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의 부엌 - 도쿄 일인 생활 레시피 에세이
오토나쿨 지음 / 유선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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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부엌이란 말의 느낌이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퇴직한 다음부터 내 일상에 부엌도 한몫 차지하게 됐다(퇴직한 사람이라면 다 그럴 거다). 아내의 손가락에 통증이 찾아온 지 오래됐다. 쥐는 힘이 없어 설거지는 내 차지다. 난 꼼꼼하게 닦느라고 닦는데, 아내 마음엔 내 설거지 실력이 맘에 안 드는듯한데 계속 부려먹기 위해 참는 눈치다.

계속 얻어먹는 게 눈치 보여 가끔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다. 내 입맛에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아내와 아이들은 간혹 입맛에 맞지 않아도 맛있다고 호들갑이다. 때려치우는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속셈이다. 떡볶이집 맛을 살려낸 라볶이는 단짠맵을 고루 갖췄다고 자평한다.

백종원 씨의 간단 레시피에 힘입어 추가한 레퍼토리는 달걀 볶음밥과 달걀말이다. 감자를 채로 썰고 파, 양파, 청양고추를 넣은 감자전. 달걀 두 개, 치즈 한 장, 슬라이스 햄 또는 베이컨, 설탕 듬뿍 한 스푼 넣은 한껏 불량한 샌드위치도 내세울 만하다. 내가 만든 음식으로 한 끼니 때울 때면 아내와 아이들은 '와~'하고 감탄사를 적당히 남발하며 그냥 나태함을 즐기면 된다. 나 한 사람의 부엌에서 수고로움은 가족들의 여유를 재생시켜 준다.


자연스럽게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재생의 부엌>, 도쿄 생활 13년 차인 디자이너 일인 생활자 오토나쿨의 글과 사진을 담은 생활 레시피 에세이다. 열네 가지 1인분 요리 레시피도 담겨있다.

'일상日常의 사전적 의미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입니다. 가끔 쳇바퀴 같은 일상이라는 표현을 쓰죠.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특별한 것 없이 조금은 지루한 생활을 말합니다. (p. 168)'

일상을 자세히 관찰한다면 여러 가지 감정을 만날 수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1인분의 일상이 글이 된다. 1인분의 음식이 위로가 된다. 1인분의 마음이 나를 재생시킨다.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다시 길을 가게 만든다.

'저는 요리를 좋아합니다. 잘한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쪽입니다. 물론 좋아하면 자꾸 하게 되고 하다 보면 느는 것이 요리지만, 그래도 아직은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겸손이 아니라, 편식이 심한 편이다 보니 그만큼 맛에 대한 식견이 좁아서 그냥 제 입에 맞게 만드는 정도입니다. (p. 56)'

편식이 요리를 좋아하게 하고 내 입에 맞는 음식을 만들게 하듯, 같은 반복이 일어나는 일상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삶을 조금씩 틀어 바꾸어 놓는다. 느슨한 일상, 그 일상을 채우는 것들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절박함의 결과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상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의미들이 모여 인생이 의미 있게 되는 것이고...


오토나쿨이 알려준 레시피에서 내가 만들만한 음식이 있는지 찾아본다. 물론 오토나쿨의 한상차림과 나의 단품 요리 실력을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만만한 레시피를 골라 만들어보려고 한다. 가끔 이긴 하지만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면, 이번엔 나를 위해 한상 차려보려고 한다. 잘 만들 수 있겠지? 나의 재생을 위해서...

'부서지고 금이 간 그릇들은 제 부엌에선 그러지 못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반드시 재생되길 바랍니다. 어딘가에 작은 가루로 남겨지더라도, 그동안 함께했던 요리의 맛과 저의 재생을 함께했던 기억으로 보다 단단하고 멋지게. (p.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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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래서 쓴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사이연 옮김 / 비트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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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은 단순하게 들립니다만, 이 단순함이 위험천만합니다. (...)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오래전에 본 어느 작가의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그가 스튜디오로 들어서면서 "나는 죽을 목숨이기에 글을 씁니다."라고 말하던 장면입니다. (p. 9)'

'죽을 목숨' 정도의 각오까지는 아니었지만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이 국어를 담당한 시인이었다. 시를 써보았다. 창피해서 남들에게 보여주진 못했고 그냥 일기장에만 기록으로 남겼었다. 그 이후 대학생 시절 리포트, 회사 다닐 때 협조전이나 보고서를 쓴 게 내가 쓴 글 전부였다.

