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일본책 - 서울대 박훈 교수의 전환 시대의 일본론
박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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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이를테면 미국은 미국놈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뭐 미국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본은 반드시 일본놈이라고 한다. 아니면 왜놈.

스포츠도 다른 나라는 질 수 있다. 일본만큼은 안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1997년 축구 한일전, 도쿄대첩이라 불리는 경기에서 송재익 캐스터의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는 언제 들어도, 2010년 일본의 월드컵 출정식을 망친 시합에서 박지성의 '산책 골 세리머니'는 보고 또다시 봐도 통쾌하다. 아마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일 거다.

<위험한 일본책>의 저자인 박훈 교수는 이런 심리를 멸시와 불신의 감정과 더불어 두려움과 피해의식이라는 콤플렉스가 묻어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들도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보다 우리에게 더 심하고, 그걸 보상받기 위해서 한국만큼을 일본이 이겨야 한다는 심리를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실 일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우리가 말은 많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자세히 일본을 알지 못한다. 대부분 주워들었거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만을 갖고 이야기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지척 거리에 있지만, 그 지정학적 조건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큰 자연재해 없는 한반도는 지질학적으론 천국, 지정학적으론 지옥이며, 일본은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pp. 50, 51)'

나만 해도 일본 역사에 그리 밝지 않다. 두견새를 소재로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고, 히데요시는 울게 해야 한다고, 도쿠가와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라고 하이쿠를 읊은 세 인물, 그리고 근대사도 (이 책에도 등장하지만) 일본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카모토 료마를 다룬 시바 료타로의 10권짜리 전집 <료마가 간다>를 읽고 대충 꿰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위험한 일본>을 읽고 그동안 잘못 알았던 사실들도 있음을 깨달았다. 섬나라라는 생각에서인지 일본은 오래전부터 해양강국이라 여겼는데 해양국가가 된 때는 메이지 시대 이후다.

또 하나 전쟁하면 임진왜란, 태평양 전쟁이 떠올라 일본 사람들이 전쟁의 참상을 잘 알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론 원폭 투하로 도시가 벌판이 되긴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적군이 이웃과 가족을 죽이는 전쟁의 참혹함은 겪지 않았다.


'이 책에서 지금까지 해온 주장의 결론은 전 세계인이 일본을 무시해도 한국인만은 일본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팬 패싱'은 통쾌하기는 한데 우리 국익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거꾸로 전 세계 아무도 일본을 무시하지 않는데, 한국만 무시한다. 물론 전 세계가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한국인은 그럴 필요 없다. 끝내 존경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않는 자세, 그게 대일 자세의 입각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p. 253)'

박훈 교수의 주장이 이성으로는 이해되고 옳다고 생각한다. 한데 감정은 그렇지 않다. '반일이면 무죄'라는 사람들에게 욕먹을 각오까지 하고 쓴 일본론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게 나라냐!"라며 비장하게 출발한 정부가 "이건 나라냐!"라는 냉소에 직면한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pp. 233, 234)'

이 책을 읽는 시기가 잘못된 탓일까?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기업의 제3자 변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동해의 일본해 표기, 독도 문제, 독립운동을 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한미일 군사동맹에서 위계상 맨 아래쪽에 있는 등 우리 정부의 일본에 대한 굴욕적 태도가 문제다. 저자가 제시한 일본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장애물이 되어 가로막는다.


다음 세대에 일본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제 강점기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박훈 교수도 말하다시피 위안부 피해자와 같은 인권문제와 달리 식민지 문제는 국제 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이슈다. 독일이 되풀이하는 사과도 전쟁 행위에 대한 반성이지 식민 행위는 아니다. 강대국들 모두 식민 지배를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대단한 외교적 성과이고 한일 문제 해결의 실마리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 식민지 얘기가 화제에 오르면 "도대체 저런 선진국을 상대로 '감히' 일본이 어떻게 그런 짓을 했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은 아마도 일본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선망보다, 일본 젊은 친구들의 한국 동경이 더할 것이다. (p. 140)'

우리 아이들도 더 이상 일본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왜놈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임진왜란 때의 조선은 물론 구한말의 조선도 아니다. 무조건 일본을 배척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걸어보는 이유다. 비판할 건 하면서도 같이 나가는 이웃나라 일본, 그렇게 일본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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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특별판)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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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p. 26)'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오펜하이머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 이후까지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역작이다.

