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 - 타인을 도우려 하는 인간 심리의 뇌과학적 비밀
스테퍼니 프레스턴 지음, 허성심 옮김 / 알레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와 일본, 서로 좋아하지 않지만 22년째 1월 26일이면 도쿄 지하철 신오쿠보역에 일본인들이 모여 한국인 한 사람을 기억하며 생각하는 행사를 가진다. 당시 일본 유학 중이던 스물여섯 살 이수현 씨는 2001년 1월 26일 기숙사로 돌아가던 중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술 취한 일본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곧잘 발휘되는, 생명을 던져가면서까지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도 생면부지의 사람을, 게다가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은 일본 사람을 말이다.

'이 책의 목적은 아주 특정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이타적 욕구를 설명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특정한 상황이란 무력한 자손을 돌보려는 우리의 아주 오래된 (그리고 여전히 중요한) 욕구와 구체적이고 특정한 상황을 말한다. (p. 17)'

행동신경과학 박사 스테퍼니 프레스턴 교수의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는 우리들 안에 감춰진 이타적 행동의 욕구와 본성, 그 뇌과학적 비밀을 풀어내어 이타주의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우리에게 통찰을 제공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제 막 어미가 되었음에도 어린 새끼에게 접근하기 위해 복잡한 미로를 파악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어미 쥐의 새끼회수본능은 강했다. (...) 어미 쥐들은 먹이 혹은 물을 얻기 위해서나 심지어 짝짓기 같은 보상을 얻을 때보다 자기 새끼에게 접근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아주 많은 횟수로 가로질렀다. 과학적 연구에서 '새끼회수'라고 언급하는 이 본능적 행위는 새끼를 낳은 직후 며칠에 걸쳐 뚜렷이 나타난다. (p. 20, 21)'

이야기의 시작은 어미 쥐의 새끼회수행동에 관한 생리심리학자 윌슨크로포트의 연구부터다. 동물의 새끼회수행동과 인간의 이타주의 사이에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돕는 인간의 행동이 새끼를 돌보는 포유류로서 얻은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인간의 이타주의와 관련된 뇌의 작용과 행동의 부족했던 설명을 메워준다.


우리에게는 능력만 된다면 타인을 돌보려는 본능이 있다. 피해자가 무력한 아기 모습과 유사할 때 또한 상대를 구하는 일이 합법적이라고 여길 때 기꺼이 돕는다.

하지만 도움을 줘야 하는 내 능력이 부족하거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성공 가능성을 예측해 도우려는 반응을 억제한다. 우리가 항상 이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이런 메커니즘은 우리를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그렇다면 이수현 씨가 보인 자신과 무관하고 호의에 보답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대상에게 한 영웅적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성공 가능성, 상대방의 공감, 동정심 등 이 모든 것 중 어느 하나도 생각할 겨를 없이 무의식적으로 달려들어 도운 행동이다. 이타주의에 관한 어떠한 이론으로도 이 같은 반응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타적 반응 모델은 그 원리에서 벗어난 형태의 도움 행동까지 다루는 유일한 이론으로서 남을 돕는 결정은 의식적 사고가 필요 없고, 무력한 자기 새끼에게 반응할 때와 비슷한 욕구를 느낄 때는 모든 종에 통용되는 메커니즘에 의존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p. 350)'


인간 행동의 최고 선善은 이타적 행동이 아닐까?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사람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타적 행동이 '어미 쥐의 새끼회수행동'과 매우 유사함을 감안한다면, '이타적 행동을 하지 않는 인간은 동물다움에도 미치지 못한다'라는 생각을 과연 지나치다 할 수 있을까?

우리를 사회적 동물이란 말로 정의하곤 한다.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다른 이들이 필요하고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인류가 지구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자연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타적 행동에서 비롯되는 우리들의 다정한 보살핌이 감동을 이끌어내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일 읽는 존 맥스웰 A Year of Quotes 시리즈 3
존 C. 맥스웰 지음, 이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존 맥스웰이 우선 떠오르는 건 리더십 분야의 베스트셀러 <리더십 불변의 법칙>이란 명저 때문이다. 리더십을 21가지 법칙으로 정리하여 쉽게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했다. 이 법칙은 상황에 맞게 적용 가능한 리더십의 매뉴얼로 손색이 없다.

