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가 만든 숲 - 소설 내러티브온 3
나인경 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해 가장 기대되는 여덟 명의 신예 작가와 여덟 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엔솔러지 시리즈 내러티브온의 세 번째 책, <구도가 만든 숲>이다. SF, 판타지, 팬데믹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이야기가 담았다.


함윤이 작가의 판타지 소설, <자개장의 용도>

증조할머니로부터 어머니까지 전해 내려온 자개장은 신비한 능력이 있다. 자개장 안으로 들어가면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나'는 자개장을 이용해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을 다닌다. 욕망을 해결해 주는 장치가 있다면... 인간은 그 장치를 잘 사용할까? 절제가 가능할까? 아님 욕망의 끝까지 가게 될까? 얻는 욕망이 있다면 뭔가를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그 순간 나는 내가 아주 먼 곳으로 가게 되리란 사실을 알았다. 가장 먼 길로 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자개장 앞에 설 것이란 사실도. (p. 76)'


전하영 작가의 <시차와 시대착오>

아버지와 딸, 두 세대 간의 이야기. 명식은 딸 미루가 남자아이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인생 후반기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결정은 미루가 아들이 아니라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미루가 남자아이였다면 그는 인생에서 좀 더 모험적인 루트를 선택했을 것이다. 기회는 많았다. 그는 더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었다. 딸과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원했던 것보다 소박한 삶을 살았다. 야망의 크기를 조절했다. (p. 132)'

딸 미루는 남자아이만큼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내기 위해 수많은 시도로 자신을 인생을 채웠다. 명식은 딸이 항상 걱정스럽다. 딸 미루는 나이 든 아빠가 미덥지 못하다. 세대 간에 시차와 시대착오가 있다.


임현석 작가의 <백허그 공모전>

정아와 영호는 백허그 공모전에 가서야 다른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백허그를 지켜보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백허그와는 달리 상당 부분 기술의 영역임을 알게 된다.

'그때 정아는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커플의 마음을 상상해 보려 했다. 세상엔 백허그를 할 때 잠시나마 위안을 느끼는 커플, 백허그의 온기로 세상을 돌파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정아는 그 순간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마음에 공명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는 백허그였다. (p. 238)'

그렇더라도 완벽한 백허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오직 정아 자신뿐이라고 확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용맹한 함성이 나니와 연안을 가로지른다. 싸우자, 싸우자, 그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함성이 사람들을 고무한다. (p. 13, 첫 문장)'

일본 전국시대, 계속되는 전쟁, 전쟁이 없는 곳은 없다. 전쟁으로 기아와 질병이 생겨나고 온 땅은 고통으로 가득하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에 이른다. 전진하면 극락이요, 후퇴하면 지옥이다. 이 함성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시대 패권을 눈앞에 둔 1578년 겨울, 공을 세우며 오다 가문으로부터 셋쓰 지방 일대의 지배를 일임 받은 아리오카성의 성주 아라키 셋쓰노카미 무라시게가 반역을 일으킨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위해 구로다 간베에를 사자로 보내지만, 무라시게는 오다의 뜻을 거부하고 간베에를 성의 지하 감옥인 '흑뢰성'에 가둔다.

그날 이후 아리오카성에는 기이한 일이 계속 일어난다. 가뒀던 인질 지넨이 화살에 맞아 죽고, 승리한 전투에서 베어 온 적장의 머리 중 하나가 흉측한 얼굴로 변했으며, 밀사인 승려 무헨을 살해한 범인이 번개를 맞아 죽는다. 미스터리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무라시게는 감옥에 갇힌 지략가 간베에를 찾아가 벌어진 일을 자세하게 알려준 후 지혜를 구한다. 간베에는 무라시게가 찾아올 때마다 그를 조롱하면서도 사건을 해결할 단초를 알려준다.

무라시게는 왜 오다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사자 간베에를 죽이지 않고 가뒀을까? 간베에는 왜 아리오카성에서 일어난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무라시게에게 알려주었을까?

