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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엄숙한 얼굴 ㅣ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평점 :
근대와 현대 여성 작가를 잇는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 두 번째, 지하련과 임솔아의 <제법 엄숙한 얼굴>은 1912년생 지하련의 소설 네 편, 1987년생 임솔아의 소설 한 편과 에세이, 문학평론가 박혜진의 해설로 구성했다.
작가보다는 시인 임화의 아내로 더 알려져 우리 문학사에 충분히 기록되지 못한 지하련은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유학했다. 여성 지식인이었고 사회주의 활동가였다. 그래서인지 지하련은 가부장제 사회였던 당시, 억압된 여성의 삶을 주목했다.
<결별> - 문장, 1940. 12.
형예는 얼마 전 결혼한 친구 정희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한다. 정희가 늘어놓는 새신랑 자랑이 처음엔 좋았지만 들을수록 형예는 왠지 부하가 나기 시작한다. 형예가 집에 들어서자 남편은 정희 신랑이 뭐 하는 사람인지 물으며 빈정거린다. 정희 신랑보다 가방끈도 짧은 남편은 마치 대단한 바깥일이라도 하는 냥 거만하게 군다. 말을 나누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형예를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내버리곤 한다.
'형예는 자리에 누워서도
"아무것두 아닌 것 가지고...... 내 암말도 않으리다." (p. 55)'
남편의 짧은 이 한마디가 정희 신랑과는 다르게 자신을 대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듯하다. 형예는 남편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하다. 정희를 만나고 온 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훌륭하게 여겨졌던 남편이 못나고 비굴해 보인다.
<체향초> - 문장, 1941. 3.
오라버니는 한때 지식인이었고 사회주의자였다. 낙향해 농사를 짓는 오라버니에게서 예전의 그런 모습을 삼희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삼희가 볼 때 오라버니보다 편협하고 못난 인상의 태일이란 사람을 오라버니는 흠모하고 추겨세우며 자랑한다. 오라버니의 그런 태도가 탐탁지 않아 태일을 깎아내리자 오라버니는 화를 낸다.
태일에게서 자신의 잃어버린 모습을 발견해 자랑삼는 오라버니의 모습에서 삼희는 지식인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농사일을 해내는 농부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오라버니를 발견한다.
<가을> - 조광, 1941. 11
죽은 아내의 친구인 정예가 석재에게 만나자고 전해온다. 석재가 생각하기에 정예는 이혼 경력도 있고 병적으로 고백을 일삼는 이상한 여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예를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자신의 일방적인 선입견이었음 점차 알게 된다.
'드디어 그는 마음속으로,
'정에는 제 말대로 흉악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거지는 아니다. 허다한 여자가 한껏 비굴함으로 겨우 흉악한 것을 면하는 거라면 여자란 영원히 아름답지 말란 법일까?' 하고 중얼거렸다. (p. 151)'
당당하고 감정에 솔직한 정예는 석재에게 더 이상 이상한 여자가 아니다. 사랑의 대상이다.
<종매 (지리한 날의 이야기)> - 도정, 백양당, 1948
석희의 사촌 여동생 정원은 일본 유학 중에 알게 된 철재가 병을 앓게 되자 작은 암자로 데려와 간호한다. 이 소식을 듣고 석희 그리고 석희의 유학시절 친구 태식도 암자로 와 철재를 돌본다. 이들 지식인 셋은 철재를 매개로 공동생활을 절에서 하게 된다.
철재가 병이 호전되면서 셋에게 형성됐던 갈등과 긴장감이 무뎌진다. 철재의 질병으로 연결된 공동체 관계가 느슨해진다. 지식인 셋은 각자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자 오히려 당황한다.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당황히 손을 저어 철재를, 혹은 태식이를, 그 외 누구누구 황망히 찾아보았으나, 그러나 아무도 내로라! 대답하는 힘찬 손 길은 있지 않았다.
