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한강
권혁일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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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기분은 아무도 모르지. 죽을 것 같은 기분에 대해서만 떠들어댈 뿐. 진짜 죽으려는 사람은 망설이지 않아. 그러니까 이런 도움의 전화니 뭐니 하는 건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거지. (p. 11, 첫 문장)'

제2한강, 서울의 한강과 비슷해서 이렇게 부르는 이곳은 천국도 지옥도 연옥도 아닌 곳이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들이 아닌 자살한 사람들만 오는 곳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형록, 앱 개발자 오과장, 60만 뷰티 유튜버 인싸 화짜,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제2한강 10년 차 이슬, 이들이 제2한강에 머무는 주요인물들이다. 제2한강을 벗어나는 방법은 다시 자살하는 것뿐이다. '다시 자살'하면 소멸한다.


'왜 그랬을까? 2020년 여름, 친구 M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릿속은 그런 질문으로 가득 찼습니다. 왜? 도대체 왜? 네가 왜? (p. 7)'

작가는 친구의 자살을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극단적 선택이라고 하는 자살, 하루에 30~4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이 정도면 작가처럼 친구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친인척 또는 지인, 지인의 지인, 주변에 적어도 자살한 사람 한 명쯤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1년을 버틴다면 저 모습을 만 번도 넘게 보게 되겠지. 양치도 1년에 고작 천 번 할 뿐인데. (p. 268)'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자살한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 1순위는 자살예방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 죽은 사람 한 명쯤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라고 우선은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다. 곧이어 드는 생각은 꼭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그 정도 힘듦도 견디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개인으로 책임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이런 이유로 자살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오랫동안 자리 잡지 못한다.


'"자살했으니까요? 처음부터 죽고 싶어서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살기 너무 힘들어서, 살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 ( p. 126)'

자살에 연습이 필요했는지, 고통은 없었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왜 자살했는지 등등등 가늠하기 어렵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자살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자살한 이들의 이야기, 우리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상상하여 들려준다.


''죽음은 삶의 초기화가 아니었어. 강제로 전원을 꺼 버렸던 것뿐이지. 이렇게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p. 149)'

지겨운 삶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 죽음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변한건 없다. '다시 자살'을 선택해 소멸되기 전까지 제2한강의 삶은 죽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 끝이 없는 멈춤, 그런 삶이다. 좋아지는 것도 더 이상 나빠지는 것도 없다.

'"너 제2한강에 왜 환생이 없는 줄 알아?" (...) "내 생각엔 말이야, 아마도 여기로 이사 온 사람들이 온전히 과거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아." (p. 287)'

제2한강에 있는 이들에게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 그들이 새롭게 설계하는 삶은, 이번엔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얻게 된 삶을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과한 나머지 과거 삶에서 실수한 것, 잘못한 것,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후회가 가득할지도 모를 일이다.

끝이 소멸뿐인 제2한강의 사람들은 과거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실수, 잘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이전 삶이 잘못된 건 내가 못나서, 멍청해서, 바보여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소멸되기 전 마지막에 간직하고픈 감정은...

'"다들 마음속에 미안한 사람이 하나씩은 있다는 거예요. 소중한 사람을 두고 온 게 너무 미안한 거죠. 떠나간 사람은 남겨진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남겨진 사람은 떠나간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웃기죠? 자살이란 게." (p. 309)'


제2한강이 있다면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그래서 소설처럼 그곳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또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 친구 M이 있는 곳으로 떠나지 않으시기를. (p. 8)'
그러면 나 그리고 친척, 이웃... 제2한강으로 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삶을 더 오래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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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 - 미술전시 감상에서 아트 컬렉팅까지 예술과 가까워지는 방법 뉴노멀을 위한 문화·예술 인문서 4
김진혁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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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바닥에 누구든 까먹을 수 있는 진짜 사탕이 쌓여있다. 약 7,000개의 사탕 무게는 34kg이다. 전시장에 있으니 당연히 작품이다. 예술 참 어렵다. 작품을 감상하는 내 모습을 곁에서 본다면? 엉성하기 그지없는 모습이 아닐까?