'노부나가는 죽이고, 무라시게는 죽이지 않는다... 그 평판은 천하에 퍼졌으리라. 소문을 퍼뜨리고 평판을 높여 이름을 알리고 아군을 늘린다. 모든 것이 전략이었다. (p. 443)'
'"간베에, 자네... 감옥 안에서, 나를 죽이려 했나." (p. 489)'

아리오카성에서 오다에게 반기를 들고 농성 중인 아라키 무라시게와 성 아래 감옥에 갇힌 구로다 간베에, 두 사람 각자가 도모하는 것이 서로 달랐다.


무라시게는 결국 세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누가 벌인 짓인지도 알아낸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기이한 일을 꾸몄을까?

'그것을 본 백성들은 명벌이 내린 거라고 믿겠지요.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부처님이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죽어가는 백성을 안심시켜 주려 했던 것입니다. (p. 477)'


일본 전국시대나 지금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서 근심하고 저항할 수 없는 약자는 백성들이요 국민들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 모두 그들만의 명분을 가지고 싸우지만, 백성들에게는 굶주림이란 고통만 있을 뿐이다. 전진해서 극락에 가고 싶어도 전진할 수 없다. 헛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사가 품은 뜻일뿐, 백성들과는 상관없다.

백성들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할까. 죽음? 아니다. 죽음으로도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렵다. 백성들은 전진할 수 없어서 극락에 갈 수 없고 후퇴할 수밖에 없어 가는 곳은 지옥뿐이기 때문이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함성은 명분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자신들의 전쟁에 백성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구호일 뿐이다. 백성 앞에 놓인 건, 앞으로도 고통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며 맞이하는 잔혹한 죽음뿐이다.


갖은 명분을 끌어다 대며 전쟁을 일으키고, 헛된 구호를 앞세워 전쟁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자들이여... 명심하기를... 전쟁은 국민들에게 잔혹한 고통만 안겨줄 뿐이라는 것을...

'훗날의 구로다 간베에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이렇게 남겼다.
'신벌보다 주군의 벌을 두려워하라.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백성의 벌을 두려워하라.'
'신하와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반드시 나라를 잃는 법, 기도하고 사죄해도 그 벌은 피할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신벌,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만민의 벌이 가장 두려우니라.' (p. 523)'

국민들이 당신들에게 등을 돌리고, 마음을 돌려 내리는 벌이 가장 두려운 것임을... 그 벌을 두려워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트렌드 코리아 2023 -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23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TIGER OR CAT', 검은 호랑이처럼 힘차게 포효하기를 기대했던 2022년도 두 달여 남았다. 2022년을 시작하면서 관심을 두었던 건 팬데믹 위기를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 빠른 속도로 변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어떻게 맞출까?였다.

2022년 트렌드를 아우르는 첫 키워드는 나노사회였다. 2022년을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나노사회로 전환됐다. 세계화는 끝났다.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던 세계는 분열됐다. 우리나라 국민들로 서로의 생각에 동조하지 못하고 곳곳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특히 20대 남녀 간의 대립이 심했다. 소비자의 선호가 잘게 쪼개짐에 따라 시장도 나노타겟으로 나노시장 현상이 나타났다. 가치관도 가족보다는 개인주의가 강화됐다. 타인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고 싶은 가치관이 우선했다.


'토끼의 지혜를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 '교토삼굴狡兔三窟'이라는 말인데, "교활한 토끼는 3개의 숨을 굴을 파 놓는다"라는 뜻이다. 재난이 닥쳤을 때 피할 수 있는 플랜 B, 플랜 C를 함께 마련해둔다는 의미로, (p. 15)'

웅크렸던 토끼가 더 높이 뛴다. 도약하라! RABBIT JUMP.

2023년 전체를 묶는 첫 키워드는 'Redistribution of the Average 평균 실종'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전형성이 사라지리라 예상한다. 평균이 실종되면 '양극화', 개별값이 산재하는 'N극화', 한쪽으로 쏠리는 '단극화'가 된다. 이제 평범하면 죽는다.

