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의 밤 안 된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청미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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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해안선을 따라서 하쿠타쿠 시와 가마쿠라 시를 잇는 시로가마 해안 도로, 그 길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갈 때 왼편에 있는 유미나게 절벽을 결코 보아서는 안 된다고. (p. 9)'
유미나게 절벽은 자살 명소로 크고 작은 낭떠러지 두 개가 가재 집게발처럼 튀어나온 생김새다.

제1장 유미나게 절벽을 보아서는 안 된다
형사 구마지마의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유미코의 남편 구니오는 유미나게 절벽 근처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구니오는 앞을 보지 못한다. 몇 개월 지나 뺑소니 사고의 유력 용의자도 유미나게 절벽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구마지마 형사는 행동이 수상한 유미코를 눈여겨본다.

제2장 그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 이민 온 커는 이름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몰골이 이상한 야마우치만이 커에게 말을 걸어올 뿐이다. 커는 우연히 문방구에서 살인으로 의심되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커는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제3장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어서는 안 된다
구마지마와 짝을 이뤄 수사하던 형사 다케나시는 이제 신입 형사 미즈모토와 한 조다. 이 둘은 십왕환명회 간부의 자살 사건을 수사한다. 모든 증거가 자살임을 증명하는데도 미즈모토 형사는 살인 사건으로 간주하고 수사를 계속한다.

제4장 거리의 평화를 믿어서는 안 된다
구니오와 형사 다케나시 두 사람은 각각 사망 사건들의 진상을 편지에 담아 자신들의 죄를 자백한다. 구니오는 유미나게 절벽에서 다케나시를 만나 편지를 전달하고 자살하려 하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도판이나 지도 따위의 시각적 자료를 작품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글의 힘만으로도 소설을 읽는 이들의 상상력을 끌어올리는데 충분하다고 여겨서였다.

'그런 그가 <절벽의 밤>에서는 각 장의 끝에 '지도'나 '사진'을 넣는다. 갑자기 웬 지도며 사진이냐 싶겠지만, 본문을 읽은 후에 지도와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면 숨겨진 사실이 밝혀지는 구조이다. "시각적 요소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라고 미치오 슈스케는 말한다. 그야말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새로운 독서 체험이라 할 수 있겠다. (p. 261, 262, 옮긴이의 말)'


미스터리 소설 <절벽의 밤>은 4장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이 하나의 단편인가 싶지만, 제4장에서 치밀한 논리의 전체 모습이 꿰맞춰지면서 범인이 드러난다. 감탄하면서 한편의 소설임을 알았다.

3장까지 각 장은 사망 사건으로 마무리한다. 1장에서는 자동차에 받혀 한 사람이 죽는다. 그 사람이 구니오라고 추측했는데 틀렸다. 2장에서 문방구 할머니와 조카가 커를 끌고 절벽으로 가 죽이려 하는데, 바람 속에 할머니와 조카가 절벽으로 떨어져 죽는다. 커가 밀어버린 줄 알았다. 또 틀렸다. 3장은 다케나시의 파트너 형사 미즈모토의 자살로 끝맺는다. 다케나시가 자살을 가장해 미즈모토를 살해했다는 추측은 맞았지만 살해 동기는 알아내지 못했다.

각 장 끝의 '지도'나 '사진'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풀어야만, 틀린 내 추리와 알아내지 못한 사실의 모습이 드러난다. 미치오 슈스케의 <절벽의 밤> 완성은 트릭과 대반전을 품은 시각적 요소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옮긴이의 도움을 받고서야 미치오 슈스케에게 감탄했고, 이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를 만끽했다.

'이런 식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은 처음으로 접해보았다. "지금까지 읽어본 적 없는 소설을 내놓았다"라고 미치오 슈스케가 자부할 만하다. 미치오 슈스케의 팬이자 번역자로서 강력히 추천한다. 어쩌면 번역자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p. 264,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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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기, 괴담의 문화사
김지선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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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생소한 단어 <수신기搜神記>.
'<수신기>는 그런 지괴 중 한 작품이다. 제목을 풀이하자면 '신'들[神]에 속하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수집하여[搜][기록한[記] 책이라는 뜻이다. (p. 20)' 지괴는 괴이한 이야기 기록했다는 뜻이다.

