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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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건강에 좋은 건 우리 모두 잘 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등산을 해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 등산을 하지 않고도 건강한 사람이 제법 많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를테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사람이 산을 오르면서부터 건강이 회복된 모습을 봤다면 말이다. 등산을 시작한다. 몸이 좋아지는 걸 느끼면 계속 산을 찾게 된다. 주변의 영향을 받아 습관이 시작됐다.

생각도 그렇다. 그 생각의 옳고 그름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그 생각을 따른다. <친애하는 슐츠씨>는 인류의 오래된 습관들을 이야기한다. 가제본에서는 그 가운데 세 가지를 소개한다.

남자 옷에는 주머니가 많은데 왜 여자 옷에는 주머니가 드물까? 남성과 여성 가운데 남성만이 기능하는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근거는 없다. 당연시하는 사회적 요구만 있을 뿐이다.

마라톤을 처음 완주한 여성이 나온 건 1966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였다. 이전에는 여성의 마라톤 참가가 불가능했다. 왜? 이유는 여성이 마라톤 같은 먼 거리를 뛰면 자궁이 떨어지고 가슴에 털이 자라는 등 건강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미국에는 흑인은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오래된 편견도 있었다. 이런 생각은 심지어 흑인은 물에 잘 뜨지 않는다는 속설까지 만들어냈다. 시민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받아들인 찰스 슐츠는 1968년 연재만화 <피너츠>에 흑인 아이 프랭클린 암스트롱을 조연 캐릭터로 처음 등장시켰다. 첫 에피소드의 배경을 해수욕장으로 했고 흑인 아이도 수영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렸다.


<친애하는 슐츠씨>는 우리에게 널리 퍼진 차별과 배제 대부분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관습이 되어버린 차별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그 거부는 깨달음과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을 편견들을 어쩌면 이전 기회에 깨부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대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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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만든 세계 -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마틴 푸크너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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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없었다면, 다시 말해 이야기가 입으로만 전해졌고 글로 기록되지 않았다면... 철학과 정치사상은 물론 종교적 믿음도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마틴 푸크너는 말한다.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글로 쓰인 이야기가 있다. 4,000년에 걸쳐 인류는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 이 세상에 가득 채워놓았다. 텍스트는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만들었다.


하버드 대학의 마틴 푸크너 교수는 <글이 만들 세계>에서 근본 텍스트를 중심으로 제국과 국가들의 흥망성쇠, 철학과 정치사상 그리고 종교가 탄생하는데 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책에서 문학의 역사는 바로 이 최신 혁명, 우리의 글쓰기 기술 혁명에 발맞춰 쓰인다. (p. 21)'

알렉산드로스를 사로잡은 <일리아스>는 그의 원정과 함께하며 그리스 문자를 다양한 민족들의 공통의 문자로 만들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 당시 살았던 이들의 내면의 삶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근본 텍스트 <성서>는 에스라가 펼쳐 보였을 때 경배의 대상이 됐다.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글로 전환시킴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상이 됐다. 무라사키라는 여성의 관찰 기록은 일본 궁정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액자 이야기 <천일야화>는 세계문학의 위대한 형식 하나를 만들어냈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힘입어 종교개혁을 이루어냈다. 마야의 서사시 <포폴 부>는 사라진 마야 문명이 독자적인 문자와 화려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돈키호테>는 저작권이라는 재산을 문학 시장에서 훔쳐 가는 해적들을 물리쳤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문학을 자르고, 붙이고, 변형시켜서 독자들에게 유통하는 최초의 저술 기업가였다. 괴테의 중국 소설에 대한 관심은 세계문학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공산당 선언>은 근대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텍스트다.

아흐마토바와 솔제니친은 압제하에서 어떡해야 문학이 살아남는지 그 방법을 제시했다. 서아프리카의 구전 문학 <순자타 서사시>는 말 재주꾼에 의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글로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데릭 월컷은 서사시 <오메로스>로 하나의 장소와 문화, 언어를 문학으로 번역함으로써 카리브 해 신생국가 세인트루시아에게 근본 텍스트를 선사했다.


'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발화(發話)를 시공간으로 깊숙이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다. (p. 416)'

물론 문자 자체로도 힘을 발휘했지만, 종이, 인쇄술, 책 그밖에 글쓰기와 관련한 기술과 서로 작용했을 때 글은 강력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글이 보존되고 전달되면서 시공간을 뛰어넘게 되자 지식의 축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글은 종교를 만들었다. 국가도 만들었고 사상도 글을 토대로 한다. 결국 우리는 '글이 만든 세계'에 산다.