오펜하이머는 1904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율리우스 오펜하이머는 독일계 유태인으로 자수성가했다. 덕분에 오펜하이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 엘라는 화가로 율리우스를 만났을 무렵 미술을 가르쳤다. 엘라는 아들에게 집착해 오펜하이머는 어머니의 과잉보호 속에 자랐다.

오펜하이머 가족은 유태인임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유태교 회당에 나가지 않았다. '윤리문화협회'라는 진보적이고 세속적인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유태 신앙 조직에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며 유태교 정통파인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이런 성장 환경으로 인해 유태인이란 걸 감추는 등 평생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

'오펜하이머는 "나는 매끈한, 기분 나쁠 정도로 착한 어린아이였다."라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나는 세상이 잔인하고 냉엄한 곳이라는 사실에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과잉보호하는 부모 밑에서 그는 "정상적이고 건전하게 나쁜 놈(bastard)이 될 방법"이 없었다. (p. 47)'

'오펜하이머가 1936년 봄 진 태트록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22세였다. (...) 진은 굵고 색이 짙은 곱슬머리, 갈색이 도는 푸른 눈동자, 짙고 검은 속눈썹, 그리고 자연스럽게 붉은 입술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p. 183)'

오펜하이머는 진의 아름다움과 수줍은듯한 우울한 분위기를 사랑했다. 진은 똑똑한 여성이었지만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고 내성적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해 나중에 정신과 의사가 됐다. 둘은 두번이나 결혼할 뻔했지만 태트록이 거절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캐서린 '키티' 퓨닝 해리슨은 작은 몸집에 갈색 머리카락을 가졌다. 그녀는 진 만큼이나 아름다웠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p. 249)'

오펜하이머가 키티를 만났을 때, 키티는 이미 세 번의 결혼 경험이 있는 기혼자였다. 특히 두 번째 남편은 신념에 불타는 공산주의자였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전사했다. 키티는 진과 다르게 외향적이었고 변덕스러웠으며 자기주장이 강했다. 둘은 평생 의존적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보살폈다.

오펜하이머와 키티 사이에는 아들 피터와 딸 토니 두 자녀가 있었다.

아들 피터는 엄마 키티와 약간의 불화가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방관하는 편이었다. 부모와 잘 지내지 못했던 피터는 두 번의 이혼을 겪었고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아버지의 산장인 페로 칼리엔테에서 건축공이자 목수 일을 하며 생활했다. 핵 폐기물의 위험을 알리는 환경 운동가로도 활동한 피터는 아버지가 원자 폭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토니는 엄마 키티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가까운 친구도 드물었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했고, FBI에 뒷조사에 의해 자신이 선택한 직업조차 얻지 못하게 되자 결국 세인트존으로 돌아간다.

'1977년 1월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녀는 호크네스트 만에 오펜하이머가 지은 해변 오두막집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그녀의 자살은 분명히 계획적인 것이었다. 토니는 자신의 침대에 1만 달러짜리 채권과 집을 "세인트존 주민들"에게 넘긴다는 유언장을 남겼다. (p. 894)'
서른두 살이었다. 섬주민들은 토니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몰랐다.

예상이 빗나가는 법은 없었다. 왜 예술가, 독립운동가 등 삶을 희생한 과학자의 가족사는 비극적이어야만 하는가? 피터와 토니의 삶으로 투영된 치밀한 논리의 물리학자이자 뛰어난 리더십을 보인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모습은 당황과 난처함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오펜하이머와 그로브스는 원자 폭탄을 만들기 위한 독일과의 경주를 이끌어 나갈 완벽한 콤비였다. 오펜하이머의 스타일인 카리스마적 권위가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적절했다면, 그로브스는 위협함으로써 권위를 행사했다. (p. 350)'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기에는 흠이 있었다. 공산주의자라는 의혹,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행정 경험이 전혀 없었다. 세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로브스는 성과를 종합하고 핵심을 연결해 통찰하는 뛰어난 능력이 오펜하이머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총책임자로 임명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서른네 살이었다. 그로브스의 예상대로 오펜하이머는 프로젝트를 통해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의 면모를 갖춘다.

