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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
낸시 루이즈 프레이 지음, 강대훈 옮김 / 황소걸음 / 2018년 11월
평점 :
순례 길 카미노데산티아고,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의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에서 출발해 큰 도시와 마을, 탁 트인 전원 지대를 지나 마냥 걷는 길이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 750킬로미터의 카미노데의 끝은 산타아고데콤포스텔라 시 오브라도이로광장의 산티아고대성당이다.
'카미노 루트는 노란 화살표나 가리비 껍데기로 표시되며, 역사 명소 안내판도 마련되었다. 순례자는 순례자 여권이라 불리는 증서 credential를 들고 다니며 매일 도장을 받는다. 산티아고대성당 사무소에서는 산티아고 순례를 완수했음을 증명하는 콤포스텔라 Compostela 증서를 발급한다. (p 25)'
산티아고, 즉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의 유해가 산타아고데콤포스텔라가 있는 언덕으로 옮겨졌고,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된다. 1000년 순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16세기에 순례가 위축됐고, 19세기에도 순례자 수가 크게 줄어 고비를 맞았다. 하지만 오늘날 카미노 순례는 종교 여행을 넘어 삶의 내면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여행으로 카미노는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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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들려주는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는 순례길 카미노데산티아고에 관한 민족지다. 조사의 시작은 순례였다. 저자인 낸시 루이즈 프레이는 9주간의 첫 번째 순례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카미노를 걸었고, 순례자 숙소 네 곳에서 13개월간 일하며 순례를 경험하며 현지 조사를 수행했다.
'사람들은 왜 순례를 떠나며, 어떤 목표와 동기를 가지고 카미노로 오는가? 순례 중에 맞닥뜨리는 기쁨과 시련, 고민은 무엇이고, 순례 경험은 집으로 돌아간 뒤 그 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 (p. 6)'
이 책은 여느 순례 기록과 다르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물리적 여행의 종결에서 기록을 멈추지 않고 순례자의 귀향 이후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순례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경험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 조사한다. '사람은 언제, 무엇으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는가?'라는 인류의 오래된 물음에 답을 찾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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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했던 집으로 돌아온 뒤 카미노의 경험을 어떻게 작동할까?
'순례는 여행 결심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산티아고 도착과 더불어 종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p 25)'
여행의 목표가 목적지에 도착이라면 순례의 목적은 오브라도이로광장의 산티아고대성당, 성지에 도착이 아니다. 길을 걷는 과정이 목적지이고, 집으로 돌아온 뒤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되기도 한다.
순례 후 일상 복귀의 어려움도 느낀다. 관점과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순례자는 어떤 힘을 갖고 있는데, 그 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한 데서 비롯된다. 순례에서 발견한 것들을 일상에 적용하는 과정이 복잡하다. 일상의 리듬에 다시 익숙해지기도 만만찮다.
카미노를 걸으며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일상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카미노의 가치를 깨닫는다. 기억 속에 두 가지 카미노가 존재한다. 이웃과 나누는 과정에서 재해석하는 카미노, 또 하나는 본인 만의 기억 속 카미노다. 이 기억은 카미노를 재방문 할 때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카미노 순례는 종교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종교로부터 멀어지게도 한다. 카미노는 잠재해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선물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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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산티아고 순례를 결심하곤 했다. 왜 카미노데산티아고 찾을 결심을 했을까? 곰곰이 그때를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변화를 찾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는 카미노를 걷는 것만으로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카미노가 순레자에게 열어주는 새로운 문을 자신의 힘으로 통과해야만 한다...
'한 영국 순례자는 순례가 "정신의 상태, 삶의 방식, 마음의 형편 a state of mind, a way of life, a condition of the heart"이라고 말했다. 순례가 생각과 해석, 행동, 느낌과 감정의 집합체라는 이야기다. 순례는 순례자의 개인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강도로, 여러 층위에서 꾸준하게 영향을 미친다. 기억은 현재의 감정과 사고, 행위에 방향을 부여하며 그것의 표현에 관여한다. (p. 339 순례의 정신을 간직하기)'
뚜렷한 의미를 단박에 찾기 힘들어 참 어려운 문장이지만 곱씹어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