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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본책 - 서울대 박훈 교수의 전환 시대의 일본론
박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8월
평점 :
일본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이를테면 미국은 미국놈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뭐 미국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본은 반드시 일본놈이라고 한다. 아니면 왜놈.
스포츠도 다른 나라는 질 수 있다. 일본만큼은 안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1997년 축구 한일전, 도쿄대첩이라 불리는 경기에서 송재익 캐스터의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는 언제 들어도, 2010년 일본의 월드컵 출정식을 망친 시합에서 박지성의 '산책 골 세리머니'는 보고 또다시 봐도 통쾌하다. 아마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일 거다.
<위험한 일본책>의 저자인 박훈 교수는 이런 심리를 멸시와 불신의 감정과 더불어 두려움과 피해의식이라는 콤플렉스가 묻어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들도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보다 우리에게 더 심하고, 그걸 보상받기 위해서 한국만큼을 일본이 이겨야 한다는 심리를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실 일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우리가 말은 많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자세히 일본을 알지 못한다. 대부분 주워들었거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만을 갖고 이야기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지척 거리에 있지만, 그 지정학적 조건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큰 자연재해 없는 한반도는 지질학적으론 천국, 지정학적으론 지옥이며, 일본은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pp. 50, 51)'
나만 해도 일본 역사에 그리 밝지 않다. 두견새를 소재로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고, 히데요시는 울게 해야 한다고, 도쿠가와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라고 하이쿠를 읊은 세 인물, 그리고 근대사도 (이 책에도 등장하지만) 일본 메이지유신을 이끈 사카모토 료마를 다룬 시바 료타로의 10권짜리 전집 <료마가 간다>를 읽고 대충 꿰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위험한 일본>을 읽고 그동안 잘못 알았던 사실들도 있음을 깨달았다. 섬나라라는 생각에서인지 일본은 오래전부터 해양강국이라 여겼는데 해양국가가 된 때는 메이지 시대 이후다.
또 하나 전쟁하면 임진왜란, 태평양 전쟁이 떠올라 일본 사람들이 전쟁의 참상을 잘 알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론 원폭 투하로 도시가 벌판이 되긴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적군이 이웃과 가족을 죽이는 전쟁의 참혹함은 겪지 않았다.
'이 책에서 지금까지 해온 주장의 결론은 전 세계인이 일본을 무시해도 한국인만은 일본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재팬 패싱'은 통쾌하기는 한데 우리 국익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거꾸로 전 세계 아무도 일본을 무시하지 않는데, 한국만 무시한다. 물론 전 세계가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한국인은 그럴 필요 없다. 끝내 존경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않는 자세, 그게 대일 자세의 입각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p. 253)'
박훈 교수의 주장이 이성으로는 이해되고 옳다고 생각한다. 한데 감정은 그렇지 않다. '반일이면 무죄'라는 사람들에게 욕먹을 각오까지 하고 쓴 일본론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게 나라냐!"라며 비장하게 출발한 정부가 "이건 나라냐!"라는 냉소에 직면한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pp. 233, 234)'
이 책을 읽는 시기가 잘못된 탓일까?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기업의 제3자 변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동해의 일본해 표기, 독도 문제, 독립운동을 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한미일 군사동맹에서 위계상 맨 아래쪽에 있는 등 우리 정부의 일본에 대한 굴욕적 태도가 문제다. 저자가 제시한 일본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장애물이 되어 가로막는다.
다음 세대에 일본과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제 강점기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박훈 교수도 말하다시피 위안부 피해자와 같은 인권문제와 달리 식민지 문제는 국제 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이슈다. 독일이 되풀이하는 사과도 전쟁 행위에 대한 반성이지 식민 행위는 아니다. 강대국들 모두 식민 지배를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대단한 외교적 성과이고 한일 문제 해결의 실마리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 식민지 얘기가 화제에 오르면 "도대체 저런 선진국을 상대로 '감히' 일본이 어떻게 그런 짓을 했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은 아마도 일본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선망보다, 일본 젊은 친구들의 한국 동경이 더할 것이다. (p. 140)'
우리 아이들도 더 이상 일본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듯하다. 왜놈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임진왜란 때의 조선은 물론 구한말의 조선도 아니다. 무조건 일본을 배척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걸어보는 이유다. 비판할 건 하면서도 같이 나가는 이웃나라 일본, 그렇게 일본을 바라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