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한 불행 - 부서지는 생의 조각으로 쌓아 올린 단단한 평온
김설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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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허물고 하나가 되겠다는 꿈은 꾸지 마라
더 강하고 간소해진 사랑을 만들라 (p. 5)'

결혼하면 부부는 한 몸이라느니, 반쪽이라느니 그런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는 소리겠지... 그리고 한껏 기대하지 말라는 뜻도 되겠고...


작가 김설은 결혼도 성급하게 했고 그런 성격이어서인지 이혼도 성급하게 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부부로 재결합했다 (흔치 않은 일). 그 이후 7년차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부부 이야기를 고백하는 김설 작가의 <다행한 불행>, 결혼과 이혼이 불행이라면 결혼 27년 차 끝에 알게 된 작가의 삶 관점에서 그 불행한 결혼은 다행한 일이다. 왜 그럴까?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결혼 생활과 배우자와의 관계를 자연히 떠올리지 않을까? 읽는 중간에 잠깐잠깐 멈춰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난 지 3개월만 결혼했다. 성급하게 결혼한 동기는 작가와 다르지만 내 결혼 역시 성급했다. 결혼은 90퍼센트가 운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운이 좋았던 건지 이혼할 정도 큰 부딪힘이 없었다. 그 자신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반복했던 말이 있다.

'오래 사귀고 결혼하든 그렇지 않든 결혼하면 다 똑같다. 배우자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무슨 자신감에 이런 소릴 해댔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 창피하다.

8년이란 오랜 세월을 홀로 지내다 결혼하니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누가 옆에서 자고 있다는 것부터 간섭, 잔소리 등등 오롯이 내가 계획하고 내 맘대로 사용하던 시간에 끼어드는 것들 투성이였다. 편함도 있어 타협하며 김설 작가처럼 27년이 지났다.

아직도 모르겠다. 아내의 성격을 다 파악한듯싶어 자신 있게 내뱉은 말끝에 찾아오는 건 낭패뿐이다. 생각이 많아져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이런 연유로 대화가 줄어든다.

'살아보니 부부는 서로 사랑하는 것과 동시에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올바르게 미워하는 일이 매섭게 대립하는 것보다 나았다. (p. 207)'

미워했지만 어느 정도를 넘지 않은 건 운이 좋았다. 실망하고, 원망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집을 뛰쳐나가기도 하고 등등 모든 것이 어느 정도를 넘지 않았다. 다행이다.


'권태와 괴로움의 이유를 나의 심리적 변화에서 찾아보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던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 남편은 운이 나쁘게 까마귀 날자마자 배 떨어지는 상황에 놓였을 뿐인데, 까마귀를 왜 날아가게 했냐며, 배는 왜 떨어뜨렸냐며 생떼를 부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며 내가 겪는 권태와 괴로움을 정당화했을지도. (p. 239)'

드러내기 쉽지 않은 김설 작가의 고백에 내 결혼 생활이 많이 겹친다. 아무리 결혼이 불행하다 할지라도 그 생활 속에서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포용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작가는 다행이란 표현을 한 모양이다.

아내를 쳐다본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살아냈을까? 웃는 걸까? 체념일까? 불행하다 여길까, 행복하다고 여길까? 무엇을 잡고 버티며 일어섰을까?... 여러 생각 끝에 항상 속으로 되풀이하게 되는 말은...

'하고많은 남자 중에 왜 하필 날 만나서... 고생일까... 한 번뿐인 인생을...'

다투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면 눈시울이 뜨거워져 고개를 돌린다.

'그저 삶의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불행에 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나아가는 순간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에 불행이 온 것은 어찌 보면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내 몫의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일찌감치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의 나락에 빠지거나, 외려 피로한 일상의 권태와 의미 없는 행복에 지쳐 허물어졌을지도 모르겠다. (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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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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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은 극단적 전체주의 국가인 오세아니아에 산다. 최고 권력 기관인 당은 빅 브라더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텔레스크린 등 다양한 장치로 말과 행동, 표정뿐만 아니라 생각, 감정조차도 감시한다. 그리고 당은 당원들을 통제하고 당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고쳐 거짓으로 꾸민다. 당에 반발해 저항한 사람은 끌려가 그 존재 자체가 증발해버린다.

윈스턴은 이런 당을 의심한다. 사랑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품고 당의 감시를 피해 줄리아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동질감을 느낀 핵심당원 오브라이언에게 접근하지만, 오히려 그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 게다가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심문하며 세뇌시킨다.

