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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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소설은 모두 집에 관한 이야기다. (p. 290)

대학 졸업 후 얻은 직장은 집에서 출퇴근하기에 너무 멀었다. 어찌어찌하다 늦어지면 집에 못 들어갈 때가 잦았다. 부득이하게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 자취를 했다. 거여동, 당시 그 동네는 아파트는 없고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대부분이었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그리고 인근의 공수부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제법 사는 동네였다.

전세로 방을 얻은 첫 번째 집은 반지하였다. 집주인도 세입자였는데 내게서 받은 전세금으로 자신들의 전세금에 보탰다. 남편은 환경미화원이었고 아내도 일을 했다. 혼자 생활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여자 집주인이 빨래를 해주곤 했는데 남편이 이를 문제 삼아 부부 싸움을 하는 눈치였다. 이사한 지 3개월 만에 다른 집을 알아봤고 이사했다.

이번엔 반지하에서 한 층 올라간 1.5층이었다. 그 집 주인도 세입자였고 내 전세금은 첫 번째 집과 마찬가지로 쓰였다. 남자의 직업은 이웃한 곳에 있는 공수부대의 군인으로 계급은 중사였다. 3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집주인이 세입자가 아닌 집으로 이사했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혜진의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은 집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에 대한 묘사라기 보다는 집에 사는 사람들, 집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관계에 더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집과는 무관해 보이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만 겨우 집이라는 공간을 설명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집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p. 290)

'어디 사세요?'라는 물음에 대답이 즉각적일 수 없다. 대화의 흐름상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OOO에 살아요'란 대답으로 우선 장소를 특정할 수 있다. '아파트도 있고 주택도 있는 동네네요?' 이쯤 되면 집의 형태를 알려줘야 한다. '아파트는 아니고 주택이에요. 다세대.' '요즘 주택도 집값이 제법 나가죠?' 이 질문엔 주거형태를 알려줘야 한다. '전세예요' 또는 '월세예요'

'어디 사세요'라는 집과 관련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대답 속에 사회적 모순, 개인의 욕망 등 모든 상황과 역학관계가 다 들어있다.

(중략)

<산무동 320-1번지>에서는 세입자와 세입자의 관계를 다룬다. 호수 엄마는 남편과 함께 재개발 동네에 빌라를 여러 채 갖고 있는 집주인 장 선생의 일을 대신한다. 장 선생이 엉망인 이 동네에 오는 것을 꺼려 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을 대신해 월세 독촉을 하고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관리를 잘 하며 사는지 살피는 대가로 호수 엄마는 세를 일부 덜 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절박한 호수 엄마와 세입자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 장 선생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허름한 동네에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여기 싹 철거되고 아파트 들어서면 우리가 할 일이 남아 있을 것 같아요? 돈 있는 사람들 세 주고 나면 월세 받으러 다닐 일도 없지. 여러 말할 거 없어요. 재개발 안 되는 게 우리한텐 고마운 일이야. 아닌 말로 재민 엄마 당장 나가겠다고 하면 세입자를 또 무슨 수로 구해요. (p. 169)'


<축복을 비는 마음>의 인선은 양 사장 밑에서 팀을 이끌며 집 청소하는 일를 한다. 어느 날 까탈스러운 신입 경옥을 통해서 양 사장에게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린다. 인선은 더 알게 되는 게 불편하다. 당연시 여겨왔던 일의 정체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인선에게는 그 억울함도 상쇄할 만한 마음이 있다.

'경옥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을 청소할 땐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으냐고 물었다. 받는 돈은 똑같은데 몇 배나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지 않으냐는 거였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뭐.
인선이 답했고 경옥이 물었다.
축복요? 무슨 축복요?
깨끗하게 청소해 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주는 거죠. (p. 270)'


부동산 공화국, 우리는 살아가는 곳이다. 집을 빼놓고는 그 무엇도 이야기할 수 나라에 살고 있다. 친지, 친구, 이웃... 그 어떤 타인을 만나도 하고 싶은 질문은 '어디 사세요?'다. 그 대답으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태여 여러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김혜진은 집의 소유와 거주,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분법 외에 일어날만한 관계와 마음의 주고받음을 찾아내 이야기한다.

