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명문장 필사 100 - 생각을 깊게 삶을 단단하게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나만의 필사책
김지수 엮음 / 마음시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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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보다 젊고 유약하던 시절, 아버지는 내게 조언을 해주셨는데, 나는 그때부터 줄곧 그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걸 기억하거라." (p. 44,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조지 오웰,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카뮈 등 고전문학 작가들의 작품 64편에서 100문장을 추려낸 고전문학 필사 책, <고전 명문장 필사 100>을 마음시선에서 펴냈다. 필사하기 좋게 잘 펴지도록 실 제본했다. 그래서 책등이 고급져보인다.

책 뒤쪽에는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줄거리를 간략하게 실었다. 읽지 않았더라고 잘 알고 고전문학이라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필사하다가 행여나 잘못 옮겨 쓸까 봐, 짧게 쓰고는 원문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하다 보면 글귀 하나를 몇십 번 곱씹어 읽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글이 가진 의미도 여러 번 바뀌곤 한다. 여러 번 만나 얼굴을 자주 쳐다보면 그 사람과 친해지듯이 필사하는 시간은 작가들과 한결 가깝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필사 욕심이 생겨 챙기다 보니 요즘 책상 주변에 필사책 대여섯 권이 놓여있다. 10여 분 동안 글을 쓰다 보면 손이 져려온다. 힘이 들어가질 않으니 글씨가 영 내 성에 차지 않는다. 명문장과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손가락을 풀고 한 페이지 넘기며 좀 더 잘 써봐야지 마음먹지만 쓰면서 또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그래도 글씨를 쓰고 싶다.

왤까? 곰곰이 따져보니 조용히 작가와 필담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할 때 성경 아무 곳이나 펼쳐 성경 구절에서 위로받듯, 작가의 글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쓰다 보면 내 고민을 들어주는 것 같다.

화가 나 상대방에게 욕하고 싶을 때 피츠제럴드가 내 귀에 속삭인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우울할 때는 생텍쥐페리가 빙긋 웃으며 '이럴 때 있었지? 그때를 떠올려봐~'라고 말한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리고 네 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네 시가 되면 몸을 들썩이며 네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날 거야. 그때의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p. 28,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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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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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는 우연히 쓰게 된 책이라고 한다. 선거에서 떨어져 할 일이 별로 없었을 때, 우연히 고3 때 읽었던 <죄와 벌> 문고판을 집어 들었다. 30여 년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 책이 들려주었던 것과 무척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책만 그런가? 다른 책도 다 그런가?'

책은 그대로지만 책을 읽는 유시민이 달라졌다. 책은 달라진 유시민의 수준에 맞춰 말을 걸어왔다. 책을 읽으면서 청년 유시민을 만났다고 한다. 색다른 체험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흥미로운 경험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탄생한 책이 <청춘의 독서>다.


'권고를 받아들여 <자유론> 편을 새로 썼다. 왜 하필 <자유론>인가? 원래 좋아하는 책이다. 게다가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모두가 함께 겪었던 국가와 정치의 풍파를 소화해 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했다. (p. 7, 특별증보판 서문)'

<자유론>은 20대 초반의 유시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박정희 '연성軟性 파시즘 체제'였다. 밀이 <자유론>에서 말한 자유가 발 디딜 곳이 없던 시절. 그런데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자유론>은 유시민 작가의 '인생 책'이 돼버렸다.

그렇게 된 데는 우선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생각이 달라졌다. 한국 사회도 어느 정도 수평적 '광장 사회'로 진화했다.
'세계 질서와 인류 문명도 바뀌었다. 파시즘 유행이 지나갔고 사회주의 실험도 끝났다. 밀의 철학을 구현하는 정치체제가 인류 문명의 대세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p. 320)'


유시민 작가가 <청춘의 독서>를 통해 그토록 우리에게 알려주려 했던 '흥미로운 체험'을 난 할 수 없다. 청춘이었을 때 나는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읽는 책으로 (정신이 어느 정도 말짱하다면) 20년 뒤, (우리 정부 분류 기준으로) 중년의 나를 만나는 경험을 할 가능성은 아직 있다. 유시민 작가처럼 청년의 나를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쉽지만.

청년 유시민이 지도로 삼았던, 문명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던 열다섯 권의 책들. 이 가운데 다섯 권의 가지고 있다. <청춘의 독서>에서 또는 내가 좋아하는 유시민이 여러 매체에 나와서 추천한 책이기에 읽을 요량을 샀지만 읽은 책은 하나도 없다.

