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플롯 - 문학에서 발견하는 무한한 좌표들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6
황모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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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에서 돌아온 뒤 주변이 이전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건 조카 시환 때문이었다. (p. 9, 첫 문장)'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공 나현은 뭔가 낯선 느낌을 갖는다. 여섯 살 조카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변했다. 평소라면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나현의 언니도 말수가 적다. 웃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고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무감각하다. 심지어 감각은 불필요하며 생존에 지장이 있다고 여긴다. 웃음을 터트리는 나현에게 의사는 '감각 과잉 감정 과발산증'이란 진단을 한다.

'제87차 서브플롯 실패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라!'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했습니다.
메인플롯으로 돌아갑니다. (p. 53)'

기이한 분위기임에도 나현은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이런 낯선 상황은 반복된다.


나현이 기획한 스토리는 헤딩 엔딩이었다. 하지만 나현이 살아가는 실제 삶의 메인플롯은 나현이 계획했던 스토리와 달랐다. 엄마도 언니 미현도 죽었고,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둘만의 세계를 만들곤 했던 친구 송인도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죽었다.

지옥 밑 지옥을 헤매는 앙상한 몰골의 나현, 생의 기운을 다 토해버린 상태로 그가 도착한 곳은 여성 홈리스 마약 중독자 지원센터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데도 잃을 것이 계속 생긴다. 진저리 치는 나현에게 지원센터 담당자가 제안한다. 서브플롯을 개작해 메인플롯을 바꿔보자고. 이제까지 나현에게 허락되지 않은 삶으로 메인플롯을 각색해 보자고.

'"서브플롯이 뭔가요?"
"당신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지만 당신이 직접 경험한 메인플롯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이 만나고 싶었던 두 번째 이야기예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완전히 새로 쓰는 겁니다." (...)
"서브플롯은 당신이 구상한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 (...)
그래, 한 번 해보자. 내 이야기니까. 이번엔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볼래. 내가 주인공이야. 내게도 평범한 삶이 허락된다면, 정말로 가능하다면, 꼭 보고 싶었던 장면을 만들어볼래. (p. 136, 137)'

내 이야기가 없는 세상 이야기에, 그것도 주변에 나현은 머물러 왔다. 나현의 삶에서 정작 나현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심장만은 가지고 살고자 했었다. 서브플롯으로 나현은 무엇을 구상했을까? 그래서 메인플롯은 바뀌었을까?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후회가 가득하다. 앞을 쳐다봐야 하는데 쌓인 후회에 미련이 남아 뒤로 돌아다본다. 어떤 땐 아예 뒤로 돌아 걸어온 길을 한참 쳐다본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자신이라는 가장 유니크한 이야기의 작가요. 이 생은 온전히 당신만의 이야기니까요."
나만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구했다는 결론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p. 218, 219)'

작가 황모과는 소설을 통해 제안한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유니크한 존재 '자기 자신'이라는 작품의 저자 (p. 5)'이니 뒤돌아서서 '이랬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이야기로 서브플롯을 만들어보라고. 그래서 진저리 치는 곳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구원하는 메인플롯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 이왕이면 해피엔딩으로 스토리 끝을 맺으라고.

누군가 나타난 허황된 스토리라고 거짓말이라고 훼방을 놓아 혼자 힘이 부친다면, 가족, 친구, 이웃 모두를 엑스트라 또는 조연으로 등장시켜 그들을 자신의 메인플롯 이야기의 증인으로 만들어버리라고 한다. 남이 내 인생을 멋대로 탕진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이다.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어야 한다고. 그 힘을 믿기에 황모과 자신도 작가 되었다고...

'남의 이야기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모양이었다. (p. 214)'

그리고 작가 황모과는 자신이 사는 이 세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서브플롯으로 이 소설을 썼노라고...