세입자의 집에 방 하나를 임차해 살았던 그때, 돌이켜 보면 조카처럼 여겨 빨래해 주던 집주인 아주머니의 넉넉한 마음과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술이나 한잔하자며 방문을 두드리던 형뻘의 특전사 중사와 그의 아내와 함께 나누던 유쾌한 이야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관계에 가난을 비교하거나 내려다보며 업신여김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각자가 간직한 유일하고도 개별적인 집을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pp. 290,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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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탈리아 소도시 - 혼자라서, 때로는 함께여서 좋은 이탈리아 여행
신연우 지음 / 하모니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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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의 완성은 이탈리아라고 흔히 말하고 한다. 몇 년 전 동유럽 패키지여행에서 같이 다녔던 일행 중 서유럽을 먼저 다녀온 부부도 같은 말을 했다.
"서유럽은 꼭... 그중에서 이탈리아는 꼭 한번 가보세요."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은 아니다'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은 여행 책에 집착하며 여행을 대신하는 나에게 적당한 핑곗거리를 주었다.
'그래 몸은 하난데 어떻게 그 많은 도시를 다 다녀오겠어...' 그래도 이탈리아 가보고 싶다. 힝~~~


'걸음은 느리고 주변을 둘러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신연우의 <어느 날, 이탈리아 소도시>는 이탈리아의 소도시 25곳의 이야기와 사진을 함께 담은 책이다. 여행이 그곳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이라면, 신연우 작가는 걸음이 느리다고 하니 남들보다 그 도시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눴을법하다.

'계획과 무계획의 중간 어디선가 헤매는 일상을 사는 나는 여행의 방식도 다르지 않다.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 대략적인 틀 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없이 발길 가는 데로 다닌다. 모르는 도시는 모르는 대로, 아는 도시는 아는 만큼만 욕심부리지 않고 담고 싶은 만큼만 사진에 담아 집으로 돌아온다.
아쉬움은 여행 사진을 정리를 하면서 채운다. 몰랐던 정보도, 못 가본 장소도 사진 속을 더듬어가며 찾는다. 오늘도 나는 기억의 파편을 모으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 보고 싶은 친구들, 믿기지 않았던 풍경으로 채워진 이탈리아 여행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린다. (p. 8​, 이탈리아에 풍덩)

마침 읽었던 여행 책 가운데 이금이 작가의 <페르마타, 이탈리아> 생각났다. 겹치는 도시는 세 곳이었다.

가난한 자의 성인이라 일컫는 '성 프란체스코'의 발자취를 느끼고자 순례자의 발길 머물게 하는 '아시시'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삶의 어느 지점일 수도 있고, 여행 중에도 찾아온다. 그럴 땐 아시시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보자. (p. 25​)'


색으로 기억되는 사랑스러운 중세도시 '시에나'.
'테라 로사, 테라 지알라로도 불리는 시에나는 엄버, 오커라는 컬러와 함께 인류가 사용한 첫 번째 안료로 전 세계의 동굴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에나는 채굴했을 때는 노란 갈색, 가열하면 적갈색을 띠는 안료로 르네상스 시대에 이것을 생산하던 '시에나'에서 유래했다. 수많은 컬러 중 인류와 함께 한 색으로 덮인 도시라니 꽤나 낭만적이다. (p. 63)'

이탈리아 부츠 뒤꿈치에 자리한 '알베로벨로', 이곳은 동화 속 마을 같은 트룰로라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전쟁나무의 조각이라는 의미의 이름과는 달리 하얀 벽 위에 납작한 회색 돌 지붕을 올린 건물에서는 왠지 귀여운 스머프나 난쟁이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제각각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 건물 사이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p. 194)'

앞다투어 자신들의 여행담을 들려주려 하는 두 작가를 테이블 앞에 있다. 난 '그랬어? 그런 일이 있었어?' 맞장구치고. 책을 읽는 것이 수다 떠는 느낌이랄까? ㅎㅎ


머문 도시를, 그곳의 사람들을 여행자가 볼 때, 적당한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나의 일상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듯 작가도 도시 밖에서 서서 그곳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지 않았을까? 도시의 사연에 감동이 밀려오면 책을 잠시 덮고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고 그 도시에 작가만이 칠할 수 있는 색을 입히며 이야기를 각색하지 않았을까?

이탈리아 25곳 도시가 신연우라는 이방인에게 웃으며 환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어느 날, 이탈리아 소도시>였다. 그리고 사진 덕분에 내 발이 아닌 내 눈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게 한 책이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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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조각 미학 일기 - 미학생활자가 바라본 미술, 음악, 영화
편린 지음 / 미술문화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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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상황일 수도 있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일 수도 있다. 아무튼 입이 다물어져 '말할 수 없는' 순간, 그래서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그 정적의 반대편에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어떠한 말이라도 동원해 '말하고 싶은' 욕구다.
'미학은 바로 그 이중적인 충동에 두 발을 딛고 선 학문입니다. (p. 9)'

