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느낀 행복들 - 국제 문학 에이전트, 대한민국에 빠지다
바버라 지트워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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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신경숙 작가는 팔짱 끼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할 테지만, 동성 간에 스킨십은 우리에게만 흔한 일이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신기하고 색다른 즐거움이며 편리하다고 감탄하는 것들은... 깨끗한 공공화장실, 지하철에 임부나 노약자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놓고 비워두기, 횡단보도 대형 파라솔,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 현황판, 고기를 칼이 아닌 가위로 자르는 모습, 산후조리원, 한국의 치안, 커플티와 같은 커플 아이템, 배달 문화 등등 부지기수다.

바버라의 눈에 띈 놀라운 광경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의 3분의 2가 등산화를 가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한국 땅 대부분이 산이어서 그렇겠거니 이해가 되는 한편, 많은 한국인들 취미가 등산이며 산에 가든 가지 않든 등산복을 즐겨 입는다는 건 신기할 따름이다.

저자인 바버라 지트워는 한국문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국제 출판 에이전트다. 한강, 신경숙, 정유정, 황선미 등 많은 작가들이 그에 의해 외국에 내보였다. 그런 인연으로 한국에 오게 됐고 신경숙 작가와 함께 여행하며 경험한 것들은 이 책에 풀어놓았다.

인사, 음식, 집, 가족 등 열 개의 키워드로 우리가 느끼지 못한 행복들을 찾아내 소개한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 우리 작가들이 바바라에게 소개한 우리 음식 레시피와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았다.


저자는 한국이 '투지와 즐거움 그리고 강한 공동체 의식이 빚어낸 장엄하고 아름다움 (P. 13)'을 가진 나라임을 알아낸다. 머리를 숙이는 인사에서 공손함이 사회적 관계의 성공 요인임을 깨닫는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함께할 때 더 행복을 얻게 됨을 알고, 자연을 중심에 둔 한옥에서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낭만을 보고, 가족과 집을 같은 의미로 사용할 정도로 가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가족 중심 사고가 전통적 가족 구조 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통과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가족 건너편의 일도 살핀다.

한국인들은 왜 행복할까? 바버라 지트워는 '한'과 '흥', 그리고 '정'으로 한국인의 행복을 마무리한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끈기와 성공이 탄생한 건 '한'의 철학 때문이고, 한국의 자연과 문화에 즐거움이 존재하고 이를 '흥'을 통해서 즐기고...

''정'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행위와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삶의 목적과 희망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p. 194)'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다. 자신을 잘 아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이를 제대로 갖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남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버라 지트워의 <한국에서 느낀 행복들>은 타인의 눈에 보이는 한국을 보는 책이다. 우리 땅에 살면서 우리는 행복이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이를 데 없이 행복한 것이 된다. 그것이 왜 그들에게 행복인지 이해하고 알게 된다면 그 행복이 이제 우리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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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 항해하는 글쓰기 - 망망대해를 헤매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르 귄의 글쓰기 워크숍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보은 옮김 / 비아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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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토리텔러, 즉 서사 산문 작가를 위한 안내서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보자를 위한 책은 아니다. 이미 글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p. 4, 서문)'

이 책은 르 귄이 진행했던 글쓰기 워크숍에서 그가 했던 조언을 담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작가들을 위한 작법서여서 쪽글을 쓰는 나에게는 (특히 각 챕터 끄트머리의 연습 글쓰기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하지만 르 귄은 흔히 창작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글쓰기를 기술로 여긴다. 나 같은 글쓰기 초보자에게 희망을 주는 대목이다. 기술은 숙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방법을 알고 꾸준히 연습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얼마나 연습을 해야 할지는 내 몫이다. 나머지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갈아 넣을 정도로 열정이 없어 그럴 리는 없지만) 아무튼 뭔가를 익히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글쓰기 방법에 있어 (몇 가지 안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들과 다른 르 귄의 조언이 눈에 띈다.

