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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평점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우리 시대 소설가 23인에게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소설에 대해 작가정신이 물었고, 이들은 진솔하게 글로 대답했다. 왜 글을 쓰는지, 왜 자신이 작가여야만 하는지를. 인간적이고, 진심과 고민이 다가왔고, 글을 쓰는 작업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23인 작가의 소설 색깔만큼이나 다채로운 소설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
한 권의 책을 쓰다는 건 규칙적인 생활을 요구하는 지루한 일상이다. 매일 꼬박꼬박 반복해야 하는 일, 매일 쓰기를 멈추지 못한다. 작가에게 소설은 우리가 하는 일과 매한가지로 노동이기도 하다. 고용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노동력 저하도 실감하니 말이다.
나에게 찾아오는 것들을 생각하며 읽고 쓰고 쓰고 읽고 쓰고 하는 것을 계속 반복하는 일. 자신이 늙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형식의 창작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글 쓰는 작가의 일이다. 어쨌든 글을 완성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음을 감사해 하는 것도 작가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다.
작가 오한기는 3억짜리 사업 대신 소설가라는 직업을 택했으니 소설의 마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조차 뭘 써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작가다. 그 공백의 시간도 소설 쓰기의 일부이기에. 글 쓰는 일이 너무 괴로워 못 견딜 때, 자신에게 이게 내 운명이라며 토닥이는 이들이 작가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삶으로 채워 넣는 일이고, 삶을 감각하는 일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풍경과 느낌을 아는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라고, 나도 알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독자를 안아주는 일이다. (p. 122)'
문장이 소리가 있는 음악이었으면 상상한다. 단어 하나만 집어넣으면 저절로 음악이 되는 상상. 이런 상상을 머릿속에 낙서하는 것도 소설을 위한 일이다. 소설을 쓴다는 건 메뉴를 고를 틈도 없이 음식을 처넣는 발버둥이다. 스스로 선택한 소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려운 이, 소설이 머무는 방문을 겸손하게 두드리는 일.
전통적인 서사를 깨뜨리는 것, 내가 완성한 작품마저 일그러뜨리는 것이 작가다. 작가는 마땅히 쓸 거리가 없어도 끊임없이 꿈을 기억해 내며 이미지를 찾아낸다. 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들어서야 시작되는 것이 소설이다. 입구도 문도 자물쇠도 비밀번호도 없는 엉망진창인 상태에서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이 소설 쓰는 일이다.
공포 가운데 놓여 소설을 쓰기도 하고, 아무 데로나 걸으며 쓰기도 하고, 소설이 잘 써지는 자리를 찾아가 쓰기도 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곳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소설은 작가들에게 끝나지 않는 사랑이 된다. 하지만 슬프게도 짝사랑이다. 소설을 향한 작가의 짝사랑.
'사랑으로 치자면 소설은 내게 첫사랑이 아니다. 어느 순간 자각한 은밀한 가슴 뜀, 열병, 헛것에 대한 짝사랑이다. 이십 대 중반부터 삼십 년 넘게 소설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여전히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이고,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p. 259)'
여전히 이들은 소설을 필요로 하고, 그 짝사랑의 소매를 붙잡고 놓지 못한다.
작가들의 소설을 향한 짝사랑, 그들의 노동, 치열함, 깊은 고민, 갈등, 운명, 허망함, 극복하는 슬기로움...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아 위로를 받는다. 이들 23인 작가의 글이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읽고 또 위로를 받게 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