<1984>는 폐결핵 투병 중에 쓴 조지 오웰의 마지막 작품으로 생을 마치기 5개월 전에 출간된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에 의하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이 가설의 직접적인 묘사가 소설에 등장한다. 오웰 상상력의 완벽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고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신조어를 만든 목적이다. 어휘를 점점 줄여서 선택을 폭을 좁힌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쓸만한 단어가 없어 이단적인 사상을 표현할 길이 없다. 신조어가 개인의 사고를 지배해 주장을 펼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아 횡설수설하는 터무니없는 중얼거림으로 바꿔버린다.


'죽기 얼마 전 병상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현재 세계가 빠져들고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p. 480)'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이루질 수 있는 권력의 남용과 오용의 끝판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독재권력이 행사될 때 인간 그 개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피폐해지고 말살되는지 그 결과를 경고한다.


'"중요한 건 자기뿐이요." 그가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그 사람에 대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구요."
"그렇소." 그가 말했다. "예전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해요." (p. 449)'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에 더해 학습, 이해, 수용의 단계를 거친 재통합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성 말살이다.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는다. 감정을 느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전체주의 권력의 완성이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역시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정치제도 중 민주주의가 그나마 가장 사람을 믿지 않는 제도라는 유시민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시민들의 원하면 합법적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한 우리 사회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위안한다.

그렇지만 한편에는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과 같은 삶을 나, 내가 아니면 내 자식들이 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여전히 존재해 두렵다. 조지 오웰이 이렇게 완벽한 전체주의 상상했으니 그 상상을 이루려는 자들이 혹시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총살되기에 앞서 10초만 미리 알아도 체제에 반하는 증오심 가득한 자신의 내부 세계를 드러내리라 다짐한다. 10초만이라도 자유를 누리며 죽기를... 하지만...

'하지만 괜찮았다. 만사가 다 괜찮았다. 이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p. 457)'
마지막 10초의 자유마저 윈스턴에게서 빼앗아간 소설의 결말이 무섭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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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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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풀어헤치고 매섭게 파고드는 프로방스 계절풍 '미스트랄'. 항상 손에 들려있는 파스티스, 식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포도주. 피터 메일의 프로방스 일 년 살기 기록 <아피! 미스트랄 (효형출판)>에서 읽은 프로방스의 풍경이다.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에서 얘기했다시피 파리에서 나를 괴롭힌 우울증은 예술의 힘으로 서서히 치유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늘 프로방스의 푸근한 날씨와 눈부신 태양, 시리도록 파란 바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들, 끝없이 펼쳐진 보라색 라벤더밭, 5월이면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개양귀비 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프로방스의 풍경은 다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나를 부추겼다. (p. 6)'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디 이니셔티브)>에서 파리에 대한 지식, 예술 작품들과 그 작품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글 솜씨로 파리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프랑스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온 저자 이재형을 따라나선 프로방스 예술여행이다.


'1888년 2월 2일, 반 고흐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15시간을 여행한 끝에 아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프로방스의 강렬한 빛과 눈부시게 선명한 하늘, 투명한 공기 속에서 꽃을 피운 과실수와 협죽도, 보라색 땅, 올리브나무의 은빛, 실편백나무의 진한 녹색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난 새로운 예술의 미래가 프로방스에 있다고 믿어." (p. 14)'

프로방스 여행 첫 번째 여행지는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던 곳인 아를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를은 축제의 도시, 문화의 도시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우환 미술관도 이곳에 있다.


아를을 시작으로 이재형 작가와 여행하게 될 프로방스의 도시와 마을은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제각각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는 수직마을을 생각해냈다. 마르세유의 행복주택단지는 70년이 지났지만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등 고급 부티크들이 즐비한 생트로페, 이곳은 한산한 어촌이었다. 1956년 여기서 촬영된 브리지트 바르도 주연의 영화 〈신이…여자를 창조하셨다〉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세 살짜리 딸과 바캉스 중이던 스물여덟 살이었던 프랑스 여배우 시몬 시뇨레는 생폴드방스의 황금 비둘기 식당에서 얼마 전 에디트 피아프와 헤어진 가수 이브 몽탕과 만난다. 둘은 한눈에 서로에게 끌렸다. 생폴드방스는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곳이다.

마티스와 샤갈이 사랑한 예술의 도시 니스, 하늘로 올라가는 니체의 산책로가 있는 곳 에즈, 세잔의 영혼이 깃든 생트빅투아르산이 있는 곳은 엑상프로방스다. 바농에는 프랑스 농촌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이 있고, 피카소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던 연인 도라 마르는 정신병원을 나온 후 메네브르에서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거리면 고르드의 돌집들은 빨갛게 물들고 저 아래 계곡은 초록 바다로 변한다. (p. 216)'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고르드다.

마지막 여행지는 고대 건축가들의 놀라운 기술을 보여주는 증거, 50킬로미터에 달하는 수도교 있는 곳 아비뇽이다. 그리고 아비뇽 남동쪽 몽파베 마을의 공동묘지 정신병자 구역은 로댕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의 일흔여덟 살 인생,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하다.


