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 셰익스피어 - 인간관계가 어려울 때 꺼내 읽는 삶의 지혜 한 학기 한 권 읽기 1
한기정 지음 / 그린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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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서른일곱 개 희곡에 1,222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제임스 조이스는 하느님 다음으로 많은 인물을 창조한 사람은 셰익스피어라는 말을 남겼다.

지성을 갖췄지만 우유부단의 대명사가 돼버린 햄릿, 불안과 공포에 스스로 무너져버린 맥베스,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맹목적이고 불꽃같은 사랑을 한 스윗 소로우의 상징 줄리엣,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라 하기엔 좀 억울한 샤일록과 천하에 불효 자식인 샤일록의 딸 제시카,

권위에 가려 단순한 진실조차 보지 못한 리어 왕 그리고 버림받았음에도 끝까지 아버지를 사랑한 리어 왕의 셋째 딸 코델리아, 젊은 왕자 핼의 허물없는 친구인 자유로움과 뻔뻔함을 갖춘 놈팡이 노인 폴스타프, 성공적인 리더의 자질을 발휘한 핼 왕자 헨리 5세, 의심 많고 마음이 약해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를 죽인 오셀로, 악의 화신 이아고...


또한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창조한 수많은 캐릭터에 인간의 모든 문제를 투영했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셰익스피어처럼 광범위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룬 작가는 많지 않습니다. 선과 악, 사랑, 복수, 야망, 질투, 우정, 명예, 권력, 위선, 배신, 기만, 양심, 고통, 정의, 성공 그리고 실패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인간의 문제를 다루며, 개성이 넘치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캐릭터를 통해 절묘한 언어의 배합으로 얘기합니다. (p. 6)'

이런 이유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기와 인간관계에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셰익스피어를 멘토로 삼아 문제 해결의 지혜를 구하는 일이 가능하다.


셰익스피어 경력의 시작은 배우였다는 설이 있다. 배우로써 평가는 좋지 않아 대사가 적은 역할을 했다는 증거도 있는 모양이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은 셰익스피어가 죽은 날에서 유래했다. 셰익스피어는 아내에게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물려주었고 대부분의 유산은 딸에게 주었다. 가장 좋은 침대도 아니고... 왜 그랬을까?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단어 중 1,700개 정도는 셰익스피어가 만들어 낸 단어라고 한다. 당시 지식인들이 20,000개 정도의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니 영어와 영문학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흥미로운 셰익스피어의 에피소드는 그이 작품이 영화에 사용된 외계어로도 번역된 사실이다. ㅎㅎㅎ
' BBC에 의하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800편 이상의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중에도 <햄릿>은 50편 이상의 영화로 발표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특이하게도 영화 <스타트렉>에서 사용되는 외계어 클링온으로도 <햄릿>과 <헛소동>이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p. 127)'


셰익스피어를 모조리 탐독한 한기정의 <멘토 셰익스피어>에 담긴 모든 흥미로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와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재미있게 여행하는데 안내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셰익스피어를 들어 알기만 할 뿐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의 작품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아 참, 책의 앞부분에 실제 셰익스피어의 모습과 가장 가깝다는 찬도스 공작이 소유했던 찬도스 초상화가 있다. 자세히 보면 한 쪽 귀에 귀걸이를 하고 있다. 그의 작품처럼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했던 것일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견디는 것이 고귀한 일인가..." (...)
"사느냐 죽느냐"의 원문은 "To be or not to be"인데 우리 말로 딱 들어맞게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을 얘기하고자 했다면 왜 "To live or to die"라고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햄릿은 개인의 차원에서 자살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지만, 작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를 철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p. 41,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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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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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이 멋진 취지로 기획한 근대와 현대 여성 작가를 잇는 '소설, 잇다' 시리즈 첫 번째 책은 백신애와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다. 1908년생 백신애 작가의 소설 세 편과 73년의 세월이 지난 1981년생 최진영 작가의 소설 한 편, 에세이 한 편 그리고 문학평론가 이지은의 해설을 이 책에 실었다. 이어질 이 시리즈에 등장하게 될 근대 여성 작가는 또 누구일지 무척 기대된다.


우선 백신애의 세 편의 소설부터...

