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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개정판 2023년 (초판 2004년) | 544쪽
모든 감각이 깨어나 풍성해지고 황홀하다.
<감각의 박물학>은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그리고 공감각까지 여섯 가지 감각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모든 분야의 학문을 넘나들며 탐구한다. 문화에 따라 감각이 얼마나 다르며 또 얼마나 유사한지, 감각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다른 생명체의 감각의 세계까지... 모두 살펴본다.
'다른 감각과 달리 냄새는 해석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냄새의 효과는 즉각적이며, 언어나 사고 혹은 번역에 의해 희석되지 않는다. 냄새는 강렬한 이미지와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압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p. 28)'
냄새라는 감각은 정확하지만, 그 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설명할 수 없다. 숨 쉴 때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탓에 냄새를 맡지 않으려면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냄새는 모든 감각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라 해석이나 설명이 필요 없다. 공기가 없다면 냄새도 없다. 맛은 냄새에 의존하기에 무중력 상태라면 음식 개발에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은 지문처럼 개인적인 체취를 간직한다. 그래서 인종 차별적 표현에 냄새가 쓰이기도 한다. '냄새난다'라는 말로. 모든 것에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시해서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프레데릭 작스가 <사이언스>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촉각은 최초로 점화되는 감각이며, 대개 맨 마지막에 소멸한다. 눈이 우리를 배신한 뒤에도 오랫동안, 손은 세계를 전하는 일에 충실하다...... 죽음에 대해 설명할 때, 우리는 촉각의 상실에 대해 말하는 일이 많다." (p. 128)'
자극에 반응하는 촉각은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고 반응을 멈춘다. 그 덕에 우리는 계속되는 스웨터의 감촉이나 바람의 자극 때문에 미쳐버리지 않고 일상을 산다. 따뜻한 손길은 정서적 안정을 선사한다. '키스는 우리를 욕망의 사원으로 안내하는 촉각의 순례 여행이다. (p. 192)' 나라마다 금기시하는 신체 부위가 다르다. 하지만 연인들 그리고 엄마와 아기에게만큼은 금기가 사라진다.
'다른 감각들은 혼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미각은 대단히 사회적이다. 혼자 식사하는 것을 꺼리는 인간에게 음식은 대단히 사회적인 구성 요소다. (p. 221)'
사회적 교류는 식탁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미각은 친밀함의 감각이다. 우리에겐 쓴맛, 신맛, 단맛, 짠맛으로 분류된 1만 개 이상의 미뢰가 있다. 그중 쓴맛의 미뢰는 혀 뒤쪽에 자리 잡고서 위험한 것이 넘어오면 구역질을 일으켜 삼키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맛은 네 가지 미각 중 하나이거나 합쳐진 맛이다. 인간은 음식을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인다. 혀끝에서 느끼는 맛은 때로 도덕에 무감각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기도 한다.
'청력을 잃은 사람은 중요한 끈이 끊어진 것과 마찬가지여서 삶의 논리의 궤도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땅속에 묻힌 뿌리처럼, 세상의 일상적 교류에서 차단된다. (p. 303)'
소리는 분자의 파동이다. 지구상의 모두가 소리를 낼 줄 알므로 우리는 소리로 세계를 해석하고, 소통하며, 소리로 나를 표현하여 알린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음으로써 삶에 의미를 더한다. 외국어는 번역이 필요하지만 음악이 외치는 울음, 웃음, 슬픔, 기쁨 등 모든 감정은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나무를 들고 숨을 불어넣을 때 그 악기는 신음하고 노래한다.
'대단히 관능적인 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점에서는 아무도 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꽃은 아주 작고, 우리는 바쁘다. 그리고 본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이 시간 걸리는 일인 것처럼." (p. 466)'
역설적이게도 추상적 사고는 구체적으로 눈이 본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어떤 장면도 익숙해지면 희미해진다. 다행스럽게도 끔찍한 광경도 마찬가지다. 빛은 기분을 전환시키고, 호르몬 분비를 자극하고 생체 리듬을 활성화하면서 우리 삶에 적극 개입한다. 색깔은 반사되는 빛이어서 우리가 보는 것은 거부당한 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의 색은 붉은색을 제외한 모든 색이라는 정의가 맞다. 낙엽을 밟을 때 귀 기울이면 '쉬잇!' 하고 말하는 낙엽의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침묵의 언어로 색깔은 너무나 훌륭해서 모든 동물들이 색이란 언어로 공격하고, 경고도 하고, 유혹하고, 고백하고, 울부짖고, 놀람을 표시한다.
'일상생활은 지각에 대한 끊임없는 폭격이나 마찬가지여서 누구나 감각의 뒤섞임을 경험한다. (p. 496)'
감각은 동시에 자극받는다. 뒤섞여 알 수 없는 감각도 느끼게 한다. 색깔이 음악이 연결되는 등 공감각은 예술가들의 감각의 문을 활짝 열어젖혀 창조적인 힘을 만든다.
여섯 가지 감각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마치 이들 감각들과 목욕탕에서 속속들이 알아가듯 친숙함을 더해준다. 감각을 한껏 사용하도록 잊었던 사용법을 일깨워준다.
에세이스트이자 시인답게 표현이 너무 절묘해 아름답기 그지없다. 키스에 대해(192쪽), 오케스트라 악기에 대해(355쪽),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이유(357쪽), 밤이 내릴 때부터 동이 틀 때까지(423~429쪽)... 다시 한번 '황홀하다!!!'라는 감탄을 해야겠다.
감각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으로 이 책을 읽은 것도 즐겁지만, 아름다운 글투성이인 이 책은 시집을 읽듯 책을 펼쳐도 좋다. 한번 읽고 밀어놓지 말고, 깨우고 싶은 감각이 있을 때마다 그 감각이 담긴 페이지를 찾아 시를 감상하듯 읽어야 할 책이다. 강력추천!!!
'감각은 우리를 여태까지 살아온 모든 이들과 연결시켜주는 유전의 사슬의 연장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우연한 사건을 넘어서 우리를 다른 사람들, 동물들과 연결시켜준다. 감각은 인간과 비인간을, 한 영혼과 그의 많은 친척들을, 개인과 우주를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다 이어준다. (p. 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