트리니티(Trinity) 핵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이미 히틀러가 자살했고 독일은 항복해 폭탄을 나치스에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가능했다.

미국은 일본이 항복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본은 좀더 유리한 조건에서 항복하기 위해 소련과 접촉했고, 미국은 소련이 참여했을 때 벌어질 일본의 복잡한 상황이 싫었다. 무조건 항복을 위해 미국은 소련이 개입하기 전, 8월에 전쟁을 끝내길 원했다.

'1945년 8월 6일, 정확히 오전 8시 14분에 조종사 폴 티벳 (Paul Tibbet)의 어머니 이름을 따 에놀라 게이(Enola Gay)라는 별명을 붙인 B-29기가 시험해 보지 않은 총구식 우라늄 폭탄을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했다. (pp. 479, 480)'


1940~50년대를 휩쓸었던 건 매카시즘이었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미국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었다. 이 스캔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지만 의원과 대통령도 몸을 사릴 정도였다.

19030년대 미국에서 좌파 활동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때 매카시즘은 좌파적 경험을 갖고 있던 지식인들, 과학자들을 겨냥했다. 그중 한 명인 오펜하이머도 스트라우스의 안테나에 걸려들었다. 그는 수소폭탄 프로젝트를 의도적으로 방해했고, 공산주의자이며, 소련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고발장에 담아 오펜하이머를 청문회장으로 끌어냈다.

진보적인 신념을 갖고 교원노조 참여, 스페인 내전 공화파 지원 등 공산당 쪽과 교류한 사실은 있으나 오펜하이머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는 어떤 증거도 청문회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레이 위원회는 그를 위험인물로 판단했고 비밀 취가 인가를 되돌려 주지 않았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청문회 이후 많은 과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오펜하이머의 무고를 주장했다. 유태인, 배신행위 혐의라는 공통점을 가진 드레퓌스 대위가 소환됐고, 원자폭탄의 아버지로만 알려졌던 그는 이제 갈릴레오처럼 박해받는 과학자로도 유명세를 얻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 전해준 대가로 평생 독수리가 간을 쪼아먹어 고통을 받는 형벌을 받는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의 이점과 위험을 동시에 주었듯이 오펜하이머 역시 핵에너지를 이용하는 혜택과 함께 핵폭탄이라는 커다란 근심도 인류에게 안겨주었다.

'인류가 이제 스스로를 멸망시킬 능력을 갖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오펜하이머는 "그렇게까지는 아닙니다. 그렇게까지는. 물론 인간 전체의 상당수를 파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남은 자들을 과연 인류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이라고 대답했다. (p. 842)'

20세기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면서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오펜하이머의 삶은 급변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이렇듯 모순이 가득했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딜레마가 충돌하는 자신의 삶을 묘사하면서 오펜하이머는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힘이 없다면 책임감도 있을 수 없다. 힘은 스스로 하는 행동에 대해서만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이 있다면, 부가 있다면 책임감을 가지는 범위는 넓어질 수밖에 없다.

지식과 부를 가졌던 오펜하이머의 삶은 올바른 행동이었을까? 그 행동으로 얻은 힘을, 그 힘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기꺼이 짊어진 삶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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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그날, 우리가 몰랐던 중남미 세계사
윤장훈 지음 / 팬덤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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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놀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 나라별 수도 맞추기를 많이 해서인지 어느 나라가 어느 대륙 어디쯤에 있는지 요즘 세대보다는 좀 더 아는 편이다. 그럼에도 중남미, 그중에서도 카리브 국가들 중 일부는 낯설다. 물론 지리적 위치는 시작일뿐 그 나라의 역사, 정치, 문화 등을 알려면 갈 길이 멀긴 하다.

수리남은 최근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된 나라다. 아프리카 대륙인가 했더니 브라질 북쪽에 있는 나라였다. 안티구아 바르부다, 과달루프, 세인트루시아, 그레나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이라는 카리브 국가는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됐다.

이들 잘 모르는 나라들을 비롯해 중남미에는 30개가 넘는 나라가 있다. 유럽 중심에서 이곳은 신대륙이었다. 원주민 입장에서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엄연히 잘 살고 있는데 치명적인 병균을 갖고 온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무슨 동물 보듯 했으니 말이다.