파리가 그렇듯 이렇게 사연이 많은 곳이 있을까? 라벤더, 해바라기,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 수많은 예술가들이 매력을 느낀 곳 프로방스. 피터 메일은 이곳이 너무 좋아 집을 덜컥 사버렸다. 이재형 작가와 함께 프로방스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타보자. 반 고흐가 '예술의 미래가 있다'라고 믿고 파리에서 아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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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 허스토리 - 왜 경제학의 절반은 사라졌는가?
이디스 카이퍼 지음, 조민호 옮김 / 서울경제신문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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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를 젠더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강은주의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이봄>은 미술에서 여성이 소외됐음을 고발하며 미술사 보기에 페미니즘 방법론이라는 새로운 틀을 추가해 준다. 미술뿐만이 아니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경제학 철학자, 역사가인 이디스 카이퍼는 경제학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경제적 헌신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이코노믹 허스토리>를 통해 소개한다.

'조앤 로빈슨과 로자 룩셈부르크 자신들은 인지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학문 현장에서 그들의 위치가 여성의 경제적 견해, 경험, 관심사, 이해관계 등에 관한 글을 쓴 다른 여성 늘 마땅히 받아야 할 학계의 관심을 놓친 다른 여성들의 빛을 가린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뀌는데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p. 20)'

이 두 여성은 여성을 드러내지 않은 덕분에 경제학에서 이름이 알려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 지배적 경제 전통에 순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 책은 조앤 로빈슨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빛에 가려진 그리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 대한 경제학을 썼다는 이유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잊힌 여성 경제학자, 여성 경제 저술가 102명의 이야기다.


여성이란? 알다시피 '젠더'가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뜻하지 않는다. 남성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양육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사용하는 '여성'의 정의는 '타고난 생물학적 젠더와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cisgender) 여성을 지칭하고 있다. (p. 31)'

또 하나, 전 세계의 여성을 하나의 단어 '여성'으로 묶을 수 있을까? 여성 개개인은 국가, 계층, 피부색, 교육, 연령, 건강, 종교, 신체 능력에서 다르다. 관심사도 다르고 쌓은 경험도 다르다. 그러니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분야가 됐든 여성을 소외시키는 건 옳지 않다.

게다가 일부 여성의 경우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 더해지면 소외와 차별이 강화된다. 이를테면 나이 어린 여성, 장애가 있는 여성, 흑인 여성이 그렇다.


경제학은 가정경제, 즉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화폐, 가격, 시장, 거래 등이 주요 경제적 요소를 자라잡게 되면서 남성 개인이 중심이 되는 공적 영역의 생산성과 부를 경제학으로 정의했다. 정치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을 가정경제에서 분리시켰다.

주류 경제학이 남성 편향의 이론으로 발전해 온 결과, '권력과 주체성 그리고 재산권'에서 경제 행위 주체로서 여성을 젠더화한 해석으로 소외시켰다. 박탈된 '교육'의 기회는 여성에게 정신의 식민화를 안겨줬다. '부와 여성의 관계'에서조차 젠더화했다.

'이 시대의 도덕은 중상류층 여성들에게 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거나 임금 노동을 할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 태도라는 의식을 한층 강화했다. 여성이 돈에 관심을 두면 여성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도덕적으로 몰락하게 되고 급기야 삶을 망친다는 논리였다. 간호와 같은 일은 여성이 보수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임할 때 숭고한 행위로서 도덕적 옹호를 받을 수 있었다. (p. 178)'

'생산', '분배', '소비'에서 여성은 많은 역할을 감당해냈지만 무시당했다.

'매리 컬리어가 이 시 <여성의 노동>에서 제기한 문제, 즉 남성은 열심히 일하고 집에서 쉴 수 있으나 여성 대부분은 밖에서 일하고도 집에서 가사와 육아 노동을 해야 하는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p. 198, 197)'

돌봄 노동을 비롯한 가정에서 이뤄진 여성의 생산 활동이 화폐화, 시장화되면서 혼란이 왔다. 정부와 경제학자들은 당황했다. 무임금 노동이었던 생산활동에 비용 부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생산적 활동이 아닌 노동으로 정의됐던 여성의 일이 국가 정부의 직무와 책임으로 넘어오면서 '정부 정책'이 필요해졌다.


페미니즘 관점으로 경제학을 바라보니 여성을 배제한 가부장적 가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경제학의 초점을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나이, 장애 등 여러 정체성으로 확대한다면? 경제학이라는 시각이 다양해질 것이다. 차별과 배제로 기울어진, 반쪽자리 경제학의 역사는 새롭게 다시 쓰일 것이다.