'자기 죗값을 피하려는 자가 제왕적 권력을 획득한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보며 이 소설을 구상했다. 그때 예감했던 일들이 다분히 나이브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범한 삶을 완전히 파탄 내는 일들이 횡행하고 있다. 자기 보전과 바꿔 나라의 주권을 넘겨버리곤 사람들과 일상을 과로와 생활고로 밀어 넣은 자들이 이래도 버틸 거냐고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다. 진실이 승리한다는 믿음이. 그래도 살아보자는 각오가 다 헛되게만 느껴진다. 열패감이 찾아온다. 사실 이겨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사실까지 쓰라리다. 이 세상도, 그리고 나 자신도... (p. 236, 작가의 말)'

그래서 작가 황모과의 메인플롯도 자신이 주인공이 이야기로 바꾸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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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두려운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 -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의심하는 당신을 위한 심리 처방
아티나 다닐로 지음, 김지아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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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심리치료사인 아티나 다닐로도 가면증후군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자기 의심과 번아웃을 경험한 저자는 가면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안내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가면증후군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삶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무엇인지 소개한다. 가면증후군의 다양한 경험을 짚어보고 이를 활용해 혼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가면증후군을 극복하도록 안내한다.

'오늘날 상당히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은 자신이 사람들의 생각만큼 유능하지 않다고 믿는 현상으로, 완벽주의, 부정적 자기 대화, 번아웃, 가면 감정을 수반한다. 가면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자신이 이룬 성과에 만족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자신의 유능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p. 6, 7)'


가면증후군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자기 불신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 번아웃 증후군, 과도한 걱정, 일에 대한 불만족, 괴로움 등이 생기고, 장기적으로는 우울증, 불안증, 타인과의 단절, 심지어 수면 장애나 식이 장애 같은 신체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

자기 불신을 자기신뢰로 바꾸고 성취감을 갖도록 해 자신감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성찰 self-reflection이다.

부정적 자기 대화로부터 한걸음 물러서야 진짜 내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취약성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 실패했을 때는 자기 용서와 사랑이 필요하다. 이러한 너그러운 태도만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린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도움 요청은 나약함을 뜻하지 않는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타인을 위해 쓰는 시간을 줄이고 자기 돌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완벽주의자형, 천재형, 외로운 개인주의자형, 전문가형, 슈퍼히어로형 다섯 가지 가면증후군 중 나는 어느 유형일까?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고, 모든 걸 다 알아야 직성이 풀리고, 타인에게 도움 요청하는 걸 자존심과 연결 짓는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때 심하게 나를 자책한다. 일 욕심도 있어 모두 떠맡으려 한다.

결국 다섯 가지 유형 모두를 갖고 있는 셈이다. 나만 그럴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 다섯 개의 가면을 돌려쓰며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단, 이것 하나만 기억하라. 자신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정을 떠나다 보면 틀림없이 장애물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그때마다 취약성과 자기 자비, 희망을 잃지 않으면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이제는 내면의 비판자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영원히 빛나는 존재 가 될 차례다. 당신은 충분히 용기 있고 유능하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p. 265)'

<실패가 두려운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은 더 이상 가면 뒤에 숨을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한다. 자기신뢰, 자기 사랑이 충만하면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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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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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여성 작가를 잇는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 두 번째, 지하련과 임솔아의 <제법 엄숙한 얼굴>은 1912년생 지하련의 소설 네 편, 1987년생 임솔아의 소설 한 편과 에세이, 문학평론가 박혜진의 해설로 구성했다.


작가보다는 시인 임화의 아내로 더 알려져 우리 문학사에 충분히 기록되지 못한 지하련은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유학했다. 여성 지식인이었고 사회주의 활동가였다. 그래서인지 지하련은 가부장제 사회였던 당시, 억압된 여성의 삶을 주목했다.

<결별> - 문장, 1940. 12.

형예는 얼마 전 결혼한 친구 정희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한다. 정희가 늘어놓는 새신랑 자랑이 처음엔 좋았지만 들을수록 형예는 왠지 부하가 나기 시작한다. 형예가 집에 들어서자 남편은 정희 신랑이 뭐 하는 사람인지 물으며 빈정거린다. 정희 신랑보다 가방끈도 짧은 남편은 마치 대단한 바깥일이라도 하는 냥 거만하게 군다. 말을 나누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형예를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내버리곤 한다.