이곳 사람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침략당해 희생됐다. 이들로부터 독립을 해야 했고, 그다음엔 영토분쟁, 권력 다툼으로 내전을 견뎌야 한다. 힘센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중남미 국가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용했다.


'이 책은 중남미 역사를 파헤치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 중남미 역사 전체를 시간의 순서대로 다루는 전문 서적이기보다. 매일 벌어졌던 중요한 일을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중남미 역사를 완벽히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단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날 중남미엔 이런 일이 벌어졌었구나' '이런 날을 기념하는구나' '이런 사람들이 살았구나'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p. 5)'

중남미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때문에 축구를 떠올릴 수도 있고, 예술을 좋아한다면 프리다 칼로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백 년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체 게바라를, 삼바 축제를, 커피를, 뮤지컬 <에비타>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부른 아르헨티나 민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에바 페론까지... 관심사에 따라 제각각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중남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상당히 제한적이고 평면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서구 세계의 시각으로 마약, 내란 등 특정 프레임으로 소식을 접하다 보니 이미지도 좋지 않다.

이 책은 중남미 나라별 문화나 특징을 알아가고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 중남미를 입체적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가 1년 365일 날짜별로 꽉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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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의미
임주혜 지음 / 행복우물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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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책을 집중해서 읽은 첫 번째 시기는 40대 초반이었다. 주로 자기계발서였다. 한 달에 대여섯 권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자기계발서에 손이 잘 가질 않는다.

그 시절 책 읽기의 목적은 성공이었다. 책을 통해 내가 알게 된 성공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꿈이 없어서였다. 즉 그 꿈은 목표, 삶의 목표였다. 막연한 꿈을 꾸지 말고 구체적인 꿈을 설정하라고 책은 알려줬다. 성공의 레퍼런스는 책의 저자인 경우보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의문이 든 건 '결과론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그들의 성공 루트가 내 상황에도 적용되는 건가?'였다.


<읽기의 의미>는 10년 차 방송작가의 산문으로 책을 읽고 그 책의 글에서 찾은 임주혜 작가만의 의미를 담아놓았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임 작가는 자신을 완성한 질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질서를 너무 맹신하는 건 아닌지. 정여울의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는 글쓰기에서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함을 알았다.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는 '계속 써도 되나?' 싶은 글쓰기 정체에 이르렀을 때, 화가 남아있다면 계속 써는 된다는 위로를. 황윤의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에서는 일상이 피곤한 이유가 '나'를 읽어버렸기 때문임을.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서는 나를 위해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 먼저임을. CS 루이스의 <책 읽는 삶>에서는 우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성실함임을 깨달았다.

이렇듯 작가가 책을 읽고 고민하며 사유한 결과를 읽는 일은 여러모로 즐거웠다. 나와 생각이 달라서 그랬고, 나와 차원이 다른, 작가가 찾은 값진 '읽기의 의미'에 나의 생각을 넌지시 얹을 수 있어서 그렇다.


'읽기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고민하고 생각하며 때론 사랑하고 절망할 때 희미하게만 보였던 타인의 마음과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 느껴질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p. 6, 책머리에, 즐거운 발견)'

임 작가에게 독서는 여행이기도 하다. 숨는 곳이기도 하고, 외로울 때 공감하며 다가오는 대상이 세상에 있음을 알려주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는 힘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퇴직 후, 그동안 사두고 읽지 않았던 책을, 또 읽었더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다시 책 읽기에 집중했다. 20년 만이다. 그때 책을 읽고 들었던 의문은 더 이상 없었다. 아니 없다기보다 책을 읽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 맞을지도. 읽기의 목적이 달라서일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아는 단어도 표현력도 빈약하니 책에서 도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의 책 읽기의 즐거움은 지식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핑계로 너무 모르는 게 많은 채 살아왔다. 알아서 뭐 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만의 욕구를 채우다는 의미에서 나에겐 중요하다. 아는 게 없으니 사고에 한계가 있다.