<수신기>에서 '신神' 개념은 위대하고 신성한 신, 유유자적 살아가는 신선, 영험한 능력을 지닌 인간,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귀신, 변신하는 동물, 요괴가 깃든 사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념을 가진 모두를 포함한다. 간보는 이 신들의 이야기 <수신기>를 인간의 문제, 사회현상, 동물, 나무, 사물 등 세심하게 분류하여 총 20권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수신기>는 1500년이 넘도록 살아남은 고전으로 황당무계하고 기괴하게 신들의 세상을 들려주지만, 이것도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임을 알려주며 편견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한다.


귀신은 있을까? 죽은 다음 우리는 어떻게 될까?

본 사람도 가본 사람도 없고 게다가 과학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하니, 이런 의문에 대해 누구나 상상이 가능하다. 어떤 이야기를 지어내도 반박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는 재미있게 듣고 나도 꾸며내면 될 일이다.

그 결과, 다양한 문화, 종교, 민속 등의 맥락에서 귀신, 사후 세계 따위에 대한 생각이 여러 갈래로 동아시아와 서양이 서로 다르다.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라는 비밀의 세계를 벽을 통과해 들어선다면 동아시아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문은 무덤이다. 죽은 자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무덤을 파헤친다.

세계 신화에서 죽은 자를 여신이 살려낸다면 동아시아에서는 대부분 남성들이 부활시키는 일을 담당한다. 변신을 주관하는 주체와 당하는 객체도 다르다. 서구에서는 신이 노여워하며 저주를 퍼부어 변한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저절로 그냥 변신한다. 마치 우주 만물이 때가 되면 계절이 변하듯이.

올림포스 산, 신들의 변하지 않는 젊음과 아름다움이 동경의 대상이라면, 신선은 나이 지긋한 노인으로 인간들은 유유자적하는 여유로운 신선의 삶을 동경한다.

죽음도 서양은 직선으로 흘러가 끝을 의미한다면, 동아시아의 죽음 개념은 순환이다. 겨울 다음 봄으로 연결되듯 죽음과 삶은 연결되어 흘러간다.


다시, 귀신이 있을까?
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귀신이 실재하든 그렇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사유의 확장에서 정신의 자유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그걸로 족하다.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으로 매혹적인 판타지가 탄생하고 일탈이 가능하다.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이유로 업신여길 이야기가 아니다. <수신기>에 숨어있는 은유, 경험, 지혜 등를 찾아보며 읽는다면 삶이 좀 더 풍부해질지도 모른다.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 필요한 이야기가 <수신기> 아닐까?

'익숙함은 이내 낯설게 되고, 낯선 느낌은 인간이 즐거운 상상을 하도록 만든다. 일상을 더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p.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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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해력 - 나도 쓱 읽고 싹 이해하면 바랄 게 없겠네
김선영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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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제품설명서 읽기에 애를 먹는다. 글씨가 작아 돋보기 찾는 일도 그렇고, 무엇보다 집중이 어렵다. 긴 텍스트에 지레 질려서인데, 문해력이 부족이 그 이유다. 책 표지 카피에도 있듯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고, 10분 이상 집중이 안 된다면?'의 케이스, 바로 나다.

다섯 줄만 넘어도 읽기 힘들 정도로 짧은 글에 익숙하고, 페이지를 넘기면 앞 장 내용이 가물가물하고, 인문학이나 철학의 두꺼운 책은 읽을 엄두가 나질 않고, 글을 쓸 때마다 적확한 단어를 생각해 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기에 여전히 역부족이다. 문해력이 부족한 까닭이다.

'문해력이 부족하면 당신이 읽을 수 있는 책이나 접하는 자료의 수준도 한계가 있어 정보력이 떨어집니다.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 새로운 프레임을 얻을 기회를 놓칩니다. (p. 37)'

문해력 부족은 '왜 나만 이렇게 운이 없지?', '왜 나에게만 이런 불편한 상황이 생기지?' 하는 의문을 품는 결과를 가져다준다.


13년 경력의 방송작가이자 글쓰기 코치인 글밥의 <어른의 문해력>은 PT 받듯 주 3회 8주 완성의 문해력을 익히는 트레이닝 코스다. 문해력 PT에 들어가기 전 테스트를 거친 후, 기초부터 탄탄하게 어휘 근육을 키우고, 효과적으로 책을 읽는 기술 독서 근육,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구성 근육을 차례로 트레이닝 한다.