'형예는 자리에 누워서도
"아무것두 아닌 것 가지고...... 내 암말도 않으리다." (p. 55)'

남편의 짧은 이 한마디가 정희 신랑과는 다르게 자신을 대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듯하다. 형예는 남편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하다. 정희를 만나고 온 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훌륭하게 여겨졌던 남편이 못나고 비굴해 보인다.

<체향초> - 문장, 1941. 3.

오라버니는 한때 지식인이었고 사회주의자였다. 낙향해 농사를 짓는 오라버니에게서 예전의 그런 모습을 삼희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삼희가 볼 때 오라버니보다 편협하고 못난 인상의 태일이란 사람을 오라버니는 흠모하고 추겨세우며 자랑한다. 오라버니의 그런 태도가 탐탁지 않아 태일을 깎아내리자 오라버니는 화를 낸다.

태일에게서 자신의 잃어버린 모습을 발견해 자랑삼는 오라버니의 모습에서 삼희는 지식인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농사일을 해내는 농부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오라버니를 발견한다.

<가을> - 조광, 1941. 11

죽은 아내의 친구인 정예가 석재에게 만나자고 전해온다. 석재가 생각하기에 정예는 이혼 경력도 있고 병적으로 고백을 일삼는 이상한 여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예를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자신의 일방적인 선입견이었음 점차 알게 된다.

'드디어 그는 마음속으로,
'정에는 제 말대로 흉악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거지는 아니다. 허다한 여자가 한껏 비굴함으로 겨우 흉악한 것을 면하는 거라면 여자란 영원히 아름답지 말란 법일까?' 하고 중얼거렸다. (p. 151)'

당당하고 감정에 솔직한 정예는 석재에게 더 이상 이상한 여자가 아니다. 사랑의 대상이다.

<종매 (지리한 날의 이야기)> - 도정, 백양당, 1948

석희의 사촌 여동생 정원은 일본 유학 중에 알게 된 철재가 병을 앓게 되자 작은 암자로 데려와 간호한다. 이 소식을 듣고 석희 그리고 석희의 유학시절 친구 태식도 암자로 와 철재를 돌본다. 이들 지식인 셋은 철재를 매개로 공동생활을 절에서 하게 된다.

철재가 병이 호전되면서 셋에게 형성됐던 갈등과 긴장감이 무뎌진다. 철재의 질병으로 연결된 공동체 관계가 느슨해진다. 지식인 셋은 각자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자 오히려 당황한다.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당황히 손을 저어 철재를, 혹은 태식이를, 그 외 누구누구 황망히 찾아보았으나, 그러나 아무도 내로라! 대답하는 힘찬 손 길은 있지 않았다.
점점 눈앞엔 어둠이 몰리고, 산이 첩첩하여 오로지 절벽이 천지를 닫은 것만 같았다. (p. 222)'


임솔아는 온당치 못한 권력과 언어에 저항했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서 임솔아의 삶을 볼 수 있다. 삶과 문학이 일치하는 글쓰기를 추구한다.
'임솔아는 "삶을 이어나갈 나와 내 소 설 속 인물이 앞으로도 닮은 모습일 수 있을까"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작가의 말')라고 물으며 세계의 한 단면을 있는 그대로 작품 안에 그려내는 동시에, 허구와 운으로 직조해낸 진실 그리고 거짓까지도 모두 자신의 삶에 담아내려 하는 작가다. (p. 226, 227)'

<제법 엄숙한 얼굴>

중국 동포 영애는 청소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다. 동포 특유의 말투로 차별을 받자 교정해 연변말과 표준어, 이중 언어를 갖게 된다. 호주에서 인종 차별 경험을 한 카페 사장 제이는 일부러 중국 동포인 영애를 고용해 당당하게 연변 말로 서빙할 것을 요구하며 고용한다. 수경은 제이와 미팅할 때마다 제이가 늘어놓는 자랑과 우울증 호소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제이는 영애를 채용하는 데에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카페에서는 표준말을 사용하지 말 것. 연변 말로 서빙을 하라는 것이었다.
"한번 들려주실래요?"
"고조 잘 부탁드립네다."
영애가 사용한 것은 연변 말이 아닌 평안도 말이었다. 북한군이 나오는 드라마에서 본 것을 어설프게 따라 해본 것뿐이었다. 제이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인과 한국인도 구별 못하는 백인처럼. (p. 246)'


아내와 대화할 때 자꾸 설명을 덧붙이려 한다. 아내는 내 안색을 살피며 들어준다. 한두 번이 아니기에 아내의 표정은 내게 익숙하다. 왜 아내가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임솔아 작가는 지하련 작가의 소설을 다시 써야 함에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하련의 작품에서 구시대적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 인물이 요즘에도 흔해 너무 친숙했다. 나 같은 사람 말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성들만 만나면 맨스플레인하는 남성들...