Arrival of a New Office Culture: 'Office Big Bang' 오피스 빅뱅
퇴직 열풍, 탈 제도권 노동 등 노동 시장 시스템이 변해 우리의 일터가 송두리째 달라지고 있다. 기업은 어떻게 좋은 인재를 잡아둘 것인가가 숙제가 됐다.

Born Picky, Cherry-sumers 체리슈머
소비자들끼리 합쳐, 나누고, 쪼개는 극한의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체리슈머가 등장한다. 똑똑하고 창의적이며, 비용 대비 효용이 뛰어난 것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다.

Buddies with a Purpose: 'Index Relationships' 인덱스 관계
더 이상 '친하다', '친하지 않다'로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인친, 덕질하는 트친, 폐친, 동네 친구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친구들을 만들고, 인덱스를 붙이듯 분류하며, 친구를 관리한다. 인덱스 관계가 행복한 인간관계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Irresistible! The 'New Demand Strategy' 뉴디맨드 전략
생필품은 극도로 가성비를 따지지만, 사고 싶은 상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개발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Thorough Enjoyment: 'Digging Momentum' 디깅모멘텀
요즘 세대들의 과도한 몰입은 자기를 찾고, 발견하고, 표현하고, 과시하는 과정이다. 몰입이 성장과 어우러질 때 디깅은 모멘텀으로 이어진다.

Jumbly Alpha Generation 알파세대가 온다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디지털 원주민, Z세대의 다음, 알파벳 처음으로 돌아가 A세대? 아니 알파세대다. 이유는 신인류라 부를 만하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했고, 198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 부모에게서 태어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란 새로운 인종의 사회생활은 어떻게 펼쳐질까?

Unveiling Proactive Technology 선제적 대응기술
지극히 개인화된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하여, 우리 요구를 미리 파악해서 필요를 채워주는 기술의 시대로 진화한다.

Magic of Real Spaces 공간력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공간의 시대라 하더라도 실제공간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실제공간이 경험공간으로 전환될 때 새로운 기회, 공간력을 가질 수 있다.

Peter Pan and the Neverland Syndrome 네버랜드 신드롬
수명이 길어지며 생애 주기의 변화가 생겼다. 청춘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이 길어졌다. 외모뿐 아니라 생각도 젊어지려고 한다.


소비자도 제각각, 취향도 제각각이다. 이에 대응해서 출판시장도 변화의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책을 찾는 수요가 세분화된 탓에 수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노리기보다는 확실한 독자 이삼천 명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으로 흐름이 이어진다. 그 예로 이 책에서는 <아무튼>, <띵>, <쏜살문고> 등의 시리즈를 꼽는다. 모든 분야에 트렌드가 있고, 그 트렌드로 움직이게 하는 조짐이 반드시 있다.

2008년 말 <트렌드 코리아 2009>로 시작된 이 책은 트렌드를 예측한다기보다는 트렌드를 이끌어가는듯하다.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다. 개인이든, 생업에 종사하든, 기업을 경영하든 트렌드의 조짐을 파악하는 일은 변화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웅크렸다가 더 높이 뛸 수 있음(RABBIT JUMP)'을 의미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2-11-0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댓글저장
 
전 세계 상위 100%
김시훈 지음 / 덤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표지 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우선 표지 이미지. 저자 김시훈의 작품 <이따 생각 9 (p. 31)>과 <이따 생각 15 (p. 255)> 엇갈리게 놓아 만든 이미지다. 김시훈의 범상치 않은 작품처럼 비범한 표지 이미지다.

표지의 책 제목 '전 세계 상위 100%'. 잘했다는 의미인 '상위', 만족스러운 '100', 희귀하고 드묾을 나타내는 %를 뭉뚱그려 저장된 이미지를 떠올린 게 실수였다. 게으른 뇌. 뭔가 놓쳤음을 김시훈의 글을 읽고 눈치챘다.