'설치 미술은 굉장히 문학적인 예술입니다. 놀라운 은유법을 품고 있어요. (...) 예술가의 사탕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달콤함이자 책임감이자 그리움입니다. 사탕을 까먹는 행위까지 작품으로 만들어 병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연인의 존재를 표현한 창의성이 놀라웠습니다. 사탕이라는 적합한 소재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요.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p. 177)'

자~ 설명을 듣고보니 이제 34kg의 사탕은 내게 예술 작품이 된다. 이 작품은 쿠바 태생의 미국 시각 예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이름도 길다...)의 <무제 Untitle - 로스모어 Ⅱ Rossmore Ⅱ >라는 설치 미술이다.

미술이라니 그림도 아닌데?
변기를 올려놓고 한쪽에 사인을 남겨놓은 작품, 그 유명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 <샘 Fountain>이다. 작가의 생각이 작품이 되는 '개념 미술'이 미술에 더해진 요즘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난해하니 미술관에 갈 마음에 생기겠나.

'미술 작품과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담았습니다. (...) 제가 쓸 수 있는 범위는 미술관에 가고 싶지만 지극히 낯설고 두려운 누군가를 위한 글입니다. 또는 전시장을 찾을 때마다 좀 더 알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누군가를 위한 글입니다. (p. 5, 6)'

현업 문화예술 기획자 김진혁이 건네는 미술전시에 관한 모든 것,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는 도통 미술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미술관에 갈 마음이 없는 우리를 미술관으로 이끈다. 낯선 미술관을 우리 앞에 친근하게 갖다 놓는다.


이 책은 4개의 전시실로 꾸며졌다.

미술을 즐기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제1전시실에서 알려주는 곳은 미술관, 갤러리, 갤러리가 한곳에 모인 아트페어, 동시대 미술 즐기기가 가능한 비엔날레, 대안공간, 두 가지 이상의 문화 예술 콘텐츠가 전시된 복합문화공간, 유명 브랜드와 콜라보 하는 명품 브랜드 미술관이다. 그리고 거리에서 마주하는 공공미술까지.

제2전시실에서는 하나의 전시를 위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은 하는지 소개한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예술가다. 좀 더 찾아봐야 보이는 사람들은 전시기획하는 큐레이터, 작품 판매를 위해 고객 관리까지 하는 갤러리스트, 애듀케이터, 도슨트. 여간해서 눈에 띠지 않는 전시 공간 디자이너, 너무나 생소한 보존과학자.

가장 낯설고 어려운 과제인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곳은 제3전시실이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지에 따라 구별되는 구상회화와 추상회화, 난해한 설치미술, 조각까지, 작품 감상법뿐만 아니라 전시를 기억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제4전시실에서 알게 된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굿즈 등은 전시를 추억으로 만들어 줄 것이고, 직접 작품을 컬렉팅하여 감상을 독차지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뭐니 뭐니 해도 예술적 경험의 완성은 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리뷰다.

'그런데 왜 글을 쓰는 거죠? 리뷰를 남기면 도대체 뭐가 좋을까요? 우선, 글쓰기가 갖는 성찰의 힘 때문입니다. 셰퍼드 코미나스의 <나를 위로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에 착수하는 시간이 빠를수록 자기 발견의 여정에 빨리 접어들 수 있다.”라고 말해요. (...) 리뷰 쓰기는 방금 보고 온 전시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내 삶과는 어떤 접점이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p. 274, 275)'


나는 딸아이가 미술을 전공해서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미술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특정 그룹만이 향유하는 미술이 아닌 모두가 미술을 알아야만 하는 시대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하다.