대화하다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데 말해서 뭘 하겠어 하는 투로 "내 암말도 않으리다"라며 일방적으로 말을 끊는 <결별>에 등장하는 형예의 남편, <가을>의 석재는 여자가 먼저 만나자고 한 이유 하나만으로 제멋대로 아내의 친구 정예를 이상한 여자로 재단한다. 70년이 지났다. <제법 엄숙한 얼굴>의 카페 사장 제이는 차별하지 않는 척하며 중국동포 영애에게 차별을 일삼는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남성에게 대등함은 없다. 위아래라는 관계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고 지적인 양 맨스플레인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세상을 등지고 낙향한 <체향초>의 오라버니의 모습은 한때 지식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과장된 가치를 쫓는 이방인일 뿐이다. <종매>의 석희 역시 공동체 속에서만 득세하는 지식인일 뿐 집단이 해체될 때는 철재의 침울하고 병든 나약한 모습이 석재에게서 드러난다. 차별하는 <제법 엄숙한 얼굴>의 남성 제이를 한 겹 벗겨보면 호주에서 그는 차별의 대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겹겹이 동여매고 있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지하련은 여성 앞에서 계속 자랑을 늘어놓는 남성을 보았다. 그리고 숨겨진 씁쓸한 뒷모습도... 70년이 지난 지금 임솔아의 주변에도 여전히 지하련 곁에 있던 남성들이 존재한다. 지하련은 그런 남성들을 어떻게 견뎠을까? 임솔아는 남자의 자랑이 깊어진다 싶으면 귀를 닫고 남자 너머의 풍경을 보며 딴 생각을 한다는데...

'그리고 덧붙였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자랑이 아니야. 자랑 끝에 달려 나오는 씁쓸함이지. 지식인 남성들은 자랑만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p.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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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비주얼 / 블랙피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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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조미료라는 말은 없었다. 미원,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였다. 미원 어디다 뒀더라? 미원 더 넣을까?... 신제품 미풍은 조미료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사람들의 말 습관을 어떻게 바꿀지를 먼저 생각했을 텐데, 그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풍의 copy는 '조미료는 미풍이에요'였다. 여기저기 CM송이 울려 퍼졌다. "조미료는~♬♪미풍이에요~♪♬♪". 결과는 2세대 조미료 미풍의 완승이었다.


2017년을 대표한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였다. 이 copy를 읽으며 사람들은 온갖 생각을 했다. 그래 권력이 먼저였지, 돈이 먼저였지, 주먹이 먼저였지... 생각해 보니 사람이 먼저였던 적은 없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지도자가 필요한 때가 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 copy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카피책>의 저자 정철이다.

35년 차 카피라이터, 광고쟁이, 발상 전환의 대명사...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 정철은 말한다. '쓰십시오.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습니다. (p. 5)' 그리고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라고.

카피를 써서 평생 밥 먹고, 술도 먹고, 책도 사고...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카피'는 그의 인생에 가장 고마운 두 글자라고 고백한다. <카피책>은 카피라이터 정철 인생의 압축이며, 그만의 32가지 카피 노하우를 꾹꾹 눌어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카피라이팅 책이다.


'copy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지만
관심은 침몰하고 있는 건 아닌지 (p. 113)'
시력표의 나비와 비행기 대신 배로, 숫자도 4와 16을 넣었다. 글자가 아래로 갈수록 작아져 희미해지듯 우리 기억도 희미해지는 건 아니냐며 묻는 [세월호 시력표] 포스터에 붙인 copy다.

'copy 영어에 풍덩! (p. 171)'
의성어가 더해지니 지겨운 공부가 놀이가 된다.

