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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와 너트, 세상을 만든 작지만 위대한 것들의 과학 - 현대사회를 떠받치는 7가지 발견과 발명 스토리
로마 아그라왈 지음, 우아영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월
평점 :
한 달 전쯤 엄두도 내질 못할 일을 (무엇이든 고치고 교체해서 오래 사용하는 친환경 소비를 하는) 아주 오래된 절친의 도움을 받아 해봤다. 사용하는 노트북 뒤 덮개를 연 후 메모리 용량을 늘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냉각팬을 교체했다. 십자머리 나사 여러 개로 고정되어 있어 나사만 풀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쉬운데 어떻게 열어 볼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는지 그게 더 신기했다.
'나선형 나사산은 아주 작고 축을 짧게 만들 수 있다. 나사로 손목시계 부품이나 얇은 금속판 같은 작은 것을 고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시는 설치했다가 제거하기도 쉽다. 스크루드라이버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p. 49)'
우리 주변의 물건 대부분은 서로 다른 재료나 부품들이 연결된 것들이다. 노트북의 뒤 덮개나 냉각팬처럼 말이다. 못이 그런 일을 한다. 그런데 못의 파생물인 나사가 없었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얇은 두께의 노트북은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나사 대신 접착제로 붙이면 되니까 만들수는 있었겠지만 십자드라이버를 사용해 쉽게 풀 수 없으니 부품 교체가 어려워 오래 사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못, 바퀴, 스프링, 자석, 렌즈, 끈, 펌프 내가 고른 이 일곱 가지 사물은 다양한 반복과 형태를 거쳤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경이로운 발명품이다. (p. 9)'
어린 시절 남다른 호기심에 물건을 분해하곤 했던 소녀 로마 아그라왈은 구조공학자가 됐다. 저자는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사물에 평생 매력을 느꼈고, 특히 일곱 가지 사물에 얽힌 이야기를 이 책에 펼쳐놓았다. 작은 사물들이 어떻게 발명됐는지, 그 사물들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저자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놀랍고 흥미롭다.
'기어가 이토록 유용한 건 바퀴 2개(또는 그 이상)를 나란히 놓아 톱니가 맞물리게 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전 방향의 변경, 회전 속력의 변경, 기어 가장자리에 작용하는 힘의 변경 등이다. (p. 72)'
조지핀 코크런의 가족은 파티를 즐겼고 그때마다 소중한 가보 그릇들에 음식을 담아냈다. 일하는 사람들이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들을 깨면 속상했다. 공학자 가족들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낸 코크런은 바퀴에서 발전한 기어를 이용해 설거지 기계, 즉 식기세척기를 설계했다.
앨먼 스트로저는 캔자스주 엘도라도의 유일한 장의사였다. 어느 날 그곳에 다른 장의사가 나타나자 그의 수입은 급격하게 줄어들어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경쟁 장의사의 아내가 교환국에서 일했고 장의사를 찾는 전화를 자기 남편에게 연결한 것이 원인이었다. 스트로저는 자동교환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1892년에 스트로저는 자동교환기 특허를 냈고 이로써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 교환원이 자석으로 대체되었다. (p. 153)'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초기 정착민들은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더 많은 농작물을 생산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물을 대야 했다. 시소 모양 한쪽 끝에 양동이를 다른 쪽 끝에는 균형추가 달린 구조물을 생각해내어 강에서 물을 퍼올렸다.
'펌프라는 단어가 수많은 움직이는 부품이 들어간 상당히 정교한 기술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액체나 기체를 운반하는 장치다. 줄 끝에 매단 양동이를 당기는 것과 같이 단순한 형태일 수도 있고, 휘발유를 연소시켜 차량에 동력을 공급하는 다중 피스톤 모터 구동식 엔진처럼 복잡한 형태일 수도 있다. (p. 239)'
이렇듯 발명은 필요에 의한 대응에서 나온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 응용해서 쓰이는 사례도 빈번하다.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던 평면으로 돌던 판이 수직으로 구르며 운송수단에 변신했고, 펌프도 우주라는 극한 환경에서 생존에 필수인 우주복의 중요한 부품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이 작은 발명품은 인류에게 편리를 주는 한편 인간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스프링의 과학이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되어서 손가락의 작은 힘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총이 그렇다.
만약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때는 없고 지금은 있는 사물들을 만들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싶다. 왜 그럴까? 작동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원리를 알아야 과거 시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만들게 할 수 있다. 그런 작동원리를 소개하는 이 책을 읽고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또 하나, 원리를 안다면 오래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 친구가 고치고 교체해서 친환경 소비를 하듯이.
오래 사용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그래야 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끈으로 만든 '옷을 오래 입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구의 환경 문제 때문인데 원단 생산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항공과 해상 운송의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으며 매년 약 9200만 톤의 원단이 폐기되고 약 1조 5000억 리터의 물이 소비된다.
누구나 지구의 환경을 지키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만든 작지만 위대한 것들의 과학 원리를 안다는 전제아래서. 작동원리를 알고 이용한다면 노트북의 나사처럼 작은 발명품이 지구의 환경 지킴이 역할까지 하게 된 시대가 됐다. 그러니 이 책을 꼭 읽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