세상에 다양한 삶이 있더라. 살아가는 철학도 제각각이고 그 철학을 갖게 된 방식도 여러 가지임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다. 틀림은 없고 다름만 있었다. 책으로 채워진 나의 시간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기분이 든다. 이 점이 내가 독서로 찾은 최고의 '읽기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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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사람 - 어느 소설가의 택배일지
정혁용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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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제대했을 때보다 세상이 만만해 보인 적은 없었다. 게다가 병장 시절엔 운동도 좀 해놓은 터라 힘쓰는 것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큰돈 좀 벌어보겠다고 선택한 아르바이트가 신축 아파트 단지에 나무를 심어 경치를 꾸미는 일이었다. 산에서 나무 좀 캐다가 화단에 심는 일이라기에 선뜻 나섰다.

일주일 일하고 앓아누웠다. 요령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일 자체가 고되었다. 우선 산을 오른다. 뿌리째 나무를 캐야 하는 데 삽질 반경이 장난 아니었다. 뿌리 흙까지 새끼줄로 묶고는 그 큰 나무를 들고 산을 내려와야 한다. 차에 나무를 싣고 아파트 현장으로 다시 와서 그 나무를 심기 위해 산에서 삽질 한 넓이와 깊이만큼 또 삽질을 해야 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머리를 쓰는 정신적 고통이 더하다고 운운하는 거? 헛소리다.

직장 생활하면서 육체적 고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 못지않은 고통을 경험했다. 바로 인적 서비스로 겪는 감정 노동이다. 사람 상대하는 일, 정말 어렵다. 어쩌면 감정노동이 육체노동보다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러 직업을 거쳐 좌절의 끝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난 게 택배였다. 육체노동은 처음인데다 강도도 커서 매일 체력의 한계치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건 내 시간이 전혀 없다는 거였다. 항상 밖에 있는데 하늘을 볼 시간도 바람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쓰러져 자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것도 서너 시간 말이다. (pp. 13, 14)'

택배는 육체적 고통에 감정노동을 더한 노동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소설가의 택배일지'라는 부제의 에세이 <문밖의 사람>의 저자 정혁용 작가는 낮에는 택배 일을 하고, 틈틈이 휴대전화로 글을 쓰는 작가이자 택배 노동자다. 그는 내가 잠시나마 체험했던 육체적, 감정 노동에 따르는 고통의 최고봉인 택배를 하면서 장편소설 <침입자들>과 <파괴자들>을 출간했다.


'아무튼 성장이든 변화든 인간은 머리로도 할 수 있지만 거기에 육체적 단련이 동반되면 시너지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 같다.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게 된다. 물론 이건 결론적인 얘기고 그 사이에 수많은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부정, 분노, 인정, 수용, 일상의 여러 과정 말이다. (p. 19)'

이런 삶을 대할 때 나의 인생은 한없이 작아진다. 부정하고 분노할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 적어도 저자의 삶 정도는 돼야 그런 자격이 있지 않을까? 사회에 대한 나의 분노는 그저 나의 부끄러운 삶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한 성숙하지 못한 부정이요 분노였다.

너무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 아니냐고? 천만에 저자의 삶 앞에서 그런 소린 사치다. 쇼펜하우어의 말에 빗대어 저자 자신이 당한 모욕조차 나이에 맞는 지성을 가지지 못한 자신의 잘못으로 갈음하는 그런 철학을 갖춘 인생이다.

3루에서 태어나 현재 자신의 삶을 마치 스스로 일궈낸 양 거들먹거리며 갑질하는 그런 인생철학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창피스러운 일이다. 만약 쉰한 살의 나이에 뭔가를 시작할 용기가 없다면? 저자처럼 통렬하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 들추어 낼 수 없다면, 저자와 같은 삶 앞에 예의를 보여줘야 한다. 고통에 대한 예의를 갖추란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올바르게 살아낸,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그러란 말이다.


'다만 '이렇게 살면 안 된다.'까지는 아니겠지만 '내가 이 작자 정도는 아니잖아?"라는 위로는 있을지 모르겠다. (p. 253)'

저자야말로 '이 작자'라는 식의 말로 자신을 깎아내려선 안된다. 글 쓰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었고 '운 좋게 노력이라고 느끼지 못한 노력을 한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p. 236)'라며 이를 행운이라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노력에 행운이란 없다.

위로는 된다. 저자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고, 그 결과에 저자가 만족하는 듯해서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정혁용 작가의 삶이 큰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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