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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가는 마음
박지완 지음 / 유선사 / 2023년 4월
평점 :
'오만한 생각과 얄팍한 실수와 잘못된 행동을 한 나를 똑바로 보는 것, 반성하고 수습하는 것,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 그 시간 동안 조금씩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p. 194)'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글 스물한 편, 박지완 감독은 2020년 영화 <내가 죽던 날>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카페에서 그를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듯한 첫 에세이 <다음으로 가는 마음>이다.
박지완 작가는 서른이 넘어서야 불안한 사람이란 걸 알았다. 불안을 달래보려고 야구장을 찾기도 하고 수영도 배워보고 책도 읽는다. 젊지 않은 나이 마흔 살이 넘어서는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을 때가 있음도 깨닫는다. 불안한 이곳을 떠나는 수단으로 외국어도 배우고 추리소설의 세계에 빠져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아파서 느끼는 통증 역시 타인과 나눌 수 없는, 오롯이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프다는 감각과 함께 외로움까지 느끼게 된다. (p. 50)'
불안에서 도망치기보다는 불안을 인정하고 감당해 내는 것이 불안을 달래는 법임을 고백한다.
시간을 건너 미래의 나에게 가는 시간, 이 시간에 무엇을 할까? 동네 할머니가 권하는 대로 오이지를 담그고 두릅전도 부쳐먹고, 강아지를 따라 방 너머 세계를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라이브 음악을 듣고 그 순간을 내 기억 속에 저장하는 일, 그리고 세상을 믿는 일이다.
'일단 지금은, 그것이 내가 믿는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신을) 믿지 않으면서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믿는 사람. (p. 122)'
'그때 부모님은 나에게 영화를 아느냐,라고 물었다.
좋아하느냐, 재능이 있느냐가 아니라 '아느냐'는 물음은 나를 조금 당황하게 했다. (p. 145)'
그토록 만들고 싶어 하는 영화를 나는 얼마나 알고 있나. 무엇을 원하며 그 원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여성 감독으로서 영화에 무엇을 담고 싶은가. 작품의 진짜 주인은 누구여야 하는가. 인생을 비롯해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진리, 그것은 비극인가? 아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나. 바깥은 위험한가, 계속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나, 그렇지 않다면 언제 나가야 하나. 이런 고민들로 채워진 하루하루...
'그러나 매일매일의 작고 하찮은 일들이 결국 하루를 만들고, 계절을 만들고, 1년을 만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다음으로 가는 마음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p. 196)'
박지완 감독의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봤다. 여주인공 셋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상처 입은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그들에게 있다.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셋은 연대를 통해 내팽개쳤던 서로의 삶을 구원한다.
드물더라도 찾아보면 연대할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불안을 달래고 시간을 건너 다음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믿는 수밖에...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