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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 까치 / 2024년 6월
평점 :
스토리텔링으로 인정받은 작가 앤서니 새틴의 <노마드>는 스키타이인, 흉노, 페르시아인, 훈족, 아랍인, 몽골족, 오스만인, 아메리카 원주민 등 1만 2,000년에 걸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국과 역사를 만드어낸 유목민이라는 아웃사이더를 통해서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세계 인구 아마도 500만 명
유목민 인구 그 500만 명의 대부분
옛날 옛적에 우리 모두는 수렵채집인이었다. 인간이 수렵채집을 멈춘 것은 불과 1만 2,000년 전으로, 인간의 연표에서 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p. 29)'
이야기는 1만 2,000년 전 튀르키예 유적인 괴베클리 테페로 시작한다. 기원전 9500년에 수렵채집 사회 사람들은 괴베클리 테페를 세웠다. 거주한 흔적이 없다는 점은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 사원으로 추정되는 괴베클리 테페를 세웠음을 뒷받침한다.
건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하다가 힘을 아끼려고 점차 가축화와 식물 재배를 하며 그곳에 머물기 시작했을 것이다. 1만2,000년 전 괴베클리 테페에서 농업과 문화의 혁명이 시작됐다. 이런 변화의 계기는 이동하며 살았던 유목민이었음이 틀림없다.
유목민 유전자 이야기도 흥미롭다. 케냐 아리알 부족의 일부는 염소와 양을 치며 이동하며 살고, 다른 일부는 고지대에 정착해 작물을 재배하면 산다. 이들 부족의 5분의 1이 DRA4-7R이라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7R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이동하면 사는 데는 적응을 잘 한 반면 정착해 사는 데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 5명 가운데 1명은 ADHD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유목민으로 살아갔다면 오히려 우월한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앤서니 새틴은 이동하며 사람들과 정착해가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추적한다. 초기에는 정착민과 유목민들이 수렵채집에서 농경과 목축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공존하며 협력한다. 유목의 형태가 복잡해지면서 이들이 세운 제국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현대에 이르러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해지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유목민들의 시선은 자취를 감춘다.
1만여 년에 이르는 유목민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저자는 과학, 진보, 계몽주의를 거스르는 포악한 야만인, 미개인이라는 유목민을 가리키는 이미지는 사실과 다름을 발견한다. 정착민과 서로 협력했고, 다양성을 존중하기도 했다. 타 종교에 관대했으며 여러 문화를 포용했다. 심지어 양심의 자유, 자유로운 이동, 시장 개방으로 글로벌 교역망과 문화 융성의 발판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그럼 우리는 왜 유목민의 역사를 잘못 알고 있을까. 역사가 정착민을 중심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을 진보에 배치되고 정착민과 대립 관계로 보는 역사관이 문제였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비주류로 홀대받았던 유목민을 위한 인류학적 보고서요 역사서라 할 수 있다.
'현재
세계 인구 78억 명
도시 인구 56억 명
유목민 인구 4,000만 명 (p. 404)'
요즘 '디지털 노마드'란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 유목민은 사라져 몇 명 남지 않았지만 디지털 환경 속에서는 유목민이 활개친다. 디지털 노마드 직업군도 떠오른다. 자연에 기대어 가볍게 살아가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스콧 니어링과 같은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우리 몸속에도 DRA4-7R이라는 유목민 유전자 본능 있나 보다.
부모님의 일 때문에 12살 때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이사했다. 몇 번 이사를 했지만 그 동네에 살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이번엔 나의 (먹고사는) 일 때문에 서울 거여동으로 옮겨 독립했다. 결혼하기 전 서울 등촌동에 집을 마련해 이사했다. 아버님을 모시게 되면서 집을 키워 수원으로 이사했다. 아이들이 크니 방이 더 필요해 남양주시에 와 살게 됐다.
내 고향엔 그곳에서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동네 친구들도 있다. 작은 아버님 두 분도 그곳에서 태어나 아직도 살고 계신다. 수렵 채집인이나 초원의 유목민만큼은 아니지만, 내 고향 친구나 작은 아버님들에 비하면 나는 일 때문에 생활환경 때문에 이동하면 삶을 꾸리는 유목민의 삶을 산 셈이다.
내게도 DRA4-7R이라는 유전자가 있는 모양이다. 한편 직장은 한 곳에서 정년을 맞았으니 그 유전자가 날 완전히 지배하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유목민 삶의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환경문제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인 요즘, 자연에 맞서지 않고 그 흐름을 따라 살아가는 유목민은 누구였는지 그 깨달음 주는 앤서니 새틴의 <노마드>, 지금 꼭 필요한 책이어서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