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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 Rock - A급 밴드의 B급 음반
사은국 지음 / 도서출판 11 / 2023년 2월
평점 :
고등학생 시절에 내가 들은 음악은 온통 외국 팝송뿐이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ROCK. 대부분 이 책에 소개된 밴드들이다. 비틀스, 크림, 핑크 플로이드, 이글스, 딥퍼플, 본조비, 레드 제플린... 이들 밴드의 이름을 나열하기만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대학가요제의 산울림,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고 나서야 우리 가요를 들었지 그전에는 한국 가요를 듣는다는 건 좀 촌스러운 느낌이랄까? 올드하고.
몰려다니며 주크박스에 동전을 넣어 팝송을 들었고, 돈을 주고 공테이프에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플레이리스트를 담은 후 놀러 가면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크게 틀어 듣곤 했다. 대기하고 있다가 라디오 음악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서 음악 방송 MC는 노래 중간에 절대 멘트를 넣지 않는 것이 요즘 말로 국룰이었다.
돈을 아껴 작은 사이즈의 팝송 책을 사기도 했다. 노랫말을 외우다 뜻이 궁금해 영어사전을 찾다 보면 영어 단어 공부에도 도움이 됐고, 코드를 보면 기타를 익혔다.
'이 책에서는 이해와 분류의 편의를 위해 과감하게 'A급 밴드'와 'B급 음반'이라는 기준을 적용했다. 'B급 음반'이라기엔 견고한 완성도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밴드의 이후 나아갈 길을 결정한 앨범도 이에 포함시켰다. 독자들의 너른 이해를 바란다. (p. 10)'
2021년 출간한 사은국의 <헤비메탈 계보도>가 헤비메탈 밴드와 음반의 이야기라면 <AB ROCK>은 록 음악 전반의 A급 밴드 20을 추려 멤버, 매니저, 프로듀서 사이의 이야기와 그들의 B급 음반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B급이라 평가받는 음반들은 명반과 명반을 이어주기도 하고, 밴드의 성공 또는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이 책은 어디 가서 잘난 척하기에 안성맞춤인 스토리가 풍성하다.
'이번 책에서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뿐만 아니라 유튜브 자료, 영어 원서까지 참고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알찬 정보와 스토리가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전달되도록 신경 썼다. (p. 279)'
각 챕터를 읽을 때마다 해당 음반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면서 읽어나갔다. 그래야 이 책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림은 1960년대 중반부터 영국에서 싹트기 시작한 블루스 록이 사이키델릭 록을 거쳐 하드 록, 나아가 헤비메탈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에릭 클랩턴(기타, 보컬), 잭 브루스 Jack Bruce(베이스, 보컬), 진저 베이커 Ginger Baker(드럼) 세 명으로 구성된 크림은 록 역사에서 훗날 무수히 생겨나는 슈퍼그룹의 효시이자, 파워 트리오 포맷의 전형을 보여준 밴드였다. (p. 57)'
천재인 세 멤버가 크림의 장애물이었다.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는 융합된 사운드가 아니라 개인기 대결로 변해버렸다. 팬들은 열광했지만 멤버들은 서로 진저리 쳤다. 짧지만 강렬했던 2년의 활동은 급정거하며 끝나 버렸다.
마지막 앨범 <Goodbye>는 매니저와 음반사의 돈벌이용 합작품이었지만, 크림의 장점을 살린 세 곡의 라이브와 세 곡의 스튜디오 신곡으로 구성돼 크림의 사운드를 맛보기 좋은 입문용 음반이 되었다.
믹 제거와 키스 리처드의 롤링스톤즈. '1960년대 록 음악 혁명을 진두지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롤링스톤즈는 1970년 4월, 비틀스가 해체하면서 왕좌에 올랐다. (p. 193)'
1960년대와 70년대 80년대까지 록 음악의 정점에 있던 롤링스톤즈. 베이시스트 빌 와이먼이 쉰둘이라는 나이에 열여덟 살의 맨디 스미스와 결혼하여 세상을 충격에 빠뜨리는 등 위기 속에서 음반 <Steel Wheels>로 발돋음하며 1989년 말 컴백 무대를 마련한다. 팔순을 눈앞에 둔 멤버들은 '롤링스톤즈'라는 밴드 이름에 걸맞게 지금도 멈추지 않고 굴러가고 있다.
영화 같은 삶을 산 프레디 머큐리의 퀸, 그래서 영화(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들어졌겠지만. 영화 속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재현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85년 7월 13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동시에 열린 라이브 에이드 Live Aid 공연은 퀸이 부활한 전설적인 순간으로 기록됐다. 한물간 밴드란 소리를 듣던 퀸은 프레디 머큐리의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과 퍼포먼스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퀸이 쇼를 훔쳤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라이브 에이드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p. 233)'
프레디 머큐리 생전 마지막으로 투혼을 불사른 앨범 <Innuendo>는 스완송으로 불릴만하다. 이 앨범에 수록된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뮤직비디오는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기 6개월 전에 촬영했다. 흑백 화면 속의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하다. 1991년 11월 24일, 합병증인 기관지 폐렴으로 사망한 그는 마지막까지 퀸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Made in Heaven>의 보컬 트랙 녹음을 계속했다.
잠시 10대로 돌아가 추억을 즐기며 읽은 책이었다. 음악을 들으면 음악만 생각나겠는가. 음악과 연결된 사연들, 나이가 들었어도 그때의 일상을 기억하는 경험은 언제나 설렌다.
록이 생소한 요즘, 랩이나 K 팝에 가려져 록을 찾아 즐기기 어렵겠지만, 60년대부터 길게는 90년대까지 음악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한 장르이니 만큼 관심을 가져봄직하다. 만약 관심이 있다면 입문서로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