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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과 생각
정용준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2월
평점 :
밑줄을 긋는다. 책을 다 읽은 다음, 밑줄 친 글만 다시 읽으려는 까닭이다. 밑줄 친 글 옆에 생각을 적어 넣지는 않는다. 밑줄까지만... 내가 책에 허용하는 범위다. 그렇지만 생각을 적어가며 책 읽는 사람과 그 책은 부러워한다.
'한 줄의 문장. 그 밑에 그은 한 줄의 밑줄. 그 곁으로 여러 생각들이 만들어지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p. 6)'
정용준 작가도 밑줄을 긋는다. 좋아서. 그런 다음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 밑줄은 문신처럼 흉터로 남아 삶에 일부가 된다고 고백한다. 밑줄은 '저자와 악수하고 인물과 포옹하고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 (p. 6)'을 작가에게 준다.
정용준 작가 글이 좋았던 건, 내가 가진 하지만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의 생각에 내 생각을 더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지금 느끼고 있는 경험과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것에는 아직 이름이 없다. (p. 83)'
사랑이 그렇다고 밑줄 그으며 생각했다. 정용준도 이를 가장 실감하는 건 사랑이라는 경험이라고 바로 아랫줄에 써 놓았다. 사랑하는 동안엔 그게 사랑이라는 걸 모른다는 것 때문에 사랑이 아프고 잔인하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은 또 어떤가.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별은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며, 감정이 소진되지 않은 상태로 끝을 내야 한다. 한쪽이 원해도 다른 한쪽이 원하지 않을 수 있고, 한쪽은 다시 만나고 싶어도 한쪽은 만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둘 다 원치 않아도 이별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p. 86)'
그래서 얻은 깊은 상실감, 이것 때문에 몇 년 동안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난 후에는 이별이 없어서, 감정이 종료되지 않아 이름을 따로 붙이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사랑인가? 싶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불편한 이유도 알게 됐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 것. 자신의 행동을 납득되게 설명 못하는 것. 살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게 나쁜가? 분명 유죄인데 죄가 아닌 것 같은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이지? (p. 277)'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싶다. 그것이 나다운 실존인 걸 알지만, 내 삶을 누리는 자유라는 걸 알지만, 소외될까 두려운 마음에 다시 위선과 허위라는 옷을 입고 뫼르소를 꺼림직한 눈으로 바라본다.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주장하는 뫼르소가 불편한 이유다.
여러 색깔의 사랑을 알고 있는 이승우 작가가 좋다. 정용준 작가에게 이승우는 이렇다. (같은 작가를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만나 너무 좋다.)
'작가에게 소설을 배웠다. 만약 소설이 배워서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소설 쓰기의 거의 모든 것을 그에게 배운 셈이다. 지금은 선배 작가의 모습을 통해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런데 그 배움이 크기가 너무 커서 담아지지 않는다. (p. 335)'
이승우의 <사랑이 한 일>을 읽고 생각했다. 뭐지? 달싹달싹 입끝에 맴도는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생각. 찾았다. 축복을 뺏긴 에서를, 사라에게 쫓겨난 하갈을 그리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맞닥뜨린 사람들, 이들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건 이 모든 게 '사랑이 한 일'이라고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사랑은 아픔을 줘 상처를 낼 수도 있다. 이해해 달라. 그래도 '사랑이 한 일'임을.
작가의 일이다. 소설을 써 사랑이 한 일을 알려주는 것. 신과 인간 사이에 서 있는 사제와 같은 사람이 작가다. 신도 사랑하고 인간도 사랑하고, 신의 뜻도 인간의 기도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작가는 안다.
'때로는 변호하는 것이, 우기고 또 우기는 것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아이처럼 떼쓰는 것이, 태양을 멈추고, 운명을 바꾸고, 신의 마음을 돌이키기도 한다는 것을. (p. 331)'
정용준 작가가 이승우 작가에게 한 말을 나도 정용준 작가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소설을 써줘서 고맙다.'
계속 소설을 읽고 소설을 써 내가 생각해 내지 못한 표현을 만나게 해주길, 내가 소설을 읽고 불편해할 때 그 이유를 설명해 주기를 그리고 사랑이 한 일을 내가 오해하지 않도록 나를 가로막고 서서 알려주기를. 그리고... 언어의 집에서 계속 눌러 앉아 살기를...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고 언어로 존재를 만드는 신의 방법. 창조를 모방한 창작. 그는 촛불을 켜고 노트를 펼친다. 한 문장, 한 문장, 벽돌을 쌓아 올린 언어의 집. 그는 거기에 살기로 결심했다. (p. 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