저자는 미학이 원한圓環 구조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말하고 싶고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그럼에도 말하고 싶고 그러나 말할 수 없는...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을 때 쓰는 '아름답다'라는 말 해당된다. '미학은 바로 이 '아름답다'라는 패배 선언 안에 꾹꾹 눌러 담겨 있는 세계와 인간의 함축을 연구하는 학문 (p. 9)'이라고 저자는 미학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면 할수록 표현하려는 욕망은 더 간절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시, 소설, 음악, 춤, 그림과 같은 예술과 철학으로 간절함을 표현하고 규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미학에 관심을 가진 건 오래전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나서였다. 문화유산을 해석하는 그의 방식과 글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도대체 무엇을 공부한 사람일까 궁금해 찾아봤다. 미학이었다. 그가 멋지니 그가 전공한 미학도 뭔지 모르지만 멋졌다. 미학을 알고 싶었다.

딸아이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면서 미학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미술과 관련 있는 학문인듯싶었기 때문이다. 아니었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미학은 너무 좁은 의미였고 미학은 더 크게 아우르는 학문임을 미학생활자 편린의 <조각조각 미학 일기>을 읽고 알게 되었다.

'미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학문'입니다. (p. 6)'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한 저자 편린은 백오십여 명의 독자들에게 매일 연재하던 글을 다듬어 이 책에 옮겨 놓았다. 암호, 단서, 편지 이 세 가지 키워드에 각각 세 개씩 미술, 음악, 영화를 바라보는 미학적 사유를 아홉 꼭지로 구성했다. 키워드 별로 하나씩만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난해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첫 번째 조각, '암호'
앤디 워홀, <브릴로 박스> × 아서 단토

그래도 미학의 핵심은 미술이지 싶다. 그래서 질문,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것도 예술이야?'라고 할만한 작품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제 브릴로를 담은 박스와 닮은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박스>.

저자는 현실과 꿈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정의하는 예술 평론가 아서 단토를 데려와 이를 설명한다. 평범하고 예술의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어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미적 경험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브릴로 박스>는 예술 작품인 것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꿈만 같았던 예술이 현실(세제 박스)과 똑같아져 꿈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제 '깨어 있는 꿈 <브릴로 박스>'을 꾸게 됐다.

'예술은 깨어 있는 꿈을 꾸는 일이다. (p. 55)'

예술 작품 <브릴로 박스>의 해석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어 꿈을 꾸듯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면 미완 상태인 예술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것도 예술이야?'가 '이것도 예술이야!'가 된다. 앤디 워홀은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버렸다. 그 일상을 예술로 받아들여 새로운 일상을 창조한다면 우리는 이미 예술가다. 워홀은 우리를 해석하는 미학자로 만들어버렸다.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이다. 그들은 이제 어떤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를 확증하기 위해 실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미리 말해 줄 수 있다. p. 57)'


사회의 구조적 억압에서 해방되는 결정적인 둘째 조각, '단서'
토끼 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마 워쇼스키스, <매트릭스> × '시뮬라크르'

유토피아에 산다면 불만이 없을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들이 인간을 위해 만든 가상현실 세계가 실재를 뛰어넘는 시뮬라크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불행해질 권리를, 선을 원하기 전에 악을 원하는 존재다. 레오가 매트릭스에 흡수당하지 않기 위해 맞서듯 우리 인간 앞에 놓인 현실이 유토피아와 같더라도 기만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유토피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 유토피아는 하나가 아니다. 하나하나이다. '그렇다면 그 유토피아'들'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요? 바로 미세한 차이 그 자체인 나와 내 주변의 존재의 사이에, 그리고 그 자체로 주변적 존재인 나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p. 185)'


예술과 윤리의 관계를 사유하는 셋째 조각 '편지'
이창동, <밀양> × 자크 데리다

우리는 다른 인간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신은 우리를 대신해 죄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영화 <밀양>의 메시지는 고개를 젓는듯하다. 자크 데리다의 애도, 용서, 구원 개념은 '환대'라는 개념을 토대로 하는데 그 개념에서도 완전한 환대는 불가능하다. 신에 의해서도 법의 정의에 의해서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완전한 환대의 그런 불가능은 오히려 '더 나은 환대'를 생각하는 원동력이 된다. 불가능한 용서는 용서라는 행위를 간편하게 사용하는 (신애의 아이를 죽인 살인자가 신에게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을 막는다. 용서를 매듭짓지 않고 유보한 것이기에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기도 한다. 애도의 불가능성이 더 인간적인 애도로 이끌듯이 말이다. 극복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을 받아 읽은 다음, 서평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책을 읽고 덧붙여 기록을 남기는 것이니 후기나 독후감에 더 가까운 글을 남기곤 한다. 대부분은 책을 다 읽고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작가의 글에 기대어 내 방식으로 글을 남긴다.