'문장과 단락을 짧게 쓰라는 '규칙'은 "나는 문학적으로 들리는 문장은 다 버린다"라며 뻐기는 작가들에게서 나왔다. (p. 69)'

짧은 문장이 좋다고 들었고, 짧은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어서 여러 번 곱씹어 읽은 글이다. 최적의 문장 길이라는 것은 없다고 르 귄은 말한다. 앞뒤 문장과 문장의 내용에 따라 길이가 정해져야 한다. 이 조언 때문에 짧은 문장이 좋다는 단순함이 복잡해져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한 단락에서 같은 단어를 두 번 사용하지 말라는 규칙을 만들거나, 반복을 피하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은 서사적 산문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다. (p. 73)'

한 단락에서 한 낱말을 반복하기 싫어서 같은 의미의 다른 말을 사전에서 찾곤 한다. 산문에서 리듬을 자아내기 어려운데 반복으로 그걸 할 수 있을뿐더러 글의 재미까지 줄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낱말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이 유용한 건 맞지만 경우에 따라 사전에서 찾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문장의 톤을 바꿀 수도 있다고 따끔하게 주의를 준다.


글쓰기 기술을 숙련하는 나에게 쏙쏙 들어오는 팁들도 가득했다. 글을 큰소리로 읽으면 리듬을 갖춘 생생한 글을 만들 수 있다. 원작자를 밝히고 모방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글쓰기 연습은 없다. 지나친 형용사와 부사 사용은 의미를 희미하게 만든다. 글에는 표정과 억양이 없으니 언어가 명료해야 한다.

초고를 쓸 때는 서슴없이 꽉 '메우고' 퇴고 단계에서는 대담하게 잘라내고 '건너뛰기'하라는 조언은 나 같은 초보자에게 더없이 소중한,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할 글쓰기 기술이었다.


부록 '합평에 관해'는 합평뿐만 아니라 독서모임에 적용해도 좋을듯싶다. 6명 이하는 의견의 다양성이 부족할 수 있고 12명 이상이 될 경우 모임 시간이 길어질 우려가 있으니 모임의 적당한 인원수로 6~7명에서 10~11명 사이를 권한다.

'합평회는 구성원 모두의 실력이 비슷한 수준일 때 가장 효과적이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경우도 괜찮을 수 있고 심지어 귀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 않고 그저 재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으면 진지하게 글쓰기에 임하는 구성원들은 점점 의욕이 꺾일 수 있으며, 반대로 적당히 하는 사람들은 진지한 사람들 때문에 지루해질 수 있다. (p. 205)'


자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화가가 선 긋기를 끝없이 연습하듯 창작의 바탕은 기술의 숙련이다. 규칙도 알아야 규칙을 깨뜨릴 수 있다는 역설처럼 말이다.

이 책이 글쓰기 초보에게도 자신감을 주는 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글쓰기도 창작의 영역에 이르기 전에 거쳐야 할 기술의 숙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숙련은 방법을 안 다음 그 방법을 반복하는 것이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반복. 그 결과로 내가 얻게 되는 건, 마법의 배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끄는 능력이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한 모든 것은 이야기가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놔두기 위한 준비사항이다. 기술을 갖추고 기법을 익힌다면 마법의 배가 왔을 때 거기에 올라타서 배가 가고 싶어 하고 또 가야 만하는 곳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p.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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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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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우리 곁에 없지만, 변함없이 마음을 덥혀 주는 그의 진솔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다시 따뜻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시골집 장독대에 핀 고운 백일홍 한 송이처럼 노을 진 들녘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눈빛으로 착해지는 꿈을. 그래서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꿈을. (p. 4, 출간을 기념하며 - 이해인)'

애정을 듬뿍 담은 글, 솔직한 고백 그 솔직함 때문에 공감하게 되는 글, 그리고 겸손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글... 이해인 시인에 이어 나는 박완서의 글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지난달 22일이 박완서 선생님의 13주기였다. 그에 맞춰 출간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 미발표 원고를 더해 만든 리커버 특별판이다. 세계사의 이런 기획 덕분에 박완서 글의 여운을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다시 한번 간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니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초판이 1977년 나왔으니 내가 10대 시절인 청소년일 때다. 에세이마다 끝에 표시된 글 쓴 연도를 보는 순간 (특히 70년대에서 80년 중반) 이 책의 글들은 나를 청년 시기의 풍경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 재미있다는 감정을 그토록 과장했음은 딸이 재미있어 한 것, 즉 젊은 세대가 즐긴다는 것을 나도 즐길 수 있다는 것, 젊은 세대를 이해한다는 것의 과시였음 직하다. (p. 206)'

대학 입학 후 딸이 미팅이란 걸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부럽고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자신이 미팅하는 양 딸보다 더 들떠 신나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소지품을 보고 맘에 드는 여학생 것이 어떤 것일지 살필 때 그 간질간질한 느낌, 그 설렘, 다시 갖지 못할 추억을 나도 갖고 있다.