10여 년 전 읽은 <청춘의 독서>가 내게 책 살 마음을 갖게 했다면, 지금 읽은 <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은 달라진 내게 책을 읽어보라는 말을 건넨다. 유시민의 생각을 빌려 열다섯 권 책의 흐름을 알게 됐으니 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게 될 것 같다. 유시민 작가의 생각과 감히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살러 왔다. 원하는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길이다. 남의 눈치를 살피면서 남의 방식을 따라 살 필요는 없다.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p. 322)'

남은 인생만이라도 '세상에 살아보려고' 그리고 이제라도 내게 남은 여정에 지도로 삼을 책을 꼽아보려 한다. 이번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원하며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지도를 만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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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첫 문장 - 역사로 익히는 과학 문해력 수업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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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 앞에 나와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며 두 여인이 다퉜다. 솔로몬은 신하에게 칼을 가져오게 한 다음 명령을 내렸다.
"살아 있는 이 아기를 반으로 잘라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고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어라." <구약성서 열왕기상 3:25>

한 여인은 왕의 명령대로 아기를 반으로 자르자고 한 반면, 다른 여인은 왕의 명령에 소스라치게 놀라 아기를 죽이지 말고 살아있는 아기를 저 여인에게 주라고 솔로몬에게 간청했다. 솔로몬 왕은 지혜로 누가 아기의 엄마인지를 가려냈다.

아르키메데스는 부정직한 금세공인이 금 일부를 훔치고 값이 싼 은을 섞어서 왕관을 만든 것을 밝혀내라는 명령을 왕으로부터 받았다. 늘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하던 아르키메데스는 어느날 욕탕에서 해결 방법을 얻어낸 다음 '유레카(알아냈다)'라고 외쳤다.

'은이 금보다 가벼우므로 순금으로 된 왕관은 금과 은을 섞어서 만든 같은 무게의 왕관보다 부피가 약간 작아야 한다. 그래서 은이 섞인(더 부피가 큰) 왕관을 액체가 들어 있는 항아리에 넣으면 순금으로 된 왕관보다 약간 더 많은 양의 물이 흘러넘치게 된다. (p. 41)'
아르키메데스는 지혜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로 도둑맞은 원료를 찾아냈다.


<과학의 첫 문장>은 과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과학 저술의 발달사를 따라간 책이다. 비전공자를 염두에 두었다 하더라도 쉬운 책은 아니다. 역시 과학은 과학이다. 어렵다.

기원전 420년경에 쓴 히포크라테스의 <공기, 물, 장소에 관하여>를 비롯해,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 등 이 책에서 다룬 서른여섯 권의 과학 고전 모두,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들 과학책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안겨주었다. 솔로몬 왕이 지혜로 아이의 엄마를 찾아냈다면,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로 금을 빼돌린 도둑을 찾아냈듯이 말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이 신의 분노가 아닌 '균형이 깨진 탓'으로 바라보았다. 갈릴레오는 '관찰'이라는 방법으로, 알프레드 베게너는 '배열'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찰스 다윈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분자를 맹목적으로 보존해 나르도록 프로그래밍된 '생존 기계'라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었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 연속성을 더 확장시켜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두 관찰자는 모두 1초당 빛의 속도를 재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에서 달라지는 것은 1초당 가는 속도가 아니라 1초 자체라고 보았다. 우주의 어디에서나 일정하다고 가정되던 시간이 사실 전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관찰자가 더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은 팽창해서 더 느리게 간다. (p. 254)'


이들 과학자들은 어떻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을까.
''우리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뿐 아니라 '우리는 왜 그것을 알아내려 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과학 지식이 인정되거나 거부되는지 알 수 없으며 어떤 것이 과학이 충족시킬 수 있는 약속이고 어떤 것이 의심해 봐야 할 주장인지도 구별할 수 없다. (p. 12)'

질문이었다. 끊임없는 질문으로 알아낸 과학, 그 어려운 과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우리도 질문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과학 문해력을 높일 수 있고 세상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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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4
호메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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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는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서양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15,693행, 24권으로 이루어진 서사시이다. 그런 <일리아스>를 103장의 명화와 이미지, 435개의 각주 그리고 작품 이해를 돕는 풍부한 해설을 담은 현대지성의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으로 읽었다.