존 맥스웰은 리더십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목회자다. 리더십은 목회에 가장 필요한 바탕이다. 국가 리더가 마음에 안 든다고 쉽게 조국을 바꿀 수 없고, 리더십이 부족한 회사 대표를 만났더라도 임금 때문에 직장을 쉽게 옮기지 못한다. 하지만 교회는 다르다 (물론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교인 입장에서 선택지는 많다. 리더십이 없는 목회자라면 성공적인 목회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매일 읽는 존 맥스웰>은 앞서 소개한 <리더십 불변의 법칙>을 비롯한 존 맥스웰의 저서에서 뽑은 글을 모은 책이다. 1년 365일 하루 10분씩 읽으며 변화와 성장 경험하기가 가능하다.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훌륭한 리더는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정면으로 부딪혀 최선을 다한다. 리더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간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팀을 리드할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p. 118)'

다른 모든 걸 위임할 수 있지만 리더가 절대 위임하지 말아야 할 것이 '책임'이다. 화살을 명중시키지 못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과녁의 위치를 탓하며 '책임'을 전가한다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실패하기도 한다. 항상 잘할 수 없다. 리더는 실패를 한순간 지나가는 일로 생각할 뿐 인생이 실패했다고 확대하지 않는다. 실패의 '책임'을 돌릴 누군가를 찾고 있다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리더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나의 권한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리더가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중에서 '책임'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절대 책임지지 않고,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않으며, 게다가 남 탓하는 리더가 생각나서다.


존 맥스웰을 왜 읽어야 할까? 리더십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항상 리더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회사, 가정, 소모임에서 리더이고, 그리고 나 자신의 리더이기도 하다. 상하좌우 어느 방향으로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360도 리더'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그리고 순간순간 결정을 해야 하는 리더다. 영향을 받는, 다른 누가 한 결정에 따라야 하는 포로나 노예의 삶을 살기 싫다면, 존 맥스웰과 함께하는 시간을... 1년 365일 하루 10분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아두면 쓸모 있는 컬러 잡학사전 - 익숙한 색에 숨은 과학 이야기
이리쿠라 다카시 지음, 안선주 옮김 / 유엑스리뷰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본다고 모든 동물이 그런 건 아니다. 조류나 파충류는 색을 잘 식별하지만 영장류를 제외한 대부분 육식동물은 색각이 잘 발달하지 않았다. 깊은 바다의 물고기도 몇 가지 색만 본다.

우리가 보는 색깔도 물체에 물든 것이 아니다.
'물체 표면에는 잘 반사되는 파장의 빛과 잘 반사되지 않는 파장의 빛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눈과 뇌는 반사되는 빛을 이용하여 마치 물체가 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다시 말해 뇌가 물체에 색을 칠합니다. (p. 5)'


<알아두면 쓸모 있는 컬러 잡학사전>은 색에 얽힌 이야기다. 누구나 가질만한 색에 대한 궁금증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 흥미롭고 알기 쉽게 설명한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펄스 옥시미터를 받았다. 이 기기가 어떻게 산소를 측정하는지 궁금했는데 풀렸다. 산소와 결합하는 헤모글로빈의 색이 붉다는 것에 착안해 산소포화도 측정에 빨간빛을 이용한다.
'혈액에 산소가 충분하면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산소가 부족하면 검붉은색을 띱니다. (p. 29)'

암컷을 유혹하는 것은 좋은데, 화려한 색은 천적의 눈에 잘 띄어 수컷 공작이나 원앙새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그 핸디캡은 적의 습격을 당하기 십상인데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다시말해, 건강하다는 증거가 된다. 튼튼한 새끼를 낳으려고 강한 수컷을 찾는 암컷에게 수컷의 아름다운 색은 매력적이다.

'아톨라해파리는 천적 물고기에게 공격을 당하면 파란빛의 점멸광으로 자신의 천적을 잡아먹는 큰 물고기를 유인합니다. (p. 119)'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이유는 꽃가루를 옮겨줄 꿀벌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꿀벌은 자외선을 보지만 빨간빛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온대지방의 꽃 중에 빨간색이 적다. 반면 열대지방에서는 빨간빛을 보는 새가 수분을 하기 때문에 크고 빨간 꽃이 많다. 그럼 온대지방의 꽃인 화려한 빨간색의 동백꽃은 어떻게 꽃가루를 옮기나? 동백꽃이 피는 겨울에서 이름 봄엔 어차피 꿀벌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어서 빨간색으로 동박새를 불러들인다.