그런데 이 책은 다 읽긴 했는데 나의 글투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은 더 집중해서 읽어야 내 나름의 정리가 가능할듯하다. 마땅히 그런 다음 후기를 남겨야 하는데 마감일을 지켜야겠기에 서둘렀음을 실토한다. 그래서 남긴 글이 창피하게도 중구난방이다.


내가 원하던 책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관심을 가졌던 미학에 대한 지식의 범위와 해석의 다양성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기다. 곁에 두고 읽는 책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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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식창업에 적합한 사람인가? - 창업 전 반드시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
김상진 지음 / 예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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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이라면 나도 숟가락은 아니어도 젓가락 한 개 정도는 얹을 자격이 있다. 직장에서 80여 개 점포에 연 매출 800억 원 규모의 식음 영업을 5년여 동안 총괄했었다. 트렌디한 점포를 유치해 객단가도 꽤나 올려놓았다.

머천다이즈는 재고 부담이 있는 큰 반면, 외식업은 상대적으로 초기 투자비가 많이 필요하다. 이자,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장사가 안될 경우, 그동안 땀 흘려 모은 투자비를 몽땅 날려버릴 확률이 그만큼 높은 업종이 외식이다.

그런데다 요즘은 패션만큼이나 외식 트렌트가 빨리 변한다. 같이 일하던 팀원의 말이 떠오른다. "맛집 찾아다니다가 일 년여 흘러 이미 갔던 맛집을 다시 찾아가면 없어졌더라고요..." 한때 곳곳에서 찜닭 팔던 곳은 대부분 사라졌다. 몇 년 전 가수 화사가 돌풍을 일으켰던 곱창집도 이젠 많이 정리된 듯하다.

저자가 제시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의 자료(2022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식업 점포 수는 총 70만 9,000개로 인구 5,100만 명 기준으로 본다면 72명당 점포 1개가 운영되는 꼴이라고 한다. 돈 벌기 힘든 구조다. 외식은 어설픈 귀동냥으로 '치킨집, 빵집 또는 카페나 하지 뭐~'라는 식으로 섣불리 뛰어들만한 업종이 절대 아니다.


같은 그룹에서 직장 생활을 같이해 나와도 꽤나 인연이 깊은 이 책의 저자는 외식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외식창업과 관련된 책을 냈다고 했을 때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사서 펼쳤다. '이런 게 실용서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고, 고생과 노력의 흔적이 책 곳곳에 묻어있었다.

저자는 외식창업과 관련해 A부터 Z까지 모두 알려줘야겠다고 작심한듯하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한 권의 책 <나는 외식창업에 적합한 사람인가>로 실무적인 것까지 다 커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또 창업에 주의할 점을 무엇인지 꼼꼼히 알려준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얻은 실제 운영 사례가 각 장마다 실려있는데,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로 창업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1)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하여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 뒤에 여유를 가지고 창업하라고 충고하고, 2)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하여 가족의 동의를 받아 자신감을 가지고 진행한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p. 9, 추천하는 글)'


저자는 우선 창업을 온몸으로 막아서서 설득한다.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직장 다닐 때 즐기던 주말이나 공휴일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직장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고 역 근처에 만화방을 차렸었다. 단골의 발길이 끊길까 봐 명절에도 가게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럼에도 창업이란 도전을 하겠다면,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기보다는 프랜차이즈 가맹 창업을 저자는 권한다. 점포 창업과 운영 노하우를 익히기에 쉽기 때문이다. 내가 외식업에 적합한 사람인지는 저자가 마련한 '외식창업 셀프 진단툴'로 평가 가능하다. 내게 적합한 브랜드와 상권 살펴보기, 직원관리, 고객 관리까지 모든 정보가 저자가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바로 영업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


지금 창업을 고려하거나 준비하고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웠거나 퇴직 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두 경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절박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외식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론서가 아닌 경험에서 만들어낸 실용서이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더라도 돈을 좇지 말고, 행복을 찾는 창업을 추천한다. 즉 떼돈을 벌려는 욕심을 버리고 적정 수익에 만족하면서 운영한다면 오래갈 수 있다. (p. 214, 나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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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루이비통 - 제주를 다시 만나다, 개정증보 2판
송일만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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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첫 여행은 가족이 함께했다. 제주도 해안 도로를 따라 3박 4일 동안 한 바퀴 도는 계획을 다른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참고해서 내 맘대로 짰다. 잠잘 곳도 하루 여행을 마치고 도착할 만한 곳에 예약했고, 밥 먹을 곳도 둘러볼 명소도 정해두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가는 곳곳마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감탄했다.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얼른 사진 찍고 차에 올랐다. 빡빡한 일정이어서 아내와 두 아이는 내 지휘에 따라 숨 가쁘게 움직여야 했다. 정신없어했다.


