간을 아껴가며 힘들게 쓴 <해리 포터>시리즈가 날개 돋친 듯 팔려 큰돈을 벌였다. 그런데 그렇게 번 돈 가운데 꽤 많은 부분을 기부했다.

인도 파티일라 주의 거부 라진데르 싱은 아내가 364명이다. 그는 365번째 신부를 맞이하고 나서야 결혼을 멈췄다. 뉴욕 맨하튼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레이 오테르는 알뜰하게 모은 돈 전부를 복권 사는데 써버렸다. 지금도 그는 매년 3만 달러를 복권 사는데 쓴다.


인간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할까? 멍청하기 때문일까? <200% 실패할 걸 알면서도 왜 나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가>는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유를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삶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살아가면서 선택하고 또 선택할 일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그 수많은 선택을 할까. 옳고 그름 또는 선과 악이라는 양심을 기준 잣대로 판단할까? 아니면 무엇이 손해고 이익인지가 선택의 중심일까.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두 저자는 최적의 선택을 하기 위한 7개의 부분자아가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이들 자아는 인류가 나타나고부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또한 부분자아 가진 진화 욕구는 각각 다르다.

'자기보호 부분자아'는 신체에 해를 끼치는 모든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한다. '질병 회피 부분자아'는 병원균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서 안전하기를 원한다. 호감을 얻고 친구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는 건 '친애 부분자아'이고, 존경받는 것을 원하는 욕구는 '지위 부분자아'다.

'짝 획득 부분자아'는 주목을 끄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고 훌륭한 짝으로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장기적인 로맨스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건 '짝 유지 부분자아'이고, '친족 보살핌 부분자아'는 자기 아이, 형제들, 친척들뿐만 아니라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은 보살피는 일에 가장 관심이 크다.

'부분자아의 개념은 진짜 당신은 하나가 아닌 여럿임을 의미한다. 친구와 있을 때의 당신, 데이트할 때의 당신, 가족과 있을 때의 당신, 승진을 갈망할 때의 당신 말이다. 이 모두가 다 똑같이 진짜 당신이다. (p. 62)'

엘비스 프레슬리와 레이 오테르의 삶을 통틀어 '지위 부분자아'가 주도권을 쥔듯하다. J. K 롤링은 '친족 보살핌 부분자아', 라진데르 싱은 '짝 획득 부분자아'가 주도권을 가진듯하다.

이들 모두 선택하기 전에 또 다른 욕구를 가진 부분자아가 나타나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레이 오테르에게는 '자기보호 부분자아'가, J. K 롤링에게는 어쩌면 '지위 부분자아'가 그리고 라진데르 싱에게는 '짝 유지 부분자아'가 제동을 걸었을 것이다. 각자 어떤 욕구에 더 힘을 실어주었는지에 따라 이들 인생이 결정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해온 나의 선택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후회가 더 많은 삶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왜 그런 어이없는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리석을 결정을 계속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 결정은 '더 깊숙한 곳에서 진화적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잠재의식적 프로그램에 의해 이끌린 (p. 352)' 것이다.

다만 어떤 행동을 선택하기 전에 내 의지로 내가 의도하는 부분자아를 깨울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 주도권 쥐어야 할, 지금 잠자고 있는 자아를 깨워 자문을 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살 여력이 없는데도 어떤 것을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면 자신의 심층에 질문 하나를 던져라. 이것을 구입해서 내가 충족하려는 진화적 욕구는 무엇인가? (p.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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