'"당신은 전 세계 상위 100% 안에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
오! 내가 이렇게 잘했나? 전 세계에서 상위 100%라니. 뭔가 애매한 면이 있었지만,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었다는 관용구는 주로 칭찬할 때 쓰이지 않는가. (...)
상위 100%가 어느 정도 수치의 의미인지 곱씹어 보았다. 답은 나왔다. 꼴등이라는 말이었다. (p. 62)'

책에 소개한 작품을 보는 순간, 확실한 개성을 가진 작가임을 단박에 알았다. 현대미술 작가 김시훈의 이야기 <전 세계 상위 100%>다. 우리가 흔히 '쓸데없는 생각'이라 여기는 이야기들이다.


두 달 전부터 저녁에 만 걸음 정도 걷는다. 강변을 따라 아내와 걷다 보면 건강을 유지하려고 자전거를 타거나 우리 부부처럼 걷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동네가 작다 보니 교회 사람들도 만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만나고,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마주치는 눈에 익은 사람들도 있다.

쓸데없는 생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내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걷기도 하지만 각자 생각하면서 걷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가끔 아내와 똑같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를테면...

요 며칠 그 나이 드신 부부가 왜 안 보이지? 날이 일찍 어두워져 걷는 시간을 옮겼나?
저분은 어디까지 갔다 올까?
저 강아지는 왜 저렇게 걷지?
저분은 왜 항상 왼쪽으로 걸을까?
어? 왜 혼자 나오셨지? 싸우셨나? 어디 아프신가? 어디 가셨나?...


'우리는 놀랍게도 움직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할 수' 있다. 나는 안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끔'이라는 버튼을 '켬'으로써 끔을 켠다는 생각을 항상 견지하려 애쓰고 있다. (p. 2)'

김시훈 작가도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가 하는 생각과는 다르다. 엉뚱하고 기발하다. 그리고 공감하게 된다. 웃음 짓게 되고, 무료함에서 벗어나는 느낌, 과하게 보탠다면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SF 시' 장르는 왜 없을까?
왜 어떤 사람들은 겉멋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겉멋을 추구하는 이들은 비난할까.
진정한 '검술 극의'의 경지는?
남을 의식에서 롱패딩을 사 입고, 남들 다 입어서 롱패딩을 사지 않는 사람 모두 '남의 눈치'를 본다고 점에서 서로 닮았고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남에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라는 말을 건넨다면,
어? 어떻게 저런 생각을? 난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지? 짜증 나네. 기가 막힌 생각인데? 분하다.
뭐 대충 이런 의미가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김시훈 작가의 이야기를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말한 건 내가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생각이 부러웠고,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여기면서 공감하는 데 조금은 짜증도 나고, 게다가 글에 유머까지... 아내에게 작가의 글을 말로 옮겨 보니 웃지 않았다. 분하다. 글의 맛을 전달하는데 실패했으니 말이다.

김시훈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따라 하면 일상의 무료함을 은근히 웃음 지으며 찬란한 일상으로 바꿀 수도 있겠다. 통찰? 아니 그보다는 작은 개념, 소소한 즐거움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김시훈의 바람대로 벌러덩 누워 김시훈을 생각을 읽고는 피식 웃고 곁에 밀어두고는 나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생각멍을 때릴 수도 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을 때 글쓴이로서 한 가지 추천해 드리고 싶은 방식이 있다. 한 번에 다 읽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을 때 가끔 이 책을 꺼내서 눈길이 가는 제목의 절을 찾아 읽다가 한 번씩 피식하고 웃곤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날 때 또 책장에서 꺼내 읽는다. 마치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을 꺼내 먹듯이. (p. 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유저 프렌들리 - 세상을 바꾸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비밀
클리프 쿠앙.로버트 패브리칸트 지음, 정수영 옮김 / 청림출판 / 2022년 9월
평점 :
절판


대학에 입학했을 때 당시로서는 최첨단 컴퓨터였던 VAX 11이 있었다. 교실 몇 개를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키펀처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컴퓨터는 사용자 친화(User Friendly)와 거리가 꽤 멀었다. 어떤 결과를 얻으려면 컴퓨터가 알아차리는 언어를 우선 배워야 했다. 컴퓨터 친화적이었고 컴퓨터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때였다.

