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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루이비통 - 제주를 다시 만나다, 개정증보 2판
송일만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3년 11월
평점 :
제주도 첫 여행은 가족이 함께했다. 제주도 해안 도로를 따라 3박 4일 동안 한 바퀴 도는 계획을 다른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참고해서 내 맘대로 짰다. 잠잘 곳도 하루 여행을 마치고 도착할 만한 곳에 예약했고, 밥 먹을 곳도 둘러볼 명소도 정해두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가는 곳곳마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감탄했다.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얼른 사진 찍고 차에 올랐다. 빡빡한 일정이어서 아내와 두 아이는 내 지휘에 따라 숨 가쁘게 움직여야 했다. 정신없어했다.
제주 토박이 송일만 작가의 <어머니의 루이비통>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은 제주, 그리고 해녀였던 어머니, 그 시대에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같았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 원래의 모습이 사라지며 변해가는 제주에 대한 아쉬움이 담겼다.
'제주 바당(바다)이 죽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품보다 넓고 깊은 바당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이제는 제주가 토해 내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바당 자신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리고 검붉은 건강한 웃음이 아닌 핏기 없는 하얀 울음으로 절규를 하고 있다.
나 아프다고, 나 좀 살려달라고
한평생 제주 바당과 같이한 어머니와 삼춘들의 놀이터가 사라졌다. 그리고 생활이 사라지고 있다.
조금은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p. 5)'
올래는 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래서 길보다는 집 앞 마당과 큰길 사이의 공간 개념에 더 가깝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곳이 올래입니다
만남과 헤어짐, 반가움과 아쉬움, 우리의 정서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리고 한여름 나무 그늘 아래 보약 같은 휴식도 있었던 그곳 (p. 70)'
그랬던 올래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면서 트레킹 코스가 돼버렸다. 올래 길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제주 사람들은 사생활을 도둑맞았다. 더 이상 제주의 정서가 머물던 올래가 아니다. 제주도는 올래를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제주 여인들이 끼고 살았던 구덕도 사라져간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건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제주의 어머니들은 육지 여성들이 핸드백을 들고 다니듯 구덕을 지고 다녔다.
주로 고는 대구덕인 곤대 바구리를 가지고 장 보러 다녔지만, 물질하러 갈 때는 출구덕을 시작으로 상군이 되면서는 물건을 많이 담아서 옮길 수 있는 지는 구덕, 질구덕을 비로소 사용했다. 질구덕은 힘든 노동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풀이나 삼베를 깔아 애기는 담는 애기 구덕, 헤진 구덕을 땜빵해 재활용한 바구리가 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 건물 벽면에는 늘 태악과 그 옆에 출구덕, 질구덕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는 허벅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허벅이 없어지더니 지금은 태왕과 출구덕, 질구덕 모두가 사라졌다. (p. 186)'
저자가 그 어느 것보다 구덕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건, 제주의 어머니들에게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도구였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뎌준 백이었기 때문이었다. 루이비통보다 더 소중하고 자랑할 만한 명품 백이어서 말이다.
몰랐을 때라면 모를까, 이제 알게 된 이상 제주 4.3은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됐다. 폐촌이 되어버린 다랑쉬 마을에도 제주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인 토벌대가 찾아왔다.
'그래도 나오지 않자 굴 양쪽에 검불을 피워 연기로 그들을 질식사시켜 버렸다. 당시 굴속에 있던 사람들은 머리를 돌 속에, 땅속에 박은 채로 죽어갔고 그들의 눈, 코, 귀는 피가 흘러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손톱이 없을 정도로 땅을 파다 죽어있었다고 한다. (...)
44년 만에 11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9살에서 50대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부 민간이었다고 한다. (...) 발견 직후 당국은 재빠르게 이들의 유골을 수습해 화장하고 바다에 수장해 버렸다. (p. 227)'
제주의 부모들은 자식 걱정에 약속이라도 한 듯, 억장이 무너지는 한을, 그 4.3을... 말하지 못하고 입다물었다. 한 세대가 지나도록 공포는 지속됐고 그 공포는 내가 이렇게 살았노라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제주에 간다면 그들의 잊지 못할 기억에 귀 기울여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생겼다.
내가 몸담았던 해병대는 제주도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끼리 있을 때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신기하기만 한 그들의 언어로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알던 삼촌이 제주도에선 그 삼촌이 아니었다. 눈물 그렁그렁 한 눈으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그 사투리의 쓰임새를 알게 됐다. 삼촌이란 말에 어떻게 그리 여럿 감정이 섞여있었던지. 제주어가 가득한 송일만 작가의 제주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그의 제주도, 다른 버전의 제주도를 보여준다.
'나는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기보다는 해녀들이 구덕에 삶을 지고 다녔던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분들의 삶과 사랑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p. 5)'
우리 가족의 제주도 첫 여행은 제주도에 사는 분들의 삶과 사랑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바쁜 여행이었다. 다음 제주도 여행은 천천히 걷는 송일만 버전의 제주도를 알아가는 여행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