<광인수기 狂人手記> - <조선일보>, 1938년 6월 25일~7월 7일

'아니다, 네 이놈 하느님아. 에이 빌어먹을 개새끼 같은 하느님아, 네가 분명 하느님이라면 왜 그 악하고 악한 도둑놈의 연놈을 그대로 둔단 말인고. 당장에 벼락 천둥을 내려 연놈을 한꺼번에 박살을 시킬 일이지... (...)
저 빌어먹을 낮잠 잘 하느님은 저를 위해주고 겁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건방이 늘고 심술이 늘어가더라.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 (p. 16, 17)'

비가 쏟아지는 다리 아래에서 하늘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주인공 '나'는 아내로써 남편을 보살폈고, 며느리로써 시부모의 모진 학대를 견뎌냈다. 하지만 주인공이 마주한 현실은 그렇게 자신을 아끼고 예뻐하던 남편의 외도와 배신이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주인공이 한이 서린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란 하늘밖에 없고, 돌아갈 곳은 자식들이 있는 집뿐이다. 미쳐가면서도 어머니로 돌아간다.

<혼명混冥에서> - <조광>, 1939년 5월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조용한 어머니의 눈물은 나에게서 모든 용기를 앗아가는 무기였습니다. 그 눈물은 오직 나에게 안일을 주려는 지극한 사랑이 근원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털끝만치도 나를 이해해 주려고는 생각지 않아요. 다만 끝없이 사랑할 줄만 압니다. 그 사랑을 감수하지 않을 듯한 불안에 항상 슬퍼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달래보며 온갖 정성을 다해줍니다. (p. 73)'

이혼한 주인공 '나'에 대한 가족과 어머니의 기대는 조용히 근신하는 여성의 삶이다. '나'는 이를 배반하려 한다. 내가 해야만 할 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다. 세상의 성미를 맞추기보다는 세상을 내 성미에 맞추려고 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어머니의 눈물은 쌓인다.

<아름다운 노을> - <여성>, 1939년 11월 ~ 1940년 2월

'인간에게 만일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많이 연소燃燒했던가 하는 것이다. 라고 앙드레 지드가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타려고 해도 탈 수도 없는 가장 애끓는 이야기였다. (p. 111)'

열 여섯 살 아들이 있는 젊은 미망인 순희는 친정의 대를 잇기 위해 재혼해 아들을 낳아야 할 처지다. 정규는 순희에게 구혼 중인 의사 성규가 아들처럼 보살펴온 열아홉 살의 동생이다. 순희는 처음 만난 정규의 모습에서 '그림을 시작한 후 그리고, 그리고 해오던 이상의 얼굴 (p. 123)'을 본다. 순희는 아들 또래인 정규와의 사랑을 애써 부정하며 예술적 욕망이라 우기며 몸부림친다.

<광인수기>에서는 여성단체 활동을 한 백신애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혼명>에서는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아름다운 노을>에서 작가 백신애는 순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캐릭터로 모습을 드러낸다.


<구의 증명>으로 이미 알고 있는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이십 대 여성 정규는 정규직을 꿈꾸는 취준생이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편의점에서 위협적인 남자 손님을 응대하던 중 딸의 가출한 친구를 찾기 위해 편의점을 들른 순희의 도움으로 정규는 그 위기에서 벗어난다. 순희는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했고 딸과 생활을 위해 공무원으로 일하는 삼십 대 여성이다. 우연히 정규가 주말 아르바이트하던 펍에서 순희를 만났고 그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둘은 서로 기다리는 사이가 되고 의자처럼 편히 쉴 수 있는 사랑을 한다.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건 바로 이런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 것. 비슷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나에게 기쁜 마음을, 심심한 마음을,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외롭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망하고 계속 망할 뿐이라는 평범한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p. 229)'


표제작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을 팔십 년을 이어받아 최진영이 변주한 소설이다. 정규와 순희를 그대로 가져와 정규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어, 성인 여성과 어린 남성의 사랑을 성인 여성과 젊은 여성의 사랑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예나 지금이나 파격적으로 여겨지는 두 스토리 모두 '세상이 아직도 '이상한 queer' 것이라고 구별 지으려 하는 사랑 (p. 258)'이다.