'그런데 어느 눈부시게 밝은 날 캘리포니아에서 웬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컴퓨터가 이렇게 똑똑한데, 사람에게 컴퓨터를 가르치지 말고 컴퓨터에게 사람에 대해 가르쳐 보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이 똑똑한 엔지니어들은 밤낮없이 일해 아주 작은 실리콘 칩에게 사람들에 대해 가르쳤답니다. (p. 14)'

이 글은 애플이 자신들이 만든 사용자 친화적인 기계를 홍보하는 광고로 '이 엔지니어들이 드디어 일을 마쳤을 때, 이들이 소개한 개인용 컴퓨터는 성격이 좋다 못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할 정도 (p. 14)'였다며 광고를 맺는다.

이제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려고 컴퓨터에 대해 배울 필요가 없다. 사용자 친화적인 컴퓨터가 우리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사람에 대해 배워서 사람이 어떤 실수를 자주 하는지, 어떻게 서류를 정리하고 전화번호를 보관하는지, 사람이 일하는 방식 따위를 이미 다 안다.


루이 15세는 뻣뻣한 왕좌를 버리고 편안한 라운지 의자를 선택했다. 타자 치는 속도를 줄인 쿼티 타자기 자판 배열은 표준이 돼 지금도 사용한다. 여성이 자기발전을 추구하도록 시간을 확보해 주는 학문, 가정학은 집 안에서 효율을 추구하면서 세탁기 등 가전제품 발달의 기틀을 마련했다. 토퍼레이터 세탁기는 처리하기 어려운 이음새를 제거했고 기능을 손쉽게 이해하도록 조작부를 한곳에 모았다.

사용자가 즉각적인 만족감을 갖도록 한 폴라로이드 카메라, 인체에 맞게 디자인한 프린세스 전화기, 관절염으로 사과를 깎지 못해 쩔쩔매는 아내를 보고 만든 옥소 껍질 벗기기 칼, 그물 같은 메시 소재 의자, 아마존의 원클릭 주문, TV 등장인물이 방금 전 한 말을 묻는 현상에서 착안한 2초 되감기, 기기 하나로 여섯 개 이상의 역할을 하는 아이폰, 호감이나 반감을 곧바로 반응할 수 있는 '좋아요' 버튼...

모두 사용자가 사용자 친화적인 눈으로 관찰한 후 만든 것들이다.


<유저 프렌들리>, 이 책은 '사용자 친화'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다룬다. 사용하기 쉬운 제품은 무엇인지, 사용자들이 바라는 디자인은 무엇인지를 여러 제품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지난 100년간 디자인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꿔왔는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무엇을 지나쳤는지를 살펴보면서 숨겨진 디자인 원리도 밝혀준다. 미래에는 어떤 디자인이 세상에 환영을 받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책이다.

'사용자 경험이 생소한 독자라면, 이 책을 덮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일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여러분이 무심코 화면을 탭하고 스와이프 하는 swipe 행위 이면의 이상과 원리와 전제를 이해하게 되었으면 한다. 디자이너라면, 여러분이 매일 접하는 개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더 명확하게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에 주입하는 가치 기준을 더욱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때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가장 작게는 여러분이 읽은 이 책을 주위 사람들에게 건네주며 "이래서 사용자 경험이 중요해"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 17)'

책을 마치며 로버트 패브리칸트가 일곱 단계로 제시하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 과정은 디자이너라면 읽고 참고할만 내용이다.


'유저 프렌들리' 시대다. 이제는 모든 기업들이 사용자 친화적 알고리즘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유저들은 사용방법이 간단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디자인을 원한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불편하다면 사용자들은 외면하고 그 디자인은 실패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