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작년 이맘때다. 인스타 친구의 피드로 봉부아(봉천동 부자 아줌마...) 작가를 알게 됐고 그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다가 글의 유쾌한 유머에 빠졌다 (응?). 망설이지 않고 봉부아 작가의 첫 책 <다정함은 덤이에요>를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고 10년 차 베테랑 편의점 언니의 다정한 편의점 에피소드에 행복했었다.
지난해 말 그의 두 번째 책 출간 소식에 희망도서 신청을 하려 했으나, 그 해 예산이 모두 소진되어 새해가 돼야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서 희망찬 새해가 밝자마자 신청했다. 신청도서가 밀려 3월이 돼서야 <그걸 왜 이제 얘기해>를 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책 출간에 얽힌 에피소드와 친구 이야기를 주로 다룬 자전적 소설이었다. 계속 작가의 블로그를 읽어온 터라 일상 에세이를 읽는 듯했지만, 소설이라고 하니 픽션이 더해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작가 봉부아는 따분하고 지루할법한 일상을 유쾌하게 만드는 마법사다. 그의 일상에 우리의 일상이 겹친다. 자신의 능력에 인색하고, 어떤 연유로 질투하게 돼 친구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때론 절망하고, 분해서 소심하게 복수하고... 세상 모두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하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일상을,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유머를 발견해 작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탈모 방지와 발모 기술에 관한 생각이다. 머리카락이 안 빠지거나 새로 나게 하는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연구 중지되어야 한다(치료용만 허용하자). (p. 195)'
왜??? 발모제가 분명 비쌀 테고,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 그걸 못 살 테고, 그럼 가난한 사람만 대머리가 될 테고... 불공평하다. 누구나 대머리 일수 있어야 공평하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즉 돈이 세상을 맘대로 조정하면 안 된다는 건데, 그 생각이 유아적이긴 하지만 어느새 '맞아 맞아~ 그건 안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우울해진대, 돈 잘 번다는 저 집 남편은 성격이 괴팍할 거야, 공부 잘하는 그 집 아이는 인성이 안 좋을 거야. 시댁이 많이 도와준다며? 그만큼 간섭이 심할 거야. 우리 나이에 저런 몸매? 빵을 안 먹어서 히스테리 부릴 거야. (p. 197)'
한강을 따라 걷다 보면 한강 뷰 아파트를 자연스레 본다. '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면 우울해진대...' 흐흐흐... 가끔 아내가 하는 말을 여기서 읽게 되네... 어떤 표정을 보여줘야 할지... 작가의 표현처럼 '신 포도들...' 그 신 포도가 단물나는 꿀 포도란 걸 내가 알듯이 아내도 알겠지? 봉부아 작가도 우리 부부도 모르고 싶을 뿐이다. 흥~~~
'조금 전 한 여자가 친구를 그리워하며 우수에 젖은 채 걸었던 길을, 또 한 여자가 남편의 지사제를 사기 위해 허둥대며 뛰어가고 있다. 그 두 여자가 모두 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p. 273)'
믿기지는 않지만 때론 센티멘털한 나, 때론 허둥대는 나가 내 모습이기에 모순 덩어리인 세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속상한 마음을 접고 빙긋 웃게 만든다. 작가의 진솔함에 유쾌함이 더해진 결과다. 가끔 마음이 상할 때 봉부아 작가의 블로그를 열게 만드는 마법의 힘이 거기서 나온다. 작가가 바꿔놓은 살아갈만한 일상에 힘을 얻어 내 일상도 그렇게 바꿔놓곤 한다.
'인생은 어떤 맛이 나올지 모르는 사탕 뽑기라고 한다. 내가 여태 뽑은 사탕은 쓴맛이거나 신맛뿐이어서, 지지리 운이 없는 나는 내 사탕 통마저 불운의 맛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언젠가부터 달콤한 맛이 하나씩 나오더니 지금은 무얼 뽑아 입에 넣어도 단맛이 난다. 내가 쓴맛을 먼저 뽑았을 뿐, 나의 사탕 통도 행복과 불행이, 기쁨과 슬픔이 골고루 들어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내게 남은 사탕이 단맛뿐이라고 자신할 수 없고, 언젠가 강력한 쓴맛에 또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주저하지 않고 사탕 통에 손을 넣는 것. 무슨 맛이 나올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그날의 맛에 따라 기뻐하고 안도하며 때로는 눈물짓는 일이다. (p. 277)'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이란 말이 생각난다. 사탕 통이든 초콜릿 상자든 버릴 수는 없다. 사탕 하나씩, 초콜릿 하나씩 꺼내 먹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삶이다. 어떤 맛의 사탕이 됐든지 어떤 맛의 초콜릿이 됐든지 내가 먹어야 할 것들이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맛의 사탕이나 초콜릿이 남아있기를 바랄 뿐. 그게 희망이다.
'남편이 무서운 얘기를 한다. 내가 밤중에 빈 벽에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어느 날은 어둠 속에서 콩콩 뛴다는 것이다. (p. 191)'
어떤 상황일지 궁금한가? 책을 읽고 확인하길 바란다. (아님 내 블로그의 발췌 글에서 확인해도 되고 ㅎㅎㅎ)
덧)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대성공이다. 역시 맛집은 줄 서기로 알아보고, 재미있는 책은 손때로 알아본다. (p. 163)'
바람을 덧붙인다면, 내가 신청한 봉부아 작가의 이번 책이 도서관에서 내가 다시 꺼냈을 때 손 때가 잔뜩 묻어 있기를... 그래서 그가 세 번째 책 도전에 자신감을 갖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