'문해력 이란 글을 읽고 이해하는 힘, 더불어 이해한 내용을 내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활용하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 문해력을 키우는 과정을 세 단계로 요약하면, '들어오고, 숙성하고, 나가고'입니다. 독서를 포함한 다양한 경험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이 머릿속으로 들어옵니다. 나의 주관, 가치관에 따라 조물조물 버무린 후 숙성합니다. 그리고 출력, 글로 나오는 것이죠. (p. 30, 31)'

문해력 체급 테스트 결과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없지만 긴 글이나 두꺼운 책을 피하고 싶은' 2급 판정을 받고 당혹스러웠다. 각 회차마다 저자가 주는 연습문제인 문해력 PT 과제를 그럭저럭 잘 쫓아가다가 2장 독서 근육에 들어서면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아령 두 개 이상의 난이도에서 버거웠다. 내 문해력 실력은 거기까지였다.


김선영 작가는 실전에서 써먹기에 안성맞춤인 흥미로운 팁을 적절한 타이밍에 알려준다. 스무 고개로 어휘력을 키우는 방법, 문장 짓기로 유의어 늘리기, 소리 내어 읽기, 질문하기, 글 내용은 유지한 채 대화체, 편지 등 형식을 바꿔 써보기, 비슷한 단어에 선 긋기, 거꾸로 마인드맵 꾸리기...

책을 읽다가 딴생각이 들 때 (내가 이런 경우가 많은 편인데) 저자는 딴생각을 메모하기, 물 한잔 마시기, 마감 정하기, 장소 옮겨보기를 팁으로 권한다.

독전감讀前感 제안은 생소하면서도 해봄직하다고 여겼다. 책을 읽기 전에 내용을 예상하고 느낌을 써봄으로써 독서 과정에서 몰입과 필요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선별하는 효과를 주는 일종의 준비운동이라고 저자는 귀띔한다.


몇 해 전부터 문해력 신드롬이라 할만한 일이 벌어져 문해력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지 않을까? 모두의 관심은 '어떻게 문해력을 키울까'이다.

'쓰기와 읽기, 두 근육은 함께 자라야 합니다. 글쓰기 근육은 꾸준히 써야 생기고, 문해력 근육은 꾸준히 읽어야 생깁니다. 모두 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끈기를 가지고 해나가야 합니다. (p. 31)'

이 책의 트레이닝에 따라 8주 만에 완성되면 오죽 좋겠냐마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하니 틈나는 대로 이 책을 반복해서 연습해야겠다고 결심해 본다. 문해력 집을 완성하는 날까지...

'어휘력으로 토대를 다지고 독서력으로 튼튼한 기둥을 세웁니다. 폭우가 쏟아져도 끄떡없는 구성력 지붕을 얹으면 아늑한 문해력 집이 완성됩니다. (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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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
진아.정아.선량 지음 / 마음연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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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겁나 마려워지는', 진아, 정아, 선량 세 작가의 콜라보 책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다. 엊그제 밤 10시에 마침 세 분 작가의 라방이 있어 좀 늦게 잠시 참여했다. 세 작가의 얼굴을 보며 성장 이야기를 들으니 책 속의 글이 더 성큼 다가섰다.


왜 글을 쓰기 시작할까?

진아 작가는 '시인의 문장처럼 잃은 '나'를 찾기 위해서 (p. 18)', 정아 작가는 '그렇게 종이 위에 얌전히 누워있을 것만 같았던 글이 자꾸 종이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p. 96)'해서, 선량 작가는 '제 이름을 다시 찾고 싶었어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한 이름으로요. (p. 174)'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 우선 독후감을 써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한편으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글을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시간이 생기니 드러났다. 그런 이유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무엇이 보였을까?

진아 작가의 글쓰기는 '나'의 욕구, 생각, 감정, 가치관... '나'를 쓰는 일이었고 결국 작가 자신이 보였다. 심지어 '나'가 흐려질 때조차 글쓰기를 통해 또렷한 모습의 자신을 만났다.

늘 쓰는 사람으로 살다 보니 위로를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아 작가의 곁에 모여있음을 보았다. 그들을 보았기에 정아 작가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집 한 채를 짓는 진짜 작가(家)가 되는 꿈이 생겼다.
'언젠가 나의 어휘와 문장으로 개념과 사고의 집 한 채 지어낼 수 있는 진짜 작가(家)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 168)'

선량 작가의 글쓰기는 작가로서 살아갈 길을 보여줬다. 글을 쓰면 쓸수록 부담감을 떨쳐 버리게 됐고, 힘든 시간조차 글감으로 변했다.