최진영은 <광인수기>를 이어 써보려 했으나 소설이 아니라 분노만을 쓸 것 같았고,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 정규를 남성 그대로 설정했다면 그 이야기는 범죄 스릴러가 될 것 같아 여성으로 바꾸었다고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에서 밝힌다. '나는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쓸 수 있는 글을 생각했다. (p. 234)'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문장인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에 밑줄을 여러 번 그으며 생각했다. 선생님, 저는 2022년의 사람입니다. 현재에도 어떤 자들에게 여성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
'성인 남성과 명예 남성'이 아닌 소수자들은 '성인 남성과 명예 남성'의 안락한 삶을 위해 희생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여전히, 이곳에 있습니다. 선생님. (p. 231, 232)'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것이 없기에 작가 최진영은 가부장제의 사회와 직장에서 여성이 느끼는 피로감을 더 이상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성이 지닌 사랑의 가치를 지켜주고, 그 사랑이 주는 다정함과 위안, 설렘과 따뜻함을 쓰고자 한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 주인공은 남성이 아니다. 남성이 설자리조차 없다. 여성이 주인공이고, 고단하고 차별받은 삶이 아닌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여성들의 삶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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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haeg 2022.12 - No.82
(주)책(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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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haeg>12월 호를 읽기만 해도 기분 좋게 취하는 느낌이 든다.
이번 주제는 '술잔을 들고, 건배!'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술에는 많은 이야기와 과학, 철학, 그리고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마시는 술 한 잔이라면 수많은 감정과 풍부한 맛과 향, 그리고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여러분의 연말이 더욱 근사하게 빛날 수 있도록 다양한 술 이야기를 모아보았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순간, 어떤 이야기와 어떤 술을 함께 해보시겠습니까? (p. 22)'


배우 봉태규가 처음 술을 마신 건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백일을 앞두고 였다고 한다. 그 느낌은...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 입안에 들어온 소주는 약간의 단맛과 그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쓴맛을 발산하며 미각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목구멍에 침투하고 나서는 성대를 불태워버리는 듯한 강렬한 한방까지 선사해 주었다. (p. 34)'

크리스천인 나에게 술을 마시는 건 크나큰 죄악이었다. 해병대에 입대 후 많은 선임 해병들이 술을 권했지만 맞아가면서까지 크리스천의 본분을 지키느라 술을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5대 장성 준장, 소장, 중장, 대장 그리고 해병 병장, 그 높고 병장에 이르러 처음 술을 마셔봤다. 해병 병장 개꿀 생활은 그간 지켜온 크리스천의 금주 본분을 무너뜨릴 정도였다. 긴장이 풀렸다. 지나치게 ㅋㅋㅋ

처음 소주를 마신 느낌은 배우 봉태규와 비슷했던 것으로 어슴푸레 기억나고 (몰래 부대 밖으로 나가 마셨는데) 깜깜한 밤에 부대로 들어오다가 논바닥에 처박힌 기억은 확실하다. 첫 술부터 과음했다. 지은경 편집장의 '시작하는 글'에 의하면 적당한 알코올(혈중 알코올 농도 0.05%)은 즐겁고 평온한 느낌을 주고 스트레스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자괴감도 낮추어 준다는 데, 적당한 알코올 유지가 쉽지 않다는 걸 논바닥에 처박히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일 '술시'라고 정한 시간에 신주쿠의 야경을 보며 하이볼을 마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달리는데, 달린 후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헤밍웨이는 모히토가 세계적인 칵테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피츠제럴드는 43세 때, 주치의가 술을 끊지 않는다면 1년 안에 사망할 거라 경고해 금주를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루에 맥주 서른 캔만 마셨다. 왜? 그에게 맥주는 술이 아니라, 흐르는 빵이었으니까. (p. 54)'

역시 작가들에게 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걸까? '이달의 작가'로 소개한 화려한 재즈 시대의 길 잃은 문학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남긴 유명한 말 "처음에는 당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급기야 술이 당신을 마신다." 그는 자주 알코올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소설가 최민석은 작가들이 술잔을 옆에 두는 이유를 이렇게 역성든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맨정신이 붙잡고 있는 엄격한 예술적 기준이 느슨해지고, 스스로 정한 높은 문학적 기대치가 낮아진다. 비록 버릴 글일지라도, 쓰게 되는 것이다. (p. 56)'


'책과 술의 공통점은 혼자일 때에만 가닿을 수 있는 깊고 섬세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둘의 매력을 한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는 공간들을 소개한다. (p. 64)'

심야서점과 바를 결합한 '북바 book+bar' 컨셉의 연희동 골목 <책바>. '익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책 읽고, 술 익고, 사람 있는 아지트 마포의 <책, 익다>. 혼책, 혼술을 방해할 만한 것들을 최대한 줄인 분당의 <readrink>. 살롱 공간에 충실한 마포의 <문학살롱 초고>. 이색적인 크레프트 맥주를 만나 '책맥'이 가능한 부산 온천천 카페거리의 <스테레오북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곳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책과 하이볼, 위스키, 로컬 맥주로 채워진 강릉역 앞 <브로큰하트클럽>이다.


