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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haeg 2022.12 - No.82
(주)책(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매거진 <Chaeg>12월 호를 읽기만 해도 기분 좋게 취하는 느낌이 든다.
이번 주제는 '술잔을 들고, 건배!'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술에는 많은 이야기와 과학, 철학, 그리고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마시는 술 한 잔이라면 수많은 감정과 풍부한 맛과 향, 그리고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여러분의 연말이 더욱 근사하게 빛날 수 있도록 다양한 술 이야기를 모아보았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순간, 어떤 이야기와 어떤 술을 함께 해보시겠습니까? (p. 22)'
배우 봉태규가 처음 술을 마신 건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백일을 앞두고 였다고 한다. 그 느낌은...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 입안에 들어온 소주는 약간의 단맛과 그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쓴맛을 발산하며 미각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목구멍에 침투하고 나서는 성대를 불태워버리는 듯한 강렬한 한방까지 선사해 주었다. (p. 34)'
크리스천인 나에게 술을 마시는 건 크나큰 죄악이었다. 해병대에 입대 후 많은 선임 해병들이 술을 권했지만 맞아가면서까지 크리스천의 본분을 지키느라 술을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5대 장성 준장, 소장, 중장, 대장 그리고 해병 병장, 그 높고 병장에 이르러 처음 술을 마셔봤다. 해병 병장 개꿀 생활은 그간 지켜온 크리스천의 금주 본분을 무너뜨릴 정도였다. 긴장이 풀렸다. 지나치게 ㅋㅋㅋ
처음 소주를 마신 느낌은 배우 봉태규와 비슷했던 것으로 어슴푸레 기억나고 (몰래 부대 밖으로 나가 마셨는데) 깜깜한 밤에 부대로 들어오다가 논바닥에 처박힌 기억은 확실하다. 첫 술부터 과음했다. 지은경 편집장의 '시작하는 글'에 의하면 적당한 알코올(혈중 알코올 농도 0.05%)은 즐겁고 평온한 느낌을 주고 스트레스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자괴감도 낮추어 준다는 데, 적당한 알코올 유지가 쉽지 않다는 걸 논바닥에 처박히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일 '술시'라고 정한 시간에 신주쿠의 야경을 보며 하이볼을 마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달리는데, 달린 후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헤밍웨이는 모히토가 세계적인 칵테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피츠제럴드는 43세 때, 주치의가 술을 끊지 않는다면 1년 안에 사망할 거라 경고해 금주를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루에 맥주 서른 캔만 마셨다. 왜? 그에게 맥주는 술이 아니라, 흐르는 빵이었으니까. (p. 54)'
역시 작가들에게 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걸까? '이달의 작가'로 소개한 화려한 재즈 시대의 길 잃은 문학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남긴 유명한 말 "처음에는 당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급기야 술이 당신을 마신다." 그는 자주 알코올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소설가 최민석은 작가들이 술잔을 옆에 두는 이유를 이렇게 역성든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맨정신이 붙잡고 있는 엄격한 예술적 기준이 느슨해지고, 스스로 정한 높은 문학적 기대치가 낮아진다. 비록 버릴 글일지라도, 쓰게 되는 것이다. (p. 56)'
'책과 술의 공통점은 혼자일 때에만 가닿을 수 있는 깊고 섬세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둘의 매력을 한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는 공간들을 소개한다. (p. 64)'
심야서점과 바를 결합한 '북바 book+bar' 컨셉의 연희동 골목 <책바>. '익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책 읽고, 술 익고, 사람 있는 아지트 마포의 <책, 익다>. 혼책, 혼술을 방해할 만한 것들을 최대한 줄인 분당의 <readrink>. 살롱 공간에 충실한 마포의 <문학살롱 초고>. 이색적인 크레프트 맥주를 만나 '책맥'이 가능한 부산 온천천 카페거리의 <스테레오북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곳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책과 하이볼, 위스키, 로컬 맥주로 채워진 강릉역 앞 <브로큰하트클럽>이다.
한남동 골목 푸시풋살룬이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섞고 흔들어 만들어내는 칵테일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문학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윌리엄 포크너 자신만의 제조법을 만들 정도로 사랑한 칵테일 '민트 줄렙'.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칵테일 '스모킹 비숍'. 이언 플레밍의 <카지노 로열>에서 본드가 주문한 '베스퍼'. 존 스타인벡의 <통조림공장 골목>의 주인공 닥이 맛이 궁금해 주문하는 '맥주 밀크세이크'.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에서 주인공 에스더의 성향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 '보드카' 그리고 에스더가 댄스 파티에서 마신 누구나 좋아할만큼 달콤한 칵테일 '다이키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화자인 제이크가 브렛을 기다리며 마시는 '잭 로즈' 그리고 투우 경기를 본 후 빌이 제이크에게 기분이 나아지기를 권하는 초록 요정 '압생트(반 고흐가 떠오른다)'. 그렉 클라크, 몬티 보챔프의 <알코올과 작가들>에서 헤밍웨이가 직접 만들었다는 소문을 일축하는 칵테일 '블러디 메리'. 많은 스토리를 간직한 칵테일이다.
즐거운 술 이야기에 초 치는 것 같아 걱정되지만 나라가 더 걱정돼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술이 그렇게 좋을까? 작작 좀 드시라. 혈중 알코올 농도 0.05%만 유지하시라. 제발~~~"
'키클롭스들의 입장에서는 음주야말로 막을 수 있었던 재난을 막지 못한 원인이었고, 사기꾼 인간에게 속아 넘어간 지름길이었다.
책임자들과 권력자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이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이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개 작가가 술을 좋아해서 벌어지는 재난이란 작게는 마감 실패나 간 수치 상승이요, 크게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한 작가로서의 생명 단축 내지는 간에 만성질환이 와서 정말로 수명이 단축되는 일이겠지만, 당신들이 술을 마시고 잠들어버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재난에 처했을 때 구할 수 없게 되니까. 그랬던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들을 손쉽게 비난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다. (p. 39, 술이 그렇게 좋을까, 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