'공유된 가치가 다른 가치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행태에 대응하는 방법은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껏 공유된 가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가려졌던 가치를 가시화할 여러 견해를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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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실험 - 추상화 같은 사랑의 모든 풍경
이기진 지음 / 진풍경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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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뭐~ 읽을 책 없나'하고 찾길래 그림 많고 글자 수 적은 책을 좋아하는 터라 이 책을 권했다. 책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아내가 먼저 읽도록 한 것이 실수였다. 책장을 몇 장 넘길 때마다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한숨과 함께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내뱉는 말... "연애하고 결혼했어야 하는데..."

늦은 나이이기도 했고 결혼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꽉 찬 상태에서 누님의 친구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융건릉 갈까요?라는 소리에 호감 표시인 줄 알았고 만난 지 2개월 만에 결혼했다.


저자인 이기진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건 방송 프로그램 '유퀴즈'에서였다. 씨엘이 자퇴하고자 했을 때 딸을 믿고 흔쾌히 승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씨엘의 말도 그랬다. '아빠는 노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줄줄 미리 알았다고 한다.

씨엘 아빠 이기진 교수의 알록달록한 그림과 함께 펼쳐진 연애의 풍경 그리고 그 묘사는 방송에서 그를 보고 상상한 그대로였다. 솔직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연애 감정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땀 한 땀 기억을 소환해 퍼즐 같은 글을 담았다.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동안 항상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몰입했던 것 같다. 글쓰기를 마치고 한동안 상실의 느낌이 왔으니. 항상 시작과 끝은 있다. 연애처럼. (p. 6)'


끝이 없다면 연애라 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연애를 하고 연애를 끝낸 사람이다. 끝난 연애 이야기만을 할 수 있다. 그러저러했노라고. 가슴 아프다고. 아직도 잊지 못하겠노라고. 연애 중이라면 누군가에게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둘만이 간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도 우주의 다양한 별처럼 빛나기도 하고 서늘하게 죽어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생겨났기' 때문에 죽어간다는 것이다. (p. 19)'

아내처럼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물론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보더라도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니 진위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연애해 보지 않았다고 연애 감정이 없을까? 아니다 짝사랑이란 게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연애 감정은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


'"지금 뭐 해?" 이 말을 듣게 되는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의 비밀도 사라진다. (...)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라진 자유는 달콤한 사랑으로 보상받게 된다. 사랑 속에 자유가 머무는 그 순간이 '화양연화' 아니었을까. (p. 64, 65)'

충분히 연애할 만한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했을 뿐 아내와 연애를 생략하고 결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연애의 실험>을 읽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2개월 동안에도 많은 연애 감정이 있었다. 구속에 따르는 불편함도 느꼈고, 만나고 집에 들어와 긴 전화 통화로 같은 공간에 있지 않지만 같은 시간을 사는 경험도 했다. 사소한 다툼도 있었고, 둘만의 대화법도 생겼고, 그리움도 있었다. 우리 둘만이 할 수 있는 연애를 했다.

'연애야말로 가장 복잡한 인간관계에 속한다. 지구상에 같은 사람 없듯이 같은 연애는 없다. 연애는 세상에서 해답이 없거나 다양한 해답이 존재하는 관계의 문제일지 모른다. (p. 114)'

다만 러브스토리의 완성인 이별이 없었을 뿐이었다. 결혼을 했으니 말이다. 아내가 느끼는 연애에 대한 아쉬움은 이별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2개월간의 연애는 연애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아내는 하지 않았을까? 이별이 있어야 아픔이 있고, 미련이 남고, 연애의 감정에 몰입하게 한다. 아내와의 짧은 연애에 이별이 빠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의 연애가 가장 찬란한 건 당연하다. 연애 세포도 노화한다. 젊은 시절 연애를 미뤄 뒤늦은 나이에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도 없지만 무뎌진 창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듯 불리해진다. 사랑 때문에 목숨처럼 소중한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p. 136)'

이 책을 읽으며 누군가 떠올랐다면? 혹은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더라도 두 경우 모두 비극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표현한 연애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내가 "연애하고 결혼했어야 하는데..."라는 말에 이어서 내 눈을 보며 나에게 건넨 말이다.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일까? 아내는 어떤 대답을 기대했을까? 아니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니었을지도. 그 질문이 자신의 감정의 상자를 여는 열쇠였는지도...

모처럼 연애 감정이 뭉글뭉글, 가슴이 설레는 그런 시간을 가졌다. 이기진 교수의 <연애의 실험> 덕분이다.

'어둠이 더 내리고,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온다. 마치 어디서 본 사람 같다. 분명 아닐 것이지만 어쩐지 익숙한 얼굴이다. 고개를 숙여 맥주를 마시고 다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오지 않은 사람이었을까?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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