한남동 골목 푸시풋살룬이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섞고 흔들어 만들어내는 칵테일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문학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윌리엄 포크너 자신만의 제조법을 만들 정도로 사랑한 칵테일 '민트 줄렙'.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칵테일 '스모킹 비숍'. 이언 플레밍의 <카지노 로열>에서 본드가 주문한 '베스퍼'. 존 스타인벡의 <통조림공장 골목>의 주인공 닥이 맛이 궁금해 주문하는 '맥주 밀크세이크'.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에서 주인공 에스더의 성향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인 '보드카' 그리고 에스더가 댄스 파티에서 마신 누구나 좋아할만큼 달콤한 칵테일 '다이키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화자인 제이크가 브렛을 기다리며 마시는 '잭 로즈' 그리고 투우 경기를 본 후 빌이 제이크에게 기분이 나아지기를 권하는 초록 요정 '압생트(반 고흐가 떠오른다)'. 그렉 클라크, 몬티 보챔프의 <알코올과 작가들>에서 헤밍웨이가 직접 만들었다는 소문을 일축하는 칵테일 '블러디 메리'. 많은 스토리를 간직한 칵테일이다.


즐거운 술 이야기에 초 치는 것 같아 걱정되지만 나라가 더 걱정돼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술이 그렇게 좋을까? 작작 좀 드시라. 혈중 알코올 농도 0.05%만 유지하시라. 제발~~~"

'키클롭스들의 입장에서는 음주야말로 막을 수 있었던 재난을 막지 못한 원인이었고, 사기꾼 인간에게 속아 넘어간 지름길이었다.
책임자들과 권력자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이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이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개 작가가 술을 좋아해서 벌어지는 재난이란 작게는 마감 실패나 간 수치 상승이요, 크게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한 작가로서의 생명 단축 내지는 간에 만성질환이 와서 정말로 수명이 단축되는 일이겠지만, 당신들이 술을 마시고 잠들어버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재난에 처했을 때 구할 수 없게 되니까. 그랬던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들을 손쉽게 비난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다. (p. 39, 술이 그렇게 좋을까, 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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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문해력을 키워드립니다 - 하이브리드 워크 시대, 당신에게 꼭 필요한 글쓰기 비법
장재웅.장효상 지음 / 미래의창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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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사무실을 일터로 삼는 하이브리드 오피스, 이 공간을 오가며 일하는 하이브리드 워크에 익숙한 현실이 다가온다. 팬데믹을 겪으며 재택근무의 맛을 알았다. "꼭 사무실에서 일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직장인들은 품게 됐다. 장소의 제약 없이 어디에서나 일할 자유를 원한다.

일 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기업은 하이브리드 워크를 실험하며 곧 들이닥칠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하이브리드 워크 시대는 비대면 즉, 말로 일하는 시대는 가고 글로 일하는 시대임을 의미한다. 메신저, 이메일, 협업툴, 보고서 따위들이 일하는 툴로 작동한다. 글로 일해야 하니 문해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 '잘 쓰고 잘 읽어야' 한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개인과 기업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비즈니스 문해력을 키워드립니다>는 조금 더 실용적이고 개인 차원에서 일하는 방식과 업무 스킬을 고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필자들은 하이브리드 워크 시대에 더 중요해진 문해력과 그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전달하고자 한다. 화상회의를 위해서 무엇을 준비할지, 메신저와 이메일은 어떻게 써야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없을지, 보고서는 어떤 형식으로 작성해야 할지 실제 업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내용도 실었다. 거기에 최근 관리직들의 고민으로 떠오르는 피드백 커뮤니케이션 방법론도 덧붙였다. (p. 9)'

협업용 메신저, 이메일, 보고서 등을 쓰는 법과 세계적 기업들의 변화하는 업무 방식을 이해하기 쉽게 사례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한다.


직장을 다닐 때 신입사원들의 PPT 보고서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있다. PPT에 동영상을 곁들여 자기소개를 하는 것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세대들이었다. 워드, 엑셀과 세로 문서 작성에 익숙한 나로서는 부럽기까지 했었다.

이제 또 시대가 바뀌었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도 달라졌다. 아마존은 2004년에 벌써 'NO PPT'를 선언했다. 열심히 익혔던 것을 옆으로 제쳐놓고 낯선 툴을 익혀야 한다. 어쩌면 말 줄임에 익숙한 세대들, 특히 책 읽기와 글쓰기를 등한시했다면 다소 긴 글에서 주제와 맥락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러티브를 입힌 글을 쓰는 일도 그렇고...