'빛의 유무와 세기만 감지할 수 있었던 눈은 5억 년 전 캄브리아기에 비로소 형태를 인지하는 눈으로 진화했습니다. 눈은 육식동물이 사냥감을 발견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먹히는 쪽에게도 적을 재빨리 발견하고 도망갈 수 있도록 지대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눈은 급속도로 진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형태만 식별하던 눈이 드디어 색까지 식별할 수 있는 눈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형태뿐만 아니라 색까지 식별할 수 있는 눈으로 동물들은 사냥감과 적을 더 빨리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 192)'

모든 생물은 색을 생존, 번식에 이용한다. 인간은 생존, 번식에 새로운 가치를 추가했다. 색칠을 해 감상하고, 다채로운 컬러로 옷맵시를 뽐내고, 색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생활에 편리를 더하고... 색이 있어 우리 삶이 풍부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빚 갚는 기술 - 돈 한 푼 안 들이고 채권자 만족시키기 고전으로 오늘 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빚이 있다. 그것도 잔뜩. 내가 사는 집도 은행이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런 연유로 달마다 꼬박꼬박 지분 소유주에게 소정의 돈을 자동으로 보낸다.

'지금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독자들은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제목에 끌렸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뭐? 빚 갚는 기술이라고? 그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그런데 그 유명한 발자크가 썼다고?' (p. 153, 역자 후기)'

나도 이 책의 제목에 끌렸다. 빚을 짊어진 사람이라면 당연하지 혹하지 않았을까? 특히 역자의 말처럼 '돈 한 푼 안 들이고...'와 '발자크'에 꽂혀버렸다.


'삼촌은 아주 젊어서부터 정식 수입이 한 푼 없어도 엄청난 수입이 있는 사람처럼 살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만한 편견, 철학적 어투를 빌리자면, 우리 사회의 어마어마한 도덕적 결함의 우위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p. 13)'

소설 <빚 갚는 기술>의 주인공인 삼촌은 빚을 지고도 갚지 않으면서 60년을 모든 쾌락을 누리면서 살다간 비범한 인물이다. 삶의 마지막도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만찬을 하면서 마감했다. 삼촌은 자식도 없었고 아내라는 신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빚 때문에 여차하면 감옥 생뜨펠라지에 들어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빚 갚는 기술>은 '빚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적인 지침서'로서 삼촌이 완성한 '돈 한 푼 안 들이고 빚을 갚고 채권자를 만족시키는 기술'을 삼촌의 부탁을 받아 조카가 기술한 내용이다.

'갚을 빚이 많아질수록 신용은 늘어난다. 감당해야 할 채권자들이 적어질수록 돈 생길 곳은 줄어든다. (p. 35)'와 같은 빚에 대한 '삼촌의 명언'과 참신한 생각을 시작으로 '빚이란 무엇인지'를 26가지로 나누어 흥미롭게 해석한다.

'24. 사회적 빚: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빚. 이웃 사람과 놀음을 하면서 생겨나는 빚으로 그와 놀음을 계속하기 위해서 그에게 계속 빌리는 빚이다. (p. 51)'

이어서 감가상각, 채권자, 채무자, 신체 속박, 집행관에 대한 독특한 정의, 채무자에게 필요한 자질들, 채무자가 구비할 조건, 생활 방식 그리고 도덕성에 대해 사회 풍자를 곁들여 통찰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편지 전달비, 마차비는 요즘의 내게는 사치일 뿐이다. 옷이 닳을까 봐 외출도 삼가고 있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p. 181, 부록 2 _ 발자크가 동생 로르에게 보낸 편지)'

살아생전에 그림을 한 점도 못 팔은 고흐와 달리 발자크는 살아있을 때 문학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작가였다. 그럼에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젊은 시절인 20대부터 평생 빚을 지고 살았다.

'그런데 이사하는 집이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이 있다. '정문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여차할 경우 도망갈 수 있는 후문까지 겸비한 집' (p. 161)'

빚을 진 이유를 보들레르는 '기후도 안 맞는 파인애플이 주렁주렁 달린 정원, 철에 안 맞는 장식의 별장 등 발자크의 취향이 독창적이었고, 괴이한 발상으로 일상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발자크는 빚 때문에 글을 쓰는 '글 쓰는 노동자'였다.