'우리는 <일리아스>에서 고대인의 문학적인 탁월함, 신과 인간이 어우러진 세계관, 인생의 가치관, 필멸의 인간이 겪는 고통과 비탄을 본다. (p. 769, 해설)'



<일리아스>의 배경인 트로이아 전쟁은 영웅 아킬레우스를 낳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는 글귀를 써넣은 사과를 던지자, 서로 차지하려고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다투기 시작했다.


세 여신 가운데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제우스로부터 판정을 떠맡은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는 헤라가 권력을, 아테네가 지혜를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한 아프로디테를 선택, 사과를 건넸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여인 헬레나는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메넬라오스가 왕국을 떠난 사이에 헬레네와 트로이아로 도망친다. 이 소식을 들을 아가멤논은 헬레네를 구하기 위한 트로이아 원정을 준비한다.



트로이아 전쟁은 10년이나 지속됐지만 <일리아스>는 10년째 되는 해 50일간을 담은 서사시이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된다. 그 분노는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불화로 시작됐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스인에게 무수히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고,

수많은 영웅의 용맹한 혼백을 하이데스로 보냈으며,

그들을 온갖 개들과 새들의 먹이로 만든 저주 받은 분노를! (p. 21)'


아폴론은 화살로 그리스군 진영에 전염병이 돌게 만든다. 아폴론의 제관 크리세스가 딸을 풀어달라는 간청을 아가멤논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변의 압력에 못 이겨 아가멤논은 크리세스의 딸을 돌려보내기로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여인 브리세이스를 빼앗는다. 화가 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을뿐더러 어머니 테티스에게 부탁하여 제우스가 트로이아를 도와 그리스를 짓밟도록 한다.


아킬레우스는 가장 친한 벗인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 패해 죽고 나서야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전투에 나선다.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친구의 복수를 하며 <일리아스> 이야기는 끝이 난다.



호메로스가 그린 신들의 모습은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화를 내는가 하면 시기하고 미워하며 심지어 욕망을 참지 못하는 등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다. 세상이 신의 뜻과 섭리에 따라 돌아간다고 믿는 당시 그리스에선 신을 모독하는 작품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시각을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꾼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 르네상스가 고대 그리스를 재수용하는 의미라면 적어도 구체적으로 문학에서만큼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재인식하는 문예부흥이 아니었을까?



영웅들은 트로이아 전쟁에서 분투하지만 신들의 개입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좌우된다. 영웅들의 활약과 상관없이 그들의 운명이 신의 손안에 있는 셈이다. 그렇더라도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며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전쟁 영웅들과 흡사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외부의 힘이나 신에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발휘하여 고통마저도 극복할 줄 아는 위버멘쉬가 영웅들 삶과 겹친다.



'"... 노인은 아킬레우스의 발 앞에 엎드려 전사를 죽이는 헥토르를 생각하며 통곡했고, 아킬레우스는 자기 아버지를 떠올리며, 또한 어떤 때는 파트로클로스가 생각나서 울었다. 두 사람이 우는 소리가 막사 전체에 울려 퍼졌다. (...)

"아, 불쌍한 분이여, 정녕 당신은 마음속에서 수많을 고초를 견뎌오셨소. 당신의 용맹한 아들들을 많이 죽인 자를 직접 만나러 혼자 아카이오스인의 함선으로 올 생각을 하다니, 심장이 무쇠로 만들어진 게 분명하오. (pp. 751, 753)'


프리아모스는 아비 된 자로서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홀로 적진으로 들어가 아킬레우스에게 간청한다. 아들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아킬레우스가 죽인 것도 모자라 시체까지 모욕하는 걸 바라본 프리아모스는 미쳐버린다.


죽을 각오로 찾아온 노인의 흰 머리와 흰 수염을 바라본 아킬레우스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한 다음 헥토르의 시신을 내준다. <일리아스>의 마지막에 배치된 이 화해 장면은 <일리아스>를 감동의 서사시로 만들어낸다.



이 밖에도 살펴볼 장면들이 풍부한 대서사시이다. 대서사시답게 웅장함을 물론 살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선이 담겼다. 때론 분노하고 때론 감동해 눈물을 흘리며 읽는 동안에 왜 <일리아스>가 고전 문학을 읽기 위해 꼭 거쳐가야 할 관문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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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말들의 편 가르기, 차별의 말들 - 무심코 쓰는 말에 숨겨진 차별과 혐오 이야기
태지원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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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 글을 남긴다'라며 작가 표범 씨가 사회복지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2018년 SNS에 올려 화제가 됐던 일화다.