'글을 마치며'에서는 PPT에 익숙한 세대들뿐 아니라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도 새로운 업무 '하이브리드 워크'에 맞는 역량을 갖출 것과 고민할 거리들을 제시한다. 팬데믹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모두에게 새로운 환경을 내놓았고 달라질 것을 요청한다. 아이들의 문해력 걱정에 이어 어른 자신들의 문해력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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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회 - 나우주 소설집
나우주 지음 / 북티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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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본인도 책으로 엮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하는 나우주의 단편소설 여덟 편이 실린 첫 소설집 <안락사회>다. 찾아보니 7년 동안 절필했던 모양이다. 하마터면 대단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구경도 못할 뻔했다. 이런 작품을 읽는다는 건 몹시 즐거운 일이다.

여덟 편을 공들여 읽었다. 뭔가 묵직한 것이 전달되는 데 희미하다.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 끝에 조동선 작가의 해설이 눈에 들어와 다행이었다. 아직은 내 능력으로 또렷이 읽어내기엔 모자랐다. 해설과 여덟 편의 작품을 다시 번갈아 보며 읽으니 여러 가지가 보였다.


표제작 <안락사회>

'다섯 마리의 개가 곧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력 장애로 버려진 197번. 나이가 많아 오줌을 지린다고 버려진 254번. 성대가 잘려 짖지 못하는 236번 새 아파트에서 키우기엔 덩치가 크다고 버려진 178번. 그리고 156번, 나였다. 우리는 언덕 위에 있는 간이 수술실 밖에서 목에 번호표를 단 채 각각의 철망에 담겨 줄지어 있었다. (p. 245, 첫 문장)'
유기견 보호소의 개들이다. 기한은 10일, 주인이 찾아오거나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맞게 되는 개들이다.

책 표지에 개와 인간의 모습이 반반인 얼굴이 암시하듯, 다섯 마리의 개와 같은 이유로 안락사를 맞게 될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 내가 사는 사회다. 태생이 열등이거나 후천적으로 열등의 부류로 분류된 사람들은 안락한 사회를 위해 조용히 제거돼야 한다. 나치가 그랬고,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미국에 최근까지 그랬다. 역사도 그렇게 했다.

열등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려, 우등인 부류에 들어가려 나보다 열등해 보이는 자들을 비하하며 발버둥 쳐 보지만 역부족인 사회다. 우등인이 보기엔 시력 장애, 똥오줌도 못 가리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등등의 이유로 열등인 자들일 뿐이다. 그래서 안락사 대상이다. <안락사회>를 위해서...


'집이 사람을 인식합니다. (p. 9)'. 17평 풀옵션 <코쿤룸>에서 재택근무하는 주인공의 삶은 코쿤 공간과 재택근무를 가능케하는 디지털 환경에 갇혀있다. 주인공은 디지털 환경의 껍질을 벗기고 경험의 세계로 나오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코쿤룸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다. 현실이 아닌 디지털 환경의 좁은 공간에 살다간 삶이다.

<집구석 환경 조사서> 장래희망 란에 정규직이라 적고 정규직을 꿈꾸는 가족들, 집구석에 산다. 정규직 취직 그 이상을 꿈꾸는 건 욕심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 남편의 부재 속에서 딸을 키우는 어머니는 모성과 여성성 모두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의 욕구도 지키기엔 처한 환경이 녹록지 않다.

<기억의 제단>에 올려진 기억 속에서 두 가지 자아가 갈등한다. 하나는 행동하는 자아이고 그 행동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정당화하려 애쓰는 자아가 또 하나다.

상위 1퍼센트의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며 빚으로 욕망에 채우지만, 흉내를 내는 것일 뿐 한계가 있다. 돈이 없어 누릴 수 없는 인생일 뿐이다. 허물어져 가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허황되기만 한 <아름다운 나의 도시>.

자본주의 시장은 백수인 아버지와 아들에게 조용히 숨죽이고 집 안에 처박혀 있기를 권한다. 아버지는 TV로 아들은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속해 있으면 된다. 교회 신도들이 집으로 심방을 오면 한 쪽 구석 방 안에 머물기를 자본주의 시장은 권한다. <조용한 시장>에 조용히 있기를 권한다.

여성들이 볼 때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 사회는 아름답고 일도 잘하는 여성을 원하고 요구한다. 게다가 그게 평균의 삶이라며. 궁지에 몰린 여성은 번아웃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모여든다. 번아웃을 벗어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 사회가 망쳐놓은 자연에 기대는 것뿐이다.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 사회에 공통으로 시달리는 여성과 자연의 연대만이 해결책이라면 너무 편협한 시각일까?


무시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무시된 그룹에 젊은 청춘들이 포함된 것이 가슴 아프다. 이들은 어떤 기회도 누리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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