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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한강
권혁일 지음 / 오렌지디 / 2023년 1월
평점 :
'죽는 기분은 아무도 모르지. 죽을 것 같은 기분에 대해서만 떠들어댈 뿐. 진짜 죽으려는 사람은 망설이지 않아. 그러니까 이런 도움의 전화니 뭐니 하는 건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거지. (p. 11, 첫 문장)'
제2한강, 서울의 한강과 비슷해서 이렇게 부르는 이곳은 천국도 지옥도 연옥도 아닌 곳이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들이 아닌 자살한 사람들만 오는 곳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형록, 앱 개발자 오과장, 60만 뷰티 유튜버 인싸 화짜,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제2한강 10년 차 이슬, 이들이 제2한강에 머무는 주요인물들이다. 제2한강을 벗어나는 방법은 다시 자살하는 것뿐이다. '다시 자살'하면 소멸한다.
'왜 그랬을까? 2020년 여름, 친구 M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릿속은 그런 질문으로 가득 찼습니다. 왜? 도대체 왜? 네가 왜? (p. 7)'
작가는 친구의 자살을 계기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극단적 선택이라고 하는 자살, 하루에 30~4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이 정도면 작가처럼 친구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친인척 또는 지인, 지인의 지인, 주변에 적어도 자살한 사람 한 명쯤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1년을 버틴다면 저 모습을 만 번도 넘게 보게 되겠지. 양치도 1년에 고작 천 번 할 뿐인데. (p. 268)'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자살한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 1순위는 자살예방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 죽은 사람 한 명쯤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라고 우선은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다. 곧이어 드는 생각은 꼭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그 정도 힘듦도 견디지 못한다면? 사회에서 개인으로 책임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이런 이유로 자살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오랫동안 자리 잡지 못한다.
'"자살했으니까요? 처음부터 죽고 싶어서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살기 너무 힘들어서, 살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 ( p. 126)'
자살에 연습이 필요했는지, 고통은 없었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왜 자살했는지 등등등 가늠하기 어렵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자살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자살한 이들의 이야기, 우리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상상하여 들려준다.
''죽음은 삶의 초기화가 아니었어. 강제로 전원을 꺼 버렸던 것뿐이지. 이렇게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p. 149)'
지겨운 삶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 죽음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변한건 없다. '다시 자살'을 선택해 소멸되기 전까지 제2한강의 삶은 죽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 끝이 없는 멈춤, 그런 삶이다. 좋아지는 것도 더 이상 나빠지는 것도 없다.
'"너 제2한강에 왜 환생이 없는 줄 알아?" (...) "내 생각엔 말이야, 아마도 여기로 이사 온 사람들이 온전히 과거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아." (p. 287)'
제2한강에 있는 이들에게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 그들이 새롭게 설계하는 삶은, 이번엔 자살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얻게 된 삶을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과한 나머지 과거 삶에서 실수한 것, 잘못한 것,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후회가 가득할지도 모를 일이다.
끝이 소멸뿐인 제2한강의 사람들은 과거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실수, 잘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이전 삶이 잘못된 건 내가 못나서, 멍청해서, 바보여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소멸되기 전 마지막에 간직하고픈 감정은...
'"다들 마음속에 미안한 사람이 하나씩은 있다는 거예요. 소중한 사람을 두고 온 게 너무 미안한 거죠. 떠나간 사람은 남겨진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남겨진 사람은 떠나간 사람에게 미안해하고... 웃기죠? 자살이란 게." (p. 309)'
제2한강이 있다면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그래서 소설처럼 그곳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또 바랍니다. 여러분이 제 친구 M이 있는 곳으로 떠나지 않으시기를. (p. 8)'
그러면 나 그리고 친척, 이웃... 제2한강으로 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삶을 더 오래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