'근본 텍스트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면서 커다란 권력과 중요성을 쌓아가고 마침내는 여러 문화들 전체의 소스 코드가 된' 텍스트들이다. (p. 464,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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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예수 - 종교로부터 예수 구하기
강남순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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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 신앙이 아빠 덕분에 모태 신앙이 된 딸아이와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준비했지만 아직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차별 금지법'에 대해 의견을 나눴었다. 보수 기독교(우리 가족은 장로교 통합인 교회를 다니고 있다)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와서인지 딸아이도 '차별 금지법'을 반대했다. 이 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보수 기독교 주장과 결이 약간 다르지만 동성애가 죄란 입장이다. 만약 타고난 것이라면? 딸아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좀 달리 생각해 볼 문제라고 답했다.

또 하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천지창조를 비롯한 구약성서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믿어야 하는가였다. 딸아이는 사실로 나는 의미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심판의 문제도 왜 사람을 죽이고 못된 짓을 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그냥 놔두는지 딸아이는 불만이었다. 왜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어야 하는지 되물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너무 우리 편의나 일방적 상상으로 만드는 건 아닌지 내 생각을 말했다.


'내가 '철학자'라는 표지를 사용하는 것은, (...) 예수의 가르침이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만 제한될 필요가 없고, 또한 제한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모든 생명'을 향한 사랑, 환대, 책임, 용서, 평등의 가르침은 인류 보편의 가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 332)'

<철학자 예수>는 왜 예수님을 철학자로 접근해야 하는지, 우리가 철학자로 만날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인지, 그리고 그 예수님의 사랑, 용서, 환대, 평등과 정의의 철학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21세기, 예수님이라며 무엇을 했을까를 전해준다.

'내가 예수에 대하여 아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p. 36)'
이 질문에 교회 목회자로부터 들어 예수님을 알게 됐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우리 가족에게 저자인 강남순 교수는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예수님을 알려준다.

교회에서 만난 익숙한 예수님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수님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새롭게 성경을 번역해 인용한다. 예수님과 듣는 사람 사이의 위계를 없애기 위해 예수님의 말도 존댓말로 번역했다. 하나님을 종교적 범주를 벗어나도록 '신'이라고 했다. 성경 말투의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일상 언어로 성경 구절을 번역했다.

그리고 철학자 예수를 만나는 여정에 주요 철학자 자크 데리다, 존 카푸토, 한나 아렌트의 말이 예수님의 말과 함께한다.


교회라는 제도에서 딸아이가 가진 의문들, 동성애, 창조과학,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선악을 제재하는 공의의 하나님 등에 대한 사유를 확장 가능케하는 책이다.

동성애는 모든 젠더와 성, 즉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간성의 사람들 모두 인간임을 인정하면 된다. 예수님이 사랑하고 실천한 대상은 모든 인간이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욕심을 그만 내려놓으면 된다. 그리고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좀 더 상세하게 기록됐어야 한다. 공의의 하나님은 억울하고 분해서 우리가 화풀이하려고 만들어낸 하나님의 표상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옳고 그름을 떠나 딸아이에게 이 책을 권해보려 한다. 판단은 딸아이의 몫이다. 또한 기독교라는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철학자 예수님의 삶이 올바른 삶을 추구하는 당신의 길을 밝게 비춰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굳어진 종교적 교리에 갇힌 예수, 혐오와 차별에 호명되는 예수, 배제와 심판의 예수로부터 경계 없는 사랑, 타자에 대한 연민, 모든 사람을 평등하고 존엄을 가진 인간으로 대하고 구체적인 모든 종류의 정의를 이루기 위해 개입하고 연대하는 그 예수로 구해내야 하는 것이 바로 21세기 '예수 구하기' 운동이며 철학이 되어야 한다. (p. 349)'


딸아이에게 천국도 내세보다는 지금 한 번뿐인 소중한 나의 삶에서 이뤄보자고 했다. 어떻게?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때론 웃고 울고 슬프고 기쁘겠지만 사랑 가득한 예수님의 삶을 추구하며 닮아가려는 삶, 그것이 아빠가 생각하는 천국이라고.

'이런 의미에서 예수가 제시하는 '길, 진리, 생명'이란 결국 모든 생명이 서로 따스한 온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함께 살아감의 철학"이다. (p. 354,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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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10주년 한정 특별판, 양장)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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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p. 7, 첫 문장)'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을 함락하던 날 계엄군 총에 목숨을 잃은 중학교 3학년 동호라는 소년의 슬픈 이야기다.