제주 토박이 송일만 작가의 <어머니의 루이비통>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은 제주, 그리고 해녀였던 어머니, 그 시대에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같았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 원래의 모습이 사라지며 변해가는 제주에 대한 아쉬움이 담겼다.

'제주 바당(바다)이 죽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품보다 넓고 깊은 바당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이제는 제주가 토해 내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바당 자신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리고 검붉은 건강한 웃음이 아닌 핏기 없는 하얀 울음으로 절규를 하고 있다.
나 아프다고, 나 좀 살려달라고
한평생 제주 바당과 같이한 어머니와 삼춘들의 놀이터가 사라졌다. 그리고 생활이 사라지고 있다.
조금은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p. 5)'


올래는 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래서 길보다는 집 앞 마당과 큰길 사이의 공간 개념에 더 가깝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곳이 올래입니다
만남과 헤어짐, 반가움과 아쉬움, 우리의 정서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리고 한여름 나무 그늘 아래 보약 같은 휴식도 있었던 그곳 (p. 70)'

그랬던 올래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면서 트레킹 코스가 돼버렸다. 올래 길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제주 사람들은 사생활을 도둑맞았다. 더 이상 제주의 정서가 머물던 올래가 아니다. 제주도는 올래를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제주 여인들이 끼고 살았던 구덕도 사라져간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건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제주의 어머니들은 육지 여성들이 핸드백을 들고 다니듯 구덕을 지고 다녔다.

주로 고는 대구덕인 곤대 바구리를 가지고 장 보러 다녔지만, 물질하러 갈 때는 출구덕을 시작으로 상군이 되면서는 물건을 많이 담아서 옮길 수 있는 지는 구덕, 질구덕을 비로소 사용했다. 질구덕은 힘든 노동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풀이나 삼베를 깔아 애기는 담는 애기 구덕, 헤진 구덕을 땜빵해 재활용한 바구리가 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 건물 벽면에는 늘 태악과 그 옆에 출구덕, 질구덕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는 허벅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허벅이 없어지더니 지금은 태왕과 출구덕, 질구덕 모두가 사라졌다. (p. 186)'

저자가 그 어느 것보다 구덕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건, 제주의 어머니들에게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도구였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뎌준 백이었기 때문이었다. 루이비통보다 더 소중하고 자랑할 만한 명품 백이어서 말이다.


몰랐을 때라면 모를까, 이제 알게 된 이상 제주 4.3은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됐다. 폐촌이 되어버린 다랑쉬 마을에도 제주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인 토벌대가 찾아왔다.

'그래도 나오지 않자 굴 양쪽에 검불을 피워 연기로 그들을 질식사시켜 버렸다. 당시 굴속에 있던 사람들은 머리를 돌 속에, 땅속에 박은 채로 죽어갔고 그들의 눈, 코, 귀는 피가 흘러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손톱이 없을 정도로 땅을 파다 죽어있었다고 한다. (...)
44년 만에 11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9살에서 50대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부 민간이었다고 한다. (...) 발견 직후 당국은 재빠르게 이들의 유골을 수습해 화장하고 바다에 수장해 버렸다. (p. 227)'

제주의 부모들은 자식 걱정에 약속이라도 한 듯, 억장이 무너지는 한을, 그 4.3을... 말하지 못하고 입다물었다. 한 세대가 지나도록 공포는 지속됐고 그 공포는 내가 이렇게 살았노라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제주에 간다면 그들의 잊지 못할 기억에 귀 기울여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생겼다.


내가 몸담았던 해병대는 제주도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끼리 있을 때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신기하기만 한 그들의 언어로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알던 삼촌이 제주도에선 그 삼촌이 아니었다. 눈물 그렁그렁 한 눈으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그 사투리의 쓰임새를 알게 됐다. 삼촌이란 말에 어떻게 그리 여럿 감정이 섞여있었던지. 제주어가 가득한 송일만 작가의 제주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그의 제주도, 다른 버전의 제주도를 보여준다.

'나는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기보다는 해녀들이 구덕에 삶을 지고 다녔던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분들의 삶과 사랑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p. 5)'

우리 가족의 제주도 첫 여행은 제주도에 사는 분들의 삶과 사랑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바쁜 여행이었다. 다음 제주도 여행은 천천히 걷는 송일만 버전의 제주도를 알아가는 여행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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