점점 눈앞엔 어둠이 몰리고, 산이 첩첩하여 오로지 절벽이 천지를 닫은 것만 같았다. (p. 222)'
임솔아는 온당치 못한 권력과 언어에 저항했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서 임솔아의 삶을 볼 수 있다. 삶과 문학이 일치하는 글쓰기를 추구한다.
'임솔아는 "삶을 이어나갈 나와 내 소 설 속 인물이 앞으로도 닮은 모습일 수 있을까"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작가의 말')라고 물으며 세계의 한 단면을 있는 그대로 작품 안에 그려내는 동시에, 허구와 운으로 직조해낸 진실 그리고 거짓까지도 모두 자신의 삶에 담아내려 하는 작가다. (p. 226, 227)'
<제법 엄숙한 얼굴>
중국 동포 영애는 청소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다. 동포 특유의 말투로 차별을 받자 교정해 연변말과 표준어, 이중 언어를 갖게 된다. 호주에서 인종 차별 경험을 한 카페 사장 제이는 일부러 중국 동포인 영애를 고용해 당당하게 연변 말로 서빙할 것을 요구하며 고용한다. 수경은 제이와 미팅할 때마다 제이가 늘어놓는 자랑과 우울증 호소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제이는 영애를 채용하는 데에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카페에서는 표준말을 사용하지 말 것. 연변 말로 서빙을 하라는 것이었다.
"한번 들려주실래요?"
"고조 잘 부탁드립네다."
영애가 사용한 것은 연변 말이 아닌 평안도 말이었다. 북한군이 나오는 드라마에서 본 것을 어설프게 따라 해본 것뿐이었다. 제이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인과 한국인도 구별 못하는 백인처럼. (p. 246)'
아내와 대화할 때 자꾸 설명을 덧붙이려 한다. 아내는 내 안색을 살피며 들어준다. 한두 번이 아니기에 아내의 표정은 내게 익숙하다. 왜 아내가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임솔아 작가는 지하련 작가의 소설을 다시 써야 함에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하련의 작품에서 구시대적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이 요즘에도 흔해 너무 친숙했다. 나 같은 사람 말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성들만 만나면 맨스플레인하는 남성들...
대화하다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데 말해서 뭘 하겠어 하는 투로 "내 암말도 않으리다"라며 일방적으로 말을 끊는 <결별>에 등장하는 형예의 남편, <가을>의 석재는 여자가 먼저 만나자고 한 이유 하나만으로 제멋대로 아내의 친구 정예를 이상한 여자로 재단한다. 70년이 지났다. <제법 엄숙한 얼굴>의 카페 사장 제이는 차별하지 않는 척하며 중국동포 영애에게 차별을 일삼는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남성에게 대등함은 없다. 위아래라는 관계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고 지적인 양 맨스플레인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세상을 등지고 낙향한 <체향초>의 오라버니의 모습은 한때 지식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과장된 가치를 쫓는 이방인일 뿐이다. <종매>의 석희 역시 공동체 속에서만 득세하는 지식인일 뿐 집단이 해체될 때는 철재의 침울하고 병든 나약한 모습이 석재에게서 드러난다. 차별하는 <제법 엄숙한 얼굴>의 남성 제이를 한 겹 벗겨보면 호주에서 그는 차별의 대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겹겹이 동여매고 있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지하련은 여성 앞에서 계속 자랑을 늘어놓는 남성을 보았다. 그리고 숨겨진 씁쓸한 뒷모습도... 70년이 지난 지금 임솔아의 주변에도 여전히 지하련 곁에 있던 남성들이 존재한다. 지하련은 그런 남성들을 어떻게 견뎠을까? 임솔아는 남자의 자랑이 깊어진다 싶으면 귀를 닫고 남자 너머의 풍경을 보며 딴 생각을 한다는데...
'그리고 덧붙였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자랑이 아니야. 자랑 끝에 달려 나오는 씁쓸함이지. 지식인 남성들은 자랑만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p. 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