보이프렌드, 걸프렌드란 말도 참 많이 썼다. 지금이나 촌스럽지 그땐 세련된 느낌의 말이었다. 짙은 아이새도우에 벽돌색 립스틱 그리고 사자머리, 얼마나 섹시했는지. 제사도 결혼식도 가정의례준칙에 의해 간소화해 허례허식을 타파하는데 동참해야 했었다.

장발, 미니스커트 등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퇴폐풍조로 단속 대상이었다. 정치적으로 이익된다면 유행도 통제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그땐 궁서체였다.
'공부에 열중하느라, 연애에 정신이 팔려서, 이발료를 아끼려고, 멋있으려고, 머리터럭쯤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었기로서니 거리를 활보하는 데 지장을 주어서야 되겠는가. (p. 220)'


조율, 알맞거나 마땅하도록 맞추어 고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청년이 아닌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에 박완서의 글을 다시 읽으면 생각난 낱말이다. 조율한다. 솔직하게 글을 써 내려가며 박완서는 자신의 삶을 조율해 나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한옥의 불편함과 촌스러운 구식 동네의 시도 때도 없이 선을 넘는 지나친 관심이 싫어 이사했다. 이사 간 곳에서 만난 무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 없이 지내던 관심을 끌어다 놓아 조율한다. 자식에게 데모에 앞장서지 말라고 당부하는 비열함, 대학 생활이 아이에게 눈부시고 왕성한 시기임을 깨달으면서 보신보다는 소신을 드러내는 작가로 자신을 드러내 조율한다.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직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20등, 30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p. 171)'
속임수라고는 하나도 없는 꼴찌 마라토너를 응원하며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뜨거운 가슴도 조율해 넣고.

무등산을 바라보며 그 산이 굽어본 이름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의 숱한 사연을 담아 마음을 조율하고, 폭력이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이 신념이 아님을 조율하고, 늙어 소멸해가는 노인에게서 추함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비어가는 자리에 노인 품에 안긴 손주의 아름다운 생명력을 채워 넣어 조율한다.

관계를 폭넓게 바라보자고 조율하고, 아이에게 들인 엄마의 정성만을 저울에 달아 무게를 가늠하다가 정성을 덜어내 아이들이 느낄 사랑의 무게를 조율해 0g으로 저울 추가 이동하도록 한다. 행복도 조율한다. 그 누구도 엄두 내질 못할 박완서만이 가진 행복...

'양말 깁기나 뜨개질만큼도 실용성이 없는 일, 누구를 위해 공헌하는 일도 아닌 일, 그러면서도 꼭 이 일에만은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인 소설 쓰기를 나는 꼭 한밤중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다.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재도 안 바꿀 것같이 행복해진다. (p.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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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위하여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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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여성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현대 여성 작가들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소설, 잇다' 시리즈 네 번째 <기도를 위하여>는 김말봉의 소설 세 편, 박솔뫼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 각각 한 편, 문학평론가 박서양의 해설을 담았다.

작가 김말봉은 소설을 왜 쓰냐는 질문에 '돈 벌려고 쓰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소설은 순수와 통속을 떠나 재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인 셈이다. 김말봉은 3.1운동으로 구금됐었고, 공창 폐지에 앞장서는 등 여성의 지위와 인권 보호에 앞장선 여성운동가였으며 한국 최초의 여성 장로이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주로 여성으로 그들의 생활상과 욕망을 보여준다.

작가 박솔뫼의 작품 속 주요 화두는 산책과 배회라고 한다. 문어와 구어의 경계를 허문 것이 글의 특징이며, 삶이란 논리적이지 않으며 거칠고 불규칙한 것임을 그의 글에 담아낸다.


김말봉의 <망명녀>

여학교 시절 돈을 훔친 것이 들통 나 학교에서 쫓겨나고, 그로 인해 명예와 직업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책임지게 된 순애는 기생이 된다. 기생 생활에 지쳐 미쳐가던 때 여학교 친구 윤숙이 찾아와 빚을 대신 갚아주고 순애를 데리고 나간다. 윤숙은 순애를 극진하게 보살피며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만 순애는 담배와 모르핀을 끊지 못한다. 어느 날 사회운동을 하는 윤숙의 애인 윤이 순애 앞에 나타났고 순애는 그를 사랑하면서 삶이 변한다.

