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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 허스토리 - 왜 경제학의 절반은 사라졌는가?
이디스 카이퍼 지음, 조민호 옮김 / 서울경제신문사 / 2023년 5월
평점 :
미술사를 젠더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강은주의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이봄>은 미술에서 여성이 소외됐음을 고발하며 미술사 보기에 페미니즘 방법론이라는 새로운 틀을 추가해 준다. 미술뿐만이 아니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경제학 철학자, 역사가인 이디스 카이퍼는 경제학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경제적 헌신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이코노믹 허스토리>를 통해 소개한다.
'조앤 로빈슨과 로자 룩셈부르크 자신들은 인지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학문 현장에서 그들의 위치가 여성의 경제적 견해, 경험, 관심사, 이해관계 등에 관한 글을 쓴 다른 여성 늘 마땅히 받아야 할 학계의 관심을 놓친 다른 여성들의 빛을 가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뀌는데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p. 20)'
이 두 여성은 여성을 드러내지 않은 덕분에 경제학에서 이름이 알려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 지배적 경제 전통에 순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은 조앤 로빈슨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빛에 가려진 그리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 대한 경제학을 썼다는 이유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잊힌 여성 경제학자, 여성 경제 저술가 102명의 이야기다.
여성이란? 알다시피 '젠더'가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뜻하지 않는다. 남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양육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용하는 '여성'의 정의는 '타고난 생물학적 젠더와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cisgender) 여성을 지칭하고 있다. (p. 31)'
또 하나, 전 세계의 여성을 하나의 단어 '여성'으로 묶을 수 있을까? 여성 개개인은 국가, 계층, 피부색, 교육, 연령, 건강, 종교, 신체 능력에서 다르다. 관심사도 다르고 쌓은 경험도 다르다. 그러니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분야가 됐든 여성을 소외시키는 건 옳지 않다.
게다가 일부 여성의 경우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 더해지면 소외와 차별이 강화된다. 이를테면 나이 어린 여성, 장애가 있는 여성, 흑인 여성이 그렇다.
경제학은 가정경제, 즉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화폐, 가격, 시장, 거래 등이 주요 경제적 요소를 자라잡게 되면서 남성 개인이 중심이 되는 공적 영역의 생산성과 부를 경제학으로 정의했다. 정치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을 가정경제에서 분리시켰다.
주류 경제학이 남성 편향의 이론으로 발전해 온 결과, '권력과 주체성 그리고 재산권'에서 경제 행위 주체로서 여성을 젠더화한 해석으로 소외시켰다. 박탈된 '교육'의 기회는 여성에게 정신의 식민화를 안겨줬다. '부와 여성의 관계'에서조차 젠더화했다.
'이 시대의 도덕은 중상류층 여성들에게 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거나 임금 노동을 할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 태도라는 의식을 한층 강화했다. 여성이 돈에 관심을 두면 여성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도덕적으로 몰락하게 되고 급기야 삶을 망친다는 논리였다. 간호와 같은 일은 여성이 보수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임할 때 숭고한 행위로서 도덕적 옹호를 받을 수 있었다. (p. 178)'
'생산', '분배', '소비'에서 여성은 많은 역할을 감당해냈지만 무시당했다.
'매리 컬리어가 이 시 <여성의 노동>에서 제기한 문제, 즉 남성은 열심히 일하고 집에서 쉴 수 있으나 여성 대부분은 밖에서 일하고도 집에서 가사와 육아 노동을 해야 하는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p. 198, 197)'
돌봄 노동을 비롯한 가정에서 이뤄진 여성의 생산 활동이 화폐화, 시장화되면서 혼란이 왔다. 정부와 경제학자들은 당황했다. 무임금 노동이었던 생산활동에 비용 부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생산적 활동이 아닌 노동으로 정의됐던 여성의 일이 국가 정부의 직무와 책임으로 넘어오면서 '정부 정책'이 필요해졌다.
페미니즘 관점으로 경제학을 바라보니 여성을 배제한 가부장적 가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경제학의 초점을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나이, 장애 등 여러 정체성으로 확대한다면? 경제학이라는 시각이 다양해질 것이다. 차별과 배제로 기울어진, 반쪽자리 경제학의 역사는 새롭게 다시 쓰일 것이다.
'공유된 가치가 다른 가치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행태에 대응하는 방법은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껏 공유된 가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가려졌던 가치를 가시화할 여러 견해를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