'글의 귀천을 따지지 맙시다. 댓글도 글이고, 카톡 메시지도 글입니다. 그거 하나 생각하느라 얼마나 품이 많이 갔나요? '점만 찍어도 글이고 숨만 쉬어도 말이다.' 후하게 쳐줍시다. (p. 104)'

글로 치기엔 부족하지만 (글에 귀천이 없다고 하니) 책에 대한 감상을 쓰고, 밑줄 친 글에 내 생각을 이으니, 많은 생각들을 분류하고 차곡차곡 정리하여 넣어두는 여러 개의 서랍들이 보인다. 무장적 달려오며 흐트러 놓은 나 자신을 하나하나 보는 느낌이랄까?


세 명의 작가 모두 서로 다른 이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쓰다 보니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소중한 가치를 발견했다는 고백의 글, 그 글을 나는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글로 읽는다. 세분의 작가들이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처럼, 몇 줄 안되는 지금 내 글이 부족해 보이고, 드러내기 창피하고, 누군가를 의식하며, 위선 같기도 하고... 완벽한 문장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은 '글쓰기 마렵도록' 하는 묘한 마법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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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만 쉬겠습니다 - 격무에 시달린 저승사자의 안식년 일기
브라이언 리아 지음, 전지운 옮김 / 책밥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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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날 병가나 휴가 한 번 쓰지 않고 일한 저승사자 '죽음'에게 인사부에서 1년의 휴가를 명령한다.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는 '죽음'은 난감하다. 어디 가지? 뭘 하지?... 잠이 오질 않는다. 많은 시간이 생기자 감당이 되질 않아, 일기를 써 보기로 하고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본다.

<딱 1년만 쉬겠습니다>는 저승사자 '죽음'의 1년 동안의 안식년을 기록한 그림책이다. 쉼이 낯선 자의 쉼의 기록이다.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죽어가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죽음'의 삶에 관한 책이다.


저승사자 '죽음'이 앞으로 1년 동안 무얼 할까? 책 읽기를 잠시 멈추고 상상해 보았다. 많은 할 일이 떠올랐다. 퇴직 후 1년 동안 쉬어봤기 때문이다. 백수 생활 일주일이 지나면 스케줄이 꽉 차 과로사한다는 말이 있다. 지난 1년 동안 실감했던 말이다.

하지만 직장이 내 인생의 전부인 양 한창 일하던 삼사 십 대의 나에게 1년의 안식년이 주어졌다면? 저승사자 '죽음'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죽음'도 쉰 지 한 달 반 만에 습관적으로 사무실 일을 확인해 본다. '죽음' 없이도 회사는 잘 돌아갔다. '나' 없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그러지 않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요 쓸데없는 희망 사항이다. 실제로 퇴직한 후 내가 다니던 회사는 잘 돌아갔다. 그들은 나를 잊어도 벌써 잊었음이 분명하다. (이번에 부친상을 당하면서 확인했다.)


뭘 하며 휴가를 보낼지 난감해하던 저승사자 '죽음'은 1년 동안 과연 무얼 했을까?
우선 생각들을 모으기 위해 일기를 썼다. 사람들을 사귀어보고, 동물 다큐멘터리를 밤새워 보고, 놀이동산에 놀러 가 게임을 잘해 금붕어를 상으로 받았다. 네 컷 사진도 찍고, 데이트도 하고, 가만히 누워 나뭇잎이 바삭거리는 소리도 듣고, 스노볼을 모으기도 하고, 해변에서 시간도 보내고, 여행도 하고... 1년의 휴가를 마칠 때쯤에는 삶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한다.

부지런히 일하는 '근로勤勞'가 세상의 최고 선善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멀리하고 시간을 자신에게 써야 한다.

형제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정착해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자신 앞에 무릎 꿇은 형제들을 보고 하나님이 준비한 요셉 자신의 미션을 깨닫는다.

내 삶의 미션이 회사 일에 파묻혀 일하는 것은 분명 아닐 터이다. 퇴직 후에야 알았다.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나으니 다행이다. '지금 삶이 제대로 된 삶인가'하는 의심이 든다면 죽어가는 삶이다. 제대로 된 삶이 아니니 말이다. 삶의 의미, 내 삶의 미션을 일보다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당신의 (혹시 모를) 안식년 계획은?
생각나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과감히 탈출해, 저승사자 '죽음'처럼 적어보자.
그리고 잊지 말자. 지금 내가 겪는 나의 시간을 먼저 살아간 사람들이 하는 충고를...
"적게 일해라."

'"아버지, 만약 과거로 간다면 서른 살의 아 버지에게 어떤 충고를 하시겠어요?" 아버지는 주저 없이 단 두 마디를 하셨다. "적게 일해라." - 저자의 서문 '쉬는 걸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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