정대는 문간채에 누나와 사글세로 사는 친구다. 시위대 사이에 끼어있던 열다섯 살 동호는 계엄군 총에 맞아 쓰러진 정대를 두고 달아난다. 정신을 차리고 죄책감에 친구를 찾아 나선 동호는 임시 안치소가 마련된 상무대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시신 수습을 도우며 시민군에 참여한다. 계엄군이 도청 무력 진압에 돌입하던 날 형과 누나들이 동호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동호는 고집을 피우며 도청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그날 목숨을 잃는다.

작가는 시체로도 증언할 기회조차 없는 실종자, 죽은 정대에게 목소리를 내주어 실종자의 한을 풀어준다. 이어서 그날 동호와 같이 있었던 고등학생 누나 김은숙과 임선주, 대학생 형 김진수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를 등장시켜 동호에 대한 회상과 그날 이후 이들이 아물지 않은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삶을 얼마나 힘겹게 지탱해 가는지를 들려준다.


해병대에 입대해 1982년 10월 자대 배치받았을 때 제대 두 달을 앞둔 선임 기수가 있었다. 데모 기수라고 불렀는데 1980년 데모하다 잡혀 강제 입대당한 대학생들이었다. 훈련병 시절부터 어느 정도 고참이 될 때까지 이들은 구타와 함께 끔찍한 괴롬힘을 당했다.

'그때 나는 수유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집에 돌아오면 대문 안쪽에 떨어져 있는 석간 ㄷ일보를 집어 들고, 좁고 긴 마당을 따라 걸으며 머리기사를 읽었다. 광주 무정부 상태 5일째. 사진 속의 검게 그을린 건물들. 이마에 흰 띠를 두른 남자들로 가득한 트럭, 집안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침통했다. 안돼, 오늘도 전화가 안돼. 대인시장통의 외가에 엄마는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 (p. 208)'

1980년 5월 '광주 무정부 상태'일 때 나는 재수생으로 서울 종합반 학원으로 다니며 입시 준비를 했다. 그러니깐 내가 재수를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해병대 데모 기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니, 전철역에서 전경들이 내 가방을 뺐어 거꾸로 쏟을 때 폭력이 두려워 그 수치를 참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쏟아진 것들을 가방에 주워 담았던 걸 보면 나에게 항쟁 주체로서의 모습은 없고 비겁함이 얼핏 보인다.


손석희 앵커는 2016년 5월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던 날,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한강이 천착해온 주제라며 <채식주의자>가 개인과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다룬 거라면 <소년이 온다>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을 다룬 것이라고 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p. 17)'

광주 시민에게 폭력을 가한 세력을 국가라 할 수 있을까? 권력에 눈이 멀어 반란을 일으켰고 그 권력을 지키려고 폭력을 휘두른 반란군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라면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이들에게 총을 쏠 수 없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p. 117)'

국가라면 두 손을 들고 내려오는 어린 학생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할 수 없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p. 133)'

국가라면 조금은 당당한 구석이 있었을 텐데, 겁에 질려 허세 떠는 모습뿐이다. 양심, 광주 시민들은 약했지만 그들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양심은 무서웠다. 계엄군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팔십 만발(광주 사십만 시민의 두 배) 탄환으로 무장한 군인들은 광주 시민의 양심을 보자 겁에 질려 총질만 해댔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p. 114)'

배고픔을 참지 못해 남은 카스텔라와 환타를 먹어도 되냐고 묻는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죽음 택했을까. 이데올로기도 뭣도 아닌 삐뚤어진 영화놀이로 두려움을 감추는 비겁한 당신들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양심을 이 소년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 135)'

1980년 5월 살아남은 사람들의 자살률이 11퍼센트라고 한다. 광주 항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죽음과 싸우고 있다. 이들이 주고받는 말은 "죽지 마. 죽지 말아요."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p. 207)'

그 당시 광주에 있었던 군인이라면 이젠 진실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잘 살고 있다면 트라우마와 죽음에 맞서 아직도 싸우는 사람들과 비교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당신들 곁에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을 업어 병원 앞에 내려놓고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던데. 사람을 맞히기 싫어 하늘을 향해 총은 쏘고 시신 앞에서 군가를 부를 때 입을 다물고 있던 군인들도 있었다던데.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그래야 하지 않은가. 편안해선 안되지 않는가? 깊숙이 감춰둔 양심을 꺼내야 하지 않을까?