'그러나 번개같이 무슨 생각이 내 마음에 지나갔습니다.
'이때이다. 이 기회이다. 나도 사람이다.'
심장이 터질 듯한 흥분에 몸과 다리는 떨렸습니다. (p. 47)'

타락한 순애를 구원한 건, 순애가 목숨을 걸기로 한 건, 윤숙이 전해준 하나님이 아니라 윤과 함께 나타난 사회운동이었다. 사회운동 동지로서 사람으로서 인정받음이 순애를 구원했다.


김말봉의 <고행>

주인공 '나'는 기생이었던 미자를 첩으로 두고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게다가 나는 아내에게 미자를 소개했고 미자를 딱하게 여긴 아내는 미자와 형제처럼 지낸다. 미자의 집에 남편이 있음을 눈치채고 아내가 미자의 집을 불쑥 방문한다. 벽장에 불편한 자세로 숨은 남편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극에 다다르자 아내가 제발 집에 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는 본래부터 미신을 배척하고 신을 부인하던 터이라 어디다 빌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설마 나를 사랑하시던 내 아버지의 혼백에게야... 나는 눈을 감고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는 관을 쓰고 지팡이를 끌고 나오는 아버지의 환영을 보자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이 자식, 이게 무슨 꼴이냐 꼴이..."
아버지의 호령이 귓가에 들립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빌기를 단념하고 살아 있는 내 아내를 향하여 맘속으로 빌고 빌었습니다. (pp. 76, 77)'

남편은 벽장 속에서 고개를 두 손으로 받치고 무릎을 꿇고 흡사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자세, 즉 고행하는 자세로 불륜이 초래한 고통 속의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기도한다. 마침내 아내가 미자의 집을 떠나자 '나'는 벽장 속에서 구원을 받는다. 신도, 아버지도 아닌 아내로 인해서...


김말봉의 <편지>

남편을 잃은 은희에게 인순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보내 준 돈은 잘 받았다. 돈이 더 필요하긴 하지만 짐이 되는듯해 미안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죄를 짓는 것 같다. 폐렴으로 사망한 은희 남편은 완전무결했다. 그를 추억하며 살아가야 할 은희에게 편지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분하고 억울함에 은희는 인순을 확인하고자 돈을 보내며 집에 들르라고 전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은희가 남편의 결백이 증명되었다는 의미에서 새삼스럽게 남편을 추모하여 우는 것은 아니었다. 은희는 갑자기 자기가 인간으로 생겨났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슬퍼진 것이다. 이렇게까지 슬프고 부끄럽고 천박한 동물은 인간이란 것밖에 또 어디 있으랴 하고 생각한 까닭이다. (p. 104)'

은희가 본 박인순은 교복을 입은 남자였다. 죽음으로서 완성될 뻔한 흠 없는 남편의 사랑에 금이 갔다. 의심이 낭만적 사랑에 은희가 설자리를 치워버렸다. 수치와 슬픔이 찾아오자 완전무결한 사랑이라는 환상 속의 은희는 비로소 그 환상에서 벗어나 한 여성으로 돌아온다.


박솔뫼의 <기도를 위하여>

김말봉의 <망명녀> 뒷이야기로 두 개의 축으로 이어간다. 죽은 순애와 윤숙 이야기, 또 하나는 화자 시점에서 부산을 걸으면 김말봉을 회상하는 형태의 소설이다.

'어떻게 건너왔소.
나를 이끈 것이 있습니다.
이끈 것이라 하면...
두 사람의 그러니까 언니의 사랑과 당신의 안타까움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p. 121)'

죽은 순애는 사랑과 안타까움에 윤숙과 윤을 찾아오지만, 윤숙은 자신을 가방에 넣어 가달라는 순애를 두고 자신이 할 일, 여성들의 교육에 힘을 쓰고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부산으로 떠난다. 그리고 일 년 한 번 기도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산 사람을 위한 기도이기도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이기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고 윤숙은 생각했다. (p. 136)'

화자도 부산으로 떠난다. 김말봉이 태어난 곳, 그가 다니던 학교와 교회가 있는 부산으로. 김말봉이 걸었던 길에 맞춰 다른 시대의 박솔뫼도 걸어보는 것이다. 박솔뫼에게 익숙한 부산이지만 이번엔 다른 부산일 것이다. 서로 다른 세계의 두 사람이 만나 걷게 될 부산이다.