'copy 술맛의 10%는 술을 빚은 사람입니다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입니다 (p. 188)'
술이라는 상품은 10% 밖에 보이지 않고, 마주 앉은 사람이 크게 보여 인간적이다.

'copy 보람이가 10분만 보이지 않아도
덜컥 겁이 나지 않으세요? (p. 260)'
이 정도 겁은 줘도 괜찮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어린이의 안전이다.

'선생님은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한 후 [흔들어 주세요]라는 카피를 세상에 던집니다. 디메리트를 메리트로 바꿔 얘기한 이 카피 한 줄에 시장은 반응했고 해태는 전설적인 브랜드 하나를 얻습니다. (p. 297)'
과일 향만 풍기는 음료와 다르게 천연 과즙을 넣었는데 가라앉은 부유물로 소비자 반응이 싸늘했다. [흔들어 주세요] 써니텐, 굳게 닫힌 문을 확 열어젖히는 카타르시스까지 주는 copy다.

재치가 번뜩이는 copy는 영감을 준다. 패러다임을 바꿔주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나가게 해 사고의 폭도 넓혀준다.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한 감동도 주고 심심한 세상을 위트로 가득 채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글쓰기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팁도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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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vs 보부아르 세창프레너미 11
변광배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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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연구자임을 자처하는 변광배 교수의 <사르트르 VS 보부아르>는 세창프레너미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이다. 프레너미(Friend + Enemy)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대에게 영향을 주며 자신을 성장시켜 온 대가들을 비교 대조하여 이해를 극대화하는 시리즈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작가, 지식인으로 알려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하지만 이 둘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역시 '계약결혼'이다. 실존주의는 공통분모다. 그리고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을 유지하며 같은 곳에 묻힌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들에게서 프레너미의 컨셉인 차이점이나 대립점을 찾는 일이 그리 쉬어 보이진 않는다.


이 두 인물의 첫 번째 이야기는 사랑이 싹트는 배경, 동기, 과정이다.

여느 커플처럼 이 둘의 만남도 운명적이었다. 보부아르 부모의 반대가 있었고,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몰래 만나 사랑을 싹 틔우는 과정도 있었다. 계약조건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우연적인 사랑을 허락하는 데 동의했고, 서로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독립채산제를 실시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로 계약결혼도 계약조건도 모두 파격적이었다

게약결혼은 당시 불가능했다. 불가능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이 둘의 계약결혼에 놓여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계약결혼의 근본적인 어려움은 사람들의 비판보다는 이 둘이 부여한 철학적 의미였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두 주체성의 결합을 의미하는 계약조건, 사랑과 언어의 필연적인 결과로 실패가 예상됐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 불가능을 방치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도전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른 실존주의에 대한 사유다.

신은 완전하다. 그래서 인간의 세계에 무관심해야 한다. 관여한다면 완전성이 아닌 신의 결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자유는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존재로 증명된다. 신이 존재해 섭리가 있고 인간이 섭리를 따라야 한다면 인간의 자유는 존재하는 건가. 신과 인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공통된 이념 체계다.

사르트르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 '대립과 갈등'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반면, 보부아르의 인간관계는 '상생과 화해'이다. 둘은 대립한다. 더 나아가 보부아르는 공동 존재의 실현 가능성까지 제시하는 애매성의 윤리로 고유의 사유의 뜰을 형성하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주목하는 것은 현실 참여에서의 둘의 차이다.

보부아르가 여성 해방, 노인문제, 어린아이 문제 등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통한 사회의 변혁을 겨냥한 미시적 성격의 참여를 했다면,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배경으로 계급투쟁에 입각한 사회 전체의 변혁을 겨냥하는 거시적 참여를 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이 두 사상가가 낯설고 공부도 부족해 책을 읽는데 머리가 지끈거려 애먹었다. 뚜렷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실존주의의 흐릿한 윤곽은 그릴 수 있어 뿌듯하다. 몇 번 더 읽으면 어디 가서 소리 높일 정도는 아니고 소곤소곤 떠들 정도는 될 듯싶다. 그리고 이 둘의 문학작품에 호기심이 생긴 건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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