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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평점 :
언제부터인지 카페 앞에 베이커리라는 글자가 붙은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카페가 많던 시절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곤 했다면, 이제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요리조리 살피며 고른 빵과 음료를 놓고 책을 읽거나 책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작은 책에 실린 글들과 소개된 책들이 한 덩이의 갓 구운 빵처럼 당신의 마음속 허기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기를 (p. 7, 새로 쓰는 작가의 말)'
<다정한 매일매일>은 빵을 핑계 삼아 책을 소개하는 백수린 작가의 서평집이다. 빵에 대한 백수린 작가의 TMI를 더하자면, 빵을 좋아하긴 하지만 찾아다닐 만큼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빵 만드는 건 좋아하고 나름 철학이 있다.
'손으로 반죽하고,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는 시간을, 실패해도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그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 바쁘고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내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p. 6, 새로 쓰는 작가의 말)'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시간, 비단 작가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금이라고 짬이 나면 뭔가 꼭 채워 넣어야 안심이 되는 세상, 우리 모두에게 반죽이 부풀어 오르길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빵 냄새가 나는 글, 그리고 여러 작가의 작품에서 고소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빵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백수린 작가, 각양각색의 빵 냄새만큼이나 다양한 작가의 묘사는 모두 필사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다른 이들의 아우성에 가려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불안과 두려움의 파도에 쉽게 휩쓸려버리는 시기가 이십 대이기도 하니까. (p. 54)'
우리 집의 이십 대 두 아이는 부모의 아우성을 어떻게 처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지 궁금하다. 이십 대였던 적이 있었던 나와 아내는 분명 그때 그 아우성을 소음이라 여겨 귀를 틀어막았을 텐데. 누구나 누려 할 행복과 불행의 몫이 있듯이 이십 대도 그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몫이 있다. 주변의 아우성에 휩쓸리면 누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11월은 이상한 달이다. 마음이 온통 스산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 헐벗은 나무, 매섭게 추워지는 공기,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의 뒷장. (p. 81)'
11월이 왜 유독 공허한지 그 이유를 알겠다. 열두 달 가운데 빨간 날이 없는 달. 마지막 달 12월보다 11월은 남은 한 달이 있어 더 초조했던 것이다.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에도 어정쩡한 11월, '얼마 남지 않는 달력의 뒷장' 느낌이 딱 맞다.
표현할 말이 마땅치 않아 어딘가 처박아 놓았던 기억을 백수린 작가의 글로 인해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단어가 있다. 별다른 추억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들. 내게는 '다방'이 그렇다. 똑같이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공간을 가리키는 단어지만 '커피숍'이나 '카페'와 달리 '다방'이라고 발음할 때만 환기되는 향기와 공기의 질감이 있다. (p. 172)'
커피숍, 카페, 다방 모두를 겪어본 나는 안다. 향기와 공기의 질감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취업한 후 첫 맞선 장소였던 인천의 다방. 담배 냄새와 커피, 쌍화차 등이 섞인 쾌쾌한 공기가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나 보고 그 냄새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1호선을 타고 멀리멀리 가기 때문에 알게 된 기쁨도 있다. (...) 책을 읽다 보면 공기가 바뀐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것은 비 냄새야. 고개를 들어보면 아니나 다를까, 열린 지하철 문 너머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p. 204, 205)'
1호선을 타고 대학교를 다녔던 터라 이 글을 읽으며 대학 생활 4년을 통째로 살려낼 수 있었다. 공기가 다른 느낌, 난 안다. 심지어 역마다 냄새가 달랐다. 1호선 소나기 냄새는 온갖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캠핑 중에 만난 소나기, 바닷가를 거닐다 만난 소나기까지도. 그 냄새도 서로 달랐다.
백수린 작가와 달리 나는 빵을 무척 좋아하고 빵 만드는 건 자신 없다. 고등학생 시절엔 돈이 없어 양껏 먹고 싶었지만 구색으로 빵 몇 개만 앞에 놓고 여학생을 만났다. 지금은 여기저기에 근사한 베이커리 카페가 많다. 그곳엔 내가 좋아하는 빵 냄새와 함께 각양각색의 빵들이 즐비하다. 이젠 당연히 고등학생 시절보다 여유가 있으니 빵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빵 고르듯 읽는 책 <다정한 매일매일>이다. 백수린 작가 써서 보내는 편지글에는 고소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빵 냄새가 난다.
'소설가가 된 이후, 이따금씩 친구의 그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에겐 찻집도 없고,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없지만, 나는 어쩌면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계속 답장을 써 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p. 262, 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