몇 년 전부터 죽기 전에 나의 철학을 한 번쯤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문제는 지식의 한계였다. 생각 정리용으로 사용할 만한 내가 가진 표현 도구들이 너무 형편없었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에게 도움을 청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이어가며 글로 옮겨 적는다. 흐트러진 생각들을 하나하나 모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래서 쓴다>는 작가 크나우스고르가 자신에게 '왜 글을 쓰느냐'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글을 어떻게 쓰는지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기가 왜 어려운지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작품은 <나의 투쟁>이 유일한듯하다. 잔혹할 정도로 솔직하다고 평가받는 작가로 적은 페이지의 이 책에서도 자신의 문학관을 솔직하게 힘겨워하며 드러낸다. 진실한 무언가와 그 진실이 무언가를 드러내는 상황 사이의 틈, 그 틈이 문학이라고 밝힌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가 이야기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 (p. 10)'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온갖 판단과 가식과 입장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글을 쓰는 행위는 창조하고 얻는 것만큼이나 잃는 것이고 되돌려주는 것이다.

작가는 만화책이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가 거론하는 책은 어슐러 르 권의 <어스시의 마법사>,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미셀 푸코의 <사물의 질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입센의 <유령> 등이다. 이상 언급된 책들이 어떤 내용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작가의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아직이라면 관심을 둘만한 책 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서는 각각의 책을 관문으로 삼아서 들어설 수 있는 평형 세계 속에서 다른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쉽게, 또 너무 과하게 감정적이 되곤 하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감정이 늘 문제입니다만, 독서는 어떻게든 이런 감정들을 해소시켜 주었고, 동시에 새롭고도 낯선 감정들을 불러일으켰습니다. (p. 63)'


지난해 봄에 출간된 <루스 아사와>를 만난 것이 비트윈 출판사와 첫 인연이었다. 일본계 미국인으로 배타적이고 적대적이었던 세상을 상대로 묵묵히 자신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나가서 결국 순수 예술가로서 인정받은 루스 아사와의 삶을 그린 책이다.

사이연(사이연구소 Between Labs)은 언어와 문화 및 시대와 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치열하게 살아낸 작가들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 비트윈 출판사의 결인가? <루스 아사와>와 <나는 이래서 쓴다> 그리고 이어질 세 번째로 기획 출간될 책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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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 박웅현의 조직 문화 담론
박웅현 지음 / 인티N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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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류는 시대정신이 크게 바뀌는 혁명을 거쳤다. 170만 년 전에 '불'을 발견해 화식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잠잠하다가 7천 년 전쯤 농업혁명이, 그 이후 6700년이 흘러 산업혁명이, 전기의 발명으로 1780년대에서 불과 120여 년이 지난 1900년대에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이전까지가 장인匠人의 시대였다면 2차 산업혁명은 '시스템의 시대'가 됐음을 알리는 혁명이었다.

'그 당시의 키워드는 이런 단어들입니다. 조직력, 효율, 규모, 상명하달, 일사불란. 전부 시스템의 시대에서 온 것들입니다. (p. 39)'

내가 일하던 조직은 프로세스에 따라 일을 진행하는 시스템의 세계였다. 광고인 박웅현 역시 그 시스템에서 광고를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해군과 달리 그냥 움직이는 해적, 그 해적을 상징하는 해골을 사무실 벽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해군의 시스템을 버리고 해적의 정신으로 광고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살 수 없다" (p. 25)'고 말한다.


광고를 만들던 저자가 브랜딩 컨설팅이 가능했던 건, 광고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듯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이 조직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란 점에서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해적의 시대라는 시대 문맥에 따라 조직 문화도 변화해야 한다. 시스템 시대의 키워드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조직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들이 조직 안에서 일의 가치를 느끼고 출근하고 싶어져야 한다.

'"철학을 문학화시켜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철학은 정확한 개념이고 문학은 피를 끓게 하는 개념입니다. (p. 80)'
전략 대신 정서를 건드려야 하고,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를 알려줘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 분위기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일하는 시대다.