'가보는 것 아무튼 계속 가보는 것 가보고 걸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p. 133)'


여성들이여 힘들더라고, 장애물이 있더라도, 자신에게 실망하더라도 자신을 구원으로 이끄는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확신을 갖고 걸어보는 것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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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레리뇽 고원 -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매기 팩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생각의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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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크건 작건 히틀러나 상급자의 지시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고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대량학살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의 항변이다.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아이히만은 6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의 총책임자였다.

"독립에 대한 희망이 있어도 만세만 외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일제강점기에 그 누구보다 친일에 앞장섰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의 말이다. 자녀들에게 이런 유언도 했다. "앞으로 미국이 강대국이 될 거니, 너희들은 친미파가 되어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앞잡이였던 자들 또는 후손들은 이런 말로 스스로 합리화한다.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같이 살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상황이 안 좋을 때 선하게 행동한 공동체가 있나? 나는 기억을 연구하면서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저항한 사례를 조사했다. (p. 17)'

프랑스 중남부 자그마한 고원, 비바레리뇽 Vivarais-Lignon에 선한 공동체가 있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나치에게 쫓기는 낯선 수많은 난민을 수용했다. 이들을 집에 받아들인 주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늘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있었고 나치에게 끌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확실히 다니엘은 태어날 때부터 좋고 옳은 삶을 살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 끝나가면서 다니엘이 자기 자신, 그리고 참나무처럼 탄탄한 자기 삶의 조건과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음이 편지와 가족들의 회상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떻게 할까? 어떤 사람이 될까? 결정을 내려야 했다. (p. 43)'

다니엘 트로크메, 비바레리뇽을 찾아온 난민의 어린이를 위한 보호소 '레 그리용'을 관리했고, 그 아이들은 무척이나 사랑했다.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아이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여전했다.

인류학자 매기 팩슨의 <비바레리뇽 고원>은 비바레리뇽 주민들이 보여준 환대와 사랑의 기록이다. 무엇이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키는 선함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그 친절함의 뿌리를 탐구하기 위한 비바레리뇽 여정에서 저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준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하는가?
아이히만은 나치와 유대인을 학살했다. 이완용은 힘센 일본에 아부해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섰다. 비바레리뇽 주민들과 다니엘은 난민들을 보호해 그들의 목숨을 살려줬다.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한 모험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히만과 이완용은 이들과 아주 다른 선택을 했다.

비바레리뇽 고원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맞섰다. 올바른 일이 벌어지리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원을 그려 편을 가르지 않았다.

'아뇨, 저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아뇨, 저는 독일을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논리를 따르는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유대인이 아니라 한 소년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연약한 유대인이 아니라 연약한 소년을, 보호가 필요한 소년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p. 293)'

누가 누구와 무엇을 하는가?
다니엘과 비바레리뇽 고원의 사람들은 사랑을 추구했고, 시도했고, 매 순간 실천했다. 그 사랑이 습관이 되도록. 하지만 아이히만과 이완용에게는 사랑이 없었다. 올바른 일에 대한 믿음은 더더욱 없었다.

'다니엘은 작은 귀뚜라미들을 사랑했다. 동료 수감자들을 사랑했다. 미치도록 사랑했고, 과도하게 사랑했다. 고원의 주민들은 밤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 문 뒤에 누가, 또는 무엇이 있을지 알지 못했음에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상드린은 학생들을 사랑했다. 비록 그 사랑이 언젠가 한 학생이 입학해 다른 학생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일지라도. (p. 510)'

'악의 평범성'에 사랑이 없었다면, 목숨을 걸고 타인을 지키는 선함에는 사랑이 있었다. 모든 걸 바꾸어 놓기 때문에 사랑은 아름답고 반드시 필요하다. 사랑은 밤하늘을 환하게 밝힌다. 신성한 인간을 없다. 인간이 사랑함으로써 신성해진다. 다니엘 트로크메와 비바레리뇽 사람들처럼. 신성한 곳도 없다. 사랑의 행위가 모인 곳이 신성해진다. 비바레리뇽 고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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