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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평점 :
2011년 8월, 서울에서 무상급식 주민 투표가 있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이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반대하며 주민 투표를 제안했고, 그는 이 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소득 구분 없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것인지를 묻는, 즉 '선별적 복지'냐 아니면 '보편적 복지'냐를 묻은 투표였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도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박영서의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조선이 설계하고 집행한 복지 정책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조선은 구황, 의료,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펼쳤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구황과 취약 계층 복지를 조선시대 기록을 살펴보며 다룬다.
1장에서는 구황 정책인 환곡과 진휼 그리고 취약 계층인 아동, 노인, 여성, 장애인, 노비에 대한 복지 정책을 설명하고, 2장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핀다. 마지막으로 '다시 여는 글'에서는 조선의 복지정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재해석한다.
조선의 복지는 '가장 어려운 자'는 돕는, 아니 왕의 시혜(施惠)에 가까운 정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자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돕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일 때 왕이 베푸는 식의 복지정책이어서 한계가 있었다.
또한 어려운 자를 돕는다는 점에서 조선의 복지 정책은 '선별적 복지'였다. 선별적 복지에는 선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선별하는 자의 힘이 작용하는 부패도 생겨난다. 흔히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든다. 이를테면 실업급여를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주면 아예 일할 생각을 안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눠주는 자인 관료들의 부패가 복지 정책을 망쳐버렸음을 조선의 경우에서 알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해 횡령, 탈법을 동원해 부를 챙겼다.
'그래서 '복지를 확대하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국민이 나태하면 부패가 만연해진다'는 말은 무책임합니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수단이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p. 219)'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따질 때마다 화가 난다. 언뜻 보면 한정된 지원금을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지원하자는 주장이 효율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복지만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학생을 대상으로만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발상은 불평등을 선명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2011년 소득 하위 50퍼센트의 아이들에게 '너는 못 사는 아이야'라는 낙인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찍으려는 의도가 너무 괘씸했다.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에게 지급하는 급식카드인 '꿈나무카드'를 쓰는 아이들이 키오스크가 있는 매장을 찾아간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꿈나무카드' 내미는 걸 수치스럽게 여긴다. 왜? 멸시하고 불편한 눈으로 보며 수치심과 절망감을 그 아이들에게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니가 어떻게 이런 비싼 음식을 급식카드로 사 먹을 수 있냐'라며 아이를 쫓아내고 복지센터에 신고까지 한 어른도 있었다.
빈부격차는 급속도 벌어지고 있는데, 복지가 불평등을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펼쳐 온 증세 없는 (선별적) 복지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해야 했다. 언제까지 태어날 때 불평등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외면하고 가난을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릴 것인가.
'따라서 앞으로의 복지 정책은 어떤 정책의 장단점과 그것의 옳고 그름을 밝히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장단점을 모두 고려하였을 때 '얼마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까?'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p. 286)'
우리 사회의 불공정 요인을 그나마 최대한 없애는 대안은 기본소득 제도밖에 없다는 저자의 생각, 여기에 나의 의견도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