빚은 잔뜩 짊어진 채무자로서 나는 <빚 갚는 기술>을 읽는 내내 빙긋 웃으며 유쾌함을 유지했다. 평생 채무자였던 발자크도 웃음기 띤 얼굴로 득의양양하게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빚으로 눌린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수도...

''얼씨구, 빚으로 한바탕 잘 놀았네, 그려.'
빚으로 신나게 사물놀이 한판 하고 난 느낌을 전하는 이 책으로 독자들도 발자크처럼 꿈틀대며 빚을, 돈을 낭만화할 수 있는 생활을 하기를…. 까짓것 그저 (p. 159)'

빚 있는 자들이여~~~ 꼭 읽어보시길, 읽는 동안만이라도 채무자로서는 절대 느끼지 못할 통쾌함을 원하다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하면 떠오르는 인물, 아이작 뉴턴, 갈릴레오 갈릴레이, 찰스 다윈,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모두 유럽인들이다. 그라만 콰시, 베로니카 로드리게스,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는? 딱 봐도 유럽인이 가질만한 이름이 아닌 이 생소한 인물들도 과학의 역사에 큰 역할을 했지만 우리는 모른다. 그 이유를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는 과학이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은 유럽만이 아닌 전 세계에 걸친 여러 사람들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이 책은 과학 역사책에는 없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한 쪽으로 기울어진 세계관을 바로잡아준다.


'이 책에서 나는 전 세계 역사의 핵심적인 순간에 맞춰 근대과학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이 식민지가 되던 15세기 무렵에서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쭉 살필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16세기의 새로운 천문학에서 21세기의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사의 주요 발전을 탐구할 것이다. (p. 14)'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관련 문헌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신대륙에 다다르면서 그곳에서 발견되는 표본들과 원주민의 과학적 지식을 통해 고대 문헌의 모순을 알게 됐다. 이렇듯 다른 문화와의 접촉은 천문학과 수학 연구에 혁명을 몰고 오기도 했다.

18세기 초 제국의 지지를 업고 탐험에 나선 항해는 물리학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안데스산맥 탐험은 지구의 모양에 대한 뉴턴의 주장을, 태평양 항해는 태양계의 절대적인 크기를 확인시키는 등 이론적 질문들을 측량과 같은 실용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 식물의 분류 체계도 칼 린네에게만 업적의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인물들이 이 작업에 기여했고, 식물학 지식을 얻으려고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을 폭력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도 18세기 후반에 이미 러시아, 청 왕조 등에서 널리 논의됐던 개념이다. 다윈도 인정한 사실이다. 당시 다윈주의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진화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개념 덕분이었다. 19세기 말 다윈 이론의 적용은 동식물을 넘어 국가에 적용되어 잔인한 정복과 침략의 근거로 쓰였다.

20세기 전반에 일어난 혁명과 반식민지 운동 등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은 과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함께 일하면서 발전을 이뤄낸 상대성과 약자 역학과 같은 현대 물리학이 냉전의 시대를 끝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과학자들이 각 국가별로 핵무기 프로그램에 동원되면서 과학은 성장했지만 국제 협력은 분쟁의 시대로 바뀌었다. 유전학도 국가의 관심으로 성과를 이루었지만 소수 민족 집단을 공격 목표로 삼는 국가 형성의 도구가 돼버렸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오늘날 과학 연구의 세 가지 주요 어젠다인 인공지능, 우주 탐사, 기후 과학을 다룬다. 과학의 미래를 위해 세계화와 민족주의라는 두 힘 사이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 그 시작은 역사를 바로잡는 일부터다. 매우 불평등한 관계였다 하더라도 과학은 전 세계의 문화적 교류의 결과라고 이해하는 것, 여기에 과학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의 강대국들에 의해 널리 퍼진 왜곡된 역사는 과학에도 스며있었다. <과학의 반쪽사>는 과학사에서 배제되었던 과학자들을 들추어 내, 그동안 우리가 서양 과학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에 도전하는 책이다. 이제까지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과학을 일궈냈듯 미래 과학의 답도 역시 협동이다. 그러니 당연히 차별과 혐오, 불평등은 미래 과학의 크나큰 걸림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