끝내 양심을 버리고 국론 분열을 말하면서 이제 그만 광주는 잊고 미래로 가자고 말하는 부류에 서기로 했는가. 소년이 오고 있다. 당신에게로.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소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당신은 소년이 온다면 벌벌 떨 것이다. 언제까지 두려움을 감추고 태연한 척 허세를 부릴 텐가.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술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쉽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 192)'

소년이 오면 소년이 좋아하는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고 꽃이 핀 곳으로 이젠 우리가 소년을 데리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애도하며 장례도 치러야 하고. 언제까지 장례를 미뤄두며 작별하지 않을 텐가.


'114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다시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p. 69)'

초록이 가득한 오월이 오면 하루쯤은 다른 색깔을 떠올려야 한다. 하루쯤은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선 안된다. 1980년 오월 문명의 도시에서 핏빛 저항이 있을 때 재수 종합반 학원을 다니며 항쟁의 주체로 나서지 못했으니 오월이 올 때마다 하루만큼은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돌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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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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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살기 좋아졌다. 경제와 기술의 발전으로 식생활과 주거환경 그리고 건강관리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중세의 왕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고 한다.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아폴로 11호에 탑재한 컴퓨터보다 700배나 더 큰 메모리와 10만 배 더 좋은 성능을 갖춘 기계다.

그런데 왜 걱정과 불안은 늘어갈까? <걱정 중독>은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됐는지를 파헤치는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떻게 미래, 원인과 결과, 위험과 재앙,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좇는다. (p. 14)'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얻어 소비하는 공동체에게 과거와 미래는 그들의 자아상과 세계관에 미미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까지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온 산족의 경우,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부모와 조상이 누구인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내다보는 미래도 불과 며칠에 불과하다. 오로지 '지금'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미래를 대비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그들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으로 지연된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미래는 걱정거리가 됐다. 통제할 수 없는 날씨나 병충해를 대비하려면 지금보다는 미래에 주의를 더 기울여야 했다. 내년에 가뭄이 들면 어떡하지? 불안하다. 지금 발생하지 않았지만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가뭄을 상상하니 걱정이 생긴다.

'만약에... 이면, 어떡하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생각이다. 인지 연구에서는 이것을 반사실적 사고라고 부른다. (p. 76)'

'만약에 ... 이면, 어떡하지?'와 마찬가지로 후회에서 비롯되는 '만약에 ...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의 결과 역시 지금 벌어진 사실이 아닌 '반사실적 사고'이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걱정을 하며 살게 됐을까? 인류는 역사의 95퍼센트에 달하는 약 20만 년 동안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지 않고 잘 살았다. 먼 훗날을 내다보지 않았다. 시간관념은 인류에게 미래를 선물했다. 미래의 지평선을 끝없이 확장하는 상상력으로 미래 비전을 지어내어 걱정거리를 찾아냈다.

현대인에게 신비한 건 없다.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지식이 인류에게 있으니 걱정거리는 더 는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무실 밖으로 나길 일도 큰 걱정이다. 세상은 또 얼마나 위험해졌나. 머릿속도 복잡하다. 생각하며 생각할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만 든다. 게다가 남들이 나를 비정상으로 보는 것 같아 그것도 걱정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걱정 스위치를 끄려고 노력한다. 그럴수록 걱정거리가 더 머릿속에 가득해진다. 불안에서 벗어날수록 불안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걱정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방법은 걱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미래는 어차피 불확실하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가만히 앉아 비현실이 가득한 걱정을 그만두고 일어나서 행동해야 한다. 모든 힘은 행동에서 나온다.

'행동한다는 것은 재앙이 일어날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재앙이 일어날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 위험을 감수하든 회피하든, 재앙이 일어날 위험은 그대로다. 하지만 모든 재앙이 미래의 일은 아니다. (p. 401, 402)'


뉴욕의 건설노동자 가운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모호크 인디언 부족은 유난히 고소공포증이 없는 줄 알았다. 모호크 족은 높은 곳에서 불안해하지 않았다. 마치 땅에서 걷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좁은 들보 위를 걸어 다녔다. 모호크 족이 '만약에 ... 이면, 어떡하지?를 생각하며 몸이 굳어버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하루에 서너 번씩은 거의 떨어질 뻔합니다." 인터뷰에서 한 모호크 족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일해요. 나중에 누군가가 '아까 네가 아래로 떨어지는 줄 알았어'라고 말하면, 그제야 그 일이 떠오릅니다." (p.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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