무장적 코끼리에게 바짝 다가가 다리도 만져보고 코도 만져보면서 코끼리를 알아갈 수도 있다.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가 가르쳐주는 방식은 일종에 줌인 줌아웃 방식이 아닐까?라고 혼자 생각해 봤다. 멀리서 코끼리를 보고 다가가 다리를 만져보고, 다시 뒤로 물러서 한눈에 코끼리 전체 모습을 보고 코로 다가가 코를 만져보는 식... 이를 반복하며 미술과 친해지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제 더 이상 미술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엉성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책,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것을 작품으로 보게 하는 책, 예술을 내 삶에 경험으로 끌어들이게 하는 책,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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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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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p. 16, 첫 문장)'

카뮈의 <이방인>은 이 첫 문장 하나면 충분했다. 첫 문장에 소설 모두를 담았다. 고전 중에 고전(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고전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이방인>을 읽었다. 처음 읽지만 '다시' 읽는 거라 변명하면서, 처음 읽지만 '다시' 읽는듯한 느낌을 갖고서 읽게 되는 고전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평상시와 같은 일상을 보낸다. 이웃 레몽과 별장에 놀러 갔고 거기서 또 만난 아랍인을 총으로 죽인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서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거짓말을 거부하고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면 낯선 '이방인'이 되는 사회다. 그 사회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한다. 나는 이정서 번역의 <이방인>을 이렇게 읽었다.

카뮈는 <이방인>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나는 단지 이 책의 주인공이 그 손쉬운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선고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p. 5)'. '그는 실재하는 것을 말하고, 그의 느낌을 숨기기를 거부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사회는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p. 6)'

'"그는 거짓말을 거부한다… 그래서 어떤 영웅적 태도도 취하지 않고,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서 <이방인>을 읽으면 크게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카뮈가 한 말이다. (p. 11, ​역자의 말)'
옮긴이 이정서 대표는 이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면 <이방인>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번역서가 잘 안 읽힌다면 비난의 대상은 옮긴이가 된다. 반면 책을 매끄럽게 읽었다면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온 힘을 다했던 옮긴이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번역의 완성도를 옮긴이 혼자 흡족해하며 즐길뿐이다. 번역 세계의 실상이다.

이 책은 새움출판사의 '원전으로 읽는 세계문학 움라우트' 시리즈 중 하나다. 번역서를, <이방인>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번역의 잘못이고 그 원인은 의역이라고 생각한다. '움라우트 시리즈'는 원전 그대로, 작가의 글 서술 구조, 쉼표 하나까지 그대로의 번역을 추구한다.

소설 중간중간에 <이방인>의 오역과 왜곡 사례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그가 그 여자의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그녀가 무어인 여자라고 생각했다. (p. 52)'라는 대목으로 들어 뫼르소의 총에 맞아 죽은 아랍인은 레몽에게 쫓겨난 여자의 오빠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여자는 무어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내가 결코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있다. (p. 98)'에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번역된 책이 없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자위행위'라고 해설한다.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 첫 문장에 많은 힘을 들인다. 첫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특히 <이방인> 첫 문장은 더욱 그렇다.

새움출판사 <이방인>의 첫 문장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이다. 모두들 '돌아가셨다' 보다 '죽었다'가 더 시니컬한 번역으로 뫼르소의 성격을 잘 표현했다면서 초점을 여기에 맞췄다면, 이정서 옮긴이는 쉼표의 의미에 더 주목한다. '엄마가 죽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가 아닌 '오늘,(쉼표) 엄마가 죽었다.'