어떻게 하면 조직을 창의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광고 일을 30년 가까이 해오면서 자신의 화두로 여긴 '견문연행(見聞軟行)'을 대답으로 제시한다. '견'은 감동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잘 들여다보는 것이다. '문'은 잘 들어주는 것이고, '연'은 연성화, 즉 긴장을 낮추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은 위험 부담을 감수할 수 있는 삶의 태도라 할 수 있다.
'"Better sorry than safe."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안정적이고 안전해요. 하지만 그것보다 실패하더라도 해보고 미안하다고 하는 게 낫습니다. (p. 179)'


조직 문화 담론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은 일과 사람, 조직운영에 대한 박웅현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저자가 그의 생각을 30대 중반 이상인 조직의 리더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듯하다. 젊은 세대들을 향해 '저 세대는 왜 저럴까'라며 집단으로 묶어 다른 존재로 타자화하지 말 것을 충고한다. 그런 세대론으로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개인과 개인으로 마주할 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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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 개정판
남영신 지음 / 까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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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산다가 맞을까, 서울에서 산다가 맞을까? 까치글방 사장이 저자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어떤가. 난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당황스러웠다.

''살다'를 태어난 이후 줄곧 살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관점에서 보면 장소의 교체는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서울에 산다', '미국에 산다'처럼 '에'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살다'를 그렇게 정적으로나 소극적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하는 생활로 본다면 '서울에서 산다', '미국에서 산다'처럼 장소를 지정하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pp. 58, 59)'

'에'와 '에서' 가운데 어떤 조사를 쓰느냐에 따라 말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우리말에는 이런 차이로 생기는 재미가 있다 (물론 알아채지 못하면 그만이긴 하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어는 조사나 어미가 문법적 기능을 하므로 이를 잘못 사용하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국어 문장에서는 조사 사용법이 까다롭다.


저자는 언어를 배에 비유한다. 진리가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라면 언어라는 배가 우리를 실어 그곳에 데려다 놓을 것이다. 이왕이면 낡고 삐걱거리는 배보다 멋지고 성능이 좋은 배를 타고 가야 좋지 않을까? 이 책은 내가 타고 가는 배가 최고의 성능을 갖추도록 안내한다.


저자는 이번 개정판에 추가한 가장 새로운 내용으로 5장 '순화' 부분을 꼽았다. '쉽고 평범한 글쓰기'에 대한 소망을 5장에 담았다고 한다. '실용적이고 멋진 한국어'를 쓰는 것이 저자의 목표다. 이는 실용성이 높은 언어를 의미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사람이 가장 쉽고 정확하게 습득하게 해 주는 언어'를 가리킨다.

'내가 실용적으로 멋진 언어의 조건으로 제시한 쉽고, 간결하고, 정확함의 정의를 먼저 내리고자 한다.
쉬운 언어: 어려운 한자어, 외국어를 쓰지 않을 것.
간결한 언어: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하거나 중복되지 않을 것.
정확한 언어: 논리적일 것, 명료할 것, 중의성을 피할 것. (p. 222)'

정확한 언어 사용을 위해 기피하면 좋을 표현으로 (내가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어서인지) 영어식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영어를 많이 접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다.
우선 '~에 의한'.
''무장 세력에 의해 인질로 잡힌'은 '무장 세력이 인질로 잡은' 또는 '무장 세력에게 인질로 잡힌'처럼 구성하는 것이 한국어 다운 표현이다. (p. 261)'
또 하나 '~을 필요로 하다'.
''저를 필요로 하는'은 단순히 '제가 필요한'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p. 264)'


'이상한 한국어 문장도 숱하게 많다. 맞춤법에 맞지 않는 문장, 어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문장, 문맥이 서지 않은 문장,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문장 등이 여기저기에서 우리 눈을 어지럽힌다. 그런 문장을 보면 우선 그 속에 녹아 있는 고귀하고 아름답고 중요한 의미가 훼손됨을 느끼고, 나아가서 마음이 답답해지거나 짜증이 나게 된다. (p. 18)'

흔히 쓰는 말도 글로 옮기다 보면 그 낱말에서 왠지 어색함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글을 자주 써보지 않은 탓도 있고 무슨 뜻인지 모른 채 습관처럼 쓰다 보니 그렇다. 언어생활이 후퇴되지 않도록 사전도 찾아보고 좋은 글은 필사해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맞춤법 검사도 빼먹지 않고 하는 편이다. 생각 없이 낱말을 나열하는 데 급급해 비문을 마구 사용하고 싶지 않다. 우리말에만 있는 말맛을 한껏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통, 지식과 정보 교환이라는 목적지에 아름다운 모습과 좋은 성능의 배를 타고 가려고 한다. 이왕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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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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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요즘도 책 읽으며 지내나(요)?"라고 묻곤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책이나 읽고 지낼 건가(요)'로 들린다. 뭐라고 대답할까? 길게 답할 여유를 주는 질문이 아니니 짧은 대답을 마련해야 했다.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정의란?' '평등은?' '죽음은?' '올바른 배려란?'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수히 많은 그 뒤죽박죽인 것들을 한 번쯤은 내 나름 정리하고 싶었다. 내 생각과 의견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앎, 그리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난 책을 읽는다.