'어느 날 교육봉사센터에 한 시민의 항의가 들어왔다. 그는 돈가스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동네의 기초생활수급 대상 어린이가 와서 밥 먹는 광경을 봤다. 가격대가 낮지 않은 유명 체인점이었는데, 누나와 둘이 와서 한 사람당 한 메뉴씩을 시켜 먹는 것을 보고 기분이 불쾌해 항의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pp. 149, 150)'


"저 비싼 돈가스를 나눠 먹어야지, 각자 하나씩 먹네?"

항의 전화를 한 어른(이라 할 수 없지만)이 한 말이다.


이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건 '가난한 사람은 불쌍하고 부족하게 보여야 한다'는 가난에 대한 편견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가진 식권으로는 가격이 모자라, 아이들을 예쁘게 본 음식점 주인이 공짜로 돈가스를 준 것이었다.


사회 문제와 인권 문제를 꾸준히 다루어 온 태지원 작가가 이번에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에 숨겨진 '차별과 혐오"에 관해서다. 정상, 등급, 완벽, 가난, 권리, 노력, 자존감, 공감이란 여덟 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차별의 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차별의 말을 환대의 말로 바꾸려면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저자는 편가르는 날 선 말이 '생각의 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인지적 편리함을 추구해왔다. 살아남으려면 적인지 우리 편인지, 판단이 빨라야 했다.


'덕분에 마주하는 상대를 판별하기 위한 틀을 장착하게 됐다. 상대의 피부색이나 눈빛, 출신 지역이나 민족을 보며 범주화하면 가까이해야 할 이와 멀리해야 할 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잣대는 갈수록 다양해졌다. 성별, 연령대, 민족, 인종 등으로. (p. 5)'


'생각의 틀' 속에 차별이 숨어있어 나도 모르게 편견과 혐오의 말을 쏟아 놓는다.

"이런 나는 정상일까요? 비정상일까요?" 흔한 질문이다.


"너 어디 살아?" 초등학교 아이들마저 하는 질문이다. 어디에 산다는 대답 하나로 재산 등급이 까발려지고 계급이 형성된다.

"그러게 왜 이태원엔 놀러 가서..."

"가난해서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애는 왜 낳나"

"바쁜 출근 시간에 거동도 불편한 사람이 왜 돌아다녀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나"

"맘만 먹으면, 왜 일할 데가 없어. 게으른 거지"

"그런 쓸모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마"

"너 T야? 왜 그리 공감 능력이 없냐?"


'세상에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명확한 선이 있을까? 그 선은 누가 만드나'라는 식의 해석과 시선으로 새로운 질문을 하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진다.


달동네 사는 사람은 모두 실패 등급을 받아야 하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뭔가.

'미국 작가 수잔 케인은 자신의 책 <콰이어트>에서 행복과 성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건넨다.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 (p. 69)'


이태원에서 노는 사람을 가치 없다고 평가하면서 애도의 자격까지 박탈해도 되나. 노는 시간 없는 빡빡한 삶만이 정답은 아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을 마구 지워도 되나. 그들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이다.


'비장애인이 숨 쉬듯 누리는 일상 속 권리, 이것이 단순히 비장애인을 위한 성역으로 남게 되면, 결국 누군가에게는 그 화살이 돌아온다. 장애인, 교통약자, 노인이 될 미래의 나와 가족을 위한 당연한 권리가 되어야 한다. (p. 176)'


게으르다고? 주어진 여건과 타고난 것이 제각각인데 무조건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하는 것이 옳다는 능력주의 경쟁 시스템의 잘못은 없는 건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타인을 쓸모없다고 폄하할 수 없다.

공감하는 능력이 모든 걸 해결하는 만능키가 아니다. 감정은 금방 시들해지고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집단에 속해야 안심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속성은 따돌림당하는 사람을 볼 때 내가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다수 집단이기를 바란다. 상대적으로 소수 집단을 좋지 않게 보고 차별의 선을 긋는다. 하지만 소수 집단에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또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속해 있는 등 여러 사람이 섞여있다. 바꿔 말하면 선택에 따라 혹은 조건이 바뀌면 나도 소수 집단에 속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언제든 나도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틀'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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