번역의 세계를 잘 모르더라도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을 비롯한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동물농장>...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시리즈를 읽는 때 번역에 초점을 맞춘다면 즐거움은 배가 될 수도 있으리라. 번역이 창작 활동이면서도 원작자의 문체를 살려야 하기에... 참 어려운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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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에 영화를 처방해 드립니다 - 영화를 사랑한 심리학, 심리학이 새겨진 영화, 2022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 [올해의 책] 선정
전우영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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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우리 마음속 전쟁은 잠시 휴전을 선언한다. 하루에 5분만 숨통이 트여도 살만하다고 하는 데(28. 나의 해방일지 2), 영화는 우리의 마음에 최소한 90분의 평화를 제공한다. (p. 12, 프롤로그)'

사회심리학자 전우영 교수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영화를 찾았고 영화는 그에게 위로를 건넨다. 영화는 '생각을 멈추고 관점을 전환'시켜 마음의 작동 방식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못 본 채 했던 세상을 영화는 경험하게 한다. <당신의 마음에 영화를 처방해 드립니다>는 영화를 무척 사랑한 사회심리학자가 51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소재로 쓴 심리학 에세이다.


아침부터 머저리 같은 인간들이 먼저 생각난다. 최팀장 개자식, 한수진 미친년... 어느 틈에 화가 나있고 그런 화난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직장 생활할 때 흔하게 겪은 일이었고 나를 꾸짖으며 괴로워하곤 했었다.

우선 가장 쉬운 방법이어서 문제의 발단을 나로 규정했다. 하지만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다음 방법으로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았고 남 탓을 했다.

'그러면서 구씨에게 자기가 죽지 않고 사는 법이 있다며 알려준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p. 179, 나의 해방일지, 15화)'

염미정이 구씨와 우리에게 알려주는 '죽지 않고 사는 법'이다. 나를 바라보고 타인을 바라보는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곳을 바라보라고 한다. 화가 가라앉질 않는 우리에게 염미정이 건네는 처방이다.


도대체 왜 현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시절이 아닐까? 우리가 동경하는 과거도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 모두가 아름다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과거를 중심사건 위주로 보기 때문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라고, '초점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리에게 따뜻하게 위로한다.

팀의 가족은 시간 여행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다면? 주식 정보를 이용해 부를 쌓을까? 팀의 아버지는 똑같은 인생을 한 번 더 살아보는 데 이 능력을 사용했다. 처음에 지나쳤던 인생의 아름다움을 맛보기 위해서. 돈이 행복의 전부일 것 같지만 아니라고, 삶의 작은 아름다움을 체험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거라고 영화 <어바웃 타임>은 뜨거운 위로를 건넨다.

우리는 근거도 없고 조작되기 쉬운 자신의 기억을 주요 정보로 나도 모르게 판단을 내린다.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기도 하는' 확증편향'이다.
'확신은 우리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불일치하는 정보는 무시한 덕분에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p. 205)'
영화 <더 헌트>는 확신했을 때 가장 먼저 '의심하기'를 해보라고 우리에게 쓸쓸한 위로를 한다.

'사람들은 관찰자로서 타인의 행동 이유를 추론할 때는 타인의 성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행위자로서 자기 행동의 이유를 추론할 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p. 298)'
이런 이유로 가난한 사람을 게으르고 무능력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영화 <어느 가족>의 두 남녀는 절도, 살인, 유괴, 암매장 등의 범죄행위를 일삼는다. 하지만 관객은 두 남녀의 상황을 공감하면서 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나쁜 행동이 사람이 아니라 나쁜 상황일 수도 있다는 시각을 가지라고 영화 <어느 가족>은 우리에게 차갑게 위로한다.


발행인은 책과 함께 보낸 편지에서 '책을 밀쳐두지 마시고 가능한 한 빨리 서둘러 읽기'를 권한다. 책을 덮을 때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심한 통증에 빠른 처방이 필요한 사람들임을 알고 있는듯하다.