'누군가 쓴 것을 내가 읽는다 내가 쓴 것을 당신이 읽는다. 심심해서 외로워서 궁금해서 슬퍼서 읽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만난다. (p. 234)'
나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문자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의 시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나는 누구일까' '이게 내가 맞나?' 이것도 정리하고 싶은 주제 가운데 하나다. 노재희 작가의 삶을 펼쳐 보여준 산문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에서 나는 '존재'에 대한 것만 골라 생각했다.


노재희 작가는 어느 날 체온을 재 보았다. 평소보다 1.5도 높아 병원에 갔다. 치사율 50퍼센트의 결핵성 뇌수막염임을 알게 됐고, 40여 일 병상에 누워있는 바람에 일상이 중단됐다. 게다가 20여 일간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린 작가는 '나'란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 이후의 일들은 모두 다른 가족들로부터 듣고 재구성한 기억이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번 듣다 보니 실제로 내가 다 겪어서 기억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은 실제로 내가 다 겪은 일이다. (p. 38)'

스스로 알고 있는 '나'가 있겠고, 기억이 통째로 날아간 시간은 곁에 있던 사람들이 말해주는 낯선 '나'로 채우고, 어린 시절의 나는 일기장을 펼쳐 '와아아~' 소리치며 내게 달려오는 기억 너머의 '나'들로 메꾸면 짜깁기한 '나'가 완성된다.

또 하나 '나'란 존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실제로 겪은 '나'가 있겠고, 때론 아름답게 때론 욕심을 부려 기억이 다듬어 놓은 '나'가 있다. 어느 '나'가 진짜 '나'일까. 둘 다일까?


작가의 할아버지 이부연 씨는 1924년 강원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큰아버지가 소개해 준 김금녀 씨와 혼인날 처음 만나 결혼했다. 우편국에서 일했고 일본군에 징집돼 고생했지만 평생을 항로표지원을 일하다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그 후 30년을 더 사셨다. 아들 셋을 잃었고 자녀 여섯을 키웠다. 뇌졸중인 아내를 자식들 도움 없이 보살피기도 했다.

어린 작가에게 등대지기 할아버지는 자랑이었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웃는 모습도 멋졌다. 그랬던 할아버지는 작아져 줄어들고 쪼그라진 마지막 모습을 작가에게 남기셨다. 작가가 아는 이부연 씨의 삶이다.

'항로표지원 이부연 씨가 생을 마쳤을 때 몇 사람의 지인과 일가친척 말고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대부분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p. 105)'

70년 가까이 함께 한 아내는 이부연이란 존재를 어떻게 기억할까? 맏딸인 작가의 어머니는? 이웃들은? 직장 동료들은? 그리고 이부연 씨 자신은? 어느 이부연 씨가 진짜 이부연 씨일까. 모두 다일까?


신은 존재할까? 작가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 자체가 신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이 확실히 존재한다면 믿을 일이 아니다. 그냥 존재하므로. 또 과학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불완전함으로 두는 반면, 종교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전지전능한 섭리로 해결하는 권위를 보이고 오히려 신의 존재 증거로 삼는다.

'자신의 하찮은 일상과 스트레스뿐인 인간관계에서 도망쳐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 162)'

작가는 신의 존재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기도카펫을 깔고 기도하듯 '절운동'을 한다. 20분 동안 하는 백팔배는 머릿속을 가지런히 한다. 마음이 평안해진다. 마치 기도한 것처럼.

(중략)

이제부터 노재희 산문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을 읽으며 정리해 볼 주제는 '제대로 산다는 건 뭘까?'이다.

'서른셋까지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몇 살쯤까지 살아야 제대로 살아본 것일까? 그리고 제대로 산다는 건 뭘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p. 87)'

내 맘대로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보여주려 했던 것과 많이 빗나간듯하다. 아무렴 어떠랴. 나를 수신인으로 쓴 글이 아닐 텐데... 노재희가 쓴 글을 그냥 내가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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