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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인간 - 좋아하는 마음에서 더 좋아하는 마음으로
한정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8월
평점 :
'그런데 삼십 년 넘게 나 자신과 지내다 보니 내가 하나의 특기 정도는 있다는 걸 드디어 알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특기는 바로 '환승'이다. 어디서 어디로부터,라고 한다면 바로 이름들이다. (p. 44)'
그 특기를 한껏 발휘한 작가는 난희, 경아, 경희, 서아, 윤재, 프란디에, 안드레아... 스무 개도 넘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의 이름에 고정된 삶이 아닌 여러 이름으로 환승한 결과는 어땠을까? 덜 무료했고 인생의 무게도 가벼워졌고 무엇보다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고 작가 한정현은 말한다.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감각을 깨운 건 텔레마케터의 이 한마디
'"그냥, 그냥 좀 들어주시면 안 돼요?" (p. 16)'였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직업을 바꾸며 제가 일했는지, 고객님은 아세요? 그냥 잠시라도 듣고 그렇게 끊으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p. 17)'
환승이 작가 자신의 특기였음에도 무수한 자신의 환승 경험을 잊었었고, 전화 건너편에 있는 사람은 물론 작가 주변인들의 환승에도 무심했었다.
작가 한정현에 이르기까지 환승을 거듭한 이야기들, 아버지와 어머니, 작가의 연애담, 해외 생활 등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환승 인간>, 이젠 우리가 책을 덮지 말고 작가의 환승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그리고 나의 환승 이야기도 해 보고...
한정현은 일곱 살에 읽은 작가 인생 최초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시작으로 볼라뇨, 나보코보, 맬컴 라우이, 찰스 부코스키, 이성욱, (등단하려면 좋아하지 말라던 말을 뿌리치고) 배수아까지 수많은 책을 읽었다. 아빠의 시네필적 취향 때문에 방안에 명작 비디오가 굴러다닌 계기로 그래서 영화가 생활 같은 것이 돼버려 많은 영화를 봤다.
결국 소설과 영화로 환승한 것이 작가로 환승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환승이었다. 또 환승하면서 작가가 발견한 것은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작가는 우리에게도 환승을 자신 있게 권한다.
주된 산업이 농업에서 다른 것들로 이동하면서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환승을 강요하는 사회가 됐다. 그럼에도 난 환승하려 하지 않았다. 환승해서 낯선 곳에 머무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피하며 살아왔다. 입사해 환승하지 않고 종점까지 쭉 갔고, 남들에 비하면 이사도 많이 다니지 않았다. 앞에 놓인 걸림돌은 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웬만하면 눌러 앉은 쪽을 택했다.
그런데 그런 환승하지 않은 삶에 문제가 생겼다. 인생의 절반을 훨씬 넘어선 나이에 그걸 알았다. 환승하지 않아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특히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도 못했는데 환승역을 수차례 지나쳤다. 많을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래서 다양한 삶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놓쳤다.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p. 19)'
물론 이런 리스크도 있다. 그래도 한정현 작가의 환승 권유에 내가 동참하는 이유는 이렇다. 니체가 제시한 '위버멘쉬'. 죽은 후 어떤 세상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위버멘쉬해야 할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조건의 삶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정해놓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몰랐던 시절의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외모'로 한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기준'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해내는 사람에게 부여할 수 있는 마음과 같은 거였다. (p. 300)'
환승 인간이 위버멘쉬다. 위버멘쉬 인간에게만 '아름답다'라는 칭호를 부여할 수 있다. 위버멘쉬, 즉 환승하는 인간이 다다르는 종점은... "환승하세요. 자기 자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