<당신의 마음에 영화를 처방해 드립니다>는 내 마음과 관계에 생채기가 생길 때 나를 위로하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도록 해 처방하고 치유한다. 힘들고 지쳐 숨쉬기조차 어려울 때 숨통이 트이게 한다. 그래서 마음에 평화를 얻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의 처방전을 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영화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매일 조금씩 우리의 마음을 자라게 한다. (p. 345,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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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민족으로 읽는 패권의 세계사 - 문명을 이룩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새 시대를 연 민족들의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정은희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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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배고픔에 대한 공포와 풍요로운 삶을 향한 욕구'라고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10대 민족도 이 두 가지를 위해 이동했고, 침략했고, 협력했고, 분열했다. 그 결과 한 민족이 번성하고 쇠락하면, 이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민족이 패권을 잡으며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이 같은 일은 계속 되풀이됐고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군사력이 강한 유목민족은 부족끼리 연합하여 농경 지대를 공격했고, 농경민족은 부족 간 힘을 합쳐 자신들의 삶을 보호하고자 노력했다. 상업민족은 상호 연결망을 구축하여 유목민이 세운 제국을 유지하는 데 협력했다. (p. 6)'


유라시아를 정복하고 대규모 교역망을 구축한 몽골족. 흥미롭게도 이들 민족이 몽골고원을 벗어나 중국으로, 유라시아로 진출하게 된 힘의 원천은 겨울이 되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기후와 척박한 땅이다. 혹독한 생활환경과 식량 부족은 몽골족을 세계사를 바꾼 민족으로 성장케했다.

'그들은 '말의 이용 → 기마 기술의 체계화 → 기마 군단의 출현 → 상업민족과의 협력'이라는 4단계를 거치면서 강대해졌다. (p. 148)'


군사력도 약하고 명나라가 망할 때 100만 명이 조금 넘는 인구로 중국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던 만주족은 기회를 놓치지 않은 민족이었다. 몽골고원의 유목민과 중국 농경사회 간의 관계를 교묘하게 조합하여 260년 동안 지배를 유지했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 몰락하기 전까지 만주족은 자신들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다. 혼인 정책으로 다른 민족과 동맹을 강화했고 부족들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유교를 중시하여 한족 문화를 존중했다.


군사력으로 힘의 우위를 점할 수 있던 시대에는 '침략과 정복은 생존을 위한 행위'라고 여긴 기마 유목민족이 패권을 잡았고, 교역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상업민족이, 항해기술이 발달했던 때는 먼저 바다로 진출한 민족이, 산업혁명 이후에는 기술과 자본을 가진 민족이 세계를 움직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을 거머쥔 미국은 현재 중국이라는 장벽을 만났다. 중동 국가들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조짐을 보이며 미국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시대는 언제나 바뀌고 그 시대에 작동하는 힘, 우세한 힘을 거머쥐고 세계를 움직이는 주인공도 바뀐다. 앞으로 세계를 움직일만한 능력을 가진 민족은 누굴까? 어느 나라일까?


자원이 부족하고 강한 나라들에 둘러싸인 우리나라. 세계를 장악한 10대 민족 모두가 이러한 환경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고 이를 극복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더 나아가 우리도 어쩌면 세계의 어엿한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용기를 준다. 다만 모든 민족의 쇠락은 안주하고 분열될 때 생겼다는 역사가 마음에 걸린다.

단기간에 기적을 경험한 요즘의 우리를 보면, 그 후유증인지 모르겠지만 패거리 정치, 사대주의적 발상, 리더들의 자기 안위만을 우선시하는 욕심... 현재 우리 사회에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들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을 화합하고 단결하게 하는 구심점이 되어 국가 건설과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타민족을 배척하고 탄압하는 수단이 되어 끔찍한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잊지 않는 것이 우리가 세계사와 민족의 역사를 배우는 목적일 것이다. (p. 243)'

다른 민족, 다른 국가가 아니라 같은 민족, 같은 나라에서 배척하고 탄압하여 기득권을 지키고 더 키우려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면 결과는 끔찍한 비극이다.

10대 민족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함이다. 그리고 '배고픔에 대한 공포를 없애고 풍요로운